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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위기와 청지기의 투자 - 김상융 박사

Bavinck Byeon 2015. 5. 19. 21:31

금융 위기와 청지기의 투자 1

 

김상융 박사(북미주독립장로교회 교인, 경제학박사)

 

 

달란트 비유와 투자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14-30에서 달란트의 비유를 들어 크리스천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자원, 은사 및 소명을 어떻게 주님을 위하여 써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받은 것을 활용하여 하늘나라에 유익한 일을 하는 데 최선을 다 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 유익한 일은 하나님 나라를 땅 위에서 진전토록 하는 일과, 신앙의 성장과 신령한 생활을 통해 교회와 신자가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이 세상에 들어냄으로써 그를 영화롭게 하는 일일 것이다. 또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서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 것이며, 악하고 그릇된 불신자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기 위해 이 비유에서 인간 사회의 특정한 경제 행위와 그에 따른 몇 가지 경제적 개념들을 예로 인용하셨다. 마태복음의 비유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유사한 비유를 기록한 누가복음 19:12-28에는 주인이 종들에게 열 므나를 주며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구절이 있다. 즉 그 종들은 상업 활동에 그 돈을 사용하여 돈을 남겼다. 다시 말하면 상업에 투자를 한 것이고 그 투자 행위의 결과로 투자 수익(return)을 얻었다. 또 이 달란트 비유에서는 주인이 그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재능의 많고 적음에 비례하여) 달란트를 맡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재능은 주어진 달란트 즉 자본을 효율적으로 투자하여 사업을 일으키고 운영하고 비즈니스 활동을 하여 수익을 내는 데에 필요한 능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재능은 오늘날 말하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다. 기업가 정신은 비즈니스를 잘하는 능력뿐 아니라, 기업 경영 능력, 창의력, 기술 혁신 능력, 통찰력, 문제 해결 능력 등 기업의 창업, 생산, 투자 활동의 성장과 성공에 필수적인 기업가의 총체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은 그 종들의 기업가 정신의 크고 작음을 익히 알고 그에 따라 그들의 투자 규모를 정하여 주었다.

 

주인은 이렇게 그 종들에게 자신이 소유한 두 가지 자원(resources)을 맡겨 투자할 것을 명하고 떠났다. 즉 달란트와 재능이다. 우리는 주인이 종들에게 맡긴 것을 말할 때 흔히 달란트만을 생각하지만, 종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 즉 기업가 정신도 주인이 종들에게 맡기고 간 중요한 그의 소유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종은 주인의 소유이다. 그 소유에는 육체적 노동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능력도 포함된다. 정신적 능력에는 종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재능, 이 경우 재물에 대한 재능 즉 기업가 정신도 포함된다. 따라서 종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오로지 주인만을 위해 사용하고 섬길 의무가 있다.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투자하여 두 배의 투자 수익을 거둔 종들은 자신들의 재능 또는 기업가 정신이 자기들 주인에게 속한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주인이 원하시는 대로, 또 그를 기쁘시게 하는 데 사용하여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기업가 정신을 최대한 발휘하여 주인이 원하시는 대로 맡긴 돈을 장사에 투자하여 100%의 투자 수익을 올렸다. 그 주인은 그들에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라고 하였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를 소유한 주인의 시각에서 한 말이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는 종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큰 금액이다(금 달란트라는 가정을 할 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는 현 시세로 각각 약 90억원, 36억원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 엄청난 금액을 주인은 종들의 재능을 믿고 자신들의 소견대로 투자하라고 전적으로 위임하고 먼 길을 떠났다. 이 종들은 주인이 이같이 자신들을 신뢰하고 또 자신들의 재능을 인정해 준 데 대하여 큰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의 충성심은 이렇게 자신들의 위치를 아는 착함과 겸손함, 너그러운 주인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에서 우러나왔다. 이 충성심의 표현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성공적인 투자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주인은 이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였다. 주인은 투자 수익을 올려 주인에게 유익을 가져왔다는 결과보다도 이들의 마음가짐과 자세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신뢰와 사랑에서 나온 충성심을 더 기뻐하고 칭찬하였다.

 

우리는 이 달란트의 비유에서 투자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핵심적인 경제적 개념이 함축적으로 사용된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종들이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한 것이 투자라고 인정할 때 위험 또는 리스크(risk)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투자를 설명하는 데에는 리스크라는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비유에서 이 리스크가 달란트를 맡긴 주인과 그 달란트를 투자한 종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또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리스크라는 개념은 인간이 미래를 모르는 데서 연유하는, 인간에게와 인간 사회에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전지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에 불확실이란 없으며 따라서 리스크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의 모든 현상과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하에서 그의 통제하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러한 인간의 한계에서 생겨난 개념을 쓰셔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말씀하셨다. 신이시자 인간이신 예수님께서는 불확실성 아래에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우리 인간의 한계를 잘 이해하고 계셨고 그것을 속된 것이라고 결코 폄하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 리스크는 속칭적으로 회자되는 무모하고 투기적인 경제 행위, 모험 행위에 수반되는 그런 위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사회, 경제 활동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불확실성과 그에 따르는 정상적인 손실 가능성을 의미한다.

 

투자의 시각과 범위를 조금 넓혀서, 투자의 대상이 우리 인생의 주어진 모든 것이라고 생각할 때, 리스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모든 일에는 비용이 따르고 이 비용에는 리스크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재산, 가족, 건강 심지어 생명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는 그런 리스크들이 있다. 이 인간적(또는 육체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나아가는 것이 주님께 대한 충성일 것이다. 아프리카, 남미에서 선교를 위해 질병과 가난에 고통을 받고 심지어 순교까지 당한 분들이 이 리스크를 몰랐겠는가? 주님을 위해 무릅쓴 것이 아니겠는가? 망대를 세울 때에는 먼저 앉아 비용을 계산한다고 하였다. 주님의 뜻에 충실한 종은 리스크를 미리 알고 이에 대한 대비와 각오를 의식적으로 할 것이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릴 각오를 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그 주인의 칭찬이, 투자에 따르는 이 리스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본다. 즉 주인은 그 종들이 자신들의 사업에 수반되는 리스크를 기쁘게 무릅썼다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칭찬하고 있다. 투자가 실패하는 경우 그들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라는 큰 돈을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것이 두려웠으면 그들은 그 돈을 은행에 넣어 두고, 즉 리스크를 피하여, 이자 수익만을 벌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사업을 하였고 그 결과 그 리스크 부담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그들을 이렇게 리스크를 무릅쓰고 투자하도록 한 것은 자신들의 주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였다. 그들은 투자에 실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자신들을 주인이 책망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들의 실수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리라 믿고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그 주인이 이들을 칭찬한 것은 투자 결과보다도 주인에 대한 이 같은 신뢰였다. 물론 리스크를 감수하였다는 사실만이 그들의 충성심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리스크의 크고 작음에서 그리고 그러한 리스크에 대하는 그들의 자세에서 그들의 충성심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화형에 처하게 되는 리스크를 무릅쓰고 로마 교회의 거짓과 위선과 배교에 항거하다 죽음을 당한 종교 개혁 당시의 순교자들을 우러러보게 되는 것이, 그 실재하는 생명의 위험을 마다하고 주님께 충성하였다는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을까? 다니엘의 세 친구가 용광로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그 리스크를 무릅썼다는 사실이 그들의 위대한 믿음의 증거가 되지 않을까?

 

위 두 종의 케이스는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던 다른 종의 태도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 종은 자기 주인을 신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아주 불공정하고 인색하며 엄하기만 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한 달란트를 투자하여 사업을 벌렸다가 실패하는 경우, 자기 주인이 그 노고도 몰라주고 무조건 문책부터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런 주인을 위해 자기의 투자가 실패할 수 있는 리스크를 질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 주인이 이 종을 악하다고 나무란 것은 이 종의 이런 잘못된 인식과 불신이었다. 이 종은 또 자신의 나태함과 투자 기회를 낭비한 것을 변명하기 위하여 전혀 근거 없는 부당한 비난을 주인에게 하였는데, 주인은 당연한 이자 수익도 거두지 않은 이 종의 자기모순을 지적하여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였다. 이 종은 결과적으로 주인에게 유익은커녕 이자 수익에 해당하는 금전적 손실을 입혀 해를 끼친 악한 종이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또 정상적이고 건실한 투자의 한 패턴을 보는데 그것은 투자의 기간에 관한 것이다.

 

주인이 "오랜 후에" 돌아 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달란트를 상업 활동에 투자하여 100% 수익을 얻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섯 달란트라는 큰 돈을 투자하여 단기간에 두 배의 수익을 얻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투기(speculation)나 도박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10%의 연 투자 수익률을 가정하는 경우 총 100%의 수익을 올리려면 복리로 약 7년 반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충실한 종들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단기적인 손익의 변동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사업을 운영하고 키워서 종국에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투자는 자본을 이용한 하나의 가치 창조 행위이고 그 투자수익은 그 창조된 가치이다. 그 가치 창조 과정에는 기본적으로 경제 활동의 모든 분야와 그에 따르는 과정이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따라서 일정한 물리적 시간이 소요된다. 다시 말해서 정상적인 투자 수익 발생에는 반드시 중장기적인 시간의 경과가 필요하다. 단기 투자, 투기성 투자는 이 같은 정상적인 수익 발생 과정을 생략하려는 비정상적이고 변칙적인 행위이며 따라서 일종의 도박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정상적인 투자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하는 것이다.

 

이 달란트의 비유에서 우리는 재화라는 좁은 시각에서 볼 때, 그 종들이 투자에서 보여 준 자세를 통해, 재화의 사용과 그 재화의 미래 효용 증가를 위해 저축(투자)하는 데 필요한 사실적 교훈을 추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소비자의 관점에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재화와 또 재물에 대한 재능을 우리 주인 되신 하나님을 위해 유익하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재화를 주님께 헌상하고, 육신의 정당한 필요를 위해 쓰고, 이웃을 위해 쓰고, 남은 것은 미래의 필요를 위해 저축하게 되는데, 이 저축한 것을 과연 어떤 방법으로 어디다 투자하여야 하는가? 또 어떻게 투자하는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이 달란트의 비유가 하나의 큰 틀과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된다.

 

동시에 이 비유는 기업가, 경영인의 투자라는 관점에서도 여러 가지를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기업가의 지고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투자 수익 또는 기업 이윤(profit)의 극대화에 지나지 않는가? 한 기업가의 재능, 기업가 정신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따라서 그에게 속한 것이라면 그 기업인은 그 재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 주님께 유익하고 충성된 종이 되기 위하여 그는 어떤 투자 목표, 투자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이웃과 사회에 그는 어떤 책임이 있는가? 이 비유에서 우리는 주인이 기뻐하고 칭찬한 투자를 한 종 즉 청지기의 투자가 오늘날 경영인, 기업 투자가들에게 어떠한 전범을 제시하고 있는가를 보게 된다.

 

투자 수익과 리스크

 

사실적으로 말해서 투자 행위의 목적은 투자 수익이다. 즉 일정액의 자본을 투자하여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본 투자에 대한 수익은 그 자본을 사용하여 기업 활동(설비 투자, 생산, 판매 등)을 하는 기업가의 기업가 정신에 대한 대가, 그리고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으로 발생하는 리스크에 대한 보상(compensation)과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 기업가는 기업 이윤의 최대화를 목표로 기업 활동을 하는데 그 이윤이 최대화될 때 자본 투자자의 수익도 최대화된다. 기업가의 기업가 정신이 탁월하면 할수록 투자 수익은 커진다. 이와 동시에 투자 수익이 크다는 것은 또 그 투자의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리스크가 크다는 것은 실패의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기업의 흥망성쇠에 따르는 수많은 투자의 실패와 성공 사례를 통하여 기업가 정신과 리스크가 어떻게 자본 투자의 수익률을 좌우하게 되는지를 본다. 한편 투자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본 투자의 결정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의 리스크에 대한 선호도(risk preference)와 기대 투자 수익의 선택된 조합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리스크를 싫어하거나 작게 지려고 하는 투자자는 그에 준하는 작은 투자 수익을 선택할 것이고 반대로 리스크 부담을 즐기거나 큰 리스크에 잘 견디는 투자자는 그만큼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를 선택할 것이다.

 

 

금융 위기와 청지기의 투자 2

 

김상융 박사(북미주독립장로교회 교인, 경제학 박사)

 

금융 시장

 

자본 투자는 기업주 또는 개인이 독자적으로 할 수도 있고 기업 밖에서 여럿이 공동으로 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이들은 주식(stock)을 통하여 투자에 참여하여 그 기업의 부분 소유주가 되고 기업의 경영 정책 결정에도 부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주식의 가치 즉 주가는 그 기업의 경영 실적인 이윤의 크고 작음에 따라 변동한다. 따라서 그 기업이 큰 이윤을 계속 내고 그 결과 기업 규모가 커지게 되면 그 기업의 가치와 함께 주가도 크게 오르게 된다. 말하자면 투자 수익이 오르는 것이다. 반대로 기업이 이윤을 못 내고 성장하지 못하면 주가도 떨어진다. 기업이 망하면 주가는 제로가 된다. 다시 말해서 자본 투자가 실패한 것이다. 기업의 이윤에 대한 전망은 항상 변하기 마련인데, 여기에서 비관적인 전망을 갖는 투자자는 자신의 주식을 팔려고 할 것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갖는 투자자는 사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주식을 사고파는 거래가 성립되는 데 수천수만의 기업을 대표하는 주식들의 거래가 매일 매시간 그렇게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주식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 주식 시장이다. 주식 시장에서 주식들은 그 해당 기업들의 경영 실적의 변동과 경제여건의 변화 또 주식의 수요와 공급의 변동으로 끊임없이 그 가격의 변동을 겪는다. 그러므로 주식 투자는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큰 투자 수단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몇 십 년 심지어 백 년 이상 건실하게 기업 활동을 하며 성장해 온 좋은 기업들이 수도 없이 많다. 따라서 이 기업들에 대한 주식 투자는 그 기업 자체만큼 안전한 것이다. 단지 이들 우량 주식이라도, 단기 목표로 주식 투자를 한다면 이것은 투기와 같이 타이밍(timing)의 우연에 승부를 거는 것이므로 비정상적으로 높은 투자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기업의 일부를 소유하는 주식 투자 외에도 기업의 채무에 대한 권리를 부분적으로 소유하는 것도 중요한 자본 투자의 한 수단이다. 기업이 자본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기업 소유권을 파는 대신 일정한 지불 조건을 전제로 하는 채권(bond)을 팔 수 있는데 이 채권에 투자하면, 주식과는 달리 기업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대신, 그 기업이 망하는 경우 주식 소유자에 앞서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다. 또 주식과 달리 채권 소유자는 기업의 경영 실적과 관계없이 정기적으로 이자를 지불받으며 상환 일에는 원금을 상환받게 됨으로 주식보다 리스크가 작은 투자 수단이다. 리스크를 싫어하거나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투자자들(예컨대 은퇴자들)이 채권을 선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리스크가 작은 대신 투자 수익도 작다.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기업이고 기업은 항상 폐쇄 또는 파산의 리스크를 안고 있으므로, 채권 투자에는 채권의 원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는 리스크가 따른다. 채권 역시 주식과 같이 거래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시장이 채권 시장이다.

 

주식 시장, 채권 시장, 기타 유가 증권(예컨대 상업 어음) 시장을 합해 우리는 이를 증권(securities) 시장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증권 시장 외에, 은행 또는 금융 기관에 예금하는 것도 일종의 투자인데 예금 투자는 위험 부담이 가장 작으므로 투자 수익률도 가장 낮은 투자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은행에 모인 예금들은 은행의 대출을 통하여 기업 활동에 투입되므로 기업의 자본 조달의 또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증권 시장과 금융 기관들을 합한 것이 금융 시장이다. 기본적으로 금융 시장은 개인 또는 기관 투자자들의 자본 공급을 유도하여 기업의 자본 수요를 충족시키는 자본의 종합 매개체이다. 금융 시장은 이렇게 투자자와 생산의 주체인 기업을 연결시켜 준다. 그런데 투자 자금은 저축에서 나오며 저축은 다시 소득(income)에서 소비를 뺀 부분임으로, 금융 시장은 생산 활동의 결과인 소득 중 소비 주체가 저축한 자금을 다시 생산 부문에 환원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된다.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생산, 소비, 투자를 포함하는)는 이와 같이 유기적이고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대칭적이며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물 경제의 상황이 그대로 금융 시장에 반영된다.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의 괴리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이 같은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 사이의 대칭적 관계에 괴리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최근 들어서는 이 괴리가 현 금융 시장을 특징지을 만큼 현저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 괴리 현상은 이제 금융 시장 자체는 물론이고 실물 경제에까지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이르렀다.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의 괴리는 일차적으로 금융 상품 즉 자본 투자 수단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그에 따라 금융 시장 구조가 복잡, 불투명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동시에 금융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의 부재 내지는 해이와 금융 정책의 오류도 이 괴리 현상을 부추긴 중요한 원인이다. 2007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세계 금융 위기의 근저에는 이 같은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의 괴리와 그로 인한 금융 질서의 파괴가 그 주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금융 시장의 파행과 그 여파가 실물 경제에 얼마나한 손실과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는, 금융 위기가 시작된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경제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금융 시장 구조가 복잡해지고 불투명해진 가장 큰 원인은 소위 파생 금융 상품(derivatives)이 금융 시장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파생 금융 상품이란 주식, 채권, 통화, 예금등과 같은 금융 상품을 기초 자산(underlying assets)으로 하여 파생된 일종의 간접 금융상품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파생 금융 상품은 기초 금융 상품의 미래 거래와 관련되어 발생한 계약 그 자체를 말하는데, 선물(futures), 옵션(options), 스왑(swap), 숏 셀링(short selling)등이 주요 파생 금융 상품이다. 파생 금융 상품은 원래 금융 상품의 가격 변동에 따른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하여 만들어졌지만 최근에는 주로 단기간의 투자 수익을 위한 투기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파생 금융 상품의 한 예를 들면, 어떤 주식의 가격이 장차 하락할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 이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또는 가격 변동을 역으로 이용한 수익을 목적으로, 그 주식을 일정 기간 내에, 정해진 가격에 그리고 일정량을 팔 수 있는 권리를 살 수 있는데, 이 권리 자체가 파생 금융 상품이 된다. 이것을 풋 옵션(put option)이라고 하는데 이 풋 옵션은 다시 여러 손을 거치며 주식 시장에서 거래 된다. 이 경우 정해진 기간 내에 그 주식 가격이 예상한 대로 하락하면, 그 풋 옵션을 산 투자자는 그 하락한 가격에 그 주식을 사서, 계약 당시에 정한 높은 가격으로 그 풋 옵션 계약의 상대에게 다시 팔아(즉 팔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여) 그 차액을 수익으로 얻게 된다.

 

파생 금융 상품 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금융 시장에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숏 셀링이라고 하는 투자 수단이다. 숏 셀링은 투자자가 어느 주식의 가격이 앞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 정해진 미래의 기간 내에 반환하는 조건으로 그 주식을 일정량 개인이나 브로커에게서 빌린 다음, 그것을 즉시 현 시세에 판다(그 판매 대금은 빌린 주식을 판 것이므로 아직 투자자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건부 계정에 계약 만료 시까지 예치시켜 둔다). 그 후 정해진 기간 내 한 시점에서 그 주식 가격이 예상한 대로 하락하면, 그 하락한 가격에 투자자 자신의 돈으로 같은 량의 주식을 사서 그 주식을 빌려온 개인 또는 브로커에게 되돌려 주면 그 숏 셀링 계약이 만료된다(이와 동시에 조건부 계정에 예치되었던 돈이 투자자에게 지급된다). 이 경우 높은 현 주식 가격과 미래의 낮은 주식 가격의 차이가 투자 수익이 된다. 이와 같이 숏 셀링은 주식 시장이 하향 추세에 있을 때 단기간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 수단이다. 다시 말해서 숏 셀링은 주식 가격이 하락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 이것이 숏 셀링을 합법적인 투기의 수단으로 만드는 원천이다. 주식 시장이 급격한 하락 추세를 타기 시작할 때 투기성 대규모 숏 셀링으로 인해 주식 매물이 폭주하게 된다면, 주식 가격은 가속도적으로 더욱 하락하게 될 것이며 숏 셀링 투자자들은 여기에서 큰 수익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2007년 금융 위기의 초기에 주식 가격이 전례 없는 폭으로 폭락한 것을 위시하여 그 후에도 종종 급격하고 가속도적인 주식 가격 하락을 경험하였는데 이 숏 셀링이 이에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고 있다. 숏 셀링 외에 소위 은행의 대출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신용 파산 스왑(credit default swaps)이라 불리우는 파생 금융 상품도 금융 시장의 격변과 파행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금융 시장 체제의 전산화, 금융 상품 거래 및 투자 기법의 전산화에 힘입어 이들 파생 금융상품의 투기성 거래가 자동화, 대량화된 것도 금융 시장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 중요한 원인이다. 이렇게 파생 금융 상품이 가지고 있는 시장 교란 잠재력이 금융 시장을 불안정하고 취약하게 만들면서 금융 위기가 발발할 수 있는 터전을 그동안 닦아 놓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이 같은 파생 금융 상품의 투기성과 위험성에 대해 수수방관만 하며 전혀 규제를 가하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월가(Wall Street)의 규제 반대를 위한 대정부 로비가 있었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알려져 있다.

 

금융 위기

 

금융 위기가 야기된 직접적 원인은 소위 서브 프라임 론(sub-prime loan)과 관련된 주택 대출 담보증권 또는 모기지 담보 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이다. 서브 프라임 론 또는 서브 프라임 대출이란 저 신용 등급 자 또는 신용 불량자에게 제공된 대출을 말한다. 금융 위기 전까지 미국 주택 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것은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미 연방 은행의 저금리 정책과 저소득층의 주택 소유를 늘리기 위한 정부 주택 정책의 결과였다. 미국 정부는 금융 기관이 주택 융자를 대폭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법으로 마련해 줌으로써 상환 능력의 여부를 불문하고 주택 구매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누구나 주택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서민층 지지를 겨냥한 미국 민주당 정부의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 저 신용 등급 자, 신용 불량자들도 모두 주택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었는데 이를 위해 금융 기관들은 변동 이자율, 초기 납입금(down payment) 면제, 소득 증명 요구 면제 등 대출 조건을 파격적으로 완화하였다. 이렇게 완화된 주택 대출 조건은 부수적으로 투기성 가수요까지 유발하여 주택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이에 따라 주택 가격도 폭등을 거듭함으로써 거품 주택 시장이 이루어졌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증권 시장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채권이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주택 대출 담보 증권이었다. 미국 은행들은 1990년대에 들어 대출 자금의 원활한 운용과 조달을 위해 자신들이 내어준 모기지 또는 주택 대출을(쉽게 말해서 대출에 따르는 권리를) 더 큰 은행이나 투자 기관에 팔고 그 판매 대금을 다시 대출 자금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점차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주택 대출을 산 금융 기관은 여러 주택 대출을 한데 묶어 패키지(package)로 만들고 다시 그것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여 투자자들에게 팔았는데 이 채권을 주택 대출 담보 증권이라고 한다. 주택 시장의 호황에 따른 주택 수요의 폭발적 증가와 이 채권의 높은 수익률 때문에 이에 대한 수요와 거래량은 그 이후 계속 증가하여 왔다. 그러나 이 증권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주택 대출을 처음 해 준 은행은 그 주택 대출을 다른 금융 기관에 매도하는 즉시 채무자의 상환 의무 불이행에 따르는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되고, 또 그것을 담보로 하여 증권을 발행한 기관은 그 증권을 매도함과 동시에 그 리스크 부담에서 다시 한 단계 멀어지게 된다. 그다음 이 증권이 여러 투자자들의 손을 거쳐 거래되고 나면, 과연 누가 상환 불능 리스크를 최종적으로 져야하는지를 추적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결국 주택 대출 담보 증권은 투자 리스크가 거의 없는(그러나 실제로 누군가는 부담해야 하는) 투자 수단이 되어 버리고 만다. 금융 시장 활동(주택 대출 담보 증권 거래)과 실물 경제(주택 거래)가 서로 별개의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리스크는 거의 없는 반면 투자 수익은 높은 이 채권이 투자자들의 특별한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택 대출 담보 증권 발행과 유통의 증가, 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무분별한 주택 대출의 확대가 이렇게 하여 계속되어 왔다.

 

주택 대출 담보 증권이 계속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는 그 자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증권의 기초 자산인 주택 대출이 상당 부분 서브 프라임 대출이라는 데 있었다. 이 증권의 담보로 사용된 주택 대출 패키지에 섞인 서브 프라임 대출이 상환 불능 상태에 들어가 더 이상 이자 수익을 내지 못하게 되면 그 패키지에 근거한 증권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된다. 그 이유는 그 패키지에서 불량 대출, 우량 대출을 구분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금융 위기를 불러 온 직접적 원인이었다. 금융 위기 초기에 불과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불량 대출 때문에 패키지 전체가 불량품으로 낙인찍히고, 그 결과 그에 근거한 주택 대출 담보 증권 전체가 독에 물든 불량 증권으로 전락하는 상태가 야기되었다. 이에 따라 그 증권의 가격이 폭락하였고 그 증권을 투자 자산으로 소유하고 있던 금융, 투자 기관의 자산 가치 또한 같은 운명을 맞았다. 또 그 증권에서 나오는 이자 수입이 감소하면서 대규모의 영업 손실이 난 것은 물론, 자산 가치의 폭락은 금융 기관들의 여신 활동을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한편 금융 시장의 자금 경색은 실물 경제를 강타하여 모든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고 대량의 실업자를 만들어 내었다. 근로자 소득이 감소하여 소비가 줄고, 그 결과 기업의 생산, 설비 투자가 급격히 위축 되면서 경기 침체가 시작되었다. 이런 가운데 대규모의 금융, 투자 기관들이 파산되거나 합병당하게 되었고, 자산 규모가 너무 커서 파산되는 경우 금융 시장 전체가 마비될 것이 우려되는 금융 기관에는 정부가 구제 금융을 풀어 구제해 주었다.

 

자본주의의 뒷면

 

금융 시장이 붕괴 직전에 이르고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나고 경제가 휘청거리며 침체 속에 빠져 있을 때 오히려 득을 본 계층이 있었다. 금융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인 대규모 금융 기관과 투자 기관의 총수들과 고위 간부들이었다. 이들은 금융 위기 전에 체결된 고용 계약에 따라 자신들이 소속해 있는 기업들의 현재 경영 상태를 불문하고 높은 보너스(수백,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를 받았다. 이들 CEO, 간부들은 기업과 경제의 자본 조달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금융 시장에서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들이 속한 기관의 단기 투자 수익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였고, 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 대가로 그들은 일반 근로자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액수의 보너스를 받는다. 금융 시장의 이러한 경영자 보수 체계 자체가 파행적, 투기적인 금융 거래 및 투자를 조장하는 힘(force)의 중요한 일부이다. 위에서 말한 파생 금융 상품, 주택 대출 담보 증권, 신용 파산 스왑 등에 의한 금융 시장 교란 뒤에는 바로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그 같은 금융, 투자 기법을 사용하여 금융 시장이 상승해도 돈을 벌고 하락해도 돈을 벌었다. 그들이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는 금융 시장의 격변과 교란은 일반 투자자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이들에게는 오히려 둘도 없는 황금의 기회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엄밀히 따지면, 금융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가들, 경영자들은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허락되는 룰과 시장 원칙에 따라 이윤 추구의 노력을 한 것이고 그 대가로 응분의 보수를 받은 것뿐이다. 또 금융 기관, 투자 기관들도 같은 방식으로 이윤 추구 행위를 한 데 지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들의 이윤 추구 행위야말로 금융 시장의 자본 조달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윤 추구 행위가 인간의 탐욕과 이웃 및 사회를 도외시하는 이기주의에만 근거할 때, 이 경제 활동의 원동력은 오히려 자본주의와 자유 시장 체제를 마비시키는 위험한 독소로 변할 수 있음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다. 타락한 인간의 탐욕은 끝을 모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규칙과 법에만 어긋나지 않는다면 다른 시장 참여자들, 다른 경제 주체, 그리고 사회에 해가 되든 말든, 그 탐욕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여 시장의 취약점과 사각지대를 샅샅이 뒤져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이렇게 부의 축적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시장 실패의 잠재성은 점차 현실로 바뀐다. 정부가 시장 실패를 막기 위하여 각종 규제를 만들어 보지만 시장 플레이어들은 곧 허점을 찾아내 그 규제를 무력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그것을 역이용하고 만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어두운 뒷면이다.

 

청지기의 투자

 

다시 달란트의 비유로 돌아가자. 달란트를 투자하여 좋은 수익을 낸 그 종들 즉 청지기들은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투자하고 사업 활동을 하였는가? 자신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주인이었다. 그 돈의 소유주는 누구였는가? 또 자신들의 재능(기업가 정신)은 누구에게 속한 것이였는가? 자신들을 신뢰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하여 그 돈을 맡긴 그들의 주인이었다. 그들은 또 왜 오랫동안 수고하고 노력하여 최대의 투자 수익을 올리려고 하였는가? 자기들의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서였다. 그들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 자본의 지출에 신중을 기하였고 무모하고 부도덕한 투기도 결코 도모하지 않았다. 또 이웃과 사회에 해가 되는 수단, 또는 부당한 방법으로 투자 수익을 극대화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의롭고 공정하며 선한 그들의 주인이 그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청지기들의 투자 결과에 대한 주인의 반응에서, 우리는 그 주인이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 주인은 자기 종들의 충실함에 대한 상으로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하였다. 그 청지기들은 이 같이 은혜롭고 자애로운 주인에 감사하며 또 그를 즐겁게 하기 위한 투자를 하였다.

 

청지기의 투자는 이렇게 주인을 위한 투자이다. 오늘날 금융 시장 뿐 아니라 실물 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수많은 기업과 그 기업의 경영자들 또 그 기업의 주요 투자자들이 이 같은 청지기의 자세를 조금이나마 닮을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이 어지러운 사회에서도 기업과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을 기업 활동에 반영하려는 훌륭한 기업인들을 가끔 본다. 그리고 그들의 정직함과 용기 있는 선행에 경의를 갖는다. 현 금융 시장의 위기는 비록 소폭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결함 투성의 오늘날 금융 시장은 분명 대대적 개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제도적 개선과 정부 규제에는 한계가 있다. 금융 시장 플레이어들의 정화 노력 없이는 그 같은 시장 개혁은 장기적 효과를 기대하기가 힘들다.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금융 위기의 여파가 우리 경제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느끼면서 충실한 청지기의 자세를 따르는 좋은 기업인, 자본가, 경영인이 더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