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성신론과
신령하고 자유스럽고 자연스러운 신자의 삶 1
김헌수 교수(IRC신학교 교장)
흔히들 "개혁교회"는 성신론이 약하다고 하고, "신앙고백이나 요리문답"은 성경 말씀이 갖는 활력을 체계 속에 가둔다고 말한다. 만일 두 말이 사실이라면 "개혁교회"의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것은 교회에서 생명력을 없애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평가도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해설을 쓴 하이데만(E. P. Heideman)은 53문을 해설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예를 들자면, 이 요리문답에서는 성신과 교회에 대한 기독교의 교훈을 가장 간결한 개요로 제시할 뿐이다. …… 성신과 교회에 대하여서 요리문답이 다룬 것이 오늘날에는 크게 부족하다. 복음 전파와 선교에 대한 성경적 개념이 성신의 사역과 교회의 삶에서 근본적인 것인데, 그것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성신에 대한 문답이 129문답 가운데서 한 문답만 나오기 때문에 외견상으로는 하이데만의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성신론을 가장 간결하게 개요만 제시하고, 따라서 교회의 생명력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평가는 너무 쉽게 내린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성신에 대한 언급은 53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문답에 36번 나오고, 52주일 가운데서 22주일, 129문답 가운데서 31문답에 두루 퍼져 있다. 또한 요리문답의 중요한 구조적인 전환점에서, 그리고 근본적인 내용을 고백할 때에는 항상 성신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자기를 나타내지 아니하시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신의 사역을 그러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요 16:13-14).
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구조에서 살펴본 성신에 대한 언급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주제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 안에 있는 사람이 얻는 위로"이다(1문). 1문에서 이야기하는 위로는 개인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깨우쳐 주시는 분은 바로 보혜사 성신이시다.2) 성신께서 "그리스도와 그의 은덕에 참여하게 하며 나를 위로"(53문)하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2문에서는 죄와 비참함, 우리의 구속, 우리의 감사함을 요리문답의 세 부분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세 부분을 다룰 때에 성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핵심을 이룬다.3) 첫째, 죄와 비참함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성신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참으로 …… 선은 조금도 행할 수 없으며 온갖 악만 행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고백한다(8문). 하나님의 성신으로 거듭나야 죄와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쳤다.
둘째, 우리의 구속을 가르칠 때에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그의 모든 은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는다고 고백하고(20문), 그 참된 믿음은 "성신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라고 밝힌다(21문). 참된 믿음의 내용으로 사도신경을 제시하고 사도신경을 삼위일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성신 하나님을 고백한다(24, 25문). 우리의 요리문답에서는 사도신경에 이어서 말씀과 성례에 대하여서 가르치는데, 이 부분에서 성신의 사역을 강조한다. 65문에서 성신께서 "거룩한 복음의 강설로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며 성례의 시행으로 믿음을 굳세게 하십니다" 하고 고백하고, 이어서 여러 문답에서 성신의 사역을 언급한다(67, 69, 70-74, 76, 79, 80문).
셋째, 우리의 감사와 선행에 대한 3부는 86문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신자가 선행을 해야 할 이유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성신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십계명에 대한 마지막 문답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더욱더 변화되기를 끊임없이 노력하고 하나님께 성신의 은혜를 구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115문). 그리고 기도에 대하여서 가르치기 시작하는 116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와 성신을 오직 탄식하는 마음으로 쉬지 않고 구하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에게만 주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16문). 우리는 3부의 중요한 부분에서 성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문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약하면, 성신 하나님께 대한 교훈은 53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요리문답의 주제와 구조에 핵심적으로 박혀 있다.4)
2. 성신 하나님의 위격과 사역
1) 성신 하나님의 위격
성신 하나님께 대한 고백은 삼위일체에 대한 24-25문과 53문에 나온다. 24문에서는 "성부 하나님과 "우리"의 창조, 성자 하나님과 "우리"의 구속, 성신 하나님과 "우리"의 성화"라고 하여서 삼위의 위격을 "우리를 위한 사역"과 붙여서 고백한다. 25문에서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의 말씀에서 그렇게 계시하셨기 때문"이라고 하고, 이어서 "이 구별된 삼위는 한 분이시요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53문에서는 성신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함께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는 성신 하나님에 대하여 고대 교회에서부터 고백한 내용을 자기의 신앙으로 표명하는 것이다.
2) 성신 하나님의 사역
53문에서는 또한 성신 하나님께서 참된 믿음을 일으키고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며, 위로하고, 영원히 함께 거한다고 고백한다.
첫째, 53문에서 성신의 사역을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는 것으로 고백하였는데, 이것은 21문에서 고백하는 것과 같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이 진리라고 여기는 확실한 지식이며, 동시에 성신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 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이고,5) “죄 사함과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그 모든 은덕으로 받는다. 그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신께서 우리의 마음에 일으키시는 것이다(65문). 그 믿음을 일으켜서 주님의 백성을 자기에게로 이끄시려고 성자께서는 “그의 말씀과 성신으로” 영생을 위하여 선택하신 교회를 불러 모으시고 보호하고 보존하시는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계시는 것이다(54문).
둘째, 성신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는데, 이 위로는 개인의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죄와 비참함 가운데 있는 사람을 복음으로 구원하는 것을 뜻한다. 8문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신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참으로……선은 조금도 행할 수 없으며 온갖 악만 행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죄로 말미암아 그처럼 부패한 우리가 성신 하나님의 거듭나게 하는 은혜로 참된 위로를 얻는다. 17세기 이후에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이 지배적이 되면서 중생도 회심의 첫 단계로 이해되었지만, 16세기에는 중생을 평생의 과정으로 이해하였다.6) 요리문답에서 이야기하는 위로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모든 시간을 통하여서 효력이 있었던 것처럼, 성신께서는 거듭남과 회개의 은혜를 계속하여 내려 주신다.
셋째, 성신께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성신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거하실 뿐 아니라 교우들 각자에게도 거하신다. 따라서 교회와 신자는 각각 성신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불린다(고전 3:16; 고전 6:19). 성신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이 세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신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몸을 입고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얼굴과 얼굴로 대하여 뵐 때까지 계속되고, 그 단계를 넘어 영원한 세계에까지 계속될 것이다.
53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성신에 대한 언급을 도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7)
이 도표를 보면 53문에서 고백하는 내용이 한 문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요리문답 전체에 두루 퍼져 있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신에 대하여서는 한 문답에서 제시하지만, 성신께서는 실질적으로 그리스도와 신자를 연합시키는 일을 하신다. 이것은 성신의 사역, 즉 관계를 형성해 가는 성신의 내밀한 사역을 잘 반영한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3. 기독론과 성신론
53문에서는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것이 성신의 주된 사역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성신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긴밀히 연결되고, 그리스도의 은덕을 신자들에게 적용하여서 "연합"하게 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부분에서 성신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는 그리스도의 기름 부음(31문), 동정녀 탄생(35문), 승천과 천상의 통치(47, 49, 51문)를 성신의 사역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 문답을 성신론적으로 찬찬히 읽을 필요가 있다.
35문에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성신으로 된 일임을 지적한다. 예수님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며 여전히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으로서 성신의 사역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참된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하고 고백한다. 예수님께서는 참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동시에 참인간이고 의로우신 그 중보자가 되려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다(15-18문답). 사람으로 태어나면서도 동시에 죄가 없으신 분으로 태어나시려면 성신의 역사하심이 필요하였다. 죄가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다.8)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말한 대로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음"으로써(눅 1:35) 예수님께서 죄가 없이 참된 다윗의 자손이 되셨다. 태초에 혼돈과 어둠의 세상을 덮으신 여호와의 신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아가실 때에 마리아를 덮음으로써 새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참조. 창 1:2).
31주일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기름 부음 받으신 것을 고백한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후에 성신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구약의 직분자는 성신을 예표하는 기름으로 부음을 받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기름의 실체인 성신으로 부음을 받았다.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성신을 한량없이 받았기 때문에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신다(요 3:34).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 마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신을 통하여 효력 있게 사역을 하신다.9) 그리스도의 제사가 구약의 제사와 다르고 현재에도 우리에게 효력을 미치는 것은 ‘성신의 효력 있는 내적 역사하심’ 때문이다.10) 그리스도의 왕직도 말씀과 성신으로 수행되는데, 성신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분의 통치에 순종하게 하신다.11) 그리스도께서 성신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중보적인 사역을 하신다는 사실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의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게 하고(32문), 또한 123문처럼 “주님의 말씀과 성신으로 우리를 통치하시사 우리가 점점 더 주님께 순종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를 드리게 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예수님의 승천과 하나님 오른편에 앉은 사실을 고백하면서 성신의 사역을 말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을 가르친다(47, 49, 51문). “그의 인성으로는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으나 그의 신성과 위엄과 은혜와 성신으로는 잠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하는 47문의 고백에는 루터교회의 공재설(共在說)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루터는 속성의 교류를 주장하면서 신성이 있는 곳마다 인성도 있다고 하였지만, 칼빈의 견해를 따르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저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명확히 구분하였다.12) 그런데 요리문답의 저자들은 신성과 인성에 대한 문제를 사변적인 주제로 다룬 것이 아니라 ‘유익’의 관점에서 목회적으로 가르쳤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하늘에 오르셨다는 사실은 첫째, 우리의 대언자로서 기도하는 것, 둘째, 우리의 몸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게 하신 것, 셋째, 짝이 되는 보증으로 성신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가 위의 것을 구하고 땅의 것을 구하지 않게 된 것과 같은 유익을 준다(49문).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신을 주셔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은사들을 누리게 하신다(51문).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신으로 주님의 백성과 교제를 나누고 원수로부터 보호하신다는 것이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앞으로 살펴볼 성찬론과 연결된다.
클락(R. Scott Clark)은 16세기 언약 신학의 발전을 다루면서 이 점을 잘 표현하였다.
그러나 올레비아누스의 복음은 십자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개혁된 기독론은 빌립보서 2:9-11에서 승천을 다루는 데에서 더 분명해진다. 하나님 오른편에 오르실 때에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서 자기를 비울 때에 받으신 그 인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높이 되신 대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행하실 때에도 인성을 지니셨다 …… 그의 삼위일체적 신학과 (본체론적이 아니라) 구속 역사적인 범주의 사용으로 말미암아, 승천과 성신의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지금까지 가능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택자에게 가까이 오셨다.13)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과 천상 사역은 성신의 사역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처음부터 성신은 그리스도를 위하여서 사역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은덕을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달리 표현하면, 그리스도는 성신을 통하여서 우리를 자기에게 연합시키시고 성신은 그리스도의 은덕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주신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성신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칼빈의 영향이다. 『기독교 강요』 3권 1장의 제목처럼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한 것들은 성신의 신비한 사역에 의해서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 파브르(J. Faber) 교수의 지적처럼, "그리스도는 성신을 통하여 일하시고, 성신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신다."14) <계속>
* 이 글은 제2회 독립개혁장로회 목회자 연수회(2010년 8월 24-26일)에서 발표한 것이다.
각 주
1) Eugene P. Heideman, "God the Holy Spirit," in Guilt, Grace and Gratitude: A Commentary on the Heidelberg Catechism, ed. D. J. Bruggink (The Half Moon Press, 1963), 112쪽.
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위로"가 나오는 문답은 1, 2, 44, 52, 53, 57, 58문이다. 그 내용을 보면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관련된 것이다. 음부의 고통(44문), 심판(52문), 육신의 부활(53문), 영원한 생명(58문)에서 신자는 위로를 얻는데, 그 내용을 깨우쳐 주시는 분이 바로 보혜사[위로자] 성신 하나님이다(53문).
3) L. Bierma는 성신의 사역으로 죄와 비참함, 구속, 감사함을 지적한 것은 칼빈의 후예인 베자의 "두 번째 간략한 신앙고백"(Altera brevis fidei confessio, 1559)과 일치하고, 또한 16세기 중반 이후의 대체적 경향이었음을 지적한다. "The Sources and Theological Orientation of the Heidelberg Catechism," in An Introduction to the Heidelberg Catechism (Baker Academics, 2005), 83-85쪽.
4) 성신에 대한 언급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구조와 연결된 것을 잘 지적한 글은, Daniel R. Hyde, "The Holy Spirit in the Heidelberg Catechism," Mid-America Journal of Theology 17 (2006), 211-237쪽.
5) 믿음을 ‘지식’과 ‘신뢰’로 표현한 것은 칼빈의 영향이다. 그는 『기독교 강요』 3:2:7에서 믿음을 삼위일체적으로 이렇게 정의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여 베푸신 자비에 관한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진 진리에 근거한 것이며, 성신을 통하여 우리 생각에 계시되고 우리 마음에 인 쳐졌다.”
6) 중생을 평생의 과정으로 이해한 좋은 예가 칼빈이다. 『기독교 강요』 3:3:9에서 이렇게 밝힌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얻는 이 중생으로 말미암아, 첫 사람 아담을 통해서 타락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의를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주께서는 그가 양자로 삼아 생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신 모든 자들을 이렇게 온전히 회복시키기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회복은 한 순간에나 하루에, 혹은 일 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강요』 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92쪽.
7) Fred H. Klooster, Our only Comfort (Faith Alive Christian Resources, 2001), 674쪽.
8) C. Olevianus, An Exposition of the Apostles" Creed, trans. by Lyle D. Bierma (Reformation Heritage Book, 2009), pp. 67-68쪽.
9)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6), 303쪽.
10)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305쪽.
11) C. Olevianus, A Firm Foundation, trans. by Lyle D. Bierma (Baker, 1995), 37쪽.
12)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405-23; C. Olevianus, A Firm Foundation, 75-79쪽.
13) R. Scott Clark, Caspar Olevian and the Substance of the Covenant (Rutherford House, 2005), 111-112쪽.
14) 파브르, 『성신의 신학자, 존 칼빈』 (성약, 2004), 56쪽.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성신론과
신령하고 자유스럽고 자연스러운 신자의 삶 2
김헌수 교수(IRC신학교, 구약학)
4. 성신의 사역과 교회의 강설과 성례
사도신경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신 하나님의 사역을 중심으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다.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르면, 교회와 죄사함과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은 모두 성신 하나님의 사역에 해당한다. 우리의 요리문답은 사도신경의 삼위일체적인 구조를 잘 살려서 교회론과 성례론을 바르게 해명하였다.
1) 교회의 강설과 성신의 사역
54문에서는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고백하면서 성신의 사역을 말한다.1) 53문에서 성신께서 “나에게도 주어져서” 하고 고백한 것이나 21문에서 참된 믿음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에게도 주심을 믿는 것”이라고 고백한 것은 교회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54문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하여서 고백하는데, 높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말씀과 성신으로 자신을 위하여 불러 모으고 보호하고 보존하심”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믿음은 성신께서 주시는 것이고 “내 마음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이다.2) 그런데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하면 믿음을 주관주의적으로 이해하게 된다.3) 그러나 마음의 문제를 이야기한다고 하여서 곧 신비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요리문답에서는 “말씀과 성신” 혹은 “성신과 말씀”을 붙여서 말하고(31, 54, 123문), 그 말씀도 “거룩한 복음의 강설”이라고 분명히 밝힌다(65문). 경전의 책이 아니라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 곧 “말씀에 대한 살아 있는 강설”로 재창조의 일이 일어나서 믿음이 생긴다고 확신 있게 고백한다(21, 65, 98문).
2) 성례와 성신의 사역
65문은 거룩한 복음의 강설로 믿음이 일으켜진다고 고백하고 이어서 “성례의 시행으로 믿음을 굳세게 합니다” 하고 말한다. 따라서 거룩한 복음을 온전히 선포하고 성경의 교훈대로 성례를 시행하면 그 교회 안에는 성신께서 주시는 생명력이 넘칠 것이다.
세례에 관한 문답에서 성신에 대한 고백이 여섯 번 나온다. 그중에 다섯 번은 ‘그리스도의 피와 성신’라는 표현으로 나온다(69-73문답). 이러한 표현은 세례를 시행하면 자동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성신께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효를 적용해야 함을 강조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로마 교회의 자동주의적 성례관이 깊이 뿌리를 내렸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적용하는 성신의 능력을 바르게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시대의 그릇된 관행을 시정하려고 만든 조항이 아니라 성경의 교훈을 복창하는 것이다. 71문에서는 그리스도의 피와 성신으로 씻어 주신다는 성경 구절을 네 군데 인용하고(마 28:19; 막 16:16; 딛 3:5; 행 22:16), 성신을 의지하면서 세례를 베풀도록 인도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는 로마 교회처럼 형식적으로 세례를 줄 것이 아니라 성신의 은혜를 구하면서 시행하여 믿음이 굳건히 설 것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언약과 교회를 경시하는 재세례파의 오류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74문에서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어야 할 이유를 말하는데, 그 근거로 그들도 “하나님의 언약과 교회에 속하였고, 또한 어른들 못지않게 유아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속죄와 믿음을 일으키시는 성신이 약속되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의 언약을 그 근거로 밝히면서도 동시에 믿음을 일으키는 성신을 강조하여서 유아 세례의 실질을 잘 잡고서 시행하도록 하였다.
성신 하나님의 사역을 세례에서 밝히 강조하는 것은 성경의 교훈을 복창하는 요리문답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예이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고 하여서, 한 성신으로 세례를 받고 한 몸으로 연합된 사실을 분명히 가르쳤다. 그리고 요리문답은 세례에서 나타나는 성신의 사역을 명확한 말로 고백하였다.
성신께서 그리스도의 공효를 우리에게 적용하여 주신다는 사실이 팔츠의 유아 세례 예식문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다테인이 네덜란드어로 번역하고 도르트 대회에서 채택한 유아 세례 예식문은 그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신 하나님께서는 이 성례로써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지체(肢體)로 만들어 주실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십니다. 성신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것을 실제로 누리게 하셔서 죄 사함을 얻고 매일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택함 받은 무리 가운데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성찬에 대한 문답에서는 성신에 대한 언급이 세 번 나온다. 성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찬의 상에 어떻게 임재하는가에 대한 전문적인 신학 용어들 - 화체설, 공재설, 기념설, 영적 임재설 등 - 을 사용하는 대신에 성찬의 실질을 가르치면서 성신의 사역을 언급한다. 성신의 사역을 언급하는 부분들은 모두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지적한다.
“우리도 한 성신에 의해서 영원히 살고 다스림을 받습니다”(76문)
“성신의 역사에 의해 우리가 그의 참된 몸과 피에 참여합니다”(79문)
“성신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으며”(80문)
우리는 이 부분에서 논쟁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 성찬에 참여하여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츠빙글리가 주장한 것처럼, 단순히 기념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성신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서 그의 구속의 공효를 실제로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로마 교회나 루터 교회처럼 떡이나 포도주 자체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뀌는 것이 아니고, “비록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살 중의 살이요 그의 뼈 중의 뼈이며 …… 우리도 한 성신에 의해서 영원히 살고 다스림을 받습니다” (76문)하고 고백한다. 이 고백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지금 떡과 포도주에 있다는 로마 교회와 루터 교회에 대한 변증이 담겨 있다. “그의 참된 몸은 지금 하늘에 있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경배를” 받으신다. 따라서 우리는 성신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야 한다.
가톨릭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과 루터 교회의 공재설(consubstantiation)은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몸을 지상으로 끌어내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반면, 개혁 교회에서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예수님께서 계신 하늘로 끌어 올린다. 그래서 개혁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교회의 성찬에서 사용된 성찬 용어 "마음을 들어 올리라"(sursum corda)를 핵심적인 위치에 놓았다. 우리의 관심과 주의를 눈앞에 있는 떡과 포도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신 하나님의 역사로 우리의 영혼이 들어 올려져서 하늘에 계신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 칼빈의 표현대로, 우리의 내적 선생이신 성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에만 성례는 효과가 있고, "놀라운 교환"이 일어나는 것이다.4)
성찬에 대한 견해는 단순히 그 예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앙과 신학의 방향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다. 로마 교회나 루터 교회와 같은 성찬관을 가지면 자연히 그리스도의 몸이 임재한다고 생각하는 성찬의 요소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고, 따라서 그 예식을 화려하고 장엄하게 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에 계시고 성신으로 그분과 연합되었다고 가르치면, 신앙의 방향이 하늘을 향하게 되고 신령한 성격을 나타내는 데로 향하게 될 것이다. 성례는 복음 약속의 눈에 보이는 표와 인인데, 달리 표현하면 신앙과 신학의 지향점을 눈에 보이게 나타내는 역할도 한다.
성신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강조한 요리문답의 내용은 세례 예식문에서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여 주신 성찬에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신뢰가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린 완전한 희생 제사로 향하도록 이끌어 주심을 배웁니다.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제사가 우리가 얻는 구원의 유일한 근거입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우리의 주리고 목마른 영혼을 위하여 영생의 참된 음식과 음료가 되셨습니다. 자기가 죽으심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주림과 비참함의 원인인 죄를 없이 하여 주셨고 우리를 위하여 ‘살려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신을 아버지께 받아 부어 주셨고, 성신은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그분의 몸이 되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는 그 성신으로 그리스도와의 참된 교제 가운데 살고 또한 그분의 모든 부요에, 곧 영생과 의와 영광에 참여합니다.
또한 동일한 성신으로 우리는 한 몸의 지체들로서 참된 형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7) 하고 말합니다. 참신앙으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우리 모두는 함께 한 몸을 이룹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먼저 이처럼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으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여야 하며, 말로만이 아니고 또한 우리의 행동으로도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성찬 예식문의 이 부분을 보면, 우리의 믿음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린 완전한 희생 제사로 향하게 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살려 주는 영’이 되셨고, 성신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서 참된 교제를 나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찬에 참여하면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교제한다.
동시에 동일한 성신으로 한 몸에 참여하는 다른 형제들을 사랑하는 데에 이른다.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는 신비한 교제는 옆에 있는 형제를 사랑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이것이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사람이 나타내야 할 덕목이다. 55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사람은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에 참여"할 뿐 아니라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가 있다고 고백한다. 성찬에서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사람은 한 떡에 참여하여서 다른 교우와도 진정한 교제를 나누고, 함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간다.
5. 우리의 감사와 성신 - 율법과 기도
1) 계명과 성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십계명을 ‘의무’에 포함시키지 않고 ‘감사의 삶’에 넣어서 가르친다. 32주일의 첫 문답인 86문에서 신자의 선행을 “그의 성신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성신’과 ‘하나님의 형상’이 나오고, 감사하면서 십계명을 지키는 데에서 성신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새롭게 되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게 된다고 하였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 가는 일이다.
물론 ‘감사의 삶’에서 십계명을 가르친다고 하여서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십계명을 다 가르친 후에 115문에서는 “평생 동안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더욱더 알게 되고,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사죄와 의로움을 더욱더 간절히 추구하도록” 하려고 십계명을 그렇게 엄격하게 설교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목적지인 완전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더욱더 변화되기를 끊임없이 노력하고 하나님께 성신의 은혜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하고 고백한다. 86문에서 ‘성신과 하나님의 형상’을 말하였는데, 십계명의 마지막 문답인 115문에서도 ‘하나님의 형상’과 ‘성신의 은혜’를 언급한다. 처음과 마지막에서 ‘성신과 하나님의 형상’을 이야기하고 그 사이에서 십계명을 해설하는 것은 십계명을 성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과 관련하여서 이해하도록 인도한다. 곧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성신을 의지하여서 언약의 말씀인 십계명을 지켜야 하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성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더욱더 변화된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율법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차가운 율법주의와 다르고 그에 대한 반동인 반법주의와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성신을 의지하여서 율법을 지키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나아갈 때에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간다(고후 3:18). 성신을 의지하는 것은 이상한 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인간, 곧 하나님의 형상을 더 잘 나타내는 인간이 되는 것임을 여기에서 배울 수 있다.
2) 기도와 성신
기도에 대한 첫 문답인 116문에서도 ‘은혜와 성신’을 가르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와 성신을 오직 탄식하는 마음으로 쉬지 않고 구하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에게만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 성신의 은혜를 구하는 것은, 115문에서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데에 매우 필요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신자에게 성신을 주셨지만 무한하신 성신과 그분의 은혜는 계속해서 구하는 사람에게만 주신다. 이미 성신께서 우리 마음에 굳은 신뢰를 주셨지만, 그것은 말씀과 성신으로 역사하는 주님의 통치에 잘 순종하고 성신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계속 누릴 수 있다.
아직 우리의 목적지인 완전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123문은 “주님의 말씀과 성신으로 우리를 통치하시사 우리가 점점 더 주님께 순종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한다. 127문에서도 “주의 성신의 힘으로 우리를 친히 붙드시고 강하게 하셔서 우리가 이 영적 전쟁에서 패하여 거꾸러지지 않고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우리의 원수에 대해 항상 굳세게 대항하게 하시옵소서” 하고 구한다.
신자의 기도는 향방이 없이 허공을 치는 것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져오실 완전한 승리를 바라보면서, 성신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을 바라면서 드리는 기도이다. 이것은 제4계명을 가르치면서 고백한 내용과도 통한다. “나의 일생 동안 악한 일들을 그만두고, 주께서 그의 성신으로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며, 그럼으로써 영원한 안식이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기를 원하십니다”(103문). 성신으로 말미암아 지금부터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시작하고, 성신의 은혜를 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자의 삶이고 신자가 구할 내용이라고 우리의 요리문답은 가르쳐 준다.
6. 신령하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신자
지금까지 성신에 대한 언급을 요리문답의 순서를 따라서 살펴보았다. 이것을 53문의 구분을 따라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된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은덕을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과 관계시킬 수 있다. 교회론과 감사의 삶에서 다룬 것은 신자의 생활에 대한 것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성신의 사역의 핵심은 그리스도와 신자를 연합시키는 데에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도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나타난 성신의 사역을 말하고, 또한 그 구속의 은혜를 신자에게 적용하는 성신의 사역을 고백한다. 성신은 "교제의 신"으로서 신자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일을 한다. 복음의 강설로 믿음을 일으키고 성례의 시행으로 믿음을 강하게 하여서 우리가 더욱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서 살도록 인도한다.
성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에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은덕을 우리에게 적용하실 수 있다. 앞부분을 놓치는 오순절파나 은사주의자들은 “그리스도 없는 성신”만을 근거가 없이 주장한다. 반면 뒷부분을 놓치면 “신자의 삶이 없는 정통주의자”가 될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복창하였다. 성신 하나님께 대하여서도 그분의 일하시는 방식에 맞게 고백하였다.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성신 하나님을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하여서, 또한 그 은덕을 신자에게 적용하시는 것과 관련하여서 푸근하게 가르쳐 준다. 평이하게 가르치기 때문에 한두 번 가르치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평범한 진술 안에 모든 사람을 끌어안을 만한 넉넉함이 있고, 참된 개혁의 열정을 품고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은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성신 하나님에게서 나온 힘이다.
독립개신교회 헌장에서는 신자의 삶을 "신령하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으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성신 하나님의 사역을 기독론, 교회론과 연결하여 이해한 데에서 나온 고백이다. 성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신령할 뿐 아니라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종교인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으로 회복되고, 교회 안에서 함께 회복된다. 참된 신자는 교회 안에서 자기를 발견한 사람이고, 교회아(敎會我)의 의식이 충일한 사람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성신에 대하여서 고백한 것을 신자의 신령하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과 관련하여서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다.
첫째, 우리의 요리문답은 참된 믿음에 대하여서 바르게 가르쳐 준다. 믿음이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과 성신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믿음이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하면 종교적 행위를 강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종교적 신념과 행동일 뿐이다. 믿음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진공 상태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입혀 주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하려고 주신 선물이다. 따라서 믿음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는 수단이다. 복음의 강설로 참된 믿음을 창조하신 성신께서는 우리를 삼위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시고, 또한 다른 사람과 연결시켜 준다.
둘째, 성신의 인도함을 받는 신령한 삶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생각하게 한다. 특히 동양 종교의 전통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신령한 삶을 경건한 모양을 내고 사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성신님을 의지해서 신령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 나, 곧 자아라는 옛사람이 완전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내 생활에서 생생하게 경험하는가, 나에게서 새사람이 나타나되 과연 얼마나 성신을 좇아 행하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5) 따라서 "신령한 생활이라는 것은 경건한 모양을 내고 사는 생활을 말하지 않는다 …… 그것은 차라리 자연스럽고 자유스럽게 사는 것"이다.6) 이 점에서 신령한 생활은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고,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에서 "해방"되어서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를 때에 완성된다(롬 8:21).
셋째, 신령한 삶이 가장 인간다운 삶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진리는 성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 곧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면서 사는 삶이 가장 사람다운 것임을 깨우쳐 준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본받아서 땅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기 때문에 사명을 감당할 때에 우리는 가장 인간답게 된다. 그 명령은 "사람에게 주신 사명이자 동시에 특권이고 축복"이었다.7) 성신께서 그리스도의 공생애뿐 아니라 신자가 삼중직에 참여하는 데에서 언급된다는 점도 주목해서 보아야 할 점이다(31-32문). 성신의 사역을 이렇게 이해하면 결코 기괴한 종교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넷째, 성신은 "교제의 영"으로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신자와도 연결시킨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사람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서 기꺼이 사용한다(55문).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다.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도 부활의 몸을 함께 입을 때이기 때문에 성신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결코 개인주의적이 될 수 없다.
끝으로, 성신 하나님의 사역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믿음과 믿음의 삶, 그리고 부활의 생명까지 모두 주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깨우쳐 준다.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삼위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로 인도한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상태, 그것이 교제의 영이신 성신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이다. 우리는 마지막 완성에 이르기까지 은혜와 성신을 구하고 또한 감사하면서 이 길을 가는 것이다. 항상 요리문답의 학생으로서 즐겁게 이 문답을 읊조리면서 이 길을 걷는다.
각 주
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사도신경의 구조를 셋으로 나누면서 삼위일체를 설명하였다(24-25문). 이것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중심으로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전통과 같다.
2) 믿음을 ‘신뢰’로 표현한 것도 칼빈의 영향이다. 『기독교강요』, 3:2:15 등 참조.
3) 하이데만은 이렇게 주장한다. “성신의 교리에 대한 이러한 해설에서 요리문답은 성신의 사역이 주로 마음의 은밀한 부분에서 일어난다고 결론을 내리도록 쉽게 인도한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신의 사역의 다른 면을 도외시할 정도로 개인의 마음을 강조하는 점에서 요리문답은 여전히 중세의 신비주의의 정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고, 또한 다음 세기에 발흥하여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곳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건주의의 오류로 길을 열어 놓았다.” "God the Holy Spirit," in Guilt, Grace and Gratitude: A Commentary on the Heidelberg Catechism,, 114쪽.
4) 『기독교 강요』, 4:14:9. "놀라운 교환"은 4:17:4.
5) 김홍전, 『신앙의 도리』(성약출판사, 1980) 30쪽.
6) 김홍전, 『신앙의 도리』, 32쪽.
7) 김홍전, 『혼인, 가정과 교회』(성약출판사, 1994), 198쪽. 이 책의 7, 8강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사명 수행의 관점에서 제시한 것은 매우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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