Patristic Theology/ㅡThe Trinity

삼위일체론 총목차(한글판) -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Bavinck Byeon 2014. 5. 7. 01:50

삼위일체론 총목차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김 종 흡 옮김
 

제 1 권

 

1. 이성(理性)을 오용해서 삼위일체 신앙을 공격하는 궤변가들을 반박하려는 것이 이 책을 쓰는 목적이다. 그들의 오류에는 3중의 원인이 있다. 성경은 오류를 제거하면서 점진적으로 신적 사물로 우리를 인도한다. 진정한 불사(不死)는 무엇인가? 우리가 신적 사물을 이해하도록 신앙이 우리를 양육한다. / 29

2. 이 글은 삼위일체를 어떻게 논하려는가? / 32

3. 독자에 대한 저자의 요구.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의 오류는 저자의 탓이 아니다. / 33

4. 삼위일체에 대해서 정통 신앙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 35

5. 삼위일체에 관한 어려운 문제들: 어떻게 세 분이 한 하나님이시며, 불가분적으로 역사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어떤 일을 각각 따로 하시는가? / 36

6.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다. 성부뿐 아니라, 삼위일체가 불사(不死)하신다. 만물이 성부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온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시며, 참 하나님이시다. / 38

7. 성자는 어떻게 성부보다 작으며, 자기보다도 작으신가? / 43

8. 성자를 성부에게 복종시킨다는 말씀이 오해를 받았으므로, 그에 대한 성경 본문을 설명한다. 그리스도가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리라는 것은, 나라를 그에게서 빼앗으리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을 뵙게 되는 것이 모든 행동의 약속된 목적이다. 성령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성부와 동등하게 충분하시다. / 45

9. 어떤 때에는 한 위격으로 모든 분을 의미한다. / 50

10.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모양으로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실까? 나라를 바치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지 않으리라. / 52

11. 성경의 어떤 원칙에 따라 성자를 혹은 동등하시다, 혹은 작으시다고 해석하는가? / 55

12. 성부가 아시는 날과 시간을 성자는 왜 모르시는가? 혹은 하나님의 본체인 그리스도에 대해서, 혹은 종의 형체인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한다. 어떻게 혹은 그리스도가 나라를 주시며, 혹은 그렇지 않은가? 그리스도는 심판을 하시리라, 또 하시지 않으리라. / 57

13. 한 위격(位格)으로서 그리스도의 본성이 여러 가지이므로 그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을 한다. 무슨 까닭에 아버지가 심판하시지 않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는가? / 62

 

제 2 권

 

서론. / 70

1.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원칙이 있으며, 그 성경 말씀에는 세 가지 양식이 있다. / 71

2. 성자에 대한 어떤 표현 양식은 어느 쪽 원칙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 74

3. 성령에 관한 어떤 일들은 한 가지 원칙으로만 해석해야 한다. / 74

4. 성부가 성자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은 불평등을 증명하지 않는다. / 76

5. 성자와 성령이 파견되신다고 해서 작으신 것이 아니다. 성자는 자기를 파견하신다. 성령의 파견에 대하여. / 76

6. 성령이 피조물을 취하신 것은 말씀이 육신을 취하신 것과 같지 않다. / 80

7. 하나님이 나타나신 데에 대한 의문. / 83

8. 삼위일체 전체가 보이시지 않는다. / 84

9. 성부만이 영생하시며 보이지 않으신다고 믿는 사람들을 논박한다. 진리는 평화 속에서 탐구하는 것이다. / 85

10. 삼위일체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위격의 구별이 없었는가, 또는 어느 한 위격이었는가? 아담에게 나타나심. 아브라함에게 보이심. / 87

11. 같은 이야기 계속. / 91

12. 롯에게 나타나신 문제를 검토한다. / 92

13.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심. / 93

14. 구름 기둥과 불 기둥에서 나타나심. / 95

15. 시내산에서 나타나심. 삼위일체가 말슴하셨는가, 또는 어느 한 위격이 말씀 하셨는가? / 95

16. 모세는 어떻게 하나님을 보았는가? / 97

17. 어떻게 하나님의 등이 보였는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등을 보는 망대는 정통교회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등을 보았다. 조상들은 성부만을 볼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은 경솔한 생각이다. / 99

18.다니엘이 본 환상. / 103

 

제 3 권

 

서론 : 저자는 무슨 까닭에 이 삼위일체론을 쓰는가? 독자들에 대한 요구. 앞 권에서 말한 것. / 106

1. 삼분법의 둘째 문제에 대하여. / 109

2. 하나님의 뜻이 모든 물체적 변화의 더 높은 원인임을 예를 들어 증명한다. / 110

3. 같은 문제의 계속. / 112

4.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뜻대로 쓰시며,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보이는 것들을 만드신다. / 113

5. 무슨 까닭에 기적은 일상적으로 행해지지 않는가? / 115

6. 색다른 것만이 기적이 된다. / 116

7. 마술로 위대한 기적을 행한다. / 116

8. 마술에 의해서 변하는 것들은 하나님만이 창조하신다. / 117

9. 모든 것의 처음 원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 120

10. 피조물은 몇가지 표적으로 볼 수 있는가? 성찬에 대하여. / 122

11. 하나님의 본질 자체가 나타난 일은 없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은 천사들의 섬김으로써 된 일이다. 화법(话法)에서 온 반대론을 제거함.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나타나신 것과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모두 천사들의 봉사로 된 일이다. 이 권에서 한 말과 다음 권에서 할 말. / 126

 

제 4 권

 

서론 :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구해야 한다. / 133

1. 우리는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함으로써 완전하게 된다. 성육신하신 말씀이 우리의 암흑을 흩어버린다. / 135

2. 우리는 성육신하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깨닫기에 적합하게 된다. / 137

3. 그리스도의 몸이 한번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은 우리의 몸과 영혼이 이중으로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과 조화되며, 그 결과는 구원이다. 그리스도의 한번 죽으심을 어떻게 우리의 두번 죽는 데 주셨는가? / 138

4. 하나와 둘의 비율은 여섯이라는 수가 완전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여섯의 완전함을 자주 말한다. 일년에도 여섯이 많이 나온다. / 141

5. 여섯이라는 수는 그리스도의 몸과 예루살렘 성전 건축에서도 나타났다. / 143

6. 부활까지의 사흘에서도 하나와 둘의 비율이 나타나 있다. 144

7. 우리는 어떻게 한 중보로 말미암아 많은 자가 하나로 집결되는가? / 145

8.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어떻게 그의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 146

9. 같은 논지의 계속. / 146

10. 그리스도가 생명의 중보이신 것 같이, 마귀는 죽음의 중보이다. / 147

11. 귀신들이 행하는 기적은 멸시하라. / 148

12. 마귀는 죽음의 중보요, 그리스도는 생명의 중보. / 148

13. 그리스도는 자진해서 죽으셨다. 생명의 중보는 어떻게 사망의 중보를 극복하셨는가? 마귀는 그 추종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경멸하게 만든다. / 150

14. 우리의 허물을 깨끗이 씻는 가장 완전한 희생은 그리스도이시다. 희생에 대해서는 네 가지 점을 생각해야 한다. / 153

15. 자기의 의로 정하되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은 교만하다. / 154

16. 부활과 장래 일에 대해서는 옛 철학자들에게 묻지 말라. / 155

17. 미래사를 아는 방법은 몇 가지니가? 철학자들이나 탁월한 고대인들에게 죽은 자의 불활에 대해서 물어서는 안된다. / 156

18.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신 목적은 우리가 믿음으로 깨끗이 되며 들어올림을 받아 변함 없는 진리에 도달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157

19. 성자는 어떻게 파견되며 미리 선포되셨는가? 그는 어떻게 육신 탄생으로 파견되어 작게 되면서, 성부와의 동등서에는 상함이 없으셨는가? / 159

20. 보내는 이와 보냄을 받는 이가 동등하시다. 무슨 까닭에 성부가 성자를 보내셨다고 하는가? 성령의 파견: 누가 어떻게 보내셨는가? 성부는 신성(God-head) 전체의 처음이시다. / 161

21. 성령이 감각에 나타나심과 삼위일체 신의 공동 영원성에 대하여, 여기까지 한 말과 앞으로 할 말. / 166

 

제 5 권

 

1. 하나님께와 독자에게 저자가 바라는 것. 하나님께는 물질적이거나 변하는 것이 전혀 없다. / 169

2. 하나님은 변함 없는 유일한 존재. / 171

3. 아리우스파가 "났다"와 "나지 않았다"는 말들을 근거로 주장하는 이단설을 반박한다. / 171

4. 우연한 것은 항상 어떤 변화를 의미한다. / 172

5. 하나님에 대한 말은 우연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본질과 관계에 대한 것이다. / 173

6. "났다"와 "나지 않았다"는 말들에 관한 이단들의 트집에 대답한다. / 174

7. 부정&사를 붙인다고 해서 범주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 176

8. 하나님에 대해서 실체에 관한 말은 각 위격에 대해서 따로 따로 하는 말이며,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함께 하는 말이다. 하나님께는 한 본질과, 헬라어로 세 휘포스타시스(hypostaseis), 라틴어로 세 위격(personae)이 있다. / 178

9. 세 위격(personae)이라는 명칭은, 인간적인 뜻으로 해석한다면 적당하지 않다. / 180

10. 한 본질로서의 하나님에게만 속한 일들을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단수로 쓰고, 복수로 쓰지 않는다. / 181

11. 삼위일체 내부의 관계에 대한 말. / 181

12. 상호 관계를 표시하는 이름이 없을 때가 있다. / 183

13. 삼위일체에서는 시초(principium)라는 말을 상대적으로 어떻게 쓰는가? / 184

14. 성령의 유일한 시초는 성부와 성자이시다. / 185

15. 성령은 선물로 주시기 전에도 주신 후와 같이 선물이셨는가? / 187

16. 시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하는 말은 상대적인 것이며, 우연적인 것은 아니다. / 188

 

제 6 권

 

1. 성자는 성부의 능력과 지혜라고 사도는 말한다. 그래서 정통파는 초기 아리우스파를 반박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성부 자신은 지혜가 아니시고, 지혜의 아버지이실 뿐인가? / 191

2. 성부와 성자에 대해서 함께 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 193

3.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 존재가 서로 하나임은 "우리가 하나이라"는 말씀으로 추측된다. 성자는 지혜와 모든 다른 일에서 성부와 동등하시다. / 195

4. 같은 논법의 계속. / 197

5. 성령도 모든 점에서 성부 성자와 동등하시다. / 198

6. 하나님은 어떻게 단순하고도 다양한 본질적 존재이신가? / 199

7. 하나님은 삼위일체시지만, 삼중(三重)이 아니시다. / 200

8. 하나님의 본성에는 아무 것도 덧붙일 수 없다. / 201

9. 한 위격을 유일신이라고 부르는가 또는 삼위를 합해서 그렇게 부르는가? / 202

10. 힐라리우스는 각 위격에 속성을 배정했다. 삼위일체는 피조물에 나타나신다. / 204

 

제 7 권

 

1. 저자는 삼위일체의 각 위격이 지혜이신가 라는 질문으로 돌아간다. 이 질문을 해결하는 데에는 어떤 곤란이 있으며 방법은 무엇인가? / 207

2. 성부와 성자는 함께 한 본질적 존재인 것과 같이, 함께 한 지혜이시다. 그러나 한 말씀이신 것은 아니다. / 213

3. 성부와 성령도 지혜이신데, 성경에서 주로 성자를 지혜라는 이름으로 알리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령은 성부 성자와 함께 한 지혜이시다. / 214

4. 어떤 사정으로 헬라인들은 세 휘포스타시스를 말하고, 라틴사람들은 세 페르소나(위격)를 말하게 되었는가? 한 하나님 안에 세 페르소나가 있다는 말은 성경에 없다. / 218

5. 하나님에 관한 말로는 에센티아가 합당하고, 숩스탄티아는 적당하지 않다. / 223

6. 삼위일체에 대해서 한 페르소나와 세 에센티아를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에서 말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랐으며, 또 그 형상이다. / 224

 

제 8 권

 

서론 : 위에서 말한 것의 결론. 믿음에 관한 더 어려운 문제들을 생각할 때에 지켜야 하는 원칙. / 231

1. 하나님 안에서는 한 위격보다 세 위격이 더 크지 않다는 것을 이성에 의해서 밝힌다. / 232

2. 하나님이 어떻게 진리이신가를 이해하려면, 모든 물체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 234

3. 하나님이 최고선이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는 선하게 되지 않는다. / 235

4.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바른 믿음으로 그를 알아야 한다. / 237

5. 알지 못하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 239

6. 아직 의롭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 사랑하는 의로운 사람을 알 수 있는가? / 241

7. 삼위일체를 알도록 인도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하여. 천사들과 함께 기적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을 외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선한 천사들의 경건을 본 받음으로써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 246

8.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오며 하나님인 그 사랑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 248

9. 우리는 의의 변함없는 형태를 사랑하기 때문에, 의인들을 사랑하게 된다. / 250

10. 사랑에는 마치 삼위일체의 형적처럼 세 가지 면이 있다. / 251

 

제 9 권

 

1. 우리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 253

2. 사랑에서 발견되는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 255

3. 자기를 알며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삼위일체의 형상이 있다. 마음은 자체를 통해서 자체를 안다. / 257

4. 마음 자체와 그것에 대한 사랑과 지식 이 셋은 하나이며 서로 동등하다. 이 셋은 실체적으로 존재하며, 관계적으로 서술된다. 이 셋은 분리할 수 없다. 이 셋은 부분들인 듯이 결합되거나 혼합되지 않으며, 한 본질적 존재며, 서로 관계적인 존재이다. / 258

5. 이 셋은 각각 자체로 있으면서, 서로 모든 것 안에 있다. / 261

6. 사랑을 그 자체로서 아는 지식과 영원한 진리 안에서 아는 지식은 다르다. 물직적인 사물들도 영원한 진리의 법칙에 따라 판당해야 한다. / 262

7. 우리는 영원한 진리 안에서 본 것들을 근거로, 말(언어)을 마음 속에 잉태하며 낳는다. 말은 피조물의 것이거나 창조주의 것이거나 간에, 사랑으로 잉태된다. / 265

8. 욕망과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 / 266

9. 영적인 사물에 대한 사랑에서는 난 말과 잉태된 말이 같은 하나이지만, 육적인 사물에서는 그렇지 않다. / 266

10. 사랑을 받는 지식만이 마음의 말인가? / 267

11. 자체를 아는 마음의 형상, 즉 그것이 낳은 말은 그 마음 자체와 동등하다. / 268

12. 지식은 마음의 자식인데 무슨 까닭에 사랑은 그렇지 않은가? 이 질문에 대답한다. 마음과 마음 자체에 대한 지식과 자체에 대한 사랑, 이셋은 삼위일체의 형상이다. / 269

 

제 10 권

 

1. 연구심이 강한 마음의 사랑은 모르는 것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 273

2. 모르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 277

3. 마음이 자체를 사랑할 때에는 자체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 278

4. 마음은 자체를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안다. / 280

5. 영혼을 향해서 자체를 알라고 명령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마음이 자체의 본체에 대해서 오해하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인가? / 281

6. 마음이 자체에 대해서 가진 견해는 기만적인 것이다. / 282

7. 영혼의 본체에 대한 철학자들의 견해. 영혼을 한 물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류는 영혼에 대한 지식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을 첨가하기 때문이다. 발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 283

8. 영혼은 어떻게 자체를 탐구하는가? 영혼 자체에 대한 영혼의 오류는 어디서 오는가? / 255

9. 마음은 네 자체를 알라는 교훈을 이해함으로써 자체를 안다. / 286

10. 마음은 자체에 관해서 확실히 세 가지 일을 알고 있다. 즉 이해한다는 것과 있다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이다. / 287

11. 기억과 이해력(또는 지성)과 의지에서 우리는 능력과 지식과 이용(利用)을 보아야 한다. 기억과 이해력과 의지는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며, 상대적 관계적으로는 셋이다. / 290

12. 기억과 이해력과 의지를 가진 마음은 삼위일체의 한 형상이다. / 292

 

제 11 권

 

1. 외면적 인간에게도 삼위일체의 형적이 있다. / 294

2. 시각에 있는 일종의 삼위일체. 시각에는 본성이 다른 것 셋이 있다. 보이는 물건의 시각, 즉 형상이 어떻게 생기는가? 실례를 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어떻게 결합되어 하나가 되는가? / 295

3. 기억력과 내면적 시상과 이 둘을 결합하는 의지, 이 셋은 생각에서 하나가 된다. / 300

4. 어떻게 이와 같이 하나가 되는가? / 301

5. 외면적 인간의 삼위일체는, 즉 외적인 시상(视像)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 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원한다. 외적인 시상에서 물체의 형상은 이를테면 어버이이고 시상은 자식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결합하는 의지는 성령을 암시한다. / 302

6. 보는 일에서 의지의 휴식과 종말은 어떤 것인가? / 305

7. 본 것을 다시 생각하는 사람의 기억에는 다른 삼위일체가 있다. / 306

8. 생각하는 양식이 다르다. / 308

9. 형상은 다음 형상을 만들어낸다. / 311

10. 우리가 보지 않은 것에, 다른 데서 본 것을 상상이 첨가한다. / 312

11. 수효와 무게와 분량. / 313

 

제 12 권

 

1. 외면적인 인간과 내면적인 인간은 어떤 것인가? / 315

2. 생물 중에서 사람만이 물체들이 있는 영원한 이치를 깨닫는다. / 316

3. 정관(静观)에 속한 높은 이성과 행동에 속한 낮은 이성은 한 마음 속에 있다. / 317

4. 영원한 사물을 정관하는 마음의 부분에만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 317

5. 남녀의 결혼과 그 자식들에게서 삼위일체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견해에 대하여. / 318

6. 무슨 까닭에 이 견해를 배척해야 하는가? / 319

7. 남자는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인가?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이 아닐까?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한 사도의 말씀은 어떻게 비유적 신비적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 322

8.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는 것. / 325

9. 같은 논지의 계속. / 326

10. 최저의 타락 상태까지 점진적으로 가게 된다. / 326

11. 사람 안에 있는 짐승의 형상. / 327

12. 내면적 인간에게는 일종의 숨은 혼인이 있다. 불법적인 쾌락을 생각하는 것. / 328

13. 남자는 마음을 의미하고 여자는 신체 감각을 의미했다는 의견에 대하여. / 330

14. 지혜와 지식은 어떻게 다른가? 하나님에 대한 경배는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다. 영원한 것들에 대한 정신적 인식은 지혜를 통해서 온다. / 331

15. 플라톤과 피타고라스의 회상(回想)설에 반대한다. 사모스(Samos)의 피타고라스에 대하여. 지혜와 지식의 차이에 대하여, 또한 무상한 것들에 대한 지식에서 삼위일체를 찾는 데 대하여. / 334

 

제 13 권


1. 성경에 의해서 지혜와 지식의 직분을 구별하려고 한다. 요한복음의 처음에서 어떤 말씀은 지혜에 속하고 어떤 말씀은 지식에 속한다. 어떤 것은 믿음의 도움을 받아야만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보는가? 요한복음 기사 중에서 어떤 것은 신체 감각으로 알 수 있으며, 어떤 것은 마음의 이성으로만 알 수 있다. / 337

2. 믿음은 신체가 아니라 심정(心情)에 속한 일이다; 믿음은 어떻게 모든 신자에게 공통되며 같은가? 신자들의 믿음이 하나인 것은 뜻하는 사람들의 뜻이 하나인 것과 같다. / 342

3. 어떤 욕망들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이며, 각 사람이 알고 있다. 시인 엔니우스(Ennius)의 말. / 343

4. 행복하고자 하는 소원은 모든 사람이 같지만 행복 자체에 관해서는 소원이 매우 다양하다. / 345

5. 같은 제목의 계속. / 346

6.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하는데,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을 택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 348

7. 사람이 언젠가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행복은 내세에서만 얻으리라. 교만한 철학자들의 행복은 가소롭고 가련한 것이다. / 348

8. 영생이 없이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 / 351

9. 우리는 인간의 이론이 아니라 믿음의 도움으로, 장래의 행복은 참으로 영원하리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셨기 때문에 행복이 영원하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된다. / 352

10. 죽을 운명의 불행에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성육신보다 더 적당한 방법이 없었다. 우리의 공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사다. / 354

11.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가? / 356

12. 아담의 죄 때문에 모든 사람이 마귀의 권세에 넘겨졌다. / 357

13. 사람은 힘이 아니라 의에 의해서 마귀의 권력에서 구출되어야 했다. / 358

14. 그리스도께서 죽을 책임이 없으면서 죽으셨기 때문에 죽을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해방하셨다. / 360

15. 같은 주제에 대하여. / 361

16. 죽음과 금생의 재난들이 남아 있는 것도 선택된 자들을 위해서 유익하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은 어떻게 합당했는가? 하나님의 진노란 무엇인가? / 363

17. 성육신의 다른 이점들. / 366

18. 무슨 까닭에 하나님의 아들은 아담의 종족과 처녀에게서 인간성을 취하셨는가? / 367

19. 성육신 말씀에서 지식에 속한 것과 지혜에 속한 것은 무엇인가? / 368

20. 이 권의 주제는 무엇이었는가? 실천적 지식과 진정한 믿음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삼위일체에 우리는 어떻게 점진적으로 도달했는가? / 370

 

제 14 권

 

1. 우리가 여기서 논하려는 지혜는 무엇인가? 철학자("爱智家")라는 이름의 유래. 지혜와 지식의 차이에 대해서 이미 말한 것. / 373

2. 시간적인 믿음을 품으며 정광(静观)하며 사랑하는 데는 일종의 삼위일체가 있지만, 그것은 아직 정확히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없다. / 376

3. 방금 말한 데 있는 난점을 제거한다. / 377

4. 하나님의 형상은 이성적 영혼의 영원성에서 찾아야 한다. 삼위일체는 어떻게 마음 속에서 설명되는가? / 379

5. 유아들의 마음은 자체를 아는가? / 380

6. 자체를 생각하는 마음 속에 어떻게 일종의 삼위일체가 있는가? 이 삼위일체에서 생각은 어떤 몫을 하는가? / 381

7. 예를 들어 설명한다. 독자를 돕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문제를 처리하는가? / 383

8. 이제는 마음의 가장 고귀한 부분에서 하나님의 형상인 삼위일체를 찾아야하겠다. / 385

9. 내세에는 공의와 그밖의 덕성들이 없어질 것인가? / 387

10. 자체를 기억하며 이해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어떻게 한 삼위일체를 형성하는가? / 389

11. 기억은 현재의 일들도 기억하는가? / 390

12. 마음 속에 있는 삼위일체는 마음이 하나님을 기억하며 이해하며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지혜다. / 391

13.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잊으며 회상할 수 있는가? / 392

14. 마음은 자체를 바르게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한다.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체를 미워한다고 해야 한다. 약하고 그릇된 마음도 자체를 기억하며 이해하며 사랑하는 점에서는 항상 강하다. 마음은 하나님을 기억하며 이해하며 사랑함으로써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 하나님에게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 393

15. 영혼은 장래의 행복을 기대하지만, 잃어버린 행복을 회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의의 원칙들을 기억하고 있다. 올바른 생활의 변함 없는 원칙들은 불경건한 자들도 알고 있다. / 396

16. 하나님의 형상은 어떻게 사람안에서 새로 형성되는가? / 398

17.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어떻게 새롭게 되어, 드디어 행복한 점에서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모양이 완성되는가? / 400

18. 사도 요한의 말씀은 우리가 장차 몸도 영생하리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같을 것이라는 뜻인가? / 402

19. 요한의 말씀은 우리가 영생으로 삼위일체의 완전한 모양이 되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혜는 행복에서 완성된다. / 402

 

제 15 권


1. 하나님이 마음 위에 계시다. / 405

2. 하나님은 비록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항상 찾아야 한다. 삼위일체의 흔적을 피조물에서 찾는 것은 무익하지 않다. / 406

3. 제14권까지를 요약한다. / 407

4. 우주 전체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 410

5. 자연적인 이성으로는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어렵다. / 411

6. 하나님의 단순성에 어떻게 삼위일체가 있는가?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삼위일체들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시는가, 어떻게 나타나시는가? / 413

7. 우리가 언급한 삼위일체들에서 하나님이신 삼위일체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 416

8.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거울로 본다고 하는 사도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 420

9. "수수께끼"라는 용어와 비유적 표현들에 대하여. / 421

10. 마음의 언어에 대하여,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과 수수께끼로 보듯 한다. / 423

11.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와 같은 것은 우리의 외면적이며 감각적인 말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내면적이며 심적인 말에서 구해야 한다. 우리의 말이나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이나 지식 사이에는 최대의 차이가 있다. / 426

12. 아카데미파의 철학. / 428

13. 우리의 마음에 있는 지식 및 언어와 하나님의 지식 및 말씀 사이의 차이를 계속 논한다. / 432

14. 성부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점에서 성부와 동등하시다. / 433

15. 우리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다른가? 우리의 말은 영원하거나 영원하다고 할 수 없다. / 435

16. 우리의 말은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될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결코 동동할 수 없을 것이다. / 437

17. 성령을 어떻게 사랑이라고 부르며 또 성령만을 사랑이라고 부르는가? 성경에서 성령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하다. / 438

18. 하나님의 선물 가운데서 사랑이 가장 귀하다. / 442

19. 성경에서는 성령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부른다. 삼위일체 내에서 성령만이 사랑이신 것은 아니지만, 특히 성령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 443

20.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본성이 아니라 의지에서 났다고 한 유노미우스(Eunomius)를 반박한다. 이미 말한 것을 끝내는 말. / 448

21. 우리의 기억력과 이해력에 있다고 하는 성부와 성자의 형상에 대하여; 우리의 의지 또는 사랑에 있는 성령의 형상에 대하여. 450

22. 우리 자신 안에서 발견되는 삼위일체의 형상과 삼위일체 자체는 얼마나 다른가? / 452

23. 사람 안에 있는 삼위일체와 하나님 안에 있는 삼위일체와의 차이를 부연한다. 지금은 믿음의 도움으로 삼위일체를 거울로 보듯 하며, 미래에 약속된 대면시에 더 분명히 보게 되리라 한다. / 453

24. 사람의 마음은 연약하다. / 455

25. 성령은 무슨 까닭에 나시지 않으며, 어떻게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에만 이해될 것이다. / 455

26.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 주셨다. 성부와 성자에게서 성령이 나오시는 것은 시간과 관계 없는 일이며, 성령을 두 분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 456

27. 무슨 까닭에 성령은 "나신다"고 하지 않으며, 성부만이 "나시지 않는다"고 하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 460

28. 기도로 이 권을 마치며 말이 많았음을 사과한다. / 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