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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특강 I - 김영규 교수

Bavinck Byeon 2018. 3. 4. 16:10

기독교 강요 특강 I

- 기독교 강요의 전체적 성격 다룸 -

 

김영규 교수(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녹취: 김기현 강도사(은총교회)

강의 연도: 2003~2004, M.Div수업


*[본 강의안은 강의를 녹취하신 김기현 강도사님의 허락하에 게재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제1


1. 본문: 마13:18-23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 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 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잠깐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한 인생으로서 주님의 거룩한 사랑의 대상이 된 것 만큼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특별히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도, 그것이 큰 가치를 이 세상에서는 가지고 있어서, 그 내용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낙원이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많은 누리는 성격을 갖게 되었는데, 하물며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 이 세상을 마무리 지을 그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다는 그 자체가 참 실로, 인간의 창조의 모든 비밀이 드러나서, 겨우 그 은혜의 내용이 이제 알려지는 그런 것처럼, 그 사랑의 내용은 점! 점! 점! 우리에게 발견이 되리라고 믿사옵고, 그 내용이 깊은 것만큼, 또한 온 세계의 역사를 통해서 그 은혜의 내용을 다 벗기기 어려운 것이, 또한 주님이 우리를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그런 내용인줄 믿습니다. 오늘도 저희들이 그런 한 인생으로 주님 앞에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로 초대되어 저희들이 이 세상에서 구별된 가치의 내용을 가지고 몸부림치며 살 수 있도록 하시고, 또한 그런 가치의 내용 때문에, 우리의 발걸음과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내용이 은혜가 되고 또 복이 되는 것을 주님 앞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간에 저희들이 마음을 모아서, 비록 우리 인생을 통해서는 짧은 생애이나 저희들에게 미쳐 준 그런 많은 은혜가 있는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해 주셔서, 이 시간에 그 말씀의 내용을 따라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지식에 합당한 것을 드러내도록 역사해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고, 특별히 역사 선상을 통해서 그 진리 때문에 고통을 당하며, 고난을 당하여서, 역사 속에 그 진리를 심을 때까지 그의 온 생애를 보내는 한 개혁자의 생을 통해서 저희들이 어떤 생을 통해서 주님 앞에 드려야 될 것인지를 다시 깨닫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서 그 뿌리가 얼마나 역사 속에 깊게 뿌리워서, 우리가 그 터전 위에서 세우심을 받아 이와 같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마 여러분들이 이번 학기에, 특별히 강의 과목으로 있어야 할 그런 내용인데, 그런 기회가 없어져서, 아마 이런 기회를 마련한 줄 믿습니다만, 원래 이런 과목이 여러분들에게 제시될 때에는, 특별한 역사적인 어떤 의미를 가지고 시작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 사실상 교회가 장로교회의 이름으로 되어 있고, 또 칼빈주의의 이름으로 상당히 많은 가치의 내용이 어느 정도 이렇게 짧은 선교기간이지만은 심어졌던 것이지만, 그러나 본래의 깊은 내용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우리 교회에 기초한 신학의 내용으로 심어졌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소위 우리가 개혁교회라고 그랬을 때, 칼빈의 신학에 기초를 두고 있고, 또 그 역사 선상에 있어서 정통개혁주의 신학의 모든 내용을 받는다. 이런 명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신학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내용들이 사실상 계승이 된다거나 또는 인지가 된다거나 하는 그런 것이 없었고, 그래서 그런 신학의 내용이 특별히 선교지 땅 위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상당히 범종교적인 성격과 결합이 되어서, 일반적인 그런 복음주의 선에서 신학의 내용들만 정착이 되고, 실제적으로는 많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그런 역사의 땅이 되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이런 역사에 있어서, 겨우 소위 근본주의 이름으로 심어진 그런 내용이, 한번 고난의 시기를 통해서 심어진 것이어서, 일단 그 고난을 통해서 이렇게 심어진 내용들은 마치 그것이 교회의 중요한 뿌리이고 기초이고, 또 그 이상 벗어나서는 안 될 그런 내용처럼 되어서, 그런 내용들이 실제적으로 보면, 대 부분 근본주의적인 그런 신학적인 내용이고, 어떤 의미에서 개혁주의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신학적 내용을 가지고 싸운 다든지, 또는 교회가 그 신학 위에서 기초한다든지, 이런 내용은 아니었다는 것이었죠. 그 말은 결국 역사 선상에서 한 민족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로 부름을 받아가지고, 이때 겨우 선교지의 어떤 성격을 이렇게 반영을 하고, 또 그것에 대한 어떤 중용적인 성격, 결국 그 선교의 성격이 그 시대의 민중, 회중, 또는 그 땅의 주민들의 어떤 의식수준, 또는 종교적인 정신, 그런 것에 적응하는 그런 방식으로 교회가 진리를 심어져 가는 이런 선에 있기 때문에, 그 만큼 이렇게 결국 그 의식으로 내려오는 형태였단 말이죠. 거기에 이제 유교적 사상은 유교적 사상으로부터, 조금 그것에 기반을 두고, 기독교가 무엇인가? 이렇게 소개하는 이런 식이 상당히 많이, 선교지의 환경에서는 피할 수 없다는 요소였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그런 성격은 모든 시대에 교회가 소개되었을 때, 그런 터전과 같은 일반적인 신앙에 의해서 심어진 것에 불과하였다는 것이죠.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짧은 기간이지만, 선교지의 선교사들의 그런 특별한 신학적인 내용들이 벌써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하나의 축복이 되었긴 되었어도, 결국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죠. 결국 이제 한국의 경우에는 그런 선교지의 상황이었기 때문이지만, 더구나 선교사를 보내는 그 지역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이 상당히 컸다. 이렇게 알려진 내용이지요. 그래서 선교지 신학은 일반적으로 대부분 장로교의 독특한 내용들은 거의 포기된 상태에서 결국 장로교와 감리교가 하나가 된 이런 성격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죠. 물론 이제 이런 어느 예를 들어서 장로교나 감리교가 하나가 되어 있는 그런 신학적인 내용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했을 때는, 특히 칼빈주의 감리교로 따진다 본다면, 거기는 예정론을 다 믿고, 기타 구원의 모든 성취와 적용, 이런 개념뿐만 아니라, 기타 많은 것은 거의 우리하고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바빙크가 소개되고 있는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과 천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 이 두 구분을 나누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하는, 그런 아주 독특한 구조도 일찍 19세기에 이미 칼빈주의적 감리교의 중요한 틀이었던 것이었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의미에서 벌코프나, 바빙크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신학의 내용들은 고스란히 칼빈주의 독특성을 많이 강조하는 그런 의미에서 신학적인 체계를 가지고 우리에게 소개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되지만은 그러나 그 정도는 대개 일반성을 가리킨다는 거지요. 공통성이예요. 그러나 역사 선상에서 개혁교회로 이름을 붙여서, 그런 카톨릭 교회나 또는 루터 교회나, 기타 영국 국교회나 이런 데에 흡수되지 않고, 그로부터 구별되어서 신학이 독특하게 저항의 내용으로서 결국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에 의해서 구별된 내용이 싸우는 내용인 것이죠. 그 싸우는 내용이 독특하게 이제 신학의 독특성으로서 남아 있는 것이고, 바로 그것 때문에 목숨 걸고 싸웠던 그런 인물들이, 결국 그 이름 아래에서 결국 개혁주의라는 이름, 칼빈주의라는 이름, 이렇게 된 것이죠.


문제는 그런 신학의 독특성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내용들이, 결국 개혁교회라고 그랬을 때, 그 땅에 심어졌다고 그러면, 그 가치의 내용이 결국 그 교회의 특징적인 내용으로 이렇게 접목이 되고 기초 되어야만 그때 개혁주의가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런 특징을 아주 많이, 가장 기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분이 칼빈과 그 후에 칼빈의 선에서 칼빈을 따르겠다고 하고, 그 당시에 모든 기존의 교회로부터 분리되고, 거기로부터 싸우고, 이런 특별한 의미에서의 개혁자들, 그 후의 개혁자들, 각 땅에 있는 개혁자들, 그 땅에 있는 개혁자들에 의해서 또 칼빈을 다시 회복시켜서, 그 신학이라고 해서 결국 계승이 된 내용으로서, 특별히 칼빈을 건너서, 성경이 있으면, 결국 이런 개념(sola scriptura, 오직 성경)이 어떤 저항의 내용으로서 이렇게 신교에 심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이런 개념이 처음부터 없는 것이 아니죠. 이분적으로 있었습니다. 전통과 sola scriptura(오직 성경)가 어떤 의미에서 병행해서 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거기에는 약간 혼돈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는 이것이(sola scriptura, 오직 성경) 강조된 것이죠. 오직 성경이라! 그래서 이런 내용에 대해서, 결국 출발을 해 가지고, 시작된 그런 많은 신학적 내용들이 이제 뭐!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sola gratia(오직 은혜), sola fides(오직 믿음), 이런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이런 개념이 나왔을 때, 그런 개념들이 종교개혁의 일반성을 가리키는 많은 내용으로, 이런 개념(sola scriptura, 오직 성경) 아래 산출된 내용이지만, 그러나 칼빈은 그것으로부터 구별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칼빈에 의해서 해석된 성경, 이런 성격이, 이제 실제적으로는 라인이 결국 어거스틴과 연결되고, 그래서 칼빈과 연결되고, 그러나 칼빈이즘 중에서도 결국 칼빈을 따르는 많은 비슷한 다른 요소를 가진 자들이 칼빈을 스승으로 두고 있는 많은 자들이 후에도 존재했는데, 그러나 칼빈의 독특성을 가지고, 이렇게 칼빈의 어떤 신학적인 내용을 계승한 그런 이즘이 이제 칼빈이즘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은 이에 대한 내용들은 결국 같은 저항의 내용, 영국 국교회 같은 경우에, 영국 국교회가 성립했을 때, 그때 물론 루터주의 사상에 의해서 많이 결합이 되었지만, 그러나 그런 내용들이 그 땅의 독특한 내용으로 이렇게 발견이 되었던 것이지만, 그때도 그 같은 종교개혁자 중에서 칼빈과 같은 사상을 가진 자들이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쯔빙글리에 기초되고 있는 그런 사상가도 많이 있어서, 그런 쯔빙글리 사상과 관련되어 가지고, 교회가 기초되어서 저항하는 내용들이 혼합적으로 영국국교회가 있는 그런 내용인데, 그로부터 이제 개혁된, 칼빈이 좀더 전체, 칼빈의 어떤 공통적인 것을 넘어서서 다른 점, 다른 점을 좀 더 개혁하는, 좀 더 깊은 개혁을 하는 이런 차원에서 칼빈이 특별히 강조된 이런 의미에서 칼빈이즘입니다.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결국 칼빈을 읽어내야 한다는 그런 의미이죠. 같은 칼빈을 해석하더라도, 오늘날 칼빈주의 혼합주의 그런 성격보다도, 결국 이 칼빈을 해석할 때, 그런 모든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개혁교회의 성격을 가져서, 그것이 결국 후대에 와서 계속 칼빈의 이름아래, 칼빈주의 이름을 붙이게 되고, 또 그것이 계속적인 모든 땅에서 개혁의 내용으로 깊게 파고드는 내용이 되었는데, 그런 내용과 연결되어서 칼빈주의를 사용하고, 그래서 같은 성경을 발견하더라도, 결국 칼빈이즘을 통해서 칼빈이 이해되고, 또 칼빈을 통해서 어거스틴이 이해되고, 어거스틴을 통해서 이해된 성경, 이런 라인이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칼빈을 배우는 독특한 성격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이런 면에서 당연히, 결국 현대 시대에,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제대로 칼빈과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가 제대로 소개가 안 되었다는 말이예요. Reformata(개혁된), Reformed faith(개혁된 신앙), Reformed Theology(개혁된 신학), 이렇게 쓰면, 이게 개혁신앙, 또는 개혁신학 이렇게 됩니다. 이것이 이제 중요하지요. 여기에다 이제 Reformata Theologia(개혁된 신학) Reformata Fides(개혁된 신앙), 이때 이 “개혁된” 입니다. 늘 개혁해야 될 성격이 아닙니다. Reformanda(개혁해야 할)가 아니고, Reformata(개혁된)입니다.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 항상 이슈가 되어 가지고, 결국 이런 개혁된 내용이 무엇이냐? 이 신학의 내용이 결국 이 17세기 신학에서 정착이 된 내용이고, 그리고 그 역사에 17세기 신학은 같은 칼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정확한 칼빈, 칼빈의 가장 독특한 내용들이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구별된, 그 독특한 내용들이 특별히 강조되어서, 모든 시대의 사람들과 만날 때, 충돌이 되고, 그것에 대해서 극복을 하고, 그것을 그 시대에 각 땅에서 정착된 그런 자들이 연결이 되어서 17세기까지 개혁주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발전하는, 그 때 이분들이 싸울 때는 같은 칼빈일지라도, 알미니우스도 칼빈을 이야기하고, 그런 소위 정통개혁자도 칼빈을 말하는데, 그 해석점에 있어서 이와 같이 칼빈의 가장 독특한 내용들을 그대로 보존하는 이런 신학에 동시에 기초되어서 배울 때, 그때 적어도 가장 역사의 깊은 뿌리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을 우리가 근거해서 교회를 섬기고, 또 그 신학의 내용들을 역사 속에 심고, 그리고 그 후에, 그 다음에 개혁은 그런 뿌리가 내린 이후에, 결국 시대에 모든 역사의 과정에 이루었었던 (?) 시대에, 이런 시대에 있어서 이 내용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이 신학이 정착이 안 된 상황에서 최소한대로, 기본적으로 그러면 무엇이 거기에 심어져야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한 결과 결국 칼빈하고,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을 한국에 심어야 한다. 이런 뜻으로 가장 중점적으로 그런 과목이 개설이 되고 이렇게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여러분들이 청파동에 있었을 때는 그런 것이 독립적인 요소로 있었고, 그런 영향을 대학으로부터 전혀 받지 않고 있었는데, 결국 그런 내용들이, 전체적인 발전의 과정에서 이런 내용들이 충돌이 되고, 그래서 하나의 위기가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지금 이상하게 되었어요. 칼빈이 이제 점점 밀려나는, 칼빈이 강의 과목자체에서 없어지는 이런 것이 있는데, 결국 이런 내용들이 지탱을 못하고, 몇 년 거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대충 예측을 했거든요. 아! 이것 1년을 갈지, 3년을 갈지 모르겠다. 그랬게 했는데, 결국 얼마 가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이런 내용을 직접적으로, 그러면 칼빈이 독특하게 한국 교회에 심어지지 않는 내용이 무엇일까? 이런 내용이 관련이 되어 있는데, 지금 이런 내용은 이제 무엇인지를 우리가 직접적으로 많은 노력을 통해서 칼빈을 해석하기 위해서, 특별히 기본적으로 기독교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시각적 차가 있음을 보게 되지요. 그래서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칼빈이 벗겨 지기 위해서는 주변에 루터의 신학이 있고, 그 다음에 쯔빙글리가 있고, 그 다음에 블란서의 종교개혁자가 있고, 쯔빙글리 라인에서는 블링거같은 대표적인 동시대의 사람이 있었지만, 그 다음에 루터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부쪄의 신학이 있는데, 부쪄의 신학이라고 했을때는, 쯔빙글리와 같은 성격으로 중간에 카피토가 있습니다. 이런 쯔빙글리와 같은 영역에서 같이 공부한 인물입니다. 그 다음에 쯔빙글리와 함께 루터와 같이 싸운 바젤의 개혁자 오클람파디우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이 영역(쯔빙블리, 부쪄, 카피토, 오클람파디우스)에 있는 분들하고, 이 영역에 있는 분들(루터)이 싸우게 되느데, ... 이런 영역에 부쪄, 카피토, 쯔빙글리, 오클람파디우스, 다 어떤 의미에서 칼빈의 선행자로서, 칼빈의 신학적 요소의 아주 독특한 내용들을 어떤 의미에서 뿌리를 두게 하는 선행자들, 그런데 이런 선행자들과 구별된 칼빈, 이런 칼빈을 우리가 발견해 내야하고, 그 다음에 이런 칼빈주의 사상이 결국 제네바에 심어졌고, 또 제네바의 신학과 관련되어서 칼빈의 모든 저서의, 그의 모든 학문할동, 또 교회를 섬기는 그런 내용들이 모두 역사 선상에서, 칼빈주의라고 했을 때, 그 칼빈의 모든 내용이 다 칼빈주의가 아니고, 결국 칼빈의 독특한 내용 중에, 역사 선상에서 이런 혼합, 루터주의나 또는 다른 주변의 개혁자들에 의해서 심어진 (혼합된 내용들), 그 땅에서의 구별된 칼빈(다른 내용과 혼합된 칼빈주의 내용을 의미), 이런 구별된 칼빈이 늘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된 내용으로부터 따로 특별히 고집해서 칼빈을 강조하는, 다른 요소에 대해서 칼빈을 강조하는 그런 칼빈, 칼빈주의가 역사 선상에서 17세기까지 이어졌던 것이고, 그런 내용이 이제 지금 우리가 직접적으로 칼빈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성격으로 남아 있다고 볼수 있죠.


2. 일단 우리가 기독교 강요 그러면, 결국 이신칭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물런 칼빈이 이신칭의 사상을 긍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고, 특별히 이신칭의 사상이 기독교 강요 1539년판부터 ‘믿음의 의는 모든 경건의 총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칼빈에게 이신칭의 사상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루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강조점, 그런 강조점인 믿음의 의, 이 이신칭의 사상이 칼빈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용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루터의 경우에는 그런 특별한 종교개혁 정신에 해당된 내용인데, 이런 내용들이 특별히 어디에, 루터의 초기의 순수성과 후대에 개혁자가 된 이후에 그런 내용들이 약간에 퇴색된 느낌을 갖게 되었냐 했을 때는, 그가 시편의 강의에도 이제 어떤 의미에서, 에어푸르트에서 강의했을 때나, 비텐베르그에서 강의 했을 때, 그 순수한 성격이 시편 강의에도 나타나서, 그 순수한 성격의 내용들은 후기의 칼빈에 의해서 성경을 해석하거나, 다른 분들이, 부쪄나 이런 인물들과 거의 공통적으로 생각될 수 있는 내용들이 그런 독특한 내용들이 루터에게는 존재했었던 것인데, 결국 후대에 와서 약간 퇴색된 그런 내용이 있었어요. 그 중의 하나가 대표적인 케이스로 읽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있다면, 소위 칭의와 관련해서 ‘믿음으로부터 의롭게 된다’ 이렇게 되어 있는 내용인데, 그때 개혁하기 이전에 순수한 루터의 경우에는 결국 믿음으로부터 의롭게 된다는 그런 개념이 다시 해석된 내용으로써 ‘믿음의 들음으로부터, 그래서 auditu fidem(믿음은 들음으로부터), 이런 개념이 거기에 성경 근거로 이제 해석하는 관계가 있는데, 그런데 해석할 때 그런 말을 해요. “믿음은 들음으로 난다” 이렇게 했을 때, 그때 그 개념은 들을 만한 힘이나, 듣는 행위나 믿음의 행위로부터 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표현했어요. 이게 이제 특별히 아주 종교개혁자로서의 그런 1517년에 루터가 개혁의 기치를 들기 전에, 이와 같이 독특하게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인데, 그런 어떤 성경으로부터 오는 특별한 영감이 그에게는 아주 충만해 있어서, 그런 충만 된 내용이 결국 1517년에 갑자기 결국 벽보에 그런 자기의 95개조항의 테제를 내었던 것이죠.


그 테제의 내용을 우리가 조금 더 살펴 볼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거기 내용에 있어서 그런 내용이 산출되기 전에 좀 더 깊은 의미로서, 종교개혁적 유산, 그 후에 가장 크게 강조할 구분인 믿음으로 난 의와 관련해서의 그 들음으로부터 믿음이 생긴다. 이렇게 했을 때, 그 개념을 해석하는데, 그 듣는, 들음으로부터 난다. 믿음이 들음으로부터 난다는 것을 해석할 때, 지금 들을 만한 힘이나 또는 그런 능력이나 또 듣는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의 행위에 있지 않다. 이렇게 말한 거예요. 이게 이제, 중요한 성격이죠. 이것은 이제 그런 강조를 했을 때,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이, 이제 그 시대의 특별한 의미가 있죠. 어느 예를 들어서 성전을 건축할 때, 결국 성전을 건축해야 하는데, 결국 자금이 부족해요. 그래서 교회가 면죄를 판매해요.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은 결국 헌금이죠. 헌금의 방식인데, 근데 그 헌금하는 방식이 독특하게 신학 전반으로 이렇게 결합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과거에도 그랬지만 마리아를 숭상할 때, 상이 피가 난다. 그런 카톨릭이 가지고 있는 기적적인 성격,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겉옷이든지, 기타 그를 무덤에서 쌓았던 강보던지, 이런 것들이 후대에 계속 존속이 되는, 마치 그것을 존속이 되거나 아니면 그 모양 그대로 쌓아서 실제적으로 피를 흘리는 그런 내용을 복사해서 간직하고, 이런 소위 감성, 감성을 강조해서 믿음을 해석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마치 뭐예요. 울고, 짜고, 그래서 그런 감성으로 집중되어 있을 때, 그런 감성이 경건의 아주 중요한 내용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성격이 특별히 오랫동안 강조된 내용이죠. assensus(어센수스, 감정)예요.


그래서 이런 내용과 관련되어 가지고 전부 믿음이 해석이 되었다고요. 그래서 신뢰! 신뢰가 가지고 있는 것은 감성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지극히 감성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여러분들이 목회 현장에서 여러분들이 흔히 보는 많은 내용이죠. 그래서 부흥회 같은 것을 보면 북을 친단고요. 분위기를 살린다고 하죠. 그러니까 말씀을 듣기 전에 분위기를 살리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분위기를 살리고, 그래서 assensus(어센수스, 감정)를 강조하는 거예요. 그래서 감정을 아주 많이 북돋우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십자가만 보면 우는 거예요. 십자가! 특별히 오늘날과 같이 고난주간이든지, 부활주간이든지 굉장히 좋은 기회이죠. 이런 assensus(어센수스, 감정)를 강조하는 이런 성격인데, 지금 예! 비테베르그 학생들한테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해석할 때, 믿음은 들음으로서 난다. 이 개념은 그냥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러면 무엇이냐? 무엇을 부정했냐? 하면 들을만한 능력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그것은 여러분들 고린도전서를 보면 지혜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 다음에 뭐예요. 유대인들이 바란 것처럼, 이적에 있지 않다. 이런 개념이 거기에 포함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과거에 어거스틴에게 다시 돌아가게 되잖아요. 어떤 의미에서 루터는 어거스틴주의예요. 생생한 어거스틴을 다시 발굴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에 어거스틴을 발견되었을 때, 그 개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있다면, 결국 신앙의 분석은 일시적 신앙, 참된 신앙을 구별할 때, 구원적 신앙 그랬을 때는 참된 신앙을 구별할 때는 일시적인 신앙이든지, 기적신앙, 또는 지적신앙을 부정하는 거예요. 그런 개념으로 이해되는 거예요. 이런 개념은 어거스틴 주의 이후에 모든 교회가 그 신앙에 대해서 중요하게 기초되고 있는 내용 이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적신앙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성경의 모든 구절을 그냥 전부 외우고 있다. 이런 말과 같아요. 또 주석을 통해서 그 의미를 아주 충분하게 깨닫는 그런 성격이 있더라도, 잘! 관주의 성격이든지, 신학적 지식의 부유한 내용을 다 알고 있다 이런 뜻입니다.


또 고고학적 근거에 있어서 시대상황을 잘 분석하는 쉽게 말해서, 문법적이고 그 다음에 역사적인 그런 해석에 있어서, 모든 성경이 가지고 있는 모든 내용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그런 자로 있을 때, 그때는 지적신앙이다. 그런데 이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조한 것은 그런 지적 신앙은 마귀가 더! 귀신들린 자가 더! 실제 지적 신앙이 더 크다,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그런 메시지로 있다. 문제는 이제! 그게 그러면 영적인 말로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말하면 “영성”의 개념을 쓴다. “영성의 개념”은 사실상 문제가 크죠. 영성이라고 그랬을 때는,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영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그런 성격에 있어서, 아주 예민한 부분, 구별되지 않는 성격, 그때도 영적이라고, 영성을 가졌다. 영적이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지금 이제 그런 내용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경우에도, 더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영적으로 가장 민감하거나 또 그런데, 영의 이렇게 또 도움을 받거나, 이런 영에 의해서 도움을 받는 그런 자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인물들, 신령한 자들, 이런 자들이 실제적으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일반인들 보다도, 듣는 자보다 훨씬 깊게 알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적의 경우에도 그 주변에 있는 제자들도 잘 모르는 내용이지만, 오히려 귀신들린 자는 더 예수님을 존재를 잘 알았다는 말이예요. 그러면 지적신앙과 관련되어서 ‘알다’라는 것을 단순히 그런 문법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옛날 히브리인들이 사용했던 “야다”의 개념처럼, 알다의 개념의 그런 개념으로 인간론적 으로 해석해야 되는 것인가? 아주 깊게 안다는 의미에서, 인간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 경우에도 지적신앙이예요.


그러니까 인간론적 해석에 있어서, 여러분들 인간에게 있어서 좀 더 아는 자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안다는 것에 있어서, 친밀하게 아는 경우에, 부부가 아는 경우, 아주 모든 것을 안다. 그때 아는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경우, 그렇게 해서 야다의 개념처럼, 히브리 개념에서의 그 알다의 개념이 헬라어 개념에 그대로 있어서, 셉투아진타(칠십인경)에 사용해서, 신약 성경의 개념에도 반드시 들어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그 알다의 개념, 그러나 그 알다의 개념을 약간 비판하고 있는 것이 복음서의 증거이다. 그것은 귀신들린자가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지 못해요. 그런데 어거스틴은 바로 그것을 부정한 거지요. 그러면 참된 신앙은 마귀가 또는 귀신들린 자가 아는 그런 아는 것을 의미하는 그런 신앙인가? 아니다 는 말이예요. 이런 의미에서 어거스틴이 중요한 메시지를 증거 한 그런 성격이 되지요. 그런 뿌리가 어느 의미에서 교회에 있어서, 어거스틴 이후에 딱 뿌리를 내린 내용이다. 카톨릭은 그로부터 한참 타락했죠. 왜냐하면 종교개혁시대에 겨우 발견된 그런 성격이니까? 이런 정신의 해석은 특히 뱁티스트(재세례파)의 경우에 아주 강해요. 초기 17세기 이전의 뱁티스티들(재세례파), 17세기 또는 발생했을 때 개념들에, 어떤 뱁티스트들의 경우에는 패밀리리스트라고도 하고, 뱁티스트(재세례파), 그때 구별이 안 되었다고요. 그러니까 거의 sect(이단)에 가까운 그런 인물인데, 나중에는 이렇게 뱁티스가 건전하게 발전이 되어서(침례교로 발전), 인정을 받아서 그렇지 그 전에는 전부 우리가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재세례파)들처럼, sect(이단)다라는 말이예요(카톨릭에 의해서 진리를 말하는 자들이 전부 정죄당했다는 의미). 쉽게 말해서 어느 구석에서 하나의 종교단체를 만들어서 독특한 신비주의 활동을 하는 그런 성격이라고요. 그런데 그때 그 가르치는 특별한 선각자의 경우에는 이와 같이 어거스틴의 사상에 의해서 성경을 해석했다고요.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은 거예요.


왜 그러냐하면 참된 신앙은 무엇인가? 했을 때, 지적신앙도 아니고, 기적신앙도 아니고. 일시적 신앙도 아니고, 씨 뿌리는 비유처럼 그렇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공적으로 전통적인 그런 선에 있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기초가 어거스틴에 두고 있는데, 어거스틴을 발견한 사람은 실제로 공적으로 이렇게 외적으로 크게 이렇게 교회가 대외적으로 나타나는 그런 소위 카톨릭성을 가진 공적인 그런 교회에서 가르침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sect에 있었다는 말이예요. 그러나 sect들은 이미 표현한 것처럼, 위클리프나, 그 전에 오래된 발도스?주의(발도파?), 장로교인데, 그런 틀을 가지고 있는, 그런 자들은 다 sect(이단)로 정죄되었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그런 자들은 결국 소외되고, sect로서 구별되어서 핍박을 하고, 그리고 법에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이런 성격으로 유지되었다가, 결국 그런 내용들이 건전하게 결국 바이블에 대해서 세운 내용들, 이런 것에 의해서 루터에게 접목이 되어서 성공을 하는 그런 내용이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같은 루터의 성공된 내용 중에서 sola scriptura(오직 성경) 개념이 믿음을 해석할 때도, 새로운 이해를 거기에 제공되었던 그런 성격이 있게 되었습니다. 순수한 의미에서 루터의 경우에도 이와 같이 그런 미묘한 성격, 어거스틴이 가지고 있는 그런 내용들이 그 시대의 일반적인 교회가 가지고 있는 타락성을 비판하기에 충분한 그런 어떤 믿음의 개념을 거기에 소개하므로 소위 그런 것이 교회 안에서 걸러내는 그런 작업을 한 것이죠. 그래서 그 내용이 좀 더 루터의 경우에는 초기 비텐비르그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는 이런 개념으로 소개되었어요. 그래서 신앙은 듣는 믿음이나 듣는 행위에도, 신앙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 그러니까 들음으로 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데, 그러면 말씀을 들음으로 난다! 그러면 무엇이냐? 그때 그러면 무엇이냐? 했을 때, 루터가 강조한 것이 성령입니다. 듣는 행위에도 있지 않고, 들을만한 능력에도 있지 않고, 그러면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고린도전서에 있는 그런, 관원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핍박의 인물들이 되었다고 했잖아요. 일단 여러분들이 한 번 본문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고전2:4절-8절을 보시면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이렇게 구분했다는 말이예요. 그래서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이렇게 되었다고요.


이게 이제 그 시대를 해석하는 바울의 접근입니다. 결국 이 접근의 내용들이 모든 복음서의 기록에도 당연히 비록 드문 내용지만,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충분하게 반영되어 있는 그런 말씀들이 초기부터 늘 있어왔다고 증거하고 있어요. 초기부터! 그러니까 미리 다! 빌립보 지방을 갔을 때도, 이미 그가 벌써 자기가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미리 예언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그 전부터, 또 그가 하늘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이미 그가 제자로 삼기 전에 나다니엘, 그런 인물과 안드레아, 요한, 나다나엘이 목격할 때, 들었던 그 내용입니다. 그런 증거를 어떻게 오래전에 그렇게 하셨는가를 제자들은 증거하고 있는 거거든요. 바울사도도 마찬가지 이 핵심적인 것은, 결국 그 시대에 많은 율법을 해석하든지, 또는 그 당시에 율법을 해석하는 많은 선생들, 소위 디다스칼리아들이 있었다는 말이예요. 그랬을 때, 그 선생들이라고 했을 때, 그 선생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에 대한 모든 지식이 있었다고 하면, 결국 어떻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당연히 이방나라를 대표하는 빌라도 같은 인물들이 있다고 했을 때, 어떻게 그가 정당하게 재판을 하지 못했는가?예요.


그것은 무엇이냐면 인간의 지적인 것, 시세로를 읽다든지, 모든 세상의 학문이 가지고 있는 윤리적인 것, 세네카가 가지고 있는 사상, 그러니까 칼빈이 세네카를 주석을 했거든요. 그러면 거기에 윤리적인 내용이 다 들어있어요. 칼빈이 사실상 추구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있는데, 그러나 그 세네카를 주석할 때, 이런 의미를 알았더라면, 세네카를 주석하는 것이, 성경 주석하는 것과 어떤 의미로 관계가 있는지! 하는 그 미묘한 성격이 거기에 있는 것인데, 그것을 해석할 때 세네카 주석을 끌어내야 되요. 해석할 때! 칼빈에 의해서 종교개혁자로서 세네카 주석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것이 가장 핵심이거든요. 그것이 회심 전인가? 회심 후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인데, 이런 해석에 있어서, 미묘한 점에 있어서, 종교적인 문맥, 종교개혁자들의 문맥에서 해석을 하지 않을 때는 실패한다는 말이예요. 결국 칼빈도 실패하게 되었어요.


지금 이런 기본적으로 바울 사도가 증거된 내용들이 결국 중요한 내용으로 심어진 것이예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같은 고린도전서를 발견하더라도, 루터는 “하나님의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고전2:7), 이 7절이 거의 생략된다는 말 이예요. 그런데 칼빈은 이 7절을 강조해요. 그러니까 이것도 특별히 강조하되, 그러나 좀 더 깊은 내용은 그 말씀 있는 그대로를 강조해요? 그러니까 사고와 말에 있어서까지 오직 그 성경, 모든 말씀을 생략하지 않고, 침묵하지 않는 이런 형태로서 결국 모든 성경을 전체 가장 균형 잡힌 해석을 하는 이런 틀로서, 칼빈이 이렇게 신학 전체의 체계를 형성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결국 7절에 있는 것처럼,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여기 감취었던 것이 무엇이죠? 루터도 말했다고요. 루터는 의지를 말하더라도, 감추어진 의지! 이것을 말해요. 의지를 말해도, 계시와 비교해서, 감추어진 계시, 이런 개념 이예요. 여기까지 말하는데, 그러나 좀 더 갈 때,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10:7) “미리 정하신 것” 까지는, 소위 에라스무스와 싸울 때, 자유의지와 관련해서 노예의지를 썼을 때, 그때 1525년 그 전 후로 해서는 이것이 강조되다가, 그 다음에는 개혁자가 된 다른 양상이 결국 들어가다가 이것이 강조 못하고, 다른? 것이 포기된다는 말이 예요. 그런데 이것을 다시 포함시켜서 균형잡힌 내용으로 성립한 내용들이 이제 칼빈과 다른 점이라고요. 같은 믿음의 의의 개념을 하면서도, 이와 같이 복음서적인 모든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어거스틴의 해석, 또 그것에 관련된 루터가 다시 발견한 어거스틴, 그것 선에서 간직된 내용들에 의해서 발견된 종교개혁 정신, 이런 내용들이 상당히 많단 말이예요.


왜 그러냐하면 결국 믿음의 의라고 했을 때는, 그 개념에는 들음으로서 난다. 이 말만 해도 그것은 은혜로부터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sola gratia(오직 은혜)는 된다는 거예요. 동시에 믿음으로 되었으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까 그것은 당연히 sola fides(오직 믿음)라고요. 그것은 당연하다고요. 그것은 종교개혁 일반이라고요. 루터의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요. 그러나 그것 만을 근거하지 않는다. 지금 이런 내용들이 이제 성경을 해석하는 그런 깊은 내용에 있어서, 모든 것을 이렇게 오직 성경만 강조하되, 그러나 tota scriptura(전체 성경), 모든 성경을 다 한꺼번에 빠짐 없이 포용하는 그런 신학적인 내용, 이런 내용을 결국 루터 신학과 구별하면서, 이렇게 새로운 기치를 내는 그런 성격이, 실제적으로 특별히 쯔빙글리와 오클람파디우스가 이것이 약간에 벌써 루터하고 충돌이 되었을 때, 이때 1529년에 확고하게 이렇게 구별되기 시작했다고요.(성만찬 논쟁)...


3. ...그래서 루터가 실제적으로 그렇게 나갈 경우는 교제하기 싫다고 하니까 결국 이렇게 떨어져 나갔어요. 이런 성격을 우리가 칼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면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이런 내용들이 이제 소위 일찍 ‘바이마르 아우스가베’(루터전집)라는 책에 이렇게 편집이 되지 않았다가, 결국 나중에 거기에 약간의 예외적인 그런 인물들, 루터주의 안에서도 약간에 예외적인 인물들이 초기의 이런 갈라디아의 주석을, 그러니까 후대의 갈라디아 주석, 그러니까 ‘바이마르 아우스가베’(루터전집)에 있어서, 루터전집 안에 포함된 그런 갈라디아 주석은 몇 번 있긴 있어도, 약간 타락한 현상이라고요. 이것을 인식하고 바로! 순수한 그런 루터의 갈라디아 주석, 그것이 에어푸르트 이후에, 소위 비텐베르그에 강의되었을 때, 그때 출판이 되었다고요. 출판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이마르 아우스가베’(루터전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렇게 제외되었단 말이예요. 그런 제외된 정신, 왜 제외되었냐? 했을 때는 이런 정신이 루터하고 다른 점이, 후대에 영향을 끼친 루터하고 다른 점이 되었다는 말이예요. 루터주의하고 충돌이 된다 말이예요. 그래서 거기에서 제외시켰어요. 그런데 나중에 포함시키려고 하니까 약간에 차이가 있죠. 그 중에 또 시편 주석들 가운데서, 나중에 출판되어서 ‘바이마르 아우스가베’(루터전집)에 들어간 것은, 즉 ‘바이마르 아우스가베’(루터전집) 1권부터 10권 안에 들어가 있는 갈라디아서 주석이나 시편 주석은 그런 타락한 주석이라고요. 그러나 이제 50권 이후에 겨우, 개혁주의자들이 루터의 ‘바이마르 아우스가베’(루터전집)에 순수성이 좀 떨어진다고 강조하는 인물들에 의해서, 다시 한번 그런 압력을 넣어가지고, ‘바이마르 아우스가베’(루터전집)에 하나 들어간 것이, 50권 중에 그때 갈라디아 주석하고 시편 주속이 들어가요.


그때 시편주석의 내용이 이제 쯔빙글리 주장이나 부쪄의 주장하고 일치되는 점이 나와요. 그러니까 루터가 가지고 있는 그런 성격이 결국 뭐냐면? 상당히 뭐예요. 루터 전집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에큐메니칼(교회 일치운동) 루터가 되어 버린거예요. 처음에 루터주의의 루터가 발굴된 ‘바이마르 아우스가베’(루터전집)가 되었다가, 나중에 개혁주의자 하고 일치되는 그런 루터가 다시 압력에 의해서 넣어지니까 뭐예요? 개혁주의도 포함된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에큐메니칼 의미에서 되었고, 나중에 최종적으로 어거스틴주의하고 대화, 이제 후기 카톨릭주의하고 대화를 하는 그런 신학적인 운동에 의해서 좀 더 루터가 이제 가깝게, 그 당시에는 16세기에는, 칼빈은 정식으로 이단으로 찍히지 않았지만, 카톨릭에서는 루터가 이단으로 찍혔거든요. 공식적인 이단으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이단이(카톨릭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소위 에큐메니칼 의미에서, 상당히 이렇게 대화의 폭이 좁혀진 이런 시대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대부분 에큐메니칼 의미에서 루터, 또 에큐메니칼 의미에서의 칼빈, 이것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 전체적인 흐름이예요.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acts(아세안연합신학대학교)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까지 할 수 없지만, 소위 알미니우스 주의자인 웨슬레와 동일한, 어떤 의미에서 웨슬레가 칼빈의 신학을 계승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계승했다. 이런 의미로서 신학을 새롭게 이슈를 낸 소위, 공관신학, 이런 신학이 acts(아세안연합신학대학교) 예요. 한철하 교수를 이렇게 성립한, 그런 무리가 acts(아세안연합신학대학교) 에는 교수들이 한데 모아져 있어요. 그런 성격들은 결국 국제적인 경향과 잘 맞아떨어져가는 그런 경향이지요. 그래서 이런 루터의 경우나 칼빈의 경우에 있어서, 결국 역사의 현장에 있어서, 루터는 그렇지만, 후대에 와서 이렇게 그런 루터가 그렇게, 실제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루터의 순수성은 사실상 오클람파디우스 일 수도 있고, 쯔빙글리 수도 있고, 오히려 칼빈일 수도 있다는 말이예요. 그때는 뭐예요. 루터주의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되거든요. 아까는 에큐메니칼 의미에서 루터가 발견이 되었다. 이렇게 루터주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되는데, 그러나 실제적으로 역사의 현장에서 동시대에 그런 일이 이렇게 생겼기 때문에, 루터주의가 주장하는 루터, 후기 루터에 대한 그런 입장은 결국 실패한 루터 이렇게 되요. 순수성이 없는 루터!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요. 그러니까 그때는 뭐예요. 순수하지 않는 이런 성격이 되어 버렸어요. 이런 것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의미에서 많은 노력을 합니다.


어느 예를 들어서 칭의보다도 루터가 부정하고 있는 성화와의 관계, 성화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루터가 성화를 강조하지 않으니까? 왜냐하면 그가 강조하는 것은 늘! 평생! 그 구원과 관련해서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다.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다. 이것이 변증법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simul(동시에)이라는 개념이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다.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다라는 것이 평생 죽을 때까지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변증법적 성격을 가져요. 그러니까 어느 개인이든 일생 전체를 통해서든, 항상 죄인으로 남아 있는데,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다. 이런 개념이라고요. 그러니까 거기에 성화가 없다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믿음의 의로 된, 믿음으로 칭의가 되요. 그러면 객관적으로 칭의를 받던, 어떤 형태로든지 칭의가 된 자는 동시에 성화의 단계를 말합니다. 성화의 단계!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거룩히 되는 그런 점진적인 과정이 있다. 이것을 강조해야 하는데, 루터주의는 동시에를 강조해 버려요.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다를 강조해 버려요. 이런 내용들이 루터주의 신학에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자기들의 신학 이예요. 왜 그러냐하면, 그래야만 성만찬이 가능하다고요. 성만찬이 그것에 연결되었다고요. 성만찬의 경우에는 아까 assensus(에센수스, 감정)를 강조했어요.


성만찬의 강조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우리는 성만찬을 뭐! 그렇게 자주 안해요. 물론 칼빈이 자주 하면 좋다. 이렇게 되어 있어도, 그것은 종교개혁적인 분위기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우리는 자주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assensus(에센수스, 감정)를 강조하게 되면, 루터주의는(루터주의와 카톨릭 주의처럼 된다는 의미) 또 카톨릭 주의는 당연히 카톨릭 주의는 아예 지적신앙, 들음으로부터 난다. 이 “들음” 이라는 개념을 아예 생략해 버렸다고요. 없애버렸다고요. 그래서 설교가 없고, 주로 뭐예요! 의식 이예요! 의식이라는 말이예요. assensus(에센수스, 감정)를 강조해요. 당연히 거기에 화체설이 있게 되니까, 집례자에 의해서 그 떡에 실체가 거기에 임한다. 그 떡을 먹는 자는 그리스도의 실체를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감동을 주지요. 오늘날의 영화(The Passion of Crist를 말함)처럼, 가장 리얼하게, 그냥 영화만 보면 눈물 짜게 해요. 또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그것만 보고, 살인자가 회개할 정도로, 엄청나게 감동을 준다는 말이예요. 눈물을 짜게 한다고요. assensus(에센수스, 감정)에 강조가 있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마리아 상을 해 놓고 거기에 피가 난다든지, 뭐! 거기에 그냥, 불교에서는 그런 것 보다도 보통 미신이 아니라고요. 엄청난 미신이 거기에 있는 거지요. 그런 것들이 결국 카톨릭의 의식의 강조와 관련해서 전체적인 모든 축제행사나 이런 것들이 그 당시에 토속종교와 그냥 혼합되어 있어요. 이런 것이 그 일반적으로 그 신학의 특징이 되었다고요.


그래서 그러다 보니까 성경보다 전통을 강조하고, 그래서 들을 기회가 없어졌어요. 특히 평신도가 직접 성경을 소유자로서 읽을 권리가 없어졌어요. 이런 역사적 전통이 있게 되는 것은 그런 데에 있다고요. 신학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그런데 이제 루터의 경우에는 들음으로부터 났다. 이렇게 되니까? 성경을 들어야 하고,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 되요.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되냐고 하면 결국 같은 assensus(에센수스, 감정)가 충분하게 버려지지 않아서, 거기에 공재설이 있었다고요. 그러니까 말씀도 있고, 그 다음에 그런 보이게 하는, 구체적으로 보여서, 그 보이는 데서 이렇게 assensus(에센수스, 감정)를 강조해서 하는, 이것이 반드시 예배에 두 가지가 동시에 하도록, 이렇게 모든 예배에 있도록 해요. 그래서 항상 떡을 떼요. 예배가 끝나고 나서 항상 떡을 떼요. 의식의 반영이예요. 우리는 뭐예요? 그것을 없앴어요. 매회 성찬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설교 중심으로, 그 다음에 어쩌다가 한번, 또 몇 번 떡을 떼요. 이런 의식이 되어 버렸지요. 성격이 좀 다르다고요.


이런 면에서 우리는 훨씬 더 assensus(에센수스, 감정)를 강조하지 않고, 그러면 칼빈의 개혁이 어디에 있었냐고 했었을 때는 믿음의 정의를 했을 때, 믿음이라고 했을 때, assensus(에센수스, 감정)에 있지 않고, notitia(지식)에 있다고 했어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 물론 여기에 fiducia(의지)까지도 어느정도, 일반적으로 다 있었다고요. 의지의 활동! 그러니까 카톨릭이 가장 고난이 강조되는 것은, 회개를 하더라도, 그 증거를 끝까지 보는데, 그것은 마지막 그가 실제적으로 의지의 활동에서 그것을 보여주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예요. 그때 보여주는 내용 전까지는 아직 회개가 아니다라고 보는 거예요. 그러죠. 그러나 루터나 칼빈의 해석은 좀 다르다고요. 칼빈이 여기에 이제 우리가 핵심적인 내용이 1536년판 기독교강요부터 회개가 무엇인가? 이렇게 나왔을 때, 가장 중요한 내용들이 그런 fiducia(피두키아, 의지)의 강조를 단절시키는 내용, 그 다음에 assensus(에센수스, 감정)를 단절시키는 이런 내용들이 이제 충분하게 해석이 되는거지요.


그래서 이런 내용들이 칼빈과 관련해서 notitia(지식)에 특별히 강조를 두어서, 이제 기독교 강요는 구성 자체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내용이 되었어요. 우리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 이런 두 가지 종류가 거기에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서 거기에 발견이 되는데, 기독교 강요 1536년판부터, 서문에 이렇게, 초기 율법을 해석하기 전에 나타나는 내용도 나중에 1539년판에 locus(주제)로 발전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 하나의 locus로 발전이 되어서(--에 대해서, --에 대해서, 예) 하나님에 대해서, 성부에 대해서, 이것이 locus 방식), 가장 기본적이 되고, 나중에 1559년판에는 그런 지식의 내용들이 전 책의 가장 기초로 되었어요, 그래서 결국 성부 하나님에 대한 지식, 성자 하나님에 대한 지식, 성령 하나님에 대한 지식, 마치 이렇게 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 말로 번역이 되고,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마치 그런 형태로 구성이 되고, 그 다음에 기타, extra medium[외적 방편(혹은 수단)]과 관련되어서, 교회론을 다루게 되거든요. 그때 이제 그런 기본구조를 이루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근본적으로 이제 기초가 되어요.


처음에는 초반에 그런 인식이 약간에! 조그마한 가장 기초가 되는 지식으로 있었다가, 나중에 전체 구성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틀로 이렇게 나와요. 그래서 사도신경이 그 전에는 1536년판에는 예! 이와 같이 율법에 대한 해석, 사도신경 해석, 주기도문 해석, 이런 형태로서 루터의 요리문답의 방식으로 해석이 되어서 구성이 되었고, 그것으로부터 약간의 다양성을 가지게 된 것이, 그 구조는 사도신경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그런 내용들을 약간 반영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locus(--에 대해서, 주제), 주제별로 다루는 그런 변화를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틀, 그러니까 루터의 요리문답의 틀처럼, 율법에 대한 해석, 그 다음에 사도신경에 대한 해석, 그 다음에 주기도문에 대한 해석, 이런 틀이 벗어나지 않아요.


그래서 1550년판까지 계속 되다가. 1559년판에서는 그 중에서 사도 신경이 싹 빠져요. 싹 빠지면서 어떻게 되냐면, 모든 전체, 그런 것들이 이렇게 전부 흩어지고, 율법에 대한 해석도, 주기도문에 대한 해석은 약간 많이 남아 있지만, 거의 흩어지고, 사라지고, 또 사도신경이 거의 그냥 사라져요. 그렇게 되었을 때, 그것은, 그 사라지는 동기는 처음 의도한 것이라! 이렇게 칼빈이 그의 서문에서 말해요. 그때 그 의도한 것이라는 것은 첫 구문에서 이미 1536년판에서 나왔던 내용 이예요.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니까? 결국 성부에 대한 지식, 성자에 대한 지식, 성령에 대한 지식, 이렇게 해서 사도신경을 해석하는 그런 구조로 결국 기독교 강요 전체를 이런 구조로 이렇게 틀을 이루는 것으로 잘못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이렇게 이해하면 아주 오해하기 쉬운 것이지요. 잘못된 모습이예요. 지금까지 기독교 강요를 보는자가 전부 그렇게 해석을 했는데, 특별히 이 강의가 시작되었을 때, 여러분들의 선배가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동시에 이런 거기에서 나오는 삼위일체 구조에 대해서 관련된 것, 칼빈과 삼위일체 구조, 그 다음에 어거스틴과 관계, 이런 것들이 점진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심어져서, 과거에 여러분들의 선배 논문 가운데서, 이것이 초반부터 가장 중요한 이슈로서 논문을 많이 썼던 것이지요. 대부분 그것을 기초로 해서, 그런 것들이 한국교회의 개혁의 내용이 되는 거지요. 칼빈을 이해하는데 잘못된 이해로 생겨서, 생긴 많은 결과들, 이런 결과들을 수정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지요. 지금도 이제 마찬가지예요. 그것을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제 어떻게 칼빈 강요도 없어질 형평이고, 앞으로 17세기도 없어지고, 이렇게 되면, 이제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요. 한 지금까지 몇 년, 1995년이니까 한 9년이 되지요. 9년 동안 존재했다가, 지금 큰 위기 속에 있어요.


그런 내용이 이제 그 칼빈의 어떤 기독교 강요의 특징은 결국 notitia에 있다고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assensus(감정), fiducia(의지), notitia(지식)가 있잖아요. 여러분들이 벌코프의 조직신학에 보면 참된 구원적 신앙과 관련해서는 이 요소[assensus(감정), fiducia(의지), notitia(지식)]가 있어야 한다고 그러지요. 그때 이 요소라는 것은 이 nototoa( 지식)에 특별히 개혁주의는 강조가 있다는 말이예요. 개혁의 내용에서 assensus(감정)나 fiducia(의지)보다는 notitia(지식)에 있다고요. 그래서 이 nototia를 어떻게 결국 이해해야 하느냐? 이것이 중요한 성격이, 이제 칼빈과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요.


4. 우리가 이제, 어떤 중요한 예를 들어서 여러분에게 루터의 신학하고 칼빈의 신학의 특징으로 발전이 되고 있는 내용 사이의 어떤 간격이랄까? 이런 것들을 이렇게 약간 보이고 있는데, 그러나 종교개혁자로서의 루터의 입장이라는 것은 특별히 그의 저항원리를 통해서 결국 모든 신교가 기초하고 있는 특별한 개혁의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이런 저항의 내용이 어떤 형태로 이렇게 확장이 되고 또 특별히 구별이 되어서 개혁주의 신학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제 그런 신교의 공통적인 것, 이런 내용들은 이제 기본적으로 칼빈주의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그런 성격입니다. 그런데 앞서서 내용 가운데서, 설명 가운데서 sola scriptura의 개념을 설명했는데, 그때 그 개념이라는 것은 여러분들, 이 교재 가운데서 설명된 내용이지만, 특별히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단계에 있어서, 모든 제후들과 도시들의 공적으로 동의를 받은 때인 1529년 4월 19일에 공인된 내용으로서 종교개혁 정신이 된 것입니다. 그때 그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을 때, 그 독특한 신학의 내용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비추어진 내용이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이제 결국 오직 성경인데, 그 오직 성경의 개념은 그런 개념입니다. 여기에 특별히 루터 전집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인데, 거기에서 sola scriptura 저항의 개념이라는 것은:


① 오직 성경만 순수하고 배제적으로 설교해야 된다. 오직 성경만 저항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예요. 이런 설교를 무슨 설교라고 합니까? 요즘 무슨 설교라고 해요. 강해설교요. 실제 이것이 신교의 기본적인 것입니다. 뭐 제목 설교나 이런 것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예요.


② 모든 교리와 모든 삶의 유일하고 확실한 규범으로서 성경이다. 즉 모든 삶의 유일하고 확실한 규범은 성경이다.(성경이 원리로 주어짐?) 무오한 성경이다. 모든 교리와 모든 삶,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성경 원리가 주어졌을 때, 기본적으로 있는 성경이 어떤 의미인가? 이런 원리로 주어졌을 때, 이것이 교리와 삶의 원리이다. 신앙과 삶의 규범으로 되어 있는 것이예요. 이런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 시대에 결국 그 교회가, 제후들과 그 도시들의 모든 교회를 따르는 모든 회중들에 의해서 공인되고, 같이 공유하고 있는 고백서의 내용으로서 이런 고백이 이루어졌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신교의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③ 성경은 자체 해석의 원리이다. 그러니까 성경은 다른 것에 의해서 해석되지 않고, 우리가 말하면 역사적 해석이든, 문법적 해석이든, 이런 것이 약간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체 해석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불링거 정신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러니까 역사적해석이나 문맥 해석이나 문법적 해석이나 이런 것은 아직 설교를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고, 그런 수 많은 설교를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그 다음에 모든 본문을 외우는 과정까지도 준비하는 과정이고, 그 준비가 되어서, 그 이후에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영감을 받아서, 이제 설교 구성이 기본적으로 되잖아요. 그래서 그 전까지는 설교하는 단계가 아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어떤 성경해석 원리에 있어서,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이렇게 루터의 기본적인 성경의 sola scriptura(오직 성경), 즉 오직 성경의 개념이 실제적으로 설교에 있어서, 메시지는 전달되는 내용이 어떤 내용이 되어야 하는 데까지, 성경원리가 적용이 되는 성격이지요. 이런 내용들은 블링거의 해석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 되어서, 약간은 이제 이론적으로 점점 발전이 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성경 본문에 있어서, 감리교나 장로교가 다 신교 일반적으로 공통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소위 관주 성경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관주로 된 성경, 그것은 그대로 사실상 신교의 성경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 루터로부터 원리로 심어졌던 내용이 되었던 거지요.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 그! 어떤! 같은 오직 성경을 발견하더라도, 과거 역사와 다른 루터의 독특한 내용이 되었는데, 그러나 이런 내용이 하나의 규범으로 되었을 때, 루터에게서 약간의 약점이 하나 뭐가 있었냐 하면, 소위 독일의 어떤 의미에서, 후에 신교에 있어서 독일이 갖는 어떤 독특한 문학적 발전, 또는 문명의 발전이 있을 때, 오직 성경만 그렇게 루터의 정신에 의해서 배제적으로 설교되었다. 이런 것만 있으면 좋겠는데, 루터가 벌써 그가 95개 조항의 테제를 내었을 때 그런 고백을 했어요. 그의 18조에 “진리를 밝히는 근거와 규범으로서 이성과 오직 성경이다” 이렇게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이게 이제, 과거에는 정통과 관련해서 어떤 성경이 이분법으로 되어 있었지만, 이제 신교에 있어서 루터가 강조하는 것은 소위 오직 성경을 강조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부분이 이성과 성경이다. 이런 틀로 이렇게 전환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루터를 찬양하는 그 역사적 가치를 가장 크게 높이는 그런 내용이, 결국 일반, 어떤 세속적인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루터를 찬양하고 루터가 일반 학문에서 접목되는 부분에 있어서, 루터를 높이는 부분은 그의 국민주의 정신, 어떤 독일의 국가 사회에서 중요한 어떤 국민주의를 형성시키는데 내용이 되었던 그런 내용도 되고, 또 바이마르 헌법이 기초되어서, 루터에게 기초를 둘만한 어떤 특별하게 찬양을 드릴만한 내용이 있다면, 이성이예요. 이성과 오직 성경을 강조한 점이예요. 그래서 당연히 독일 사회에서는 이성주의가 당연히 경건주의의 한 내용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쉽게 뭐! 소위 계몽주의 시대에 가장 절정을 이루는 결국 칸트의 경우이지만, 최종적으로 칸트가 이론적 이성을 비판했지, 실천적 이성을 통해서 다시 이성을 강조한 그런 성격에서 관념주의까지 넘어가거든요. 이성주의는 독일의 모든 신학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철학, 문학, 이런 면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어요. 그 만큼 독일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소위 이차대전 때, 히틀러 시대는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어떤 내용이 되기도 하였던 거지요.


그것이 이제 하나의 어떤 의미에서, 오직 성경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약간 남아있는 그런 약점이 결국 후대에 역사에서는 아주 큰 부정적인 내용으로 발전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러나 가장 중요한 루터의 개혁의 내용이랄까? 어떤 정신이 신교에 영향을 끼친 내용이 있다면, 특별한 두 가지 내용이 있어요. 결국 “교회와 세속적 권리들을 가진 모든 자들 앞에서 교황이나 공의회에게 복종하기를 거절하였던 원리로서” 그가 모든 사람이 다! 결국 교황아래, 또는 교황 아래 있는 모든 제후들에게 복종하고, 또 공의회에 복종하는 그런 틀 속에서, 그 홀로 있을 수 있고, 나는 그들에게 복종할 수 없다. 이렇게 서 있는 그런 문맥, 이것이 이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이 서 있는 그런 똑 같은 자리, 공의회 앞에 서 있을 때, 산헤드린 공의회의 말에 복종하여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에 대해서 더 순종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있다. 이런 두 내용을 가지고 사도행전에 중요한 저항의 개념이 있는데, 이때 루터가 그와 같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요. 그때 그가 표현하기를 모두가 다! 이런 공의회와 교황에게 복종하는 내용이지만 나는 오직 “인간을 배제한 하나님의 말씀과 판명한 이성 혹은 양심에 근거해서 나는 홀로 서 있다.” 이렇게 했단 말이예요.


이게 그 당시에 결국 종교개혁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로서 그가 저항하고 있는 원리가 되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이제 혼합주의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그가 유명한 “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 Gott helfe mir. Amen” 나는 여기에 홀로 서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도우실 수 있다”. 이렇게 저항할 수 있었는데, 이게 특별히 홀로 solus prima eram(나는 오직 홀로 있다) 이라고 그랬어요. 나는 오직 홀로 있다. 오직 나의 증인자는 하나님 뿐이시다.(Deus ipsum Testato)“ 이렇게 하고 그가 싸웠던 저항의 내용입니다. 굉장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이 다 그 같이, assensus(어센수스, 감정)를 강조하고, 그 아래에서 면죄부를 판매하고, 그래서 그 신학 속에서 변증하고, 모든 신학자는 한 목소리를 내고, 그래서 새로운 이렇게,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오직 성경만을 강조하고, 성경 이외에는 다른 것을 설교해서는 안 되고, 성경을 따라서 교회는 개혁되어야 하고, 그것은 틀렸다고 이야기 하고, 지금부터 다시 고쳐야 한다. 회개하라! 이렇게 이제 선언하는 그 자가 결국 역사 선상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어서, 다 실패했다가, 오직 유일하게 루터만 성공한 거예요. 루터가 성공하더라도, 그것도 제후들에 의해서 약간 숨겨가지고, 피신시켜서, 그러나 그 제후들이 다른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결국 그 당시에 국민주의, 자기 제후의 독특한 이런, 물론 거기에 배경에 종교개혁의 뿌리와 관련해서는 많은 사회학적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학적 해석보다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기에서 발견하여야 하는 것인데, 그때 루터는 고난 가운데 피신하는 인물로서 제후의 보호를 받다 보니까, 아까 말한 소위, 들을 만한 능력이나 듣는 행위에 있지 않다. 이것을 오직 이신칭의에 있어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 원리에 있어서, 그 내용상으로서 이것을 아주 강하게 아주 부르짖을 수 없는 내용이 또 거기에 포함이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제후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 원리를 강조해서 그가 인정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까지는 하지 못했어요. 이게 이제 결국 종교개혁에 있어서 루터가 약점이 된 부분이라고요. 어떤 걸림돌이 되었다고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교회에 갈 때, 후원자를 많이 받게 되었을 때, 후원자가 돈은 많은데, 신앙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발로 찰 거예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굉장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는 늘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은 그 만큼 신앙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냐? 이렇게 해서 받는 것 아니예요. 또 그러면 뭐예요. 또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예요. 어떤 의미에서 말씀에 대해서 순종을 하고 그렇게 까지 한단 말이예요. 그래서 제자들처럼, 그냥 참!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뭐예요.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 다니는 거예요. 굉장한 사건 이예요. 여러분들 그런 자가 있으면, 오늘날과 같으면 개척을 해도, 많이 개척할 수 있는 그런 자만 있으면, 내가 메시지를 전하는데 있어서,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 온단 말 이예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그 무리들처럼, 그런데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어요. 그 무리들 가운데 밤 늦게까지, 뭐! 가정은 없고, 그 말씀이 좋아서 그냥 차가운 땅에서 그냥 밤샘을 하는 그 자에게 불쌍히 여겨서 먹을 것이 없냐? 제자들이 없다고 그래요.


제자들이 상당히 문제예요. 그때 따지는 것은 내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5000명, 4000명이 보였는데, 이걸로 어떻게 식량을 삽니까? 그것을 생각지 마십시오. 이런 뜻이예요. 합리적으로 생각을 해 보시라고! 가룟 유다가 회개를 해도 몇 푼 가지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에게 식량을 주겠냐고, 그것을 뻔히 알고 계시는 거지요. 그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나 제자들은 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때 실제적으로 떡을 주신 것이 아니예요. 이적을 통해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서, 결국 그들의! 이적의 성격이었는데, 그것이 모세의 이적과 같은 성격이라고요. 그런데 그것을 착각을 했지요. 제자들은 아! 예수님만 따라 다니면 먹을 것도 해결하나봐! 이렇게 한 거예요. 그러니까 죽도록 따라 다녀요. 뭐! 여러분 참 그럴 것 아니예요. 지금 생각할 때도 말씀도 좋지요. 상당히 개혁적이고 말씀도 좋지요. 말씀이 그리운 때인데, 특히 어떤 때는 이라크 같은 그런 상황인데, 지도자가 없단 말이예요. 아무리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다 제사장이든, 다 실제 거기는 헬레니스트 들 아니예요. 유태주의자들, 율법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실제적으로 헬레니스트 들이예요. 그 만큼 첨단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문명에 적응하는 자이고, 오히려 그들이 사실상 로마의 문명에 있어서 로마의 어떤 지배에 가장 가까운 세력이었다고 볼 수 있는 거지요. 그러면서도 암암리 하시즘 운동이 늘 있었기 때문에, 저항의 어떤 전통관이 율법에 의해서 여호와의 신앙, 이런 것에 의해서 저항은 늘 객관적으로 가지고 있어요. 마치 오늘날 이라크 상황에 있는 것과 똑 같은 거지요.


그런 자일지라도, 실제적으로 문화에 있어서 가장 첨단을 달리는 자들이 지도자들이예요. 지도자들을 못 믿는 거지요. 실제 갈릴리 지방에 사는 그런 무리들은 우리가 오늘날 같으면 서민층이죠. 매일 이렇게 배를 내서 고기를 잡고, 고기를 먹고, 그런 서민층이예요. 겨우 시장에다 갖다 파는 것, 그런 자들에게 지도자들이라는 것이 상당히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계속 흠잡는 것이 그 지도자들이라는 것을 아는 자들 이예요.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 말씀을 바른 해석을 하고, 산상수훈 같은 것을 죽 해석하시고,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어주고 이렇게 되었을 때는 굉장히 충격적이지요. 더구나 이적도 행하신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 다녔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셨어요. “너희들이 나를 따르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그러니까 전부 도망갔었요.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정도가 제자예요. 그런데 그 제자도 마지막에는 고난을 받았을 때는 어때요. 다 부정을 했어요.


결국 무슨 말이냐고 하면, 성령을 받기 전에는 베드로 같은 고백도 실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 없는 거라는 말이예요. 이것이 이제 성경이 가지고 있는 문맥이라는 말이예요. 사도행전에서 문맥에서 이제 그런 문맥으로 넘어가는 문맥이예요, 그것이 뭐냐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일이 그런 기적 같은 일인데, 그런 일들 이라는 것은 사람의 지혜나 또는 듣는 행위나 듣는 열심, 이것에 있지 않다. 이런 의미에 의해서 확고히 증명된 내용이거든요. 그러나 그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실 때, 아! 그들이 나를 따라 다녀도 실제 그들이 나를 따라 다닌 정신은 말씀보다도 그 듣는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 말씀을 하시는 자가 또 누구를 소개하고 있는 가에 대해서 관심하지 않고, 실제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이것을 예수님이 지적한 거예요. 제자들도 성령을 받은 후에는 그것을 정확히 인식을 해서 기록을 한 거예요. 이것이 성경이 기반이 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라는 말이예요. 또 모든 교회가 이 말씀에 기초해서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할 것이지요. 그런 것이라는 말 이예요.


그러니까 이 정도의 어떤 성격에 있어서, 지금 루터의 성격은 이제 본래의 오직 성경이 갖는 것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구되고 있는 그런 어떤 차원으로 약간 루터가 회복되어 있는데, 그런데 그 시대를 볼 때는 홀로! 혼자! 생명을 걸고 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만 나의 유일한 증인으로 삼고 내가 여기에 서 있다! 굽히지 않겠다! 이렇게 한 사람은 오직 루터 뿐이었다는 말이예요. 이것이 이제 하나님의 은총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목 자체가 베인턴이 영어로 할 때에, Hier stehe ich(나는 여기에 홀로 있다). 라는 말을 써서 그대로 제목을 썼어요. 굉장히 이슈를 내는 부분이예요. 그러나 그 말은 Hier stehe ich(나는 여기에 홀로 있다)라는 말은 제목을 굉장히 잘못 붙였어요.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도울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증인이다”. 이것이 반드시 있어야 하죠, 베인튼은 그것을 놓친 것이예요. 같은 종교개혁을 해석할 때, 베인튼은 그것을 놓친 것이예요. 그러니까 유명한 종교개혁을 해석할 수 있었어도, 루터주의 신학자든지 개혁주의 신앙은 되지 못할 사람이예요. 여기에 차이가 있는 거지요. 루터의 개혁은 여기에 가장 중요한 성격이라고요.


그런데 이런 중요한 종교개혁이 지금 아주 중요한 내용으로 결합이 되었잖아요. 신론이 회복이 되고, 그 다음에 오직 성경이 회복이 되고, 그와 함께 곁들어진 많은 내용이 회복이 될 때, 그러면 모든 것이 회복이 될 수 있어야 되는가?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모든 것이 다 참되게 해석이 되고, 참되게 회복이 되어야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 종합적인 성격이 루터는 선행자로서 그런 발걸음만 옮겼지, 그것이 소위 루터주의가 되는 것은 사실상 루터가 거절했어야 할 것인데, 루터가 너무 참! 힘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정치적인 그런 모든 힘을 같이 걸머지는 그런 형태가 되어서, 결국 루터주의가 된 거예요. 오늘날 국가주의로 발전이 되었어요. 국가교회가 되었어요. 그런데 초기에 이 불완전한 루터의 신학의 내용들이 국가교회가 되었으니까? 어떻게 되었어요. 결국 그때 가지고 있는 한계들이 모두 한계가 되고, 어떤 약점이 된 것이죠. 이런 점에서 이제 같은 비텐베르그 교사로서 같은 동료이지만, 약간의 나이는 많지만 칼 스타트가 그런 비판을 하게 됩니다.


5. 칼스타트는 “1520년의 루터를 존중하였으나 1524년의 루터를 존중할 수 없었는데, 그의 원리로서 교회의 규례들이 구원의 유효한 수단들이 되는 것은 그들 안에 있는 어떤 힘이나 그들의 집례하는 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축복과 그들을 믿음으로 받는 그들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에 있다는 일치된 종교개혁의 원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표현하기를, 비판하기를, 루터의 약점은 “구원이 오직 의식의 수행에 의해서 온다는 사실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는 점에 있었다 하고 같은 동료인 칼스타트가 비판했어요.


칼스타트는 즉 “구원이 오직 의식의 수행에 의해서 온다는 사실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해서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입장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뭐예요. 오직 성경을 강조해서 내적 성령의 강조, 내적 말씀을 찾아 버렸어요. 이것이 이제 오늘날 뱁티스트(제세례파), 혹은 아나뱁티스트(제세례파)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오순절파가 된 거예요. 오순절파의 최초의 기원자는 루터의 모든 것을 이신칭의의 내용을 받기는 받되, 그가 약점이 되고 있는 이 부분, 즉 구원이 오직 의식에 의해서 온다는 사실을 완전하지 극복하지 못한 점을 비판했었다는 점에서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역사 선상에서 루터 위에 루터를 비판하는 자로서 오순절파, 지금 오순절파하고는 다르지요. 루터가 가지고 있는 최소한도로의 기반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것이 되었으면 아주 좋지요. 그런데 약간의 경건주의적 뱁티스트(재세례파)적 경우는 이런 경향이 약간 남아 있지요. 칼스타트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역사적인 깊은 아나벱티스트(재세례파), 또는 오순절파의 사실상의 기원을 찾고 있는데, 그때 비판점은 “루터가 약점이 되어 있는, 그가 의식의 문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 점에 있었어요. 즉 “13세기의 John of Paris의 주장에 따라서 실재설을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빵과 포두주의 요소들 안에 실제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계신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그 후 루터주의는 소위 콘크디안 폼이라 해서, 실제적으로 bodily적으로 성만찬에 떡과 피에 그리스도가 bodily적으로, 육체적으로 실재한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효력이 있는 거예요. 그것이 공재설이예요. 그러니까 카톨릭처럼 실체가, 하나님의 실체, substantia(서브스탄티아, 실체)가 trans, 그냥 그대로 넘어와서, 떡에 그대로 trans가 되어 가지고, 떡을 먹으면 그냥 모든 효과가 다 나타난다는 거지요. 죄가 다 용서받고, 그 다음에 세례를 받은 자는 그 떡을 먹으므로 중생이 되고, 그런 역사로서의 그런 의식이라는 말 이예요. 그러니까 영세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예요. 카톨릭에서는 transsubstantia(화체설, 트란스 서브스탄티아) 개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의식에 참여하므로 중생된 자가 된다는 말이예요. 우리는 중생을 어떻게 합니까? 누구에 의해서 합니까? 떡에 의해서 하지 않고, 성령에 의해서 합니다. 그러나 너무 성령을 강조하면, 오순절 파! 칼스타트하고 일치되요. 그러니까 말씀을 들음으로, 듣게 하시는 능력은 성령이 역사하고, 이렇게 된다고요.


이때 여기가 이 길목이 이제 처음 신교의 루터주의와 만나는 가장 기본적인 선이라는 말이예요. 그러면 칼빈은 무엇이냐? 할 때는 삼위일체 구조로서 넘어가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기독교 강요 전체가 이 점을 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그 초점을! 그러니까 말씀을 들으므로, 그래서 성령이 그러면 준비하시는가? 앞서는가? 그러면 루터까지는 앞선다. 이런 말 이예요. 성령이 준비한다. 성령이 역사한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는 역사라는 말이 예요. 그러면 그리스도의 역사가 있고, 성부의 역사가 있고. 그러면 성부의 역사가 있으면 무슨 시점이 있는가? 아니다. 거기에는 성취가 있고, 적용이 있다. 그 적용은 열매인거죠. 그 열매는 어떤 성격을 가지는가? 그 때는 만세전에 정하신 작정의 내용이 있고, 작정 전에 삼위일체에 대한 내용이 있고, 속성이 있고, 이렇게 되어서 그 의지와, 영원전의 의지와 그 다음에 작정, 그 다음에 역사,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부르심의 내용, 이렇게 그 어떤 내용이 된 것이지요. 그러니 거기에는 신론에 의해서 굉장히 복잡한 준비와 해석, 이런 내용이 거기에 늘 있는 겁니다. 이게 이제, 지금 웨슬레가 주장하는 전하자마자, 지금 당신이, 지금 떠걱 받으면 그러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런 논리하고는 다른 거예요. 즉 신론이 다시 발견되는데, 즉 “Hier stehe ich(나는 여기에 홀로 있다)” 했을 때, 그 신론이 분명히 루터에게는 있는데, 루터의 그 신론을 그대로 받되, 오직 하나님만 믿되, 그 하나님만 유일한 증거자 이고, 하나님의 말씀만 듣는 자로 있고, 하나님 말씀 외에 생각하고 말하지 않는 자로 있으면서, 그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notita(지식) 가 무엇인가? 이것이 루터로부터 독립되어서 칼빈이 지금 우리에게 강조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니 칼쉬타드하고 구별되죠.


특별히 여기를 보면 칼스타트 원리에 관련해서 이런 내용이 있는데, 이것이 개혁주의하고 구별되는 점도 바로 있게 되는데, 여기에 루터의 경우에는 “연약한 자를 위해서 교회 안에 상들의 현존에 대해서 관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배자가 그 상들을 제거하기를 두려워했어요” 그러니까 아까 성만찬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루터는 아! 아직 교회 안에 연약한 자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교육적 의미에서, 연약한 자를 위해서 상을 놓아두어야 한다. 그래서 버리지 못했어요. 우리는 십계명을 강조해서, 상을 부수는 그룹에 속해요. 그 점에서 칼스타트하고 동일해요. 십계명 해설에서 상을 부수었어요. 그러나 루터주의는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상을 놓아두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면에서 칼빈주의로 아주 강하게, 예! 칼빈을 보면 얼굴부터 이상하잖아요. 옷도 단순하고, 의자도! 얼마나 고집스러운지, 의자가! 그의 생애에서 남에게 한 번 빌리고는 죽을 때 다시 돌려준 사람이예요. 가구가 없었고, 겨우 의자 하나 있는데, 그 의자가 있어도, 그 의자는 빌려가지고, 자기가 죽을 때, 반드시 돌려준 사람이예요. 그러니 교회 안에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없습니다. 그래서 유럽이나 모든 개혁교회에서 특징인 것은 첫째 장식이 아무것도 없어요. 유럽에 가면, 교회가 있다고 그러면, 십자가상도 있는데, 십자가 상도 없는 것이 개혁교회이고, 십자가 위에 닭이 상으로 있어요. 그것이 루터주의 특징이예요. 꼬끼오 하고 깨우는 거예요. 베드로를 깨우는 거예요. 베드로는 깨우듯이 모든 교회 앞에 꼬기오가 있는 거거든요. 한국에는 그것이 없지만, 유럽에서 꼬끼오가 늘 있어요. 그런데 그런 꼬끼오든지 아무것도 없어요. 아! 장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덜렁 강대상이 높이 올라가요. 말씀을 전하는 자만 같이 예배하다가 성경을 들고 단 위에 올라가서 말씀을 전파하고 다시 내려가요. 약간의 evangelish Reformierte kirch 이런 혼합! 18세기 이후에서 약간 개혁주의를 포기하고, 루터주의가 주장한 이런 세례의 당위성을 강조하는데 동의하고, 콘프로 마이스?된 그런 1811년 이후에 이제 합쳐진 소위 evangelish Reformierte kirch 가 독일에 지금 현재 남아있는 개혁교회 거든요. evangelish는 따로 있고, 소위 복음 교회라! 이렇게 루터교회를 말하거든요. 그것이 복음주의입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다(evangelish) 이름만 붙이고 Reformierte kirch라고 붙인 곳에는 약간의 강대상 위에, 같은 설교 단상 약간 위에, 성경이 이렇게, 성경만 유일하게 이렇게 딱 상으로 있어요. 그것이 아주 독특한 것 외에는 뭐! Reformierte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 만큼 뭐예요. 모든 상을 없애 버렸어요.


그래서 루터주의는 특징이 언제나 의식을 하기 때문에, 뭐예요. 여기에 앞에 상이 있지요. 개혁교회는 이 상을 없애는 역사에서 얼마나 큰 역사예요. 존 녹스의 역사에 있어서, 그래서 나중에는 이 의식을 다 부수었잖아요. 개혁교회로 있을 때 마다, 이 의식을 치우는 작업, 이 작업이 결국 그것이 나중에 결국 이 저항세력이 크니까? 이것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저항세력이 크니까? 나중에 결국 의자를 부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것이 폭력이 된 거예요. 그래서 특히 이제 스코틀란드 역사에서 그것이 폭력으로 발전이 되었어요. 폭력으로 발전되어 버렸어요. 저항할 수 있는 성격이 폭력까지 허락이 되었는데, 그러나 칼빈은 폭력을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칼을 들거나 그런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마지막 생애 끝까지 거절한 거예요. 그것이 이제 무엇이 수단인가?이예요. 전쟁할 때, 그리스도인이 유일하게 수단으로 삼는 전쟁기구라는 것은, 싸우는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없다. 그 다음에 유일하게 저항의 방식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외에는 없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그 다음에는 그냥 순교예요. 듣지 못하게 했을 때에 마지막까지 견디다가 그걸로 인해 죽는 것이 순교예요. 개혁교회의 순교는! 개혁교회 순교는 듣는 일이예요. 듣는 일! 그래서 항상 예배드리러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은, 최소한대로 개혁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내용입니다.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 점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이제 칼스타트가 비판한 점에 있어서 문제가 되어 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루터주의는 이 상을 결국 거절하지 못해서, 그 뿌리가 결국 남아 있게 된 것이죠. 그래서 대 부분 교회를 다닐 때, 루터주의의 똑 같은 뿌리는 교회에 가서, 벌써 대문에 와서 무릎을 딱 꿇고, 십자가상을 탁 보고 있으면, 그것은 뭐! 카톨릭 반! 루터주의 반! 이런 다는 거예요. 그리고 카톨릭은 반드시 들어오기 전에 십자가 상에게 인사를 하죠. 기도할 때, 상을 보고 기도합니다. 이점이 이제 개혁교회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예요. 우리는 그런 것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복 문제도 늘 문제가 되었고, 설교할 때, 꼭 예복을 입어야 한다. 뭐! 특별한 목회자는 입어야 한다. 또 성만찬 할 때, 예복을 입어야 한다. 이렇게 되는데, 우리는 예복을 거절하는 거지요. 그것이 이제 칼빈의 그런 엄밀한 선을 따라서 결국 퓨리탄들의 정신이지요. 그러니까 엘리자베스 때 저항세력으로서, 아직 이와 같이 쯔빙글리 라인에서, 루터의 라인에서, 개혁된 내용으로 아직 머물러 있는 상태로부터 좀 더 칼빈에게 가깝게 개혁하려는 자들, 그들이 퓨리탄들이예요. 엘리자베스 시대 때 퓨리탄들, 이게 이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소위 유명한 우리 장로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퓨리탄 들인데, 마침 이 정신이 똑 같은, 그 소위 국가에 그렇게 적응하지 못하는 non-conformity(청교도들은 일반적으로 conformity와 non-conformity로 구별된다. conformity 는 쉽게 말해서 국가 교회인 성공회에 적응하는 자들이고, non-conformity는 적응하지 못한 자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구별이고 퓨리탄 들의 순수성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들이 실제적으로 칼스타트하고 같은 정신을 가진 자들도 역시 같이 저항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자들도 퓨리탄에 속해요. 이름은 퓨리탄이예요. 같은 퓨리탄일지라도, 장로교 퓨리탄하고, 아나뱁스트, 기타 sect적인 퓨리탄하고 좀 달라요. 그러나 엘리자베스 때는 같이 싸웠어요. 같이 문제가 되었어요. 그런데 이제 칼빈 때도, 칼빈 생애를 보게 되면 알게 되지만, 그런 오해들이 있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루터와 같은 그런 정신에 있어서 오직 성경,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먹고 사는 자로서 있어서 저항하는 그런 무리로서, 이렇게 순수하게 있는 형태와는 달리, 그와 같이 상을 부수고, 이렇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이런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 운동과 혼동이 되어 가지고, 결국 그런 것으로 인하여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피해를 당하는 이런 현상과 관련해서, 칼빈이 펜을 들게 되요. 글을 써야 된다. 이 요청이 된 것이 지금 기독교 강요이다. 그러니까 이 상황이 잘 문맥을 알고, 칼빈의 신학적 특성을 찾아야 될 것이죠.


그래서 여기에 이제 칼스타트의 비판 내용에서 중요한 점이 있다면 하나의 예를 든다면, 여러분들이 교재 10페이지를 보시면, 따로 해석의 면에서, “십계명에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오직 우상들에게만 관련된 것이요 나의 방에 내가 숭배하지 않는 십자가를 잘 걸었다고 해서, 나에게 무슨 해가 될 수 있는가?” 이게 루터의 입장이예요. 그러나 칼스타트는 “방이나 길에서 어떤 상에 모자를 벗는 일은 우상숭배이다” 이렇게 해서 아주 강하게 십계명을 강조하는 그런 의미예요. 이것이 이제 우리하고 약간 일치되는 점이죠. 십계명 강조, 그런데 이제 “방에나 길에서 어떤 상에 모자를 벗는 일은 우상숭배이다” 이렇다 보니까, 이런 칼스타트가 가지고 있는 입장이 문자적으로 보면, 오늘날 보면 어때요. 율법주의! 아니고 또 오늘날 많은 sect가 있잖아요. 안식교이죠. 여호와의 증인! 율법주의이죠. 그러나 이 칼스타트하고 달라요. 칼스타트는 원래는 오늘날과 같으면 오순절파가 이래야 될 것인데, 그 율법주의는 이제 좀 달라여. 여호와의 증인이니까, 예수 그리스도도 인정하지 않는 그런 무리들이 아니예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무리들은 당연히 율법주의 이런 구약만 믿는 그런 율법주의 성격을 갖게 되지만은 칼스타트의 그런 정신의, 참 신교의 정신에서 양분된 그런 내용으로서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 운동으로 발전된, 그런 내용들이 결국 농민전쟁으로 발전이 되고, 그런 건전한 의미에서의 스위스나 기타 여러 지방에서 흩어져서, 이렇게 결국 건전한 칼빈주의자들과 같이 섞이게 되는 그런 인물 가운데서, 이런 칼스타트의 주장과 같이 “방에나 길에서 어떤 상에 모자를 벗는 일은 우상숭배이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 그런 내용으로 이렇게, 같은 종교개혁적 사회에서 루터의 동료들 가운데서 구별이 되어서 그것이 이제 점점점 다른 길로서 큰 세력이 되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종교개혁 시대의 뿌리, 이런 내용들이 나중에 이제 바빙크도 분석을 하지만은 결국 후대에 많은 신학적 발전에 있어서 어떤 부정적 성격, 몰락의 성격, 이런 것들이 이미 종교개혁 시대에 원리로 내재되어 있다. 이런 말은 그때 개혁의 내용들이 이와 같이 부정적인 요소들이 많이 다 섞여 있어서, 그것이 후대에는 결국 씨앗이 되어서, 결국 건전한 성경의 바른 내용들이 결국 심어지지 못하고, 다른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게 된 그런 내용이 결국 후대에 와서 17세기 이후에는 점점 점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17세기 이후에는 개혁주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평을 할 만큼 그런 혼합주의 원리들이 이미 내재적으로 이렇게 종교개혁 시대에 존재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종교개혁 시대에 바르게 개혁정신과 그 내용을 분석하지 않으면, 결국 이런 현대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시대적인 산물들, 이런 산물들에 대해서 아주 건전하게 평가하게 될 그런 위험이 있게 되지요. 그래서 종교개혁은 정확하게 해석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해석하는, 그래서 늘 강조했죠.


칼빈을 정확하게 해석해야 되고, 그 다음에 칼빈을 해석하더라도, 반드시 이런 문맥! 여기에서(17세기 개혁신학) 칼빈이 발견되고, 그 다음에 칼빈을 통해서 어거스틴이 발견이 되고, 그 다음에 성경이 발견이 될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개혁주의의 기본, 어떤 정신이나 이런 내용들이 발견이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거지요. 다음에 렘버트, 그 말북의 종교개혁자들과 그 다음에 칼빈과 직접 연결이 되는 이런 쯔빙글리, 스위스 종교개혁자들과 블란서 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 칼빈이 탄생되기까지의 독특한 내용들, 칼빈이 신학적 내용으로서 어떻게 notita가 강조되게 되었는가? 이런 것을 배경으로 다음에는 설명을 하고, 점점 깊은 내용을 다룰 수 있으면 하면 되겠습니다. .. 교회를 바르게 세우려면 바르게 기본을 가진 그런 신학의 내용으로 출발을 하고, 성경도 바르게 해석을 하려면, 그런 바른 신학의 입장에서 해석이 되어야 그때, 정말 바른 신학이 거기에 심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도 변하지 않아요. 한참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다양한 물결 속에 있을 때, 혼합주의가 되어 있는 것은 그 만큼 교회가, 목회자들이 바르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사회나 교회나 뭐! 윤리적으로나 모든 내용에 있어서 기본 정신이나 뭐 똑 같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교회에 나가나 집에서 노나 같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누가 교회에 가나요. 안 가지요. 교회 오는 사람도 놀러오고, 또 교회와도 놀러가고, 여기 와서 하더라도 놀기 위해서 하고, 그것이 뭐 교회가 되나요? 그렇게 해서 선교해 보았자! 나쁜 신학만 선교지에 심어서, 그 선교지는 불행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괜히 자기 전통이나 삼고 이렇게 했으면 모르겠는데, 교회가 들어와 가지고 참!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런 내용으로 이렇게 국민정신이나 이렇게 참! 파괴시키는 그런 선교가 될 수 있어요. 조심해야 되지요.


자,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리옵나이다. 주께서 거룩한 내용들을 역사 속에 심으셔서, 오랜 역사를 이루어서 오늘에까지 이르게 하여 주시옵고, 그 유산을 저희들이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고, 또한 저희들이 귀한 말씀에 근거해서, 선행자들이 했던 그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의 내용과 싸웠던 내용을 다시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은혜를 받게 하여 주셨사오니,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진 줄 알고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생을 축복해 주시오소서! 감사하옵고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출처: 개혁주의성경연구소 FB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