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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에 관한 진술(Statement of the Doctrine of the trinity) -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Bavinck Byeon 2017. 7. 29. 14:23

삼위일체론에 관한 진술

(Statement of the Doctrine of the trinity)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삼위일체론은 다양한 명제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간략하게 가장 잘 논의될 수 있으며, 이 다양한 명제들은 이 점에 있어서 교회의 신앙의 개요를 구성하고 있다.


(1) 신적인 존재 안에는 유일의, 구분할 수 없는 본체가 있다 (ousia, essentia).(There is in the Divine Being but one indivisible essence [usia, essentia]).


하나님은 그의 본체적 존재나 본질적 본성에 있어서 하나이시다. 초대 교회의 어떤 교부들은 '실체'(substantia)라는 말을 '본체'(essentia)와 동의어로 사용하였으나, 후대의 저자들은 라티 교회에서 숩스탄티아(substantia)가 우시아(ousia, 본체)뿐만 아니라 휘포스타시스(hypostasis, 위격)로 번역되어 사용됨으로 해서 의미가 모호해진 사실을 고려하여 숩스탄티아를 사용하기를 피했다.


현재 '실체'(substance)와 '본체'(essence)라는 두 용어는 종종 교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들이 약간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이것을 반대할 이유는 결코 없을 것이다.


쉐드(Shedd)는 이 용어들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본체(essence)는 에세(esse, 있다)에서 유래하며, 역동적인 존재를 나타낸다. 실체(substance)는 숩스타레(substare)에서 나왔으며, 존재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의미한다. 본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무한한 속성들의 총화로 묘사하며, 실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무한한 활동들의 기초적인 근거로 묘사한다. 전자는 비교적 능동적인 단어이며, 후자는 수동적인 단어이다. 전자는 비교적 정신적인 용어인 반면, 후자는 물질적인 용어이다. 우리는 물질적인 본체보다는 물질적인 실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유일성이 이미 앞 장에서 논의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그것을 상세히 논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유일성에 관한 이러한 명제는 신 6:4; 약 2:19과 같은 구절들과, 하나님의 자존과 불변, 그리고 하나님께서 생명, 빛, 진리, 의 등으로 불리실 때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속성들과 동일시되고 있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2) 이러한 한 신적 존재 안에는 세 위격들 혹은 개별적인 실체들(subsistences),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존재한다.(In this one Divine Being there are three Persons or individual subsistences, Father, Son, and Holy Spirit.)


이것은 삼위일체론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언급되는 다양한 구절들에 의하여 입증되고 있다. 신성 안에 있는 이러한 구분들을 나타내기 위해서 헬라의 저자들이 일반적으로 휘포스타시스(hypostasis, 위격)라는 용어를 채택하였던 반면, 라틴의 저자들은 페르소나(pefsona, 인격)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고, 때로는 숩스탄티아(substantia)라는 말을 새로 만들었다.


전자는 오해를 낳기 쉽고, 후자는 모호하기 때문에, 스콜라주의 학자들은 숩시스텐시아(subsistensia)라는 말을 새로 만들었다. 이러한 다양한 용어들은, 이 용어들이 언제나 불충분한 것으로 느껴졌다는 사실을 지시한다.


'인격'(person)이라는 단어는 단지 이러한 관념의 불완전한 표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인정되었다. 통상적인 어법에서 그것은 자의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모든 변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하고 있는 각각의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개체를 나타낸다. 경험에서 우리는 인격이 있는 곳에 별개의 개체적인 본체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든 인격은 별개의 그리고 단독의 개체로서, 그 안에 인간적 성질이 개체화되어 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는 서로 병립되어 있거나 분리되어 있는 세 개체자는 없으며, 단지 신적인 본체 안에 위격적인 자기 구별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속적(屬的)으로나 수적으로 하나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위격들을, 사벨리우스가 가르쳤듯이 현현의 다른 세 양식이 아닌 존재나 혹은 실존(subsistence)의 세 가지 다른 양식들로 언급하기를 좋아했던 것이다. 따라서 칼빈은 "하여간 인격이란 말을 쓸 때 나는 신적 본체 안에 있는 실존(subsistence) - 그것은 다른 둘에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공유될 수 없는 특성들에 의하여 구별되는 실존 - 을 의미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이 의견은 완전히 용인할 수 있으며, 오해를 피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으로 인해서 우리는 신적 존재 안의 자기 구별들이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 '나'와 '너', 그리고 '그'를 함축하여 서로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마 3:16; 4:1; 요 1:18; 3:16; 5:20-22; 14:26; 15:26; 16:13-15).


(3) 하나님의 나누어지지 않은 전 본체(질)가 삼위의 각자에 동등하게 속한다.(The whole undivided essence of God belongs equally to each of the three persons.)


이것은 신적 본체가 삼위에 분배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속성을 가지고서 각 위들 안에 전체적으로 있으며, 따라서 그 삼위는 본체의 수적 유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신적 성질은 그것이 전체적으로 혹은 불가분리적으로 한 위격 이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적 성질과 구별된다.


사람 가운데 있는 세 인격은 성질 혹은 본체의 '종(種)'의 유일성, 즉 같은 종류의 성질 혹은 본체를 가질 뿐이나, 하나님 안에 있는 삼위는 본체의 수적 유일성을, 즉 한 본체를 소유하고 있다. 인간의 성질이나 본체는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개체적 부분의 한 종류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종(種)적 유일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적 본체는 나누일 수 없으며, 따라서 신성의 삼위 속에서 하나다. 신적 본체는 수적으로 하나이며 동일하다. 그러므로 삼위들 안에 있는 본체의 유일성은 수적인 유일성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신적 본체가 삼위와 병립된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그것은 삼위의 바깥에 분리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사실이 그러하다면, 참된 유일성이란 있을 수가 없으며, 사신론(四神論, tetratheism)으로 이끄는 분할만이 있게 될 것이다. 위격의 구별은 신적 본체 내에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것처럼 이것은 세 가지의 실체(subsistence) 양식을 가지고 있다.


앞 장에서 말한 것에서 추론할 수 있는 또 다른 결론은, 다른 위격에 대한 신성의 한 위격의 본체적인 존재에 관해서는 결코 종속이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위격적 위엄에 있어서 차등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오리겐이나 다른 초대 교회의 교부들, 그리고 알미니우스주의자들과 클라크와 다른 성공회 신학자들의 종속론에 대항하여 주장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종속은 순서 및 관계와 관련된 종속이다. 특별히 삼위와 신적 본체의 관계를 묵상하려고 할 때, 우리가 하게 되는 모든 유추들은 실패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삼위일체가 우리의 이해를 훨씬 초월하는 신비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신성의 불가해한 영광이다. 인간적 성질이 단일한 개인에게서 구현되기에는 너무 풍부하고 완전하며, 단지 전체 인류 안에서만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처럼, 신적 존재는 오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중적 실존에서만 그 자신을 충분히 펼쳐 보이시는 것이다.


(4) 신적 존재 안에 있는 삼위의 실존과 활동은 분명하게 정해진 순서로 표시된다.(The subsistence and operation of the three persons in the divine Being is marked by a certain definite order.)


존재론적 삼위일체에는 분명한 순서가 있다. 위격적 실존에 있어서 성부는 첫째요, 성자는 둘째, 성령은 셋째이다. 이 순서는 시간이나 본체적 엄위에서의 어떠한 선후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단지 기원의 논리적 순서에 있어서만 그러하다.


성부는 어떤 다른 위격에게서 태어나시거나 발원하지 않으시며, 성자는 영원히 성부에게서 나시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 발생과 발출은 신적 존재 안에서 일어나며, 또한 위격적 실존의 방식에 관한 어떤 종속을 의미하지만, 신적 본체의 소유에 관계되는 한 아무런 종속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존재론적 삼위일체와 그 고유한 순서는 경륜적 삼위일체의 형이상학적 기초가 된다. 따라서 본체적 삼위일체 안에 존재하는 순서가, 좀 더 특별하게 각 위격에게 귀속되는 외향적 사역(opera ad exrta)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성경은 분명히 이 순서를 소위 구별적 전치사(praepositiones distinctionales)인 에크(ek), 디아(dia), 엔(en)으로써 지시하고 있는데, 그 전치사들은 만물들이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나와, 성령 안에 있다는 개념을 표현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5) 삼위가 구별되는 어떤 위격적인 속성들이 있다.(There are certain personal attributes by which the three persons are distinguished.)


이러한 것들은 또한 내향적 사역(opera ad intra)이라고 불리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신적 존재 안에 있는 사역들이어서 피조물에 관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위격적 사역들이며, 삼위가 공동으로 하지 않으며, 또한 나누어 줄 수 없는 사역이다.


발생은 성부만의 행위이며, 아들 됨은 독점적으로 성자에게 속하며, 또한 발출은 오직 성령에게만 돌려진다. 내향적 사역으로서의 이러한 사역들은, 외향적 사역 혹은 삼위일체가 외적으로 현현되는 그러한 활동들이니 결과들과는 구별된다.


이러한 것들은 결코 독점적으로 어느 한 위격의 사역들이 아니며, 항상 신적 존재 전체의 사역들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역들의 경륜적 순서에 있어서 어떤 외향적 사역은 보다 특별하게 한 위격에게 돌려지며, 또 다른 어떤 것은 보다 특별하게 다른 위격에게 돌려진다.


그것들은 모두 삼위의 공동적인 사역들이지만, 창조는 일차적으로 성부에게, 구원은 성자에게, 성화는 성령에게 돌려진다. 신적 활동들 속에 있는 이러한 순서는 하나님 안에서의 본체적인 순서를 지시하며, 또한 일반적으로 경륜적 삼위일체로 알려져 있는 것의 기초를 형성한다.


(6) 교회는 삼위일체를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신비로 고백한다.(The Church confesses the Trinity to be a mystery beyond the comprehension of man.)


삼위일체는 이전에는 감취었다가 이제 계시된 진리라는 성경적인 의미에서만 아니라, 사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 또한 이해시킬 수 없다는 의미에서 신비이다. 삼위일체는 현현의 어떤 관계들이나 양식에 있어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본체적인 성질에 있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 행해진 많은 노력들은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사색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반드시 삼신론적(tritheistic) 혹은 양태론적(modalistic)인 하나님 개념들을 도출하게 되었으며, 신적 본체의 유일성을 부정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본체 안에 있는 위격적 구별의 실재성을 부인하게 되고야 말았다.


실제적인 어려움은, 신성 안에 있는 위격들이 신적 본체나 서로에 대해 가지는 관계에 있다. 이것은 교회가 제거할 수는 없었으나, 단지 용어의 적절한 정의에 의해 그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로 그것을 축소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움이었다.


교회는 결코 삼위일체의 신비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며, 단지 그것을 위태롭게 하는 오류들을 막는 정도에서 삼위일체의 교리를 체계화하려고 노력했을 따름이었다.



- 벌코프의 조직신학(Berkhof's Systematic Theology), I.VIII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