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Reformation/G.J.Vos,1862

삼위일체론(The Trinity) 2 -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Bavinck Byeon 2018. 9. 18. 14:28


삼위일체론(The Trinity) 2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3.5 성부 하나님


3.5.1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


20.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이 명칭을 항상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는가?


그렇지 않다:


1) 때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근원이라는 뜻에서 아버지라 일컬어진다. 이 점에서 아버지라는 명칭은 삼위일체 전체를 가리킬 뿐 아니라 또한 신적 경륜(huishouding)에서 창조사역이 그에게 돌려질 경우에는 성부를 지시한다(cf. 엡 3:15).[123]


2) 이보다 훨씬 많은 곧 대부분의 경우에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일으키신 이라는 점에서 인류의 아버지라 불리운다. 따라서 이 명칭은 은혜 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을 가리킨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모든 이들의 아버지라 부른다면, 그것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은 이 단어[아버지]의 한층 깊은 의미에서 볼 때에도 진리라 말할 수 없다.


3) 그런데 아버지라는 명칭을 삼위일체 제2 위격과 관계 속에 있는 제1 위격에 적용할 경우, 위의 두 가지 의미와 전혀 다른 뜻이다. 성부는 성자의 아버지이다. 이것은 초월적 관계이다. 모든 인간적 아들됨(zoonschap)이란 단지 이 관계의 모사(摸寫; afbeeldsel)라고 할 수 있다.


21. 우리가 두 번째 위격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를 때, 이 명칭은 항상 동일한 의미인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아들이라는 명칭이 그리스도의 직분명이라고 주장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거부한다. 단지 이 단어가 그런 의미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이것이 이 단어의 가장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시누스누의자들은 그리스도가 메시야이기 때문에 그를 아들이라 부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그리스도는 초월적 방식으로 삼위일체 안에서 성부로부터 영원히 나신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그를 아들이라 부른다.


2) 그리스도는 그가 초월적으로 아들이기 때문에, 또한 메시야로서도 아들이라 부를 수 있다. 그리스도가 메시야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의 아들됨과 그의 메시야됨(Middelaars-waardingheid)을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그의 부활을 이에 대한 강력한 확증으로 제시한다(행 13:33; 롬 1:4).


22. 두 번째 위격을 아들이라 칭하는 가장 우선적이고 주요한 이유가 아버지에 대한 그의 영원하고 초월적인 관계에 있고 그의 중보자 지위와 무관한다는 것을 보이시오.


이것은 다음 사실들로부터 알 수 있다:


1) 성육신 전 말씀을 아들이라 부르는 구절들로부터(갈 4:4; 요 1:14, 18)


2)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구약에서] 여호와의 신성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구절들로부터(요 5;18-25; 히 7).


3)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로 부르는 곳들로부터(요 1:14, 18; 3:16, 18; 요일 4:9).


4) 그리스도는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한 적이 없고, 하나님에 관해 말할 때, "우리 아버지"로 그분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그리스도께 하나님은 항상 "아버지"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자신을 그분의 제자들과 동일선상에 두지 않으신다. 그에게 하나님은 그들에게와는 전혀 다르고, 무한히 높은 의미에서 아버지이다.


5) 주님께서 자신을 천사들과 인간들과 대비하여 "아들"로 소개하신 사실로부터(막 13:32).


6) 주님께서 [그의] 아들됨으로부터 다른 어떤 이도 소유할 수 없는 전적으로 유일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끌어냄으로부터(막 11:27).


7)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사용했을 때, 사람들은 이것을 신성모독으로 인식한다는 점으로부터.


23.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성의 근원"으로 말하는데, 이것은 옳은가?


이것은 성경의 표현이 아니다. 또한 이 표현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아버지"라는 칭호를 제시한다. 이것은 아들의 위격적 존재를 전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들의 위격적 존재 근원은 아버지이시지 그분의 신성이 아니다. 세 위격의 신성은 하나이고 나눠지지 않는 것으로서 세 위격에 고유한다. 반면 이들의 위격적 존재의 경우, 아들과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온다.


24. 그러면 어떻게[124] 몇몇 구절은 아버지를 아들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는가?


이런 구절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성육신을 제외하고는 영원한 말씀이 아닌 중보자요, 은혜 언약의 보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고전 8:6; 요 17:3; 엡 4:5, 6; 고후 11:31; 엡 1:3 등이 있다.



3.5.2 성부의 위격


25. 아버지의 위격적 존재와 관련하여 어거스틴이 주목한 것은 무엇인가?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는 그분 위격의 존재(zijn persoons bestaan)를 바로 아들을 나게하심과 성령을 내쉬심에 갖는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의 위격적 존재(het personeel bestaan des vaders)는 아들과 성령을 통해 결정된다(bepaald is).


26. 성부의 위격적 특징은 무엇인가?


부정의 방식으로 말해서 [성부는] 나시지 않는다. 긍정의 방식으로 표현할 때, 나게하심 내쉬는 것이 모두 그에게 속한다. 내쉼 자체는 아들의 고유 사역이기도 하나, 나게하심은 오직 성부께만 속한다.


27. 외적 사역들 중 어떤 것들이 더 구체적으로 성부께만 돌려지는가?


1) 선택을 포함한 구속 계획에 대한 최초 구상.

2) 창조와 섭리의 사역, 그리고 특히 최초 시작과 관련된 것들.

3) 구속 사역시 그 권리가 침해된 신성으로서 삼위일체의 대표.[125]


28. 그 결과 어떤 속성이 특별히 성부에게 돌리는가?


a) 권세(마 11:26).

b) 의(창 18:25; 요 17:25; 살후 1:6).



출처: 개혁교의학(Reformed Dogmatics), 제 I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