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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을 지망하는 분들에게 - 김명도 교수

Bavinck Byeon 2015. 1. 9. 23:25

신학을 지망하는 분들에게, OU POLL‘ ALLA POLU (양보다 질)

 

김명도 교수

 

 

N.B. 이글은 미국과 해외 도처에서 신학을 공부하거나 목회를 하고 있는 나의 제자들을 위한 스승으로서 조언한 글임을 밝혀 둔다.

 

신학생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신학 공부를 하게 되면 갑자기 짐이 무거워지고 입학 전에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읽어야할 필수 서적들을 다 읽기에는 시간과 힘이 모자란다. 비유로 말하자면, 성경을 번역함에 있어서 원어를 무시한 채 유려한 문장만을 추구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문장이 덜 매끄러워도 성경 원어에 충실하는 방법이 있듯, 신학 교육도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경향 중 어느 하나에 속한다. 많은 학생을 입학 시켜 실력이 부족한 목회자를 많이 배출하는 방법이 있고, , 많은 지원자중에서 목회자가 가질 기본 자질을 엄선하여 소수를 충실하게 양성하여 훌륭한 목회자, 선교사, 학자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있다. 물론 바람직한 방법은 후자이다. 하나님에게 헌신할 자질을 구비한 인물들에게 고상한 개혁주의 학문을 가르치고 인격을 잘 다듬어서 온유 겸손하고, 바른 신학을 가진 주의 일꾼들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 한국 분들 중에는 신학이란 다른 세상 학문을 할 능력이 없으면 마지막 수단으로 택하는 길인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도 있는 듯하다. 또 신학은 주여, 믿습니다하고 기도 하면서 3(누가 신학을 3년에 마치는가? 정통적 미국 신학교에서는 3년에 마치는 사람은 적고 대부분 4-5년 걸린다) 세월을 보내면 졸업장이 손에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이런 분들이 신학교에 들어오면 결단난다.

 

신학은 흔히 모든 학문의 여왕이다” (Theology is Queen of Sciences) 라는 말을 많이 한다. 신학은 세상의 어떤 학문보다 고귀하고 또 어려운 학문이며 어렵기 때문에 귀하고 보람 있는 학문이다. 아니, 그 보다도 사람의 영혼을 영원한 파멸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내는 학문이기 때문에 더욱 귀하고 보람된 학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네 가지 조건이 맞는 분이라야 신학 공부를 했다. 그 네 가지 조건이란, 건강하고, 지혜가 있고, 시간이 있고 그리고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분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이들은 박사의 학위보다도 성직자의 지위를 더욱 존귀히 생각하는 사람들 이었다. 증거로, 중세 사람들이 쓴 책을 보면 이름이 없는 것들이 많다. ? 이름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자세 때문이다. 중세의 Abelard Anselm 또 그 전에 활동했던 Gregory the Great 같은 분들이 많은 책을 썼지만 책에는 이름이 없는 것이 많다, 다른 서적을 통해서 그 책들의 저자를 알아내야 할 정도로 본인들은 겸손했다. 박사학위를 열망하며 존귀히 생각하는 것은 미국과 한국뿐이다, 영국에서는 박사 학위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학이나 신학교에서는 “professor" 란 호칭을 더욱 높이 평가하며 교수에게 박사라고 부르면 결례가 된다는 것을 1993년 가을 영국과 Scotland 를 여행하면서 직접 보고 왔다. Scotland Durham University 가 그러하다. 영국 동부의 Cambridge University 가 그러하며 Sterling College 가 그러하다.

 

일본에서도 사정은 같다. 실력 없는 엉터리 박사보다는 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어도 실력자를 인정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가령 일본 고베 (神戶) 에 있는 개혁 신학교에는 박사보다 학사나 석사가 더 많다. 옛날 일본 제국 대학 (日本帝國大學) 이었던 동경대학에서도 학사 학위를 가진 유능한 학자가 날치기로 이름 없는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보다 더 존경을 받고 있다. 오늘 미국이나 한국의 현실과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 극도로 세속화한 미국과 한국, 특히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이다. 일본과 영국 독일에서는 박사학위가 없어도 제2 3 외국어로 책을 쓸 정도의 높은 학문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학생들로 부터 존경을 받는다. 오늘 신학교의 강사 중에서 진정으로 실력 면이나 인격 면에서 학생들이나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사람의 의식구조가 개혁되어야 한다.

 

앞으로 목회는 실력위주 이다. 실력이 없이 허세만 부리고 섬김 받기만 바라면 그 목회 생명은 길지 못하게 된다. 얼마 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어느 신학교 졸업생 한 분이 어떤 환자를 안수 치료한다고 하면서 살인을 저질렀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이렇데 된다. 공부하는 학생은 소정의 학업과정을 통해서 배울 바를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잘 그리고 확실하게 배워야한다. 신학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학문인데 태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의사는 의술에 전문가가 되어야한다. 의사의 의술이 환자의 상식만 못하다면 주저 없이 의사의 직업을 버리고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배울 바를 완전히 배우고 와야 한다. 운전하는 사람은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알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수리하는 수리공은 운전사보다 더 많이 차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목사나 전도자의 성경이나 신학지식이 평신도만도 못해서는 곤란하다.

 

한국 분들은 남달리 권위의식을 좋아한다. 목사가 되면 섬김 받기를 원한다. 실력 없는 목사가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그 만큼 교인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말이다. 아무리 존경해 달라고 외쳐도 교인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그래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기독교계 전체 그리고 목회자의 자질이 변해야 한다. 그 개혁이란 실력 있는 사명자를 만들어 내는데서 시작된다. 개혁해야할 점들을 생각해 보자

 

I. 입학자격자 엄선

 

아무런 자질이 없어도 누구나 신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신학교의 교과 과정이 기본적인 학생의 자질을 요구하고 있다. 학식이 있고 (4년제 대학교에서 평균성적이 B 이상 되는 분으로 인격이 고매한 분이어야 한다. 적어도 미국의 일류 신학교에서는 이렇게 요구한다. 그래서 적어도 목회에 몸을 바치거나 앞으로 신학교 교수가 되려는 분은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고 신학교에 입학해야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도중에 학교를 중퇴하거나 보다 쉽게 적당히 공부할 수 있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는 학교로나 학생으로나 피차에 불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신학을 할수 있는 자질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누구나 모두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을 다시 남기도 싶다. 입학이 문제가 아니라 입학한 후 공부를 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학 공부하다가 지쳐서 중도 포기 혹은 전학 하는가? 필자의 경우는 50명이 입학하여 26명이 졸업에 성공했다. 학위는 세월이 흘러가면 자동적으로 주어진다는 안일한 생각은 신학을 지망하는 학생으로 절대 금물이다.

 

그러므로 목사나 신학자가 되기 위하여 신학교에 들어오는 학생은 많은 신학교중에서 어느 신학교를 택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명감이 투철해야한다. 일생을 주님의 제단에 바칠 각오와 단호한 결심이 있어야한다. 목회자는 남에게 존경만 받는 것이 아니다. 떄에 따라서는 순교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날 어느 부흥회에 가서 은혜 받고 눈물 흘리고, 그날 밤, 몹시 들뜬 감정으로 쉽게 신학 공부를 결심해서는 위험하다. “이 길이 아니면 생의 의미가 없다는 확신이 생길 때 기도하면서 신학교 입학을 고려해야한다.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하나님이 걸음을 인도하셔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하여 많은 기도가 있어야한다. 일생을 걸어놓은 큰 일을 앞에 놓고 기도 없는 결정이 어디 있는가?

 

또한 영어 실력이 중요하다. 영어는 이미 제2 외국어가 아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영어를 외국어로 생각하면 안된다. 영어를 모르고는 신학교(비록 한국계 신학교라 할지라도) 에서 공부하기도 어렵거니와 졸업 후에 사역하기도 힘들다. 3 년간 혹은 4년간 힘들게 신학공부를 하고 나와서 일할 자리가 없으면 그 얼마나 낙심되겠는가? 그 보다도, 신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영어의 배경이 없으면 첫째 참고도서들을 자유로이 이용 못하는 불편이 있고, 신학교에서 필수인 성경의 원어 즉 히브리어 와 헬라어를 공부하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어를 어느 정도 해득하는 일은 신학 공부에 필요 불가결한 자질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부연한다면, 학적인 소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에 소질이 없는 분, 책읽기에 흥미가 없는 분은 4년이란 긴 세월동안 매일 같이 주어지는 숙제들을 감당할 도리가 없을 뿐 만 아니라, 100 면이 넘는 학위 논문도 작성할 능력이 없다. 목회자는 목회자인 동시에 학자 이어야한다. 학자가 아니고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할 수 없는 일이다. 학교에 재학 중에 적어도 2,000 권정도의 장서를 구입하여 시간을 내어 책을 읽어야 한다. 매일 읽어야 한다. 되도록 많은 분량을. 이것은 마치 이 다음 싸움터에 나갈 때 필요한 무기를 저장해 두는 것과 같다. 무기가 없으면 싸움에 진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있음을 명심하라.

 

II. 학습생활

 

원어 공부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원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힘들다, 지루하다. 시간이 모자란다. 그러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원어 공부가 학점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신학교를 졸업해도 가장 기초적인 히브리어나 헬라어 동사의 분석 (parsing) 을 못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것은 원어공부를 학점을 위해서 공부한 증거요 활용하지 않은 증거요 공부를 중단한 증거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힘들어도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목회할 때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필자가 공장에서 밤새도록 8시간 일하면서 익히고 매일 교실에서 시험을 치루었던 쓰라린 원어 공부가 오늘 강의실이나 논문을 쓰는데 그 토록 많은 도움을 주리라고는 당시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원어 공부는 가급적 철저히 해 두라.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 나이가 들어서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해라도 젊었을 때 단어와 문법을 공부해 두라. 원어 공부의 목적은 성경의 원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남에게 바로 전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어야 한다. 결코 자랑꺼리로 생각하지 말라.

 

오늘의 기독교계는 아주 혼탁하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회자들의 신학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바르지 못한 신학으로 남을 가르치면 곧 이단의 무리가 생겨난다. 바르지 못한 신학이 생기는 이유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신학교 시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책도 제대로 읽지 않고 적당히 졸업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목회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에게 무어라고 기도 할 것인가?

 

그들에게 경은 이현령 비현령 (耳懸鈴 鼻懸鈴) 으로 모든 성경 구절을 아전 인수격(我田引水格) 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성경 해석의 기본 방법을 모르면 십중팔구 이단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신학교에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 언어 특히 히브리어와 헬라어 등 원어를 공부하는 것이다. 원어를 모르고는 성경의 바른 해석인 석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 원어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가 몇 가지만 예를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하자.

 

1. 요한139절 말씀을 보자. 중생자는 죄를 도모지 짓지 않는가?

 

우리말 성경이나 영문 성경을 보면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많은 부흥사들은 그렇게 설교한다. 그러나 원어 성경을 보면 그 의미가 아주 분명해 진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의 동사는 현재형인 poieo 동사이다. 그리고 부정사 (否定詞)MH가 이니라 OU 이댜. 그러면 그 의미는 분명해 진다. “하나님께로 난자 즉 거듭난자는 상습적으로 반복해서 죄를 짓지 않는다란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헬라어 문법으로 쉽게 해결되는 하나님의 뜻을 원어를 등한시하는 까닭에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사람의 교훈을 가르친다. 얼마나 많은 성도가 속고 있는가?

 

2. 사도행전 97절과 229절의 문제

 

우리 말 성경에서는 위에 적은 두절의 의미가 모호해 질수 밖에 없다. 이유는 한편에서는 부활하신 주님이 하시는 소리를 사람들이 들었다고 했는데 (97) 다른 곳에서는 소리를 듣지 못하더라 하고 했으니 (229) 서로 모순되어 어느 말이 맞는지 어리둥절해 진다. 그러나 원어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그 두 성경귀절이 아무 문제가 없이 쉽게 풀린다. “akouo" 라는 말은 신학교 입학하자마자 1학년 1학기에 배우는 헬라어 기본 단어중의 하나로서 듣는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동사는 지배하는 격 (=case) 에 따라서 두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

 

akouo 동사가 소유격을 취하면 (9:7) 소리만 들을 뿐, 의미는 모르는 것을 의미하지만 목적격을 쓰면 말하는 사람의 소리의 의미를 깨닫는의미가 된다. (22:9). 그러므로 본문의 해석은 사도행전 97절에서는 바울의 일행이 주님의 음성만 들었다는 뜻이요. 사도행전 229절에서는 목적격을 사용하면서 부정하였으니 소리를 들었으나 그 의미를 듣지 (알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성경은 일견 상치 (contradict) 되는 것 같으나 우리의 지식과 지혜가 부족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뿐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다. 하나님이 헬라어로 신약성경을 기록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이신 신약성경을 가장 정확하게 인간에게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칭의의 문제

 

성경에는 우리가 의롭게 여김을 받았다는 말이 여러번 나온다 (5:9; 3:7; 고전 6:11; 8:33-34). 이 말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가 예수를 믿어 완전히 의로워 졌다는 말인가? 그리스도가 십자가위에서 죄인 된 우리를 아주 의롭게 변화시켰다는 말인가? 많은 사람은 그렇게 믿고 또 그렇게 남에게 설교한다. 그러나 원어의 구성이나 원어의 의미가 그런 해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몰론 문제의 칭의 (稱義=being justified) 라는 말은 원어에서 "dikaiow 라는 단어 이다. 이 단어는 바울서신에 많이 나오는 단어이며 아마도 로마서에서 가장 많이 읽어보는 단어이다.

 

이것도 헬라어시간에 졸지 않고 제대로 공부해서 학점을 취득한 학생이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헬라어에서는 “ ....ow 로 끝나는 단어가 도덕적 윤리적 성을 말할 때는 일방적으로 ......하다고 선언하다또는 “.....하다고 간주 한다그런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는 결코 본질이 완전히 변했거나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태가 아주 변화되어 의로워진 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간주하여 일방적으로 그렇게 선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axiow” 가치가 있다가 아니라 "가치가 있다고 간주 한다라는 의미이고, “homoiow”같아 진다가 아니라, “같다고 선언 한다뜨는 같다고 여겨 진다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원어 공부를 기초만 공부하여도 알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신학생이건 목회자이건 원어 공부를 등한히 한 탓에 아주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를 포착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는 것은 아주 불행한 일이라 하겠다.

 

4. 에베소서 2:8 의 문제

 

사람이 어떻게 구원 얻는가? 많은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한다. 옳다. 에베소서 2장은 처음서 부터 인간이 죄로 영 죽을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상태임을 분명히 말하면서 이 죽은 사람을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말한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말씀을 아주 정확히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데, 8절에서는 너희가 믿음을 인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라고 했다. 이것도 우리말 성경이나 영문 성경에서는 그 명확한 의미를 포착하기 어렵고, 오직 원어 성경에서만 뜻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원문에서는 처음에 은혜에 의하여라는 말로 시작한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되어 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종교 개혁가들은 Sola Gratia 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 구원은 한번 얻으면 변치 않는다. 왜냐하면 에베소서 28절의 그 다음 단어는 너희가 구원을 받아서 지금도 그 효과가 계속되고 있다는 뜻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원어의 “este sesomenoi" 라는 동사가 완료형 남성 주격 복수 분사이므로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구원받은 결과가 영원히 변하지 않고 항상 계속되며 따라서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요한복음 112절을 들어 자유의지를 말하지만 그 다음 구절인 13절을 읽으면 이것이 육정으로 난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게 되므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임을 알 수 있다. 2:8에서 그 다음에 오는 말은 믿음을 통해서라는 말이다. 모든 성경 중에서 구원의 성격을 가장 잘 말해주는 성경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에베소서 2:8에 의하면 구원은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되는데 한번 얻어진 구원의 상태는 영원히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상에 열거한 것은 단지 원어공부가 얼마나 성경의 바른 의미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 Augustine도 그의 회고록을 보면 원어공부가 싫어서 곤욕스러워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참회록 1:14). 그러나 그는 스승의 벌을 받으면서도 원어 공부를 해냈다고 말하고 있다. 신학공부는 인내심이 있어야 해 내는 법이다. 조급해서는 안 된다. 나태해서는 안 된다. 부지런해야 한다. 고진 감래..괴로움이 다하면 단 열매가 온다.

 

원어 공부는 어렵지만 공부를 착실히 해두면,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종교개혁시대의 루터는 원어는 하나님의 말씀인 날센 검을 꽂는 칼집이라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그와 그의 동역자였던 Melanchthon은 모두 어학의 천재들이었다. 라틴어는 물론, 독일어, 헬라어, 히브리어 등 적어도 4 개 국어에 능한 분들이었다. 루터의 독어판 성경은 우리 관주 성경에도 많은 빛을 던져 준다. 가령 창세기 4:8 에서 요즘 나온 성경은 예외지만 옛 관주 성경에 보면 아우에게 고하니라라고 말했을뿐 무엇을 고했는지 내용이 빠져있다. 그러나 루터의 성경에는 Da sprach Kain zu seinem Bruder, “Lass uns aufs Feld gehen” 라고 기록되어 있다.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그래서 원어 공부는 중요하며 어학 공부가 중요하다. 어학에 능한 신학생은 옆에 영문성경, KJV, RSV, ASV, NASV, NIV 등의 성경을 비치하고 헬라어 성경과 Luther의 성경을 비치히고 서로 참고하면 진리에 도달하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진리를 탐구하는 신학도가 원어 공부를 통해서 진리를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기도취를 위함이 아니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바로 꺠달아 바로 남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데서 기뻐하고 보람을 느껴야 한다. 바울이 빌립보 1:18에서 한 말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서 내가 기뻐하고이 말씀을 기억하자.

 

요즘에는 신학교 마다 원어공부가 시들어 간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어려운 히브리어나 헬라어 배우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두들어지고, 또한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 풍토에서 절대적인 가치관을 상실했으니 성경의 원어를 공부해서 정확한 성경의 뜻을 알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구약은 히브리어로, 그리고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히브리어는 옛날 하나님의 백성의 방언이요 헬라어는 당시 전 세계 장터에서 사람들이 시용하던 평민들의 언어 (lingua franca, 세계 표준어)로 평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원어를 배워서 정확한 뜻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 신학도들에게 주신 사명이 아닐까? 성경은 갈라디아 18-9절에서 누구든지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바울이 말한다.

 

원어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했다. 필자는 열 살도 되기 전에 영어를 공부하면서 하루에 영어 단어 20개를 꼬박 꼬박 외우고 그 대가 (?) 로 엄한 어머니의 밥을 얻어먹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어디를 가든지 영어를 활용하며 오늘 까지 살아오고 있다. 신학교 시절에는 우직한 교수들이 살을 깎으며 코피를 흘리며 고생하는 한 고학생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까지 원어 시간마다 단어 시험을 과했다. “원어를 모르고 이단 목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원어 공부를 바로 해서 말씀을 바로 전하는 정통파 목사가 되겠는가? “ 하는 것이 냉정하기만 한 교수들의 지론이었지만 하루에 단어 30개씩을 써서 제출하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교수의 말을 믿고 그 때는 대학원 진학을 위하여 독일어를 공부하던 때이므로 헬라어의 단어의 뜻을 독일어로 달아 답안을 작성 제출하여 결국 두 나라 말을 한꺼번에 배운 결과가 되어 나중에 덕을 본 경험이 있다. 이것을 일석이조 하고 한다. 그 때 고생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으나, 그 때 그렇게 공부한 것이 그 교수에게 지금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원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성경을 바로 풀 수 없고, 성경을 바로 풀지 못하면 바른 목회자가 될 수 없다. 바른 목회자가 되지 못하면 "엉터리 돌팔이 목사" 로 낙인찍히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산다. 멋 훗날 하나남 앞에 어떤 낯으로 설 것인가?

 

III. 참고서 관리

 

어느 학교든 학생이 있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가 있어서 그 학생들을 심혈을 기울여 지도한다. 교수들은 학생들이 그 과목을 이수함에 있어서 꼭 읽어야 할 필수 참고서 서적 목록을 학기 초에 배부한다. 그 서적 목록은 교수의 판단으로 이 과목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기에 학생들은 그 책들을 가급적이면 구입하거나, 아니면 도서관에서 그 책들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교수가 지정한 책들은 많은 학생들이 저마다 읽으려고 하는 까닭에 공부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빌려 가려고 학교 도서관에 가 보면 그 책은 누군가가 벌써 빌려 가고 없다. 부수가 많으면 좋으련만 대개의 경우 학교에서는 넉넉치 못한 재정에 같은 책을 세권 이상 구입 비치 하지 않는다. 그 책을 읽어야 숙제를 하겠는데 책을 빌려 가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그런 책들은 교수의 추천에 따라서 한 학생이 1주일 이상을 빌려 갈수 없으며 기일 내에 반납 않으면 중한 벌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blacklist 에 올라서 다음부터는 책을 빌려 가기 조차 힘들게 된다. 신학생의 훈련은 가장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구도 기일을 어김없이 지켜 빌려갔던 책을 반납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한 학생에게 일주일간씩 빌려 주는 책을 “Reserved Books" 라고 하는데 그 목적은 한 학생이 그 책들 독점하지 않고 여러 학생이 골고루 읽을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이용해야 하는 숙제 물은 항상 학기말까지 제출하도록 충분한 여유를 주는 것이다. 많은 학생은 이런 어려움을 피하기 위하여 그 책을 서점에서 구입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런 책들은 절판 (絶版) 인 경우가 많다. 그런 때에는 부지런히 그 책을 빌려다가 독서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필수 서적을 제외하고 다른 책들은 반드시 살 필요는 없지만 한 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교수가 소개하는 책들은 그 과목에 관계가 있는 책들이고 또 그 책들은 지금 사 두지 않으면 나중에 그 분야에 좀 더 연구하거나 참고하려고 할 때 자료가 극히 빈곤해 진다. "그 때에 그 책을 사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는 날이 오고야 만다. 아무런 연구도 하지 않고, 참고서도 보지 않고, 되는대로 준비 없이 자기의 "말재주" 만 믿고 인기 위주로 사역하기 원하는가? 그런 분들은 책을 살 필요도 없고, 신학교에 올 필요도 없고, 사역에 나서서는 절대로 안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찌 이런 사역자를 기뻐하시겠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개혁신앙이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남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역자는 많은 책들을 탐독하여 실력을 높여서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in the face of God) 사역에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쳐야 한다. 성경도 모르고 균형 잡힌 신학 지식이 없으면 바른 말씀을 자신 있게 전달할 수 없게 되고 말씀을 바로 전하지 못하겠거든 사역자가 되지 말라. 스승으로서의 충고이다.

 

신학은 어렵다. 가장 유식한 신학자라도 신학을 모두 통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이 교훈하는 중요한 교리는 자신 있게 전할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역자는 항상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습관에 젖어 있어야 한다. 앞으로 목사가 되어 바로 사역하기를 원하면, 지금 학창 시절부터 참고서를 구입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데 책을 구입할 때 값이 헐하다고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사들이면 대개의 경우 그런 책들은 해독을 초래하는 일이 있다. 그러기에 각 교수는 학생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유익이 될 책들만을 엄선 (嚴選) 하여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어떤 책을 어떻게 사야 하는지 자주 자문을 구한다. 그러므로 여기에 서적을 구입하는 몇 가지 요령을 소개하고저 한다.

 

1) 일년이 지나도 한번도 손을 대지 않을 책은 아예 사지 말라. 돈 낭비 이다. 그렇게 자주 사용하지 않는 책이라면 학교 도서관이나 웬만한 시립도서관에서, 혹은 일반 대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2) 책을 구입할 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야 한다. 표지가 두꺼운 hardbound 는 표지가 얇은 softcover 혹은 paperback 보다 값이 거의 배나 비싸다. 같은 내용의 책을 돈을 많이 주고 살 필요가 어디 있는가? 물론 사전이나 백과 사전 혹은 어떤 출판사 (특히 영국 ScotlandT.&T.Clark 출판사, 화란 LeydenE.J. Brill 출판사, 독일 Stuttgart J. B. Mohr 출판사, 영국 OxfordClarendon Press ) hardbound로만 출판하며 책 값이 엄청나게 비싸지만 울면서 겨자 먹기식으로 그 책들을 비싼 돈을 내고 사지 않을 수 없다. 그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 신학교에 들어가면 대개 첫 학기에 Library Orientation (도서이용 소양 圖書利用素養) 시간을 갖는다. 도서관을 어떻게 이용하며, 어떤 책들이 신학생들로서 누구나 갖추어야 할 책들인가를 이 방면에 전문가인 교수로부터 강의를 듣게 된다. 또 각 신학교 마다 도서관에는 그런 도서 목록을 적은 자료가 비치되어 있어서 원하는 학생들은 언제든지 도서관에서 입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분야를 고려하여 사전, 백과 사전, 성구사전, 기타 참고 서적을 반드시 구입해야 한다.

 

) 성경 원어 사전 (구약 히브리어, 신약 Koine 헬라어), 그리고 Latin어 사전

) 성경 원어 분석 사전 (문법에 능하여 필요 없는 학생은 제외)

) 성경 백과 사전 (Bible Encyclopaedia) ISBE 백과사전이 좋다.

) 구약 신학 사전 및 신약 신학 사전 (Theological Dictionary of OT or NT)

) 성지의 지도 (Atlas of the Holy Land)

) 성지의 풍속 및 습관 (Customs and Manners of the Holy Land)

) 고고학 백과 사전 (Encyclopaedia of Biblical Archaeology)

) 성경 인명 지명 사전 (Dictionary of Proper Names and Places in the Bible)

) 성구 사전 (Concordance to the Bible)

) 성경 (한글, 영문, 원어) Bible in English, Korean, and Original Languages)

) 영어 사전 (Webster English Dictionary)

) 영어 관용 사전 (Thesaurus of English Language)

) 성경 주제 사전 (Topical Dictionary of the Bible)

) 성경 주석 (Commentaries of the Holy Writ)

) 성경 원어 교본 (히브리어, 헬라어)

 

이상은 신학생이면 누구든지 반드시 구입해야 할 필수 서적으로 농사짓는 사람의 기본 연장이다.

 

그 외에 이런 참고서적들을 가지고 여러 분야를 공부하게 되는데, 어떤 분야가 있는가? 사역자는 신약, 구약, 조직신학, 교회사, 실천신학등을 공부해야 한다. 이제 차례로 이 분야에 어떤 책들이 필요한지 보도록 하자.

 

) 신약: 헬라어, 신약개론, 신약개관, 신약사, 공관복음, 4복음서, 바울서신, 일반서신, 신약주해, 신약신학, 성경해석학, 바울신학, 계시록, 성서고고학, 성경난제 연구, 사도행전,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성지의 풍습과 관습, 신약지리, 사해문서와 신약 등.

 

그리고 신약 참고 논문:

필자의 An Historical Study of the Evaluation

of the Nature of New Testament Language, 231pp.

(Philadelphia: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Library,

2nd floor. Dissertation/Theses Dept.

Library Call Number WM/1978/K.5/75450

 

) 구약: 히브리어, 구약개론, 구약개관, 구약사, 역사서, 구약선지서, 소선지서, 대선지서, 구약주해, 구약신학, 성경난제연구, 구약지리 등.

) 조직신학: 신론, 인죄론, 기독론, 구원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 교리사, 이단종파연구, 변증학, 현대신학, 칼빈의 기독교 강요, 신조학, 기독교 윤리학, 뉴에이지 신학, Postmodernism .

) 교회사: 초대교회사, 중세교회사, 종교개혁사, 근세교회사, 현대교회사, 미국장로교회사, 청교도신학, 스콧틀란드 장로교회사, 프랑스 장로교회사, 화란신학 등.

) 실천신학: 설교학, 설교실습, 예배학, 교회행정학, 교회음악, 상담학, 심방학, 교회성장학.

 

이상에 열거한 각 분야에 필수 혹은 참고가 될 도서 목록은 학교에 비치되어 있다. 증보판 (增補版) 서적목록을 개인적으로 받아보기 원하는 정규학생이나 청강생 혹은 일반 성도는 반신용 32 cents 짜리 우표 4개가 붙은 반신용 봉투지와 복사비를 동봉하면 받아 보게 된다. 서적 목록 (50, 1998년판) 은 약 2주후에 우송된다. 헌금하실 분은 M. Kim 이라 써서 다음 주소로 보내면 문서 선교와 카셋트 구입에 도음이 될것이다. M.Kim, 1220 W. 164th St. #1, Gardena, CA 90247 rvkim@yahoo.com

 

해마다 많은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서 미국 내 서적을 관리하면서 ISBN (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국제 표준 서적 번호)를 배정하기에 진땀을 흘리는 미국 의회 도서관 (Library of Congress) 직원들의 손을 잡아맨다. 책이 발간되면 반드시 미국 의회도서관의 ISBN을 배정 받아야 된다. 그리고 그 번호는 그 책의 표지 이면에 선명하게 인쇄되는데 이유는 많지만 그 책이 등록된 서적이란 의미도 있고, 또 도서관에서 그 책을 cataloging 하고 classifying 할 때 call number (호출번호, 呼出番號) 배정이 필요한데 Library Congress 에 그 책의 ISBN을 주면서 Card Catalogue를 주문하면 비단 call number 만이 아니라 그 책에 관한 모든 정보, 이를테면, 저자의 이름, 저자의 생년월일, 사망일, 그 책의 크기, page, 내용, 분류항목 등이 모두 인쇄되어 있다. 얼마나 편리한가? 도서관에서는 사서(司書, librarian) 가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절판 (絶版, out of print) 되었던 엣날 책을 복구하여 시로 출판하는 바람이 불고 있는데 그 중에는 Hermann ReimarusLeben Jesu (Life of Jesus) 같은 해독을 끼치는 책도 부활하여 개정판 (改正版)으로 재판(再版) 되어 자유주의 신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되는가 하면, Gustav Adolf DeissmannThe Bible Studies (원저, Die Bibelstudien) 같은 명저 (名著) 또는 Friedrich Farrar 교수의 The Life and Works of St. Paul (바울의 생애와 저서) 라는 reprint (再版) 되어 환영받기도 한다. Deissmann 의 책들은 그 가치가 인정되어 절판된지 1 세기가 지난 지금 미국의 유명 출판사인 Baker 출판사가 그의 모든 고전 (古典)들을 다시 출판하고 있다. 필자가 신학교에서 수학하던 시절, Westminster 신학교의 Montgomery 도서관 관장이었던 Dr. Arthur Kusche 가 만들어 주었던 도서 목록은 이미 너무 시대에 뒤떨어 졌고, 그후에도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교실에서 필자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나 혹은 신학에 관심을 둔 일반 형제 자매들에게 배포 (配布) 되는 서적목록 (List of Reference Works) 에는 최근에 출판된 개혁주의적인 서적들이 대량 수록 (收錄) 되었다. 하나님의 진리는 변치 않으나 땅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소리 지르는 부단한 고고학적인 발견들 (incessant archaeological discoveries) 이 성경에 많은 새로운 지식을 더해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 실례 (實例) 들 들자면, 1978SyriaHammath에서 발견되어 세상을 떠들석하게 한바 있는 Ebla Empire (에블라 왕국) 의 왕립도서관 (Royal Library of the Ebla Empire, c. 23 C, BC)를 들 수 있다.

 

IV. 마지막으로 영어 설교 실력 배양이다.

 

학생들은 3년 내지 4(M.Div.) 혹은 2(M.A.R.)의 학업을 마치면 모두 사역지에서 일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역지는 대부분의 경우 미국이다. 혹 해외에 나가는 이들도 있겠으나 대부분 미국에서 사역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또 해외에 나간다 해도 영어는 필수다. 그 나라 말을 익혀서 그 나라 말로 사역하면 얼마나 좋으려만, 남의 말을 배우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영어만 잘 익혀 놓으면 미국 내 사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어디를 가도 (프랑스는 제외,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만 해야 한다) 언어의 불편을 덜 겪는다.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민 1세 교회는 앞으로 얼마 못가서 문을 닫게 된다. 화란의 GKN(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화란 개혁 교단)에서 170년전에 분리되어 나온 (secession) CRCNA (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 라는 교단도 처음에는 화란어 (Dutch) 로 설교하며 예배드렸으나 30년 후에는 모국어를 잊어 버려 할 수 없이 영어에 동화되어 영어로 예배를 드린 실증(實證) 이 있다. 우리 주위에 있는 1.5. 2세들이 크면 그들이 출석하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일까? (그들이 교회에 계속 출석할는지 의문이지만) 그때를 미리 내다 보는 눈이 있어야한다. 그럴 때가 분명히 우리 앞에 닥아 온다. 그때 우리의 설 땅이 어디 인가? 벌써 교회에서 전도사를 구하는 조건은 영어하는 전도사이다. 영어실력이 없는 사역자는 앞으로 설 땅을 잃게 되어 자연 도태 (natural selection) 될 날이 온다. 영어를 배워야한다. 배우기 어렵고 귀찮아도 배워야 한다.

 

영어 라는 관문(關門)을 어떻게 정복해야 하는가? 필자가 북한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할 때 담당 이지원 선생님은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첩경(捷徑)은 그 언어로 일기(日記)를 쓰는 것이라라고 하셨고 선생님은 학생들의 일기를 친히 일일이 섬세하게 검사하시며 고쳐 주서서 어느 정도의 어학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먼 훗날 월남하여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불어를 부전공으로 공부하게 되었는데 같은 방범을 도입하여 불어 공부에 많은 덕을 본 기억이 있다. 영어를 배우려면 영어로 날마다 일기를 쓰라. 사건만 기록하지 말고 하루 생활에서 얻은 수상 (隨想)을 글로 적어 보라. 한 달 후에 놀라운 성과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필자의 은사 (恩師) 이지원 (李 趾源) 선생의 법칙이다. 북에 남아 계시는 은사님의 고마움을 잊을 길이 없으나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

 

영어를 공부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듣는 연습인데 우리는 모두 고등학교에서 문법위주의 교육을 받은 탓으로 영문법에는 모두 천재들이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말도 곧 잘한다. 그런데 듣는 힘은 부족하다. 다섯 문단 길이의 이야기를 녹음으로 들려주고 그 이야기의 내용을 묻는 것이 TOEFL (Test of English as Foreign Language) Comprehesion 부분의 test 이다. 어떻게 듣는 연습을 할 수 있는가? 그런 환경이 아니다. 동부에서는 영어만을 써야 하고 영어만을 들어야 하니 빨리 영어가 늘지만 서부는 사정이 다르다. 영어를 몰라도 생활에 아무 불편이 없다. 영어를 구태어 배우는데 시간을 보내기를 기피한다. 생활에 필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하는 학생이 가질 태도는 아니다.

 

영어의 듣기 연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영어 기독교 방송을 습관적으로 듣는 일이다. 건전한 신학을 가르치는 영어 방송이라면 그야 말로 금상첨화 (錦上添花) 가 아니겠는가? 일석이조 (一石二鳥) 의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방송국은 이 지방에서 Long Beach에서 송신 (送信, transmit) 되는 KFRN (AM 1280 KHz) 이다. 미국 동부에서는 Family Radio의 기관지인 Family Radio News에서 Listening Guide 항목을 참조할 것. 어느 방송이든 아나운서의 정확한 발음을 듣거나 또 방송 내용을 듣고 있노라면 sentence pattern을 공부하게 되어 쉽게 영어가 늘지만 가급적이면 KFRN 같은 전전한 개혁주의적 기독교 방송을 습관적으로 석달만 들으면 영어 청취력이 많이 향상된다. 다른 기독교 방송국도 있겠으나 그들의 신학은 불분명하다.

 

영어 공부의 세 번째 방법은 잡지를 읽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학습에 있어서 듣는 것 보다 읽는 데서 많은 진전이 있다는 연구 발표가 있다. 시각(視覺) 으로 공부한 것이 청각(聽覺)으로 공부한 것 보다 오래 동안 뇌리에 남는다는 이론 (理論) 이다. 그래서 학교마다 수업시간에 audio-visual aids (시청각교재)를 많이 이용한다. Reader's Digest 같은 쉬운 영문 잡지를 보는 것이다. 잡지의 종류가 많다. 너무 어려우면 싫증을 느껴 아주 포기 하게 된다. 그러므로 쉬운 잡지를 읽으라. 상식도 얻고, 영어 단어도 공부하고, 문장구성법도 익히게 되고, 무료 (無聊)함을 달래면서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다. 아득한 옛날 전쟁 때, 북진한 미군들의 Stars and Stripes 라는 신문을 보면서 문장의 구조나 영어 단어들을 닥치는 대로 익혀 둔 것이 훗날 남한으로 피난 와서 중학생으로 유엔군 총사령부의 방송국 (VUNC=Voice of the United Nations Command) 에서 Roving Reporter로 일하면서 고학할 때 많은 도움을 주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 체험이 있다. 영어의 관문은 난공불락이 아니다. 정복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지라.

 

보통 미국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영어 어휘 (語彙, vocabulary) 는 어느 정도일까? 요즘 이른바 “transformational grammar" 교수로 각광을 받는 MassachusettsCambridge에 있는 MIT (Massachus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의 언어학 교수 Noam Chomsky 박사에 의하면, 보통 미국 사람 (average American) 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영어 어휘 수는 300개 내지 500개 라고 한다. 이들은 이렇게 적은 단어에다 여러 가지 전치사 (前置詞, prepositions)를 붙여서 자기가 의도하는 온갖 의사 (意思)를 모두 표현한다. 신문을 읽으려면 1,500개의 단어가 필요하다. 그래서 도시 마다 Daily News 라는 일간지가 있어서 영어 어휘가 풍부하지 못한, 비교적 교육을 적게 받은 미국 사람들이 누구나 읽기 편하도록 쉬운 영어로 편집하여 배포한다. 영어에서 전치사 용법을 통달하면 대단한 실력가 이다. 다른 외국어에 비해서 영어는 전치사의 용법이나 단어의 발음이 어렵다. “on the air" ”in the air" 는 아주 다른 뜻을 갖고 있다. 또한 표기된 대로 읽지 않는다. 가령 indict, viscount, victual, aisle, salmon, palm 등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렵다. 그래서 1887년에 L. L. Zamenhof 박사는 Latin어를 기준으로 해서 소리 나는 대로 읽도록 새로운 인공 언어 (人工言語)를 고안(考案)했는데 그는 그 언어를 자기의 아호 (雅號, penname) Doktore Esperantus를 따서 에스페란토어 (Esperanto)" 라고 명명 (命名) 했다. 물론 EsperantoLatin 처럼 사장 (死藏) 된 언어 (an obsolete tongue) 이다.

 

영문으로 된 신학 서적을 자유로 읽으려면 300-400개 정도의 어휘로는 부족하다. Shakespeare15,000개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2,500 내지 3,000 단어를 알아야 한다. 이 말은 그 단어의 제1의미 (primary sense) 와 둘째 의미 (secondary sense) 그리고 세 번째 의미 (tertiary sense) 까지 숙달된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영문 신학 서적을 읽다 보면 가끔 학자들의 현학적 (衒學的, pedantic taste) 냄새가 나는데 그것은 Latin 어가 가끔 튀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Latin어는 극히 그 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옆에 Latin어 사전을 갖고 있으면 쉽게 해결되고 또 책을 많이 읽다보면 그 Latin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게 되어 별 문제가 없게 된다. 영문 서적을 많이 보면 sentence pattern (문장 구조)를 알게 되어 영어로 설교하거나 성경공부를 인도하는데 도움을 상당히 준다. 그래서 영어로 설교 하고 영어로 성경을 가르칠 수 있도록 신학교 3년 혹은 4년 과정에서 많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 힘들어도 해내야 한다. 주의 나라를 위하여.

 

신학교는 한국이나 미국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우수한 신학교는 참으로 적다. 특히 미국에 있는 한국 신학교는 더욱 그러하다. 명색뿐이오 실속이 없다. 많은 학교가 공부를 충분히 시키지도 않으며 그런 풍토 속에 학생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신학교 졸업할 때까지 성경을 한 번도 완독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교과서를 한 권도 구입하지 않고 적당히 시간을 보낸 후 졸업한 학생들도 있다. 어느 학교에나 그런 학생들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미국의 남부나 서부에서는 미국 사람들이 경영한다는 신학교도 사이비 (似而非) 신학교가 너무 많아 학위가 남발 (濫發)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교리가 흔들리고 이상한 사이비 종파가 많이 발생한다. 로스앤젤레스만큼 이단들이 많은 곳이 또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책망을 받게 된다. 주의 종으로 일하고 주님에게 책망을 받으면 얼마나 수치스러운가? 그런 사람은 차라리 신학을 공부하지 말았어야 하며 성직자가 되지 말아야 했을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일반 성도들은 말씀을 바로 배우지 못한다. 신복음주의. 세대주의, 신비주의, 종교다원주의 등에 빠져 들게 된다. 신학생은 책임을 통감해야 하며 아무나 신학생이 되면 안 된다. 소명 받은 사람, 인격이 구비된 사람만이 신학을 해야 한다. 그래야 바른 인격으로, 바른 신학으로 바른 사역을 할 수 있다.

 

많은 신학도가 현재 여러 선지 동산에서 공부하고 있고. 또한 매년 수천 명의 소명 자들이 부픈 가슴으로 교문을 나선다. 그러나 소명감뿐이오 실력 있는 졸업생은 적다. 소명감 있는 학생은 실력이 없고, 실력이 있는 학생은 소명감이 없이 개인의 명성 (good reputation) 만을 추구하는 폐단(弊端)이 두들어진다. 소명과 실력 증 두 가지 자질 (資質)을 모두 갖춘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지만 그런 사람은 극히 드물다. 모두 자기 나름대로 일할 주님의 포도원으로 나선다. 농군은 농사를 알아야한다. 농사의 지식이 있고, 연장이 좋으면 일에 능률을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좋은 연장을 가진 농군은 할 일이 너무 많다. 개간할 황무지가 얼마나 많은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학교 3년 또는 4년을 (대개 4년에 마친다) 공부하고도 준비 없이 교문을 나서는 사명 자가 설 땅이 점 점 좁아지고 있는 것을 아는가?

 

이 글의 제목을 OU POLL' ALLA POLU (Not Quantity But Quality) 양보다 질이라고 잡았다. 또 신학을 지망하는 분들에게 라고 제목을 잡아도 좋다. 기드온에게는 2만 명 3만 명의 쓸모없는 군사가 필요 없었다. 단지 정신이 바로 박힌 300명만이 필요했다. 수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양() 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나 질 () 좋은가 가 문제 이다. 이제 양()은 포화 상태 (飽和狀態)에 이르렀다, 실력 있는 자가 이기는 때가 반드시 올 것이고 또 와야 한다. 실력 없는 사이비 목회자들이 물러갈 때가 올 것이고 또 그런 때가 반드시 와야 한다. 21세기에 들어선 현시점 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바는 확실히 양() 이 아니라 질()인 것이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에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 소감을 피력해 보았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남달리 넘치는 사랑과 축복 속에 주의 종이 되는 특권을 허락하셨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그 은혜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연약한 나를 주의 일꾼 삼으신 만왕의 왕, (King of kings), 만주의 주 (Lord of lords),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다시 오시는 주님과 그의 영원한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자. 주님의 낯을 뵈올 영광의 그날 까지. 추수할 것은 참으로 많다. 참다운 일꾼은 아주 적다. 신실한 주의 종이 필요한 때이다. Solo Pro Regno Christi !

 

 

튤립 신학 연구원

김 명 도 목사

www.tulipministries.com

rvkim@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