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 Reviews/Korean

목회 소명을 생각하며 - 박성호 목사

Bavinck Byeon 2018. 7. 22. 19:36

목회 소명을 생각하며


박성호 목사(의정부 한마음개혁교회)



이 졸고는 저의 목회 소명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가 속했던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의 교역자이신 최낙재, 정병길, 두 분 목사님의 지도를 받는 중에 작성하여 두 분 목사님께 제출했던 글입니다. 이 부분은 2010년 2월에 신학교에 제출하기 위하여 새로 썼습니다.


1. 소명이란 무엇인가


‘소명’(召命)은 문자 그대로 ‘왕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창조주시요 대주재이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 곧 하나님 나라의 일의 일단(一端)을 맡기시기 위해 부르시는 명령이므로, 땅에 붙은 피조물이요 미천한 종인 사람으로서는 오직 승순(承順)하는 것이 마땅한 지극히 거룩한 명령입니다.


‘소명’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면, 가장 먼저, ‘하나님’은 누구시며 ‘부르심’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여야 하겠습니다. 특히 ‘그가 하나님을 어떠하신 분으로 알고 믿고 있는가’ 하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신자의 모든 경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관건적인 사실이겠으나, 지면의 제약으로 여기에서는 충분히 진술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할 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인 구약과 신약의 전(全)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그리고 교회가 성신의 인도를 받아 성경의 요긴한 가르침을 잘 요약하여 고백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4문답을 따라, 한없는 경외심을 품고서 “하나님은 신이시요,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십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이와 같으신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섭리의 일로 작정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가운데 순전히 은혜로 구원의 언약을 베푸셨으며, 언약의 중보자인 그리스도를 세우시고 그를 통해 선택하신 자들을 구속(救贖)하시며 천하를 공의로 다스리시고 심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말 못하는 우상과 달리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인간 세계에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부터 친히 구속하신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할 인간 대언자(代言者)를 세워 주셨는데,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신 입으로나 하늘의 천사들을 통하여 그 뜻을 선포하실 수 없어서가 아니요, 오직 죄 많은 인생의 연약함을 하감하시고 긍휼히 여기신 사랑과 은혜의 배려였습니다. 그리하여 구약의 여러 시대에 선지자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게 하셨고, 또한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독생하신 성자(聖子)를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죄인이 사죄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필요한 모든 말씀을 다 전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열두 사도를 ‘부르셔서’ 사람이 듣고 믿으면 능히 구원을 얻을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택하신 종들을 성신의 충만한 감화로 온전히 주장(主掌)하셔서 구약과 신약의 성경 66권을 기록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확정하시고 영구히 보존되게 하셨습니다.


한편,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특정인을 부르실 때에는 신적인 현현(顯現)이나 천사나 꿈이나 환상이나 거룩한 음성 등의 신비한 방식을 사용하셨고, 그리스도께서 땅에 계실 때에는 친히 음성으로 열둘을 부르셔서 사도로 세우셨으나, 그 이후로는 완비된 계시의 총집성(總集成)인 성경 말씀이 사도적 교회의 강단을 통해 충실히 해명되게 하시는 동시에 진리의 영이신 성신께서 친히 신자의 마음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심으로써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외적(外的)으로, 즉 신자의 귀와 눈을 통해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자의 마음에 감화와 깨달음과 확신을 주시는 성신의 내적(內的) 조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이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도 ‘말씀’과 ‘성신’으로 말미암아 깨닫고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소 주관적인 성격이 있는 성신의 내적 조명은 반드시 객관적인 성경 말씀의 전반적인 의미와 일치해야 하며 성경 말씀으로 확증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인 까닭에 하늘보다 높으며 바다보다 깊고 넓어서 제아무리 부지런히 배우고 또 배워서 알았다고 해도 마땅히 알아야 할 대로 충분히 다 알았다고 할 수 없으며, 날마다 새롭게 알아 가야 마땅할 무진장(無盡藏)의 보고(寶庫)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통투하고 균형 있게 배우고 알아 가는 데에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며, 같은 말씀이라 하여도 깨닫는 정도가 개인의 성숙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지하는 것도 개인의 신앙의 장성의 정도에 따라 다를 것이며, 과거의 부르심이 이후의 삶에 필요한 모든 말씀을 한꺼번에 모두 제공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시므로, 과거에는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이제는 ‘눈으로 뵈어’ 생생하게 깨닫고 의지할 수 있도록 날마다 새롭게 분투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말씀으로 혹은 어느 구절로 너를 복음의 일로 부르시더냐?’ 한다면, 저로서는 대답할 말이 없고, 다만 ‘어느 특정 시점이 아니라 40여 년의 세월을 통해, 최소한 대학 입학 이후 25년의 세월을 통해 서서히 점진적으로 나를 복음의 일로 부르셨고, 어느 한 구절의 말씀이 아니라, 40여 년의 세월에 걸쳐 성경 말씀을 전체적이고 종합적으로 배워서 이해하고 깨달은 결과, 티끌 같은 나 같은 자라도 나서서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요 주님의 교회를 위해 유익한 일이라고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부르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지 하나님 이외의 다른 어떤 존재나 기관이 될 수 없으며,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자임하는 것도 아닙니다. 소명의 능동적 주체는 언제나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점에서 사람은 소명에 관한 한 일차적으로는 피동적이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으며, 사람의 응답은 언제나 하나님의 부르심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의식할 때는 누구나 지극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며 자신의 죄악과 무력함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구관대……가며……”(출 3:11),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4:13),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하는 것이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하물며 구약과 신약의 저 위인(偉人)들에 도무지 비할 수 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위인(爲人)이 전도의 의무감을 느꼈을 때, 그를 엄습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두말할 나위도 없겠습니다.


십자가를 눈앞에 둔 그리스도의 심적인 부담과 고통이 어느 만큼이었을지 우리는 천만분의 일도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실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피하고 싶으실 만큼 십자가는 그리스도께도 더 없이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를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셔서 성부의 뜻을 좇아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하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으로 또한 제자들을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려는 자는 자기 목숨보다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는 사랑으로 자기를 부인하며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릅니다.


2. 교회 안에서 소명을 발견함


(1) 한국 교회사에서 독립개신교회가 선 의의


로마교회의 무지와 부패를 개혁하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개신교회가 선 지 4백 여 년이 흐르는 사이에 인본주의에서 양분을 흡수한 자유주의의 발흥으로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인간 종교가 서구 교회를 휩쓸어 교회가 급속히 세속화하였습니다.


그 속에서 경건주의와 부흥 운동의 영향을 받은 미국과 호주 등지의 서양 선교사들의 전도로 이 땅에 비로소 기독교회가 서게 되었으나, 애석하게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고 믿고 따르는 개혁교회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자라 가지 못한 열악한 교회들만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민족적 질곡과 빈곤의 시대에 처할 때든지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처할 때든지 세대의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며 방황하였고, 급기야 거교회적으로 신사(神社) 참배에 참여하는 등 시험에 넘어지고 신절(信節)을 저버리는 배교(背敎)의 자리에까지 떨어지게 되고서도 참되게 회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고 무지해져서 이제는 교회의 거룩한 속성들인 사도성과 거룩함과 참된 통일성과 보편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세례와 성찬의 참뜻을 알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시행하여 교회와 세상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고, 교회가 이 세상의 물질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추종하여 현세적 성공과 재리를 추구하며, 정교(政敎) 유착과 교권주의의 폐해가 비일비재해지게 되었고, 바벨탑을 쌓은 반신국적(反神國的)인 정신을 따라 무원칙하게 교단 간의 통일과 남북 교회의 통일까지 꾀하고, 배교 집단인 세계 교회 협의회(WCC)의 총회 유치를 자랑으로 삼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독립개신교회는, 우리가 아는 한, 이처럼 척박한 땅에 주님의 기이한 은혜로 최초로 서게 된 개혁교회이며, 45년의 세월 동안 사도적 복음 안에서 자라고 또 자라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립 기반을 마련하기에 이른 이 땅의 참된 개혁교회입니다.


독립개신교회는, ‘만성적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한국 교회에 대한 철저한 반성 속에서 출범한 교회답게, 지난 45년 동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전하고 받기에 힘썼습니다. 초대(初代) 감독이신 김홍전 목사님은 30여 년에 걸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구약과 신약의 성경 말씀을 바르고 깊이 있고 풍부하게 해명하여 가르치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구약 성경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백성’ 73회로 창세기를 11장부터 50장까지 가르쳤고, ‘십계명’을 강해하였으며(15회), ‘사사기 소고’ 34회와 ‘사무엘 시대’ 33회 및 ‘사무엘사’ 85회와 ‘다윗의 왕국’ 26회 및 ‘이스라엘 열왕 사기’ 64회로 사사기에서 역대기에 이르는 구약의 역사를 두루 가르쳤고, 시편의 일부도 가르쳤습니다(시편 1,18,23,121,123,127,131편 등).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행적’ 125회로 복음서의 대강을 다 가르쳤고, ‘예수님의 광야 시험’의 의미를 34회로 깊이 있게 해명했으며, ‘산상보훈’을 84회로 가르쳤고, ‘사도행전’을 123회로, ‘데살로니가 전서’를 6회로, ‘요한계시록’을 41회로 강해했습니다. 그밖에도 ‘신앙의 자태’ 등의 강설들을 통해 민수기에 나오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생생하게 가르쳤고, ‘신령한 전쟁’ 등의 강설들을 통해 다니엘서를 잘 해명했으며, 구약의 역사를 가르칠 때 선지서들을 두루 가르쳤고,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강해하면서 서신서들을 또한 잘 가르쳤습니다.


그와 함께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바르게 가르쳤고, 신령한 생활, 곧 성신을 좇아 사는 새사람의 삶에 대하여 풍부하게 해명했으며, 은혜의 방도인 말씀과 성례와 기도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쳤고, 교회란 무엇이고 신령한 전투는 무엇인가 하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그리고 예배와 헌상과 찬송 등에 대해 두루 깊이 있게 교훈했습니다.


그 가르침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문자 그대로 바르고 깊고 풍부하여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신학’을 우리들의 시대에 이어받아 명실상부한 개혁교회로 서게 하는 데에 아무 부족이 없는 우수한 가르침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다’(the whole counsel of God, 행 20:27) 전하였다는 바울 사도의 확언에 비추어 보아도 별반 손색이 없을 탁월한 가르침이었습니다.


2대 감독이신 최낙재 목사님은 1974년부터 현재까지 35년여 간 근실하게 사도적 복음을 충실하게 전파하여 오는 가운데, 1989년부터는 주일 아침 성경 공부 시간에 8년여에 걸쳐 교회의 어린 자녀들과 그 부모를 대상으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세 차례 반복해서 가르쳤고, 그 직후인 1997년 4월부터는 10년 동안 장장 511회에 걸쳐 하나님의 은혜 언약을 중심으로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 성경의 요긴한 핵심을 가르친 뒤에, 바로 이어서 2년여 동안 복음서를 가르쳤고, 2009년 7월 이후로는 사도행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요 기도회에서도 139회에 걸쳐 사도행전을 생생하게 강해한 바 있고, 주일 아침에는 언제나 구약과 신약의 성경을 관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깊이 있게 강설했습니다(‘이스라엘의 회복 곧 하나님의 나라’ 28회,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 45회, ‘요한일․이․삼서 강해’ 62회,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잃었다가 다시 찾은 비유 셋’과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등의 하나님 나라 비유 강해 및 ‘성신께 대하여’라는 제목의 강설 다수 등; 다만 저로서는 강변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1990년 2월 이후의 가르침만을 주로 언급할 수 있을 뿐입니다).


최 목사님은 신약을 가르칠 때에도 언제나 구약의 기초 위에서 가르쳤으며, 계시의 역사적 발전상을 평생에 걸쳐 강설 속에 근실히 구현함으로써 구약과 신약 성경의 통일성과 유기적 연관성을 찬연하게 입증하였고, 하나님의 은혜 언약과 그 언약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풍부하게 교훈하였으며, 높이 되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성신을 의지하여 하나님 나라의 법을 다 지키고 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확실하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을 주셔서 새사람으로 살게 하시며, 이러한 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증시한다는 사실을 설파했습니다.

이러한 복음 전파로 말미암아 유사 이래 누천 년간 무속과 우상이 지배해 온 이 어두운 땅에 빛나는 개혁교회가 서서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2) 독립개신교회의 두 분 감독 목사님의 사역


김홍전 목사님은 개척자로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다방면의 섬부한 은사를 십분 발휘하여 황무지와 같은 이 땅에 개혁교회가 설 수 있는 충분하고 든든한 토대를 놓았습니다.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신학을 흡수하여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전했고, 교회의 신앙고백과 지향할 목표를 천명한 불후의 헌장을 제정했으며, 거룩한 예배 모범을 확정하여 예배를 개혁하였고, 성경적이고 삼위일체적이며 예술적으로도 탁월한 찬송을 직접 작사․작곡하여 주님께 바치고 교회에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김홍전 목사님의 경건한 생애와 빛나는 업적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오직 대주재께서 불가해한 사랑으로 이 땅에 베풀어 주신 기이한 은혜임을 알고 주님을 우러러 감사드리고 찬송을 드릴 따름입니다. 부활․승천하셔서 온 우주의 중심에 좌정하시고 대권으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셔서 뜻하시는 대로 죄인을 사로잡아 자신의 일꾼으로 삼으시며, 원하시는 대로 은사를 부어 주셔서 맡기신 주님의 일을 수행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공생애 기간 중에 친히 택하시고 함께 생활하시며 양육하신 열두 제자와는 전연 별개로, 공생애 기간 내내 주님을 주님으로 알지 못했던 사울을 사로잡으셔서 복음의 세계화를 위해 가장 유용하고 능력 있게 사용하셨듯이, 대대로 조상이 유전한 망령된 행습 가운데 젖어 있던 이 땅에서 오직 말씀과 성신으로 김홍전 목사님을 친히 기르셔서, 사승(師承) 관계를 규지하기 힘든 평지돌출의 거인으로 세워 주님의 교회를 위한 선물로 내려 주셨습니다.


김홍전 목사님이 호방한 시야를 가지고 인류 역사와 교회사와 세계정세를 조망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기초하여 독립개신교회가 길이 벋어 나갈 광활한 터를 닦고 토대를 구축하신 분이라면, 최낙재 목사님은 그 터 위에서 삼위 하나님께서 친히 거하시고 다스리시는 거룩하고 단아한 성전으로서의 지역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임 받은 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홍전 목사님이 멀리 보고 넓게 보고 깊게 보는 시야를 틔워 주셨다면, 최낙재 목사님은 그런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성신의 인도를 받아 하루하루 착실하게 자라갈 수 있도록 견실하게 지도해 주신 분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한옥 건물을 꼽는다면 단연 영주의 부석사를 들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은 첫째, 소백산맥의 등줄기가 내려다보이는 호방한 전망을 끌어안은 빼어난 입지와, 둘째,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고 생활할 수 있는 우람하고 단아하며 격조 있는 한옥을 그 자리에 지어 올린 그 두 조건이 조화롭게 결합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텅 빈 이른바 명당의 터만으로는 그 위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날 수 없으며, 아무리 좋은 한옥이라 하여도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 그 속에서 호연지기를 기르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이 한국 땅에 ‘정상적인 교회’, 곧 사도적 복음을 다 전하고 받아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신학을 간직한 올바른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려 하실 때에 이 두 분의 목사님을 쓰시되 각기 특성 있게 쓰셨다고 믿습니다. 각각 개척자과 건설자라고 할 두 분의 상보적(相補的)인 사역을 생각하면, 루터 선생과 멜랑히톤의 동역이나 칼빈 선생과 베자의 동역을 떠올리게 됩니다.


한편, 칼빈 선생에 대한 후대의 평가와 수용의 방식이 제각각이듯이, 넓고 호방한 김홍전 목사님의 가르침은 여러 갈래로, 다양한 형태로 제각기 해석되고 자의적으로 적용될 소지가 있는데, 이는 대가(大家)의 가르침이 그 후의 역사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왕왕 나타나는 부조리한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김홍전 목사님이 힘써 가르친 하나님 말씀의 핵심을 올바로 파악하면서 성신을 온전히 의지하여 그 말씀이 지향하는 현실상의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 속에서 하나하나의 신자가 실제로 신령한 새사람으로, 교회아(敎會我)로 자라 교회적으로 복음의 능력을 발휘하는 일일 것입니다.


(3)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난쟁이’


두 분 목사님의 존재와 사역은 하나님께서 독립개신교회에 내려 주신 선물이요 자양분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두 분 목사님의 사역을 받으셨다는 증거가 바로 교회가 진리의 말씀 안에서 자라 교인들의 평균 수준이 상당히 향상된 사실일 것이고, 그 가운데에서 사자같이 용맹한 다음 세대의 목회자들이 배출된 사실인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았으므로 다음 세대의 목회자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장로가 배출되었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이므로 영광의 목적지를 향해 중단 없이 전진해 나아갈 것인데, 독립개신교회가 두 분 감독 목사님이 계실 때뿐만이 아니라 이후 세대에도 계속하여 같은 말씀의 토대 위에 서서 힘차게 전진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다음 세대 목사님들의 견실한 사역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목사님들의 출중한 은사와 실력과 충성스런 봉사는 모두 주님의 몸인 교회를 자라게 하고 바르게 세우기 위한 봉사였고, 그 결과 교회가 자라고 또 자랐습니다. 장성해 가는 과정에서 국내에서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한 두 교회를 도와 정상적인 교회로 자라가도록 하였고(성은교회, 한사랑교회), 나라 밖의 동포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구체적인 책임을 느끼게 해 주셨으며, 이제는 바야흐로 신학교를 세워 목회자를 양성할 막중한 책무를 성신께서 맡기신다는 사실을 인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주님께서는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므로, 주님의 선물(Gabe)은 결국 사명(Aufgabe)으로 치환됩니다. 주님의 은혜는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고 어린 사람을 자라게 하여 결국에는 과업을 수행하게 하십니다.

개인적인 역량으로 비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도 두 분 감독 목사님과 어깨를 견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섬부한 지식과 깊은 통찰력과 경건과 덕성을 따르려야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양차 세계대전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와 동족상쟁의 아비규환 및 오늘날에 비할 수 없이 모든 방면에서 낙후하고 가난했던 그 시대에서 김홍전 목사님이 오직 성신과 말씀을 의지하여 이룬 거대한 성취와 참다운 경건의 모범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치 전설 속의 이야기나 딴 세상의 일인 것처럼 아득하기만 하여 흉내를 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분 감독 목사님의 곁에 서서 그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난쟁이’로서 그분들의 어깨에 올라 더 멀리 보기를 힘쓸 것입니다. 그분들은 높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이므로 우리는 그 선물을 받고 누리며 충분히 양분을 흡수하여 그분들의 가르침 위에 서서 더 멀리 보며 우리 시대에 닥친 새로운 문제들과 씨름해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의 필생에 걸친 말씀 전파 속에서 다윗과 같은 걸출한 신앙의 용사가 나왔으나, 그가 골리앗을 물리칠 때만 하여도 이스라엘의 유일무이한 병사처럼 홀로 서서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가 있고 관절한 모범이 있은 뒤에는 그 모범을 따라 문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신앙의 용사들이 배출되어, 전투력 하나로만 볼 때에는 다윗에 뒤지지 않을 전사들이 37명이나 일어나게 되었습니다(삼하 23:8-39).

그와 비슷하게, 올레비아누스나 우르시누스의 개인적인 역량은 칼빈 선생과 비교하면 참으로 초라할 것이지만, 그들은 앞 시대의 스승을 선물로 받아서 충실한 제자로 자랐고, 자기의 사명을 근실히 감당함으로써, 오히려 루터 선생의 요리문답이나 칼빈 선생이 지은 제네바 요리문답보다 후대의 교회에 대대로 더 큰 유익을 끼친 아름다운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제 독립개신교회 신학교가 개교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복음 전파자를 양성할 사명을 주셨으니, 신학교에서 훈련받을 학생도 먼저 우리 교회 안에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어거스틴 선생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주신 것을 명하시고, 명하신 것을 먼저 주시기’ 때문입니다(『참회록』 제10권 제31장).


스스로의 추한 몰골을 볼 때 교우들의 맨 뒤에 숨어 조용히 이 한 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천지의 대주재께서 친히 몸을 낮추셔서 은혜의 언약을 맺으시고 친백성과 함께 거하시고자 회막을 지으려 하실 때에, 그것은 하늘이라도 감당치 못할 지존하신 분이 거하실 처소였으나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처럼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성막을 지을 재료를 친히 말씀으로 지어 내신 것이 아니고, 그 무지몽매하며 우상을 다 버리지 못하고 믿음이 정순하지 못했던 유치한 백성의 헌상을 기꺼이 받으셔서 그것으로 지성소도 짓고 성소도 짓게 하신 사실을 생각하고 겨우겨우 용기를 냅니다. 도무지 어디 쓸데가 없는 죄 많고 무능하고 무익한 자일지라도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 받으시고 주님의 나라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합당한 용도로 써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주여, 이 죄인이 주께 나와서 제게 있는 모든 것을 드리나이다. 

저의 죄를 보혈로 정결하게 합시고 성신이여 주장합소서. 

오, 저의 생명을 다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영광만을 나타내게 합소서. 

내 주여, 저를 받아 주시고 주님을 위하여 써 주옵소서. 

(김홍전 작사 작곡, 『찬송』, 「헌상송 VII」)


3. 개인적인 신앙 이력


(1) 어린 시절과 충현교회


주님의 은혜로 저는 믿음을 가진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나 오늘까지 만 44년 반 동안 매 주일 교회에 다녔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 깊고 풍부하게 배우고 믿는 개혁교회의 교인은 아니었으나, 슬하의 다섯 자녀를 모두 교회로 인도하여 오늘날까지 주님을 믿고 살게 하였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충현교회의 집사와 권사로 지내면서 수십 년간 새벽마다 교회당에서나 집에서 기도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성경 말씀을 읽으며, 시시때때로 주위 사람에게 교회 출석을 권유하고, 여자의 몸으로 부지런히 일하여 여덟 식구를 먹여 살리면서 오남매를 교육시킨 분이었습니다. 말년에는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에 출석하시다가 불의(不意)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주님의 품에 잠드셨습니다.


저는 초등부, 중고등부, 대학부 전반(前半)까지 충현교회에서 기초적인 성경 말씀을 배우며 자랐고, 만 열네 살 때인 1979년 10월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자신이 죄인임을 절감하고 주님의 거룩하심 앞에 두려워 떨었던 기억이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아 있습니다. 중등부 오후 예배 때 성경 말씀을 잘 풀어 가르치는 김정훈 전도사님의 말씀이 마음에 달아서, 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온 뒤에 다시 기대감을 가지고 구의동에서 충무로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빠짐없이 오후 예배에 참석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고등부 시절에 주일 학교 선생님들의 지도를 따라 성경 말씀을 꾸준히 읽었고, 교회 도서관에서 박윤선 목사님의 성경 주석과 성경 각 권의 주석 뒤에 붙어 있던 설교를 열심히 탐독하기도 하였습니다. 중고등부 학생회에서 임원으로 일하였고 해외 선교사를 위한 기도회에도 늘 참석하는 등 교회의 일에 열심을 내면서 비교적 순진하면서도 모범적으로 그 시절을 보내었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성장기는 또한 교회와 가정 모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 깊고 풍부하게 배우지 못한 결핍이 쌓이고 쌓인 기간이기도 하였습니다.


(2) 대학생 시절과 네비게이토 선교회


당시 충무로 5가에 있었던 충현교회는 역삼동에 있는 부지에 예배당을 신축하기 위하여 주임 목사가 이른바 ‘성전 건축’을 위한 헌금을 독촉하는 내용으로 매 주일 설교의 주요 부분을 채우는 등 교회의 취약한 실태를 그대로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회와 가정에서 자란 큰 결핍에 개인적인 고민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무단(武斷) 정치로 인한 사회적 불안까지 더해져서, 대학 신입생 때의 내면세계는 고민 덩어리 그 자체였고 미래에 대해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속마음은 이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사실과 성경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니 인정하지만, 신자라고 하는 스스로의 내면에 아무런 기쁨과 평안도 없고 괴로움과 고민만 가득하니, 양심상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할 수는 없다.’ 내면의 괴로움이 깊어져 지탱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을 때, 제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살길을 보여 주시기를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매일 아침을 굶고 새벽에 첫 버스를 타고 등교하여 주로 고시 준비생들이 이용하는 대학 도서관 1층의 가장 조용한 방에서 1교시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루에 한두 시간씩 신약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두어 달 동안 신약 성경을 다 읽게 되었을 때 생명의 말씀을 얻어먹은 기쁨과 활력으로 마음이 새로워졌고, 그 뒤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시간에 성경을 1장 정도씩 천천히 읽는 속도로 신약 성경을 열 차례가량 정밀하게 읽었으며, 구약 성경을 세 차례 정독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대학생 시절에 성경 말씀에 대하여 불붙는 듯한 단맛을 느낀 이래로 20여 년 이상 지나오는 동안에 성경 말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식상함을 느끼지 않고 늘 흥미진진한 열의를 가지게 된 것을 주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큰 은혜를 베푸신 결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또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강해 설교집 등을 탐독하였는데, 4학년 때 에베소서 강해 제2권인 『영적 화해』를 읽으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새롭게 깨닫고는 한동안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휩싸인 나머지 ‘이러다가는 정신 이상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 정도까지 되어, 그 일로 평소에 신뢰했던 대학원 선배에게 상담을 청했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대학 4년과 대학원 석사 과정 2년 반 동안은 같은 학교의 네비게이토 선교회 회원들과 대학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늘 점심 식사를 같이 하고, 그 선교회에서 힘쓰는 방식대로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고, 성경 읽기와 암송과 성경 공부와 기도 및 전도에 힘썼습니다. 대체로 방학 기간에는 오전 내내 학교 도서관에서 성경을 읽었고, 학생회관 안에 있는 기도실에 가서 규칙적으로 기도하였으며, 몇 년 동안 매주 한 차례 이상 정규적으로 한두 시간씩 교정 등지에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대학원 석사 과정 때까지는 네비게이토 선교회 식의 평신도 선교사로 사는 것이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렇게 살기로 뜻을 정하고 삶의 최우선 순위를 거기에 두고 살았습니다.


마침 충현교회 출신의 몇몇 집사들이 합동신학교에서 공부한 강도사와 함께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전망(vision)에 동의하여 교회도 그러한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하고 개척 교회를 세웠기로, 그 교회로 적(籍)을 옮기고 5년 동안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였습니다. 마치 교회에 심장을 걸어 두고 사는 사람처럼 교회를 마음과 생활의 중심에 두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헤아려 보니 일주일 168시간 중에서 주일을 포함하여 교회와 경건의 시간 등에 들이는 시간이 50여 시간이나 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교회 목회자의 마음이 점차 현세적으로 변질되어 다른 교회의 목사들과 다름없이 교세의 확장에만 마음을 기울이는 것을 보고 대단히 실망하여 결국 그 교회에서 나와서 1990년 1-2월 두 달 동안 사랑의 교회, 남포교회, 소망교회 등을 찾아다녔고, 그전에 김홍전 목사님의 『복음이란 무엇인가』와 『예배란 무엇인가』를 읽었던 터여서, 아는 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강변교회를 찾아가기에 이르렀습니다.


돌이켜 볼 때, 저는 성장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배우지 못하여 교회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지 못한 채, 20대 전반기에 그릇된 표준과 이상을 품고 좌우로 치우치며 살았습니다. 나중에 강변교회에 와서 수요 기도회에서 최낙재 목사님의 사도행전 강해를 배울 때(1990-1994), 그 강설과 더불어 같은 사도행전 연구서인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제자들의 사역』(리로이 아임스, 1984)과 존 스토트 목사의 『땅 끝까지 이르러』(IVP, 1992)를 비교해 가면서 읽고 나서야 비로소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신학’이 있는 교회와 그런 뿌리가 없는 선교 단체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3) 강변교회와 성약출판사


당산동의 다옥 편직 회사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던 강변교회에 처음 출석했던 1990년 2월의 마지막 주일을 저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경건하고 엄숙한 예배 분위기며, 특히 그날 주일 아침 예배 시간에 최낙재 목사님의 목회 기도를 듣는 순간, 사람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의 어전에 꿇어 엎드렸을 때 어떤 말씀을 아뢰어야 하는지 난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모범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최 목사님은 강설과 목회 기도와 평소의 언어생활을 통하여 제게 ‘말의 무게’를 가르쳐 준 스승이시기도 합니다.


강변교회에 처음 출석했을 때만 하여도 ‘이 교회가 과연 바른 교회인가?’를 탐색하고 확인하려는 높은 마음을 품고 스스로를 판단자의 위치에 두었으나, 강설 말씀을 통하여 교회가 무엇이며 주님의 인도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자, 자기 자신의 상태가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먹이시는 정상적인 양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떨어져 있는 지극히 위태롭고 불쌍한 처지임을 알게 되어서, 마음을 낮추고 겸비한 자세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에 가입하였습니다. 교회에 가입한 후로는 주일 예배와 수요 기도회는 물론이고 교회적인 모든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배워 자라 가기에 힘썼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동질의 믿음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 1992년 가을에 최 목사님의 주례로 혼인하였고, 두 아이를 낳아 각기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2학년으로 자란 두 아들은 이제 공적(公的) 신앙고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오직 은혜 언약을 친히 성취하시는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자비로 말미암아 그들이 세례반(洗禮盤)에서 성찬상(聖餐床)으로 나아가게 된 줄로 믿습니다.


강변교회에서 김홍전, 최낙재, 두 분 목사님의 강설 말씀을 듣고 빛나는 모범을 보게 하여 주신 것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큰 복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주일 저녁 예배 때마다 육성(肉聲) 녹음테이프를 통해 김홍전 목사님의 강설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복을 받았고, 성약출판사에서 출간된 그분의 강설집 70여 권을 정독할 수 있는 복된 시간도 겸하여 얻었습니다. 정규 예배와 수요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을 말씀을 매 주일 꾸준히 배운 것 이외에도, 최낙재, 정병길, 두 분 목사님께서 각각 인도하신 『기독교 강요』 강독 모임을 통하여 도합 5년 동안 주중에 복음의 진리를 배우는 망외(望外)의 분복도 누렸고(2001.1-2.002.11 / 2006.2.-2009.7.), 기독교학문연구회를 통해 당시 김헌수 선생님의 인도로 2년여에 걸쳐 헤르만 리델보스의 『하나님의 나라』와 『바울 신학』을 공부할 기회를 얻기도 하였습니다(1991.6.-1993.7.).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하는 빛나는 개혁교회에 속하여 다년간 주님의 말씀을 얻어먹은 것이 헛되지 아니하여, 진리의 말씀의 인도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이기면서 믿음이 점차로 단련되었습니다.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 사학(私學) 비리에 동조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다가 해직되어 대학 입학 이래로 17년간을 이어 온 중국어문학도의 길이 끊어지고 30대의 가장으로서 졸지에 실업자가 되는 시련도 겪었고, 그 시기에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말에 교통사고로 정강이뼈가 부러졌는데 거듭된 수술로도 뼈가 붙지 않아 1년이나 학교에 가지 못하고 석고 붕대를 하고 집안에 있는 근심스러운 일도 겪었으며, 둘째아이도 뇌진탕으로 세 번 응급실에 실려 가고 전신 마취를 하는 중이염 수술을 여러 차례 하는 등 병치레가 끊이지 않았고, 교인으로 지내면서 양친의 슬픈 장례를 다 치렀으며, 본인의 오른손 동맥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하여 한 달 이상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곤경에 처할 때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동안 교회에서 배운 진리의 말씀이 위기의 순간에 저의 연약한 마음을 든든히 붙들어 견고하게 세워 주시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고 더욱더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낙재, 정병길, 두 분 목사님의 추천으로 성약출판사에 입사하여 만 8년(2002.1.-2009.12.) 동안 편집부에서 일하면서 하루 종일 김홍전 목사님과 최 목사님의 강설 원고를 읽고 정리하여 책으로 펴내고, 성약출판사 소식지와 ‘개혁 신앙 강좌’ 등의 원고를 읽고 교정하게 된 것은 이 보잘것없는 생애에 분에 넘친 복이었습니다. 편집부 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김홍전 목사님의 강설집 12권과 최 목사님의 『높이 되신 그리스도』 강설 원고를 정리하였으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및 ‘개혁 신앙 강좌’ 9권, 최 목사님의 강설과 주일 아침 성경 공부집 12권, 할세마 여사의 번역서 두 권(『하이델베르크에 온 세 사람과 귀도 드브레』, 『이 사람, 존 칼빈』), 김헌수 목사님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두 권을 합쳐 도합 26권의 원고를 교정하여서, 8년여 동안 총 39권의 책과 42개 호(34-75호)의 「성약출판소식」을 펴내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달로 제가 강변교회에 출석한 지 만 20년이 됩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20년간 밥을 먹고 자라면 성인(成人)이 되어 군에 입대하여 유사시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게 됩니다. 하물며 사도적 복음이 매 주일 힘 있게 선포되는 이 거룩한 교회에서 20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얻어먹었으니, 주님의 몸인 이 교회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어 놓는다 한들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으며,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전체를 다 드려야 마땅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신학교 입학에 필요한 요식에 자기소개서가 들어 있어서, 하는 수 없이 지나온 생을 간추려 정직하게 기술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태산보다 무겁고 스스로가 한 일은 깃털처럼 가벼우며, 은혜에 합당치 않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지나온 길을 돌이켜볼 때 스스로에 대하여 역겨움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44년 반 묵은 죄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저의 자기소개서는 기실 참회록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 주시지 않는다면 이 남루한 생애에서는 악취만 진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아는 것도 복음의 깊이를 깨닫는 정도에 비례할 것이므로, 신학교에 입학하여 ‘경건의 학문’을 배워 사람의 죄악성을 더욱 깨닫는 한편으로, 성신을 의지하여 죄를 이기며 의를 행하고 살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더욱더 착실히 배우기를 소망합니다.


이상과 같습니다.


2010. 2. 12.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 집사

박성호



출처: 의정부 한개혁마음교회 http://www.hanmaeum.kr/main/mai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