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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홍전 신학 - 리종연 목사

Bavinck Byeon 2015. 1. 10. 01:01

김 홍전 신학 [1]

 

리종연 목사

 

 

김 홍전 박사가 땅 위에서 일을 마친 지 어느 덧 열 해가 다가온다. 이 참에 김 박사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다루어보려는데 때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첫 걸음을 내딛어서 누군가 손댈 김 홍전 신학에 작은 길잡이 구실이라도 하고 싶다.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에게 어느 한 때에 진리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내려주지 않지만 그래도 배달겨레에게 주신 교회의 교사 가운데 큰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동안 사귐을 전제로 역사적 개혁교리와 개혁교회의 처지에서 간단하게 다루어보려고 한다. 어줍지 않게 볼 사람도 있을 지 모르나 확신 가운데 객관의 내용을 근거로 살펴보려고 한다.

 

논문 형식은 아니라도 뒷날 김 홍전 신학을 통해 진리의 중요한 것을 계승받도록 하는 일에 도움을 드리려고 적어본다. 돌아보면 서울에 있는 '성약교회' 를 통하여 성경공부반과 교회예배 강설을 통하여 말씀선포한 내용들과 교회를 이루어온 것을 토대로 전체를 디벼보려고 한다. 이런 일을 그 교회 권속이 더 잘 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 않기에 멀리서 가까이서 누구보다 김 박사랑 사귄 사람으로 분명한 사실을 드러내려고 한다. 지금 성약교회는 이름 뿐이지 김 박사가 섬긴 교회와 여러 모로 다른 교회임을 일러둔다. 제가 알고 살펴본 결과 현재 그렇다는 말이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어떤 동아리에서는 김 박사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교단을 만들기도 한다. 직접 간접으로 그러하다. 좋은 일로 보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아닌 것을 보고 김 박사의 가르침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단지 지금 남아있는 가르침들을 정리하는 정도로 김 박사를 평가하기 쉽지 않으리라. 정리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 지 먼저 깊이 고려해야만 한다. 자칫 이름을 팔아먹기 십상이고 왜곡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에 조십스럽다. 교회관을 생각해 보아도 단박에 드러난다. 더우기 지금 교단을 형성한 몇몇 단체들을 보면 긍정의 부분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보이기에 나름대로 손대려고 한다.

 

우리나라 교계와 신학계가 어지러운 때 김 박사가 그리워진다. 깔뱅 사후에 이른바 수제자 격이라는 베자를 보면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 더 발전시킨 부분도 있지만 전체로 보면 깔뱅의 가르침을 성경관에서 부터 교리의 중요한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그것이 오늘날 개혁신학에 까지 영향을 미치니 작은 문제가 아니다. 해서 김 홍전 신학을 얼마 뒤에 여러 사람이 서술할 지 모르나 저도 분명하게 알고 깨달은 대로 정리하여 우리나라 개혁교회의 앞날에 작은 불빛이라도 비추고 싶다. 성약교회가 가르침을 잘 견지하고 발전해 가기를 바랐지만 마지막에 아쉬움을 타산지석 삼으면서 있는 대로 적어나가고 싶다.

 

김 박사가 남긴 기록들에 대한 권한을 저에게 주지 않았기에 일정한 한계 가운데 적을 뿐이니 조심스럽지만 신앙고백의 한 표현으로 다가서니 잘 이해하기 바란다. 깔뱅이 가르침을 부흥 시킨 사람들 가운데 유럽 쪽에서 아브라함 카위퍼를 손꼽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단연코 김 홍전이다. 그래서 저는 김 홍전을 '우리나라의 아브라함 카위퍼' 라고 이미 1980년에 내심 평가했다. 카위퍼랑 김 홍전은 닮은 점도 많고 교회 위한 신학을 전개한 점에서 그리고 권능의 왕국에 대한 관점에서 너무도 비슷하다. 아직 카위퍼에 대한 마땅한 평가도 되지 않았기에 김 홍전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로 본다.

 

김 홍전을 말할 때 코끼리 다리 만지 듯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어깨 넘어 구경한 사람부터 수박 겉핥 듯 하고 제 소리인 것 처럼 써먹기도 하고, 극단으로 이해하여 그 이름을 먹칠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그 폭넓고 호방한 사상과 지식, 인생력정과 국가관 같은 것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부분을 뽑아서 써먹기에 바쁘니 자칫 노른 자위에 다다르지 못하도록 막는 구실도 하는 지 모른다. 보기 들어서 '성신' 이라는 말을 쓰는데 덩달아 성신 이라고 무작정 흉내내면서 특별 동아리인 양 설치는 경우를 보면 참으로 아쉽다. 김 홍전 신학은 도무지 그렇지 않다.

 

이왕 말 나온 김에 덧붙인다면 김 박사는 언어의 감각이 남다른 사람이다. 고전어 부터 한자와 외국어를 물론이고 땅불쑥하니 배달말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러나보니 깨달은 도리를 우리 배달겨레에게 풀어내려니 한자말투를 새롭게 만들어 쓰시는 것부터 해서 살아있는 좋은 배달말을 많이 쓴다. 게다가 교리나 신학용어에 해당하는 어휘를 만들어 쓴다.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 만한 신학과 품격, 교회에 대한 열망 가운데 낱말로 가다듬어 쓴 것이기에 그런 것을 함양하지 않은 사람이 말이나 흉내낸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증시' 라는 말도 즐겨 사용했다. 이런 어휘도 이해하려면 만만치 않다!

 

녹음한 강설을 풀어서 편집하여 출판한 책이 현재 100권을 향한다. 참 귀하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편집기획이나 교정교열을 보면 처음 부터 안타까움을 느낀다. 더우기 김 홍전의 체취와 신앙고백이 담긴 특유의 말투를 제멋대로 가감하거나 본문을 흐리게하는 군더더기 덧칠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말과 글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차라리 성약교회 초기교우들이 지금은 대부분 고인들이 됐지만 몇몇 아낙네들이 서취한 그 정성과 사명의 표현은 너무도 아름답고 힘차고 고결하다! 요즘은 이러저러 사람 글도 출판하니 김 홍전 신학을 제대로 받기에 만만치 않다! 운영 때문에 그럴까? 발전했다는 뜻일까?

 

김 박사의 강설을 위해 만든 '도서출판 성약' 에서 이름 바꾼 '성약출판사' 에 이르는 오늘 그 초기 과정을 말하고 싶다. 어느 출판사를 꼬집으려는 것이 아니고 김 홍전 신학에 관련한 부분이기에 성령님이 잘 쓰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짚어보는 것이다. 김 홍전은 이미 개인이 아니고 더우기 개교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로 그를 통한 신학을 살피는 것은 마땅하다. 그래서 사실주의에 입각해서 그려나가려고 한다. 우리가 그 신학을 더 잘 이어받고 잘 간직하여 발전 시켜 다음 세대에 잘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끄시는 대로 김 홍전 신학의 바른 정립을 위해 때로는 야사 같은 것도 넣으려고 한다.

 

김 박사의 서책으로는 출판한 책으로 이름난 것이 "복음이란 무엇인가?" 이다. 성약교회 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 일본에서 강설한 내용을 근 십년 만에 낸 책이다. 1973년이니 어느덧 36년이 지났다. 그리고 여섯 해쯤 지나 전주에서 특강한 내용을 정리하여 1980년에 출판한 "신앙의 도리" 가 있다. 제가 김 박사의 신학을 처음 접한 때가 1979년이다. 몇 해 앞서 박 윤선과 쟝 깔뱅을 만난 터 위에서 김 홍전을 만남과 이 책 두 권은 목마름과 애탐에 대한 소낙비 같았다. 해서 이 두 가지 책을 수소문하여 많은 형제들에게 주기고 하고 읽도록 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는 그나마 동나서 구하지 못 했다.

 

그때만 해도 기독교 출판 풍토란 볼품이 없었다. 그래서 그 책을 복사하여 신학동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오직 바른 신앙으로 무장하여 바른 신학을 하여 교회를 바로 섬기도록 하려는 일념으로 했다. 이런 일에도 어떤 극단의 사람이 고자질하여 우스운 일을 겪기도 했다. 하나님이 증인이시다. 그러다 보니 성약교회에서 두 권을 찾는 일이 잦아지자 마침내 직접 출판하기로 뜻을 모르게 되었다. 이 때가 1984년 말쯤이다. 제가 소개한 선배 한 사람이 그 교회에 출석하다 마침 이 일에 전담하게 되었다. 그때 박 윤선 주석을 내는 영음사와 잘 알았기에 그 선배는 출판의 노하우를 전반에 걸쳐 전수받았다. 그래서 도서출판 성약은 빨리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알고 그 선배와 제가 안다. 우스운 소리로 그 출판사의 산파역은 저와 그 선배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 뒤에 벌어지는 몇 차례 일들은 나중에 때가 되면 밝히리라. 그런데 김 박사의 저작은 출판은 되지 않았어도 철필로 긁어서 낸 것이 여러 권 있다. 성경개론, 사도행전 공부, 4복음대조, 창세기 공부, 누가복음 공부 같은 것과 성경내용을 그림들로 정리한 것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김 박사의 신학이 쉰 살쯤 부터 교회를 시작했는데 그전 부터 가족들에게 가르치려고 준비한 것들인데 나중에 교회에서 강설할 때 강설내용의 골격을 형성했다. 참 중요한 방식이라고 본다. 성경전체에 대한 자세한 앎과 이해에 당시 개혁신학의 정수를 접목시켜 척박하고 어두운, 민도가 낮은 배달겨레에게 30여년을 가르친 것이다. 지금도 그 내용들은 만만치 않다. 그러니 누가 김 박사를 제대로 알고 이해했겠는가?

 

초기 복사물과 초기 두 권의 저작을 하나님은 받으셔서 오늘날 100권에 이르는 많은 것을 드러내게 하셨다. 하지만 제가 보기로는 정작 중요한 주제의 가르침들을 어서 출판해야 하는데 미루는 것인지, 자료가 망실한 것인지, 출판을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판단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더우기 방대한 찬송의 출판은 더더욱 마음을 조리게 한다. 김홍전 신학에서 예배와 찬송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비록 그가 교회정치와 예배모범 방면을 문서로 정립하지 못했지만 먼저 그의 가르침을 알아야 예배와 찬송에 대해 바르게 받아들인다. 시편찬송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면에 시편찬송보다 한 걸음 더 내디딘 면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의 시대에서 교회정치와 예배모범까지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듯하다. 당대 개인과 맡은 교회에는 은혜를 주셨지만 말이다.

 

그래서 김홍전 박사의 강설을 제대로 보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고, 지금 말한 출판 전후의 사정도 큰 몫을 차지한다. 출판사 운영과 교회의 지지에도 개혁을 해야하는데 제가 보기에 여러 오목볼록이 존재한다. 아쉽다. 교회가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 방면보다 강설 서책을 어떻게 보아야 하고 어떻게 처례를 선별해야 할 것인지는 김홍전 신학을 이해하는 첩경이리라.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말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깨닫게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기에 자칫 인의 장막에 가려서 변질시킨 김홍전 신학으로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김 박사 개인의 신앙고백이 찬송의 열매로 나타난 점이다. 이것은 개혁신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김 홍전 신학 [2]

 

 

김홍전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한 때에 태어나고 6.25를 거친 한살매이기에 성령님의 이끄심이 독특하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그렇게 만드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개혁교회의 보편한 사명의 한 축을 위하여 기묘한 이끄심 이었다. 신학과 찬송을 정립하기까지 여러 일들은 때로는 인본주의 같이 보이기도 하고, 동족은 죽어가는데 동남아를 비롯해 편안하게 나라 주위에서 맴돈 듯해도 거룩한 도리를 해명하도록 섭리하셨다. 그런 만큼 그의 가르침을 받는 자의 처지도 마찬가지이다. 진리를 써먹으려고 한다든가, 혼자 으뜸으로 깨달은 것 처럼 착각하여 김 박사의 사상을 오도한다든가, 아무런 의식도 없이 교회 개혁을 등한히 여기고 타협한다면 그 가르침에 충돌하여 스스로 자멸할 지도 모를 일이다.

 

강설 할 때 뛰어난 기억력 뿐아니라 신학 전반에 걸친 깊은 사색과 사관을 비롯한 문화 전반에 특히 예술적 감각으로 독특한 강설을 했다. 그래서 성경구절만 적어서 강단에 섰고 때로는 간단한 메모 몇 자를 적기도 했지만 대개 본문만 생각하여 강설 전체를 그려 놓고 자유롭게 적은 무리에게 아낙네에게 주로 가르쳤다. 수없이 많은 귀동냥꾼들이 드나들었지만 극소수만 그 가르침에 매달렸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연속하는 강설을 많이 했는데 그것 모두 원고 없이, 뜻없는 반복없이 이어나간 사실이다. 중생론이라든가 죄론 같은 것만 해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설인데 놀랍다. 준비도 준비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고결하고도 거룩한 사랑과 일편단심 개혁의 자세가 뒤따랐음을 잊지 마시라.

 

무작정 책을 사서 본다거나 강설 테이프를 마냥 듣는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지적 호기심과 강설에 대한 권리를 생각 없이 쥐고 있노라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되리라. 제가 소개한 사람도 무수히 성약교회를 거쳤고 서책을 보았건만 그 교회들에 남은 자 많지 않고, 있다 해도 치우친 신앙으로 안타까움을 주는 형제들도 보인다. 이미 말했지만 김 홍전 신학을 근거로 교회를 더욱 개혁으로 이끄는 교회는 지금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 더우기 김 홍전 신학을 아직 정리하지도 않았는데 그 이름에 누가 되는 경향을 보이는 무리도 보이는데 안타깝다. 개혁신학사의 장구하고 웅혼함을 맛본 사람이라면 그리 호들갑떨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김 홍전 신학의 핵심을 알고 서책을 통해 나타난 가르침을 주의하여 잘 받으면 된다.

 

말이 때로 거칠어지는 지 모르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커서 함께 조심하고 사명감을 자각하자는 취지이다. 감홍전 신학의 어느 한 면을 아전인수로 받아서 지나치게 강조하면 흠이 된다. 이를테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마련하여 나온 성경연구의 결과이기에 이것을 마련하지 않으면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소화하기 쉽지 않으리라. 게다가 한학과 영어, 문학과 철학, 예술에 뛰어나고 모든 분야에 끝없이 정진했기에 이런 부분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경우를 흔히 본다. 따르는 무리 가운데 율법에 대한 이해라든가, 안식일과 주일 문제라든가, 교회정치제도 같은 것도 보면, 제가 알기고 분명 김 박사와 다른데 그 계열이라고 할 때 놀랍다. 신학은 신앙고백이기에 삶의 구석구석에서 나타난다. 그 바람에 고통 받은 많은 형제들이 있음도 잊지 마시라. 감 박사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성경개론 이라는 책에서 그의 성경관을 본다. 성경과 기도에 얼마나 정진했는지 열매가 보여준다. 겉보기에는 56년 전에 기록한 것이라 내용도 간단하다고 느낄 지 모르나, 그 안에 배어있는 사상은 더욱 갈고 닦아 성령님이 크게 써주신 것이다. 다시말하면 성경관의 일단을 보여주는 글이다. 우리가 '복음이란 무엇인가' 를 대단하게 평가할 지 모르지만, 성경개론 같은 책 하나라도 보면 모든 가르침들이 이어지기에 같은 심정을 갖도록 한다. 어느 부분에 치우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끼리끼리 모여서 자화자찬 한다면 우스꽝스럽다. 게다가 문자나 좀 쓴다면서 외국 교회를 기웃거린다면 김 박사의 사상에서 멀어지리라. 조심할 일이다! 왜 사람으로서 자기가 하려고 할까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자기도 써먹는 주제에 다른이에게 왜 그리 까다롭게 굴까? 김 박사는 도무지 그런 분이 아니었다.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았다면,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신령한 자태를 풍긴다!

 

김 박사의 강설은 먼저 성경전체에 대한 흐름을 간추린 글을 메모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연속하여 주제이던 교리이던 성경이던 강설한다. 미리미리 아무런 마련도 없이 해대는 가르침이 아니다. 깔뱅 선생을 보아도 성경에 얼마나 정통했는 지 아는 사람은 안다. 그래서 한살매 가르칠 성경과 교리 내용을 먼저 정리해 두지 않으면 삯꾼으로 전락하기 쉽다. 다른이 것을 베끼거나 다른이를 흉내내다 볼장 다 볼 것이다. 성경과 교리의 전체와 구석구석을 부단히 연마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선포를 하게 된다. 참 조심해야만 한다. 말쟁이들 가운데는 성경에서 검증되지 않은 공식 몇 개를 만들어 성경을 단순화 시켜 혹세무민한다. 게으름과 무지의 소치이리라. 김 박사 강설도 겉모양만 따라서 베끼고 각색하고 흉내내는 경우들이 많은데 진리의 도둑들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김 박사는 일반학문에 충만하고, 원문에 정통하고, 교리체계에 일가견을 지니고 성경전체에 대한 바른 이해를 깔고 강설했다. 이런 준비를 한 사람이라야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소화한다. 이곳이 객관으로 검증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왜곡하게 된다, 사실 이런 위험을 지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성경과 교리의 이해를 전제로 깊은 사색과 거룩한 전투를 통해 체득한 사실로써 강설은 풍요롭고 신령해진다. 이 면에서 아직도 그의 강설을 제대로 소화한 사람은 없는 지도 모른다. 이 점을 분명히 상기하시라! 교회를 섬김이랑 대인관계나 품성이 이것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의 이름을 빙자하여 그럴싸한 듯 교회를 만들거나 가르친다고 설칠 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아직 제 눈에 그런 사람이나 교회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서 그분의 신학과 신앙이 담긴 모든 글들이 액면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

 

김 박사의 낱말이나 논리 따위를 입술로만 흉내낸다고 같은 것이 아니다! 강설집만 해도 뒤에 몇몇 따른다는 자들이 지나치게 가로막았는데 그 까닭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진리를 꼭꼭 숨겨서 무엇한단 말인가? 김 박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특수한 사람 몇몇이 진리를 독점하는 인상을 준다. 진리를 그렇게 해서 반듯하게 전해지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김 박사의 가르침이 전무후무하단 말인가? 그렇게 이해한다면 오산이고 위험하다. 하긴 가까이 있는 사람이 진리를 제대로 알기란 언제고 어렵다! 몇몇은 다른 교회에는 진리가 없거나 변변치 않은 것으로 착각하는데 한심하다. 이런 짓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김 박사는 많은 오해를 받는다. 성경은 하나님 것이고 성경의 스승은 오직 성령님이시다. 김 박사 만큼 학문과 인격과 신앙자세를 견지해야 강설을 제대로 받을텐데 몇이나 될까? 하나도 없으리라!

 

출판된 책을 보더라도 처음 부터 강설 전체를 놓고 어떻게 무엇부터 출판할 것인지 생각은 해왔을지라도 부분 기획이지 전체의 안목이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여러 사람 글을 출판하는 바람에 헷갈리게 한다. 아쉽고도 안타깝다. 아무튼 진리를 계승하는 일은 쉽지 않다. 깔뱅의 글도 이미 많이 나왔지만 그것을 제대로 소화하여 깨닫고 그런 고백으로 든든히 서가는 일이 얼마나 드는가? 아직 교회사 차원에서 성령님의 검증이 되지 않은 김 박사의 강설인지라 조심스럽다. 보기 들어 깔뱅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김 박사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로 알기 어렵다! 이런 면도 놓치면 안 된다. 뭐니뭐니 해도 교회를 그렇게 이루어가는가에서 결정난다. 아쉽게도 교회정치 방면에서 문서를 남기지 못했기에 조심스럽다. 섣불리 한 쪽 가르침을 갖다가 단정짓는다면 어찌 되려나?

 

지나는 길에 안타까운 일은 호남 쪽은 겉보기에 김 박사 가르침을 많이 따르는 듯하고 영남 쪽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이한 일이다.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김 박사의 강설을 통체로 받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 쪽의 기질로 한 쪽의 문화로 쏠려서 왜곡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제 말을 오해 없기 바란다. 같은 개혁신학이라도 표현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진리의 독점은 늘 위험하다. 복음진리가 그렇게 좁은 것이 아니다. 따르는 무리가 당대를 볼 때 적은 것 처럼 보일 뿐이다. 아직 우리나라 수준은 김 박사 신학을 받아들일 상태가 안 된다. 누구보다 잘 깨닫고 있다고 자처한다면 조심하시라. 이미 말한 대로 김 박사가 객관으로 마련한 바탕과 연장들을 힘입지 않고는 어림도 없다! 깔뱅을 오해하는 까닭도 바로 이런 문제이다. 눈에 보이는 글자만 읽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김 홍전 신학 [3]

 

 

김 박사는 경신학교 42년 선배이다. 언더우드가 설립한 학교인데 아무래도 미국선교사들에게 영어를 배운 것이 바른 책을 보는데 도움이 됐으리라. 신학여정을 보면 세대주의 서적이라든가 섭렵하다 개혁신학에 속한 글을 깊이 접한 것으로 보인다. 구 프린스톤 계열 신학자의 글과 화란 신학자의 글을 섭렵했다. 독특한 기억력과 사색력으로 게할더스 보스나 하쥐 부자의 글을 그들보다 더 깊이 꿰뚫어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미 좌경화된 미국 장로교 신학에서 보수신앙을 견지하면서 개혁신학을 전수받았으니 성령님이 하신 일이다. 교회를 세운 지 10년 만에 그만 두고 카나다로 갔지만 교우들이 다시 초청하여 10여년 오가면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때 몇몇 젊은이들이 그 강설을 받고 오늘 그나마 미미하게 이어지게 된다.

 

78년 이후 다시 우리나라를 오갈 당시 1979년부터 직접 강설을 듣기도 하고 만나기도 했다. 찬송이 저를 사로잡았다. 그토록 찾던 찬송을 드리게 되니 정말 그때 마음은 그지없다. 당시 책으로 출판하기 전이었기에 다른 형제를 통해 책을 빌려 복사해서 불렀다. 요셉과 마리아 신앙을 들었을 때 도무지 들어보지 못한 강설이었기에 반신반의 하기도 했다. 뒤에 원문과 교리를 배우게 되고나서 그 가르침을 깊이있게 체득해나가게 되었다. 수요일에는 최낙재 목사와 다른 몇몇 신학생들도 와서 배우는 것을 보았다. 진리는 성령님이 주장하사 적시에 사람을 통해 이어나가심을 생각한다. 그러니 어느 개인을 높여본들 무슨 뜻이 있겠는가? 제대로 이어받았는지 언제나 살펴보아야 한다. 김 박사는 루이스 벌콥의 조직신학도 섭렵하여 소화하여 가르치기도 했다.

 

김 박사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정리하여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당시 원로들이 그러하듯 시대상의 영향을 지나칠 수 없다. 그런데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개혁교회를 홀로 세워오도록 하나님이 이끄신 것은 섭리이다. 그 큰 진리를, 검증된 객관의 도리를 교회를 통해 강설로써 이어지게 하셨다. 그 교회를 끝까지 지킨, 이름 없이 빛 없이 섬긴 아낙네들 몇몇 사람이야말로 주님을 섬긴 아낙네들 처럼 보인다. 그 많은 물질로 강설에 필요한 모든 것을 섬겼다. 이것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리고 아낙네 성도들은 인텔리켄차들이어서 그 많은 강설들을 당시 좋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고 또한 풀었다. 그리고 출판했다. 이것을 보면 김 홍전은 아무 자랑할 것이 없다. 하나님이 그렇게 이끄신 것이기에 복된 것이다. 그러니 어찌 타협하고 변질할 수 있었겠는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성약 교회에 얽힌 이모저모도 아는 대로 밝히고 싶다. 김 박사는 기초 도리부터 깊은 도리 까지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되풀이하여 가르쳤다. 처음 온 교우들 까닭도 있지만 기초도리의 중요함을 힘준 것이리라. 지난 교안을 보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같은 주제라 해도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도리를 해명했다. 중생론 신앙론 신국론 성령론 어는 것을 보아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신은 그 교회로 하여금 이렇게 일하도록 하셨다. 어떤이들은 김 박사의 강설을 이용하여 신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원 자료를 소개나 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단박에 신학생들에게 말씀을 깊게 가르친다고 인기를 끌었는지 모르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래서도 진리는 밝게 나타나야 한다. 혼자 배워서 써먹으려는 짓은 한심하다. 나누고 또 나누어야 한다.

 

김 홍전의 강설을 보면 성경원문에 대한 이해와 교리체계 전체를 아우르면서 성경강해이건 교리주제이건 얼마든지 연속하여 강설한다. 이것은 독특하기도 하지만 마땅한 방식이리라. 성경원문과 개혁교리를 마련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오히려 김 박사의 가르침을 왜곡하기 십상이다! 지금도 김 박사의 유지를 받들어 교회를 이루며 가르치는 이들 가운데 이런 준비의 객관적 증거도 없이 설치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고 두렵다. 진리의 세계를 다스리시는 성령님을 생각하면 두렵다. 그럴 수록 저는 깔뱅 스승에게로 더욱 달려간다. 원문과 교리로 달려간다. 박 윤선 박사의 진실함과 소박함을 바라본다! 신학계와 목사계에서 물질에 박 박사만큼 깨끗하고 호방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나쁨의 뿌리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김 박사는 한학부터 음악에 이르기 까지 두루 공부했지만 다른 나라에 눌려서 사대주의 근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80년대 초 어느 땐가 라디오 방송에서 롸빈슨의 '신에게 솔직히' 에 관한 어느 자유주의 신학자의 내한 강연을 듣고 비판한 강설이 생각난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작은 교회의 골방에서 당대의 흐름을 주시하면서 거룩한 도리를 하나님 백성에게 해명한 것이다. 요즘 보면 몇몇 동아리에서 카나다니 호주니 네덜란드니 하면서 사대주의 근성을 드러내는 일을 벌이는데 한심하다. 언제 까지 수입 신학을 하려는지... 언어를 배워서 도서관에서 잠자는 거룩한 선진들의 도리들을 공부하면 될텐데 근본은 갖출 생각은 하지 않고 이미 한물간 다른 나라 개혁주의를 당겨보려고 우쭐거리면서 낑낑거리니 안타깝다!

 

김 홍전 신학의 핵심은 계시관이다. 그리고 교회관 까지 수립하도록 하나님은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 이 점은 숙제거리이다. 너무 단박에 결론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주제넘는다고 볼지 모르나 사실이 그렇다. 교회관에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아니나 미숙한 부분이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는 아니다. 성경관을 분명히 하고서야 김 박사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구원의 도리를 중심으로 복음을 명쾌하게 가르친다. 칭의와 중생, 성화에 대한 가르침은 백미이다. 이렇게 성령님의 사역을 벌써 40여년 전에 가르쳤으니 우리나라 교회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섭리이다. 복음에서 교회로, 나아가 신국의 도리를 줄기로 강설했다. 이런 흐름을 성경전체를 통하여, 교리전체를 통하여 여러 가지로 유감 없이 드러냈다.

 

가장 큰 강점은 구약에도 깊은 이해를 지닌다. 이를테면 계시론에 이어 마귀론을 여러 차례 강설했는데 개혁신학사에서 이 분야를 누가 이렇게 드러냈을까? 참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신 그릇이다. 어떤 이는 지적 호기심과 욕심으로 강설집들을 수집하기도 하는데 아무 것도 아니다. 김 홍전 신학의 핵심과 전개방식을 간파하면 그 다음 몫은 저마다 세워나가야만 한다. 물론 섣불리 간파하지도 못했는데 그런 척 한다면 말이 다르지만 말이다. 구약과 신약을 한 통으로 꿰고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은 아직 없는 것으로 본다. 그런 면에서도 저마다 조심스레 살펴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중요한 강설들이 많이 나와야 하기에 때이른 속단은 금물이다. 한쪽 귀퉁이를 맛보고 김 홍전 신학을 논하거나 어떤 이를 지나치게 평가하여 김 홍전 신학을 계승할 만 하다고 내세움도 아직 걸맞지 않다.

 

큰 가르침의 하나는 거짓 선생들에 대한 태도이다. 젊은날 6.25 뒤에 이곳저곳에서 불꽃 튀기던 모습도 교회를 세우면서 유유하게 흘러가는 강설을 통하여 듣는이를 붙여주셨기에 주간에도 몇 날씩 날잡아 많은 내용을 가르친 것을 알아야 한다. 어느 해 수요일인가 '화있을찐저' 를 세 차례 강설할 때 기도 가운데 이 진리를 듣지 못하거나 왜곡하느니 없애달라고 했다. 출판하기 전 일인데 무서운 기도였다. 그러기에 우물쭈물거리는 이라면 아직 이 도리에 껍데기만 맛본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게다가 품격이 모자란다면 역시 멀었다. 어느덧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는데 출판은 되었지만 제대로 소개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저마다 많이 올바로 깨달았다고 자랑하겠지만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듣는 이가 어떤 그릇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아무리 김 박사의 가르침을 내세운다고 해도 제대로 소화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저마다 부르심의 은사를 따라서 말씀을 선포해나가야 한다. 그러니 산 넘어 산이로다. 왜 아직 우리나라에서 김홍전 신학이 방방곡곡 드러내지 못하는지 아쉽다. 기득권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문제이리라.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오히려 삼킨다는 말씀 처럼 이미 성약교회를 통해 강설한 것이기에 지난 일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교회를 세우사 말씀선포를 통하여 당대를 호령하고 다음 세대를 내다보게 하신다. 서두에 언급한 것 처럼 지금 성약교회는 김 박사 시절과 다르다. 더욱 발전 계승의 처지라면 좋으나 그렇지 않다.

 

 

 

[출처] 김 홍전 신학 - 리종연 |작성자 주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