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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신학교를 생각하면서 - 리종연 목사

Bavinck Byeon 2015. 1. 10. 09:05

바른 신학교를 생각하면서[1]

 

리종연 목사

 

 

저마다 하나님을 앞세우면서 신학교를 세운다. 운영자나 교수자나 신학도 라면 모두 그러하리라. 게다가 '은혜', '사명' 따위를 내세우면서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하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니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무엇인지 모르고 날뛴다. '임자님, 얼투 이 시간에 그대는 그 이스라엘의 그 나라를 되돌리십니까?' 하늘로 가심을 바로 앞둔 때 제자들이 캐묻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이런 정도로 알았으니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사탄은 큰 속임으로 지금 온 누리를 휘어잡는다. 신학교도 그 울타리 안에 놓여있으니 어찌할꼬? 신학교 란 무엇인가? 성경사와 교회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주장해오실까? 땅불쑥하니 우리나라 상태를 보면 너무도 혹세무민이라. 기독교 아닌, 정말 이상한 일이 버젓이 이루어진다.

 

진리를 가장한 돈벌이와 우쭐거림, 떵떵거림 따위를 품고 신학교를 한단다. 그리스도가 낮아지심을 거듭난 사람으로서 조금이라도 배워 알고 믿고 잊지 않는다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모습이다. 신학교 경영의 모든 구석구석을 보라!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하는 모습들일까? 이미 성경 안에서 가르치셨고 예언하신 것이라 새삼스럽지 않지만 해도 너무 한다. 교권주의, 물량주의, 파당주의, 온갖 인본주의를 전가의 보도 처럼 여긴다. 그러니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수준이란 알만하다. 바른 소리에는 귀를 틀어막고 달려들 기세이니 무슨 말 하리요? 신학교가 무엇이길래 개나 소나 다 달려든단 말인가? 이건 아니다. 세계의 신학교 현상을 보면 너무도 확연한데 큰 속임에 눈멀고 귀머거리로 전락하여 로마 카톨릭보다 더한 어둠과 알지 못함과 독재가 주름잡는다.

 

더우기 깔뱅을 내세우고, 개혁을 내세우는 동아리들 사정은 더욱 교묘하다! 회칠한 무덤도 보이고 겉꾸밈은 마루로 치닫는다. 게다가 그 안에도 파당들이 쥐어틀고 있어서 함부로 범접하지 못 한다. 조무래기들을 앞세워 바람잡기도 하여 누가 보아도 깔뱅 때보다 개혁에 으뜸으로 앞장서는 꼴불견을 연출한다. 하나님은 아시리라! 기본 식견과 사람 됨됨이, 정당한 객관의 자세 따위를 물리친 체 게거품이라도 품는 듯 스스로 거룩을 가장하니 아연실색이라. 개혁교회가 무언지, 장로교회가 무언지, 그 뿌리와 성격 조차 모르고 허우적거린다. 깔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그 과정을 안다고 하지만 나름대로 각색하여 착각하니 어찌 될꼬? 우물 속에 개구리 처럼 좁은 소견에 어찌 진리의 보배를 거룩하게 다루겠는가? 이런 이들이 신학교 까지 한다니 애처롭게 보인다.

 

왜 사람을 높이는데, 사람을 바라보는데 길들여졌을까? 저마다 속한 단체가 역사상 최고 라고 저마다 확신하는데 과연 그럴까? 이런 사고방식에 빠지면 큰일난다. 함부로 결론내고, 속단하고, 비판하고, 끼리끼리 놀다보면 어찌 되겠는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하나님을 삼키려 한다. 숲만 보면서 기고만장한 무리 부터 나무만 보면서 특별난 양 까불거리는 무리 까지 형형색색이라. 왜 복음을 이런 식으로 받았을까? 인간관 부터 시관 까지 뜯어보면 어떤 상태일까? 학문과 인격, 신앙을 따져보면 누가 보아도 수준 미달이 득실거린다. 어떤 신학교에서 무얼 배웠으며, 어떤 교회에서 무슨 고백을 했기에 이 모양일까? 약골에 편법과 세속주의와 세상기준에 길들어 마음을 빼앗긴 체 허덕거린다. 신학교의 부패는 교회의 부패요 개인의 불경건에 붙어있다.

 

신학교 라면 어떻게 세워지고 어떻게 다스리고,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이 뒤치닥거리하는이는 어떠해야 하는지 속속들이 잘 정립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먼저 돈에 쏠려서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의 원리를 전제하여 교회 위한 학교를 생각해야 하는데도 너무도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좁은 소견에 주의, 주장을 내세우는 일부터 시류에 편승하여 불신자보다 더 악한 짓을 예사로 여긴다. 무서운 일은 성경을 올바로 모른다는 것이다. 알려고 하지도 않지만 알려고 하는 경우도 보면 기본 연장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다고 하닌 무슨 성경을 가르치고 배운단 말일까? 이런 울타리에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 돌이키기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우리라. 그러면서도 깔뱅을 팔아먹으니 제 정신일까?

 

분명 하나님이 작정 가운데 두신 신학교라면 하나님은 하신다. 사람의 근본 결핍과 죄의 오염으로 지니는 더러움과 한계를 인식하고 그저 주님께 맡기면서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이끄심을 따를 뿐이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해보아야 헛소리로 잘난 체 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먼저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개인의 특장을 언제든지 나타낼 수 있으련만 마음 먹어버리면 그대로 끝내 관철하려드니 어떤 열매를 맺을까? 세상학교도 아닌데 모든 면에 거룩한 본을 끝없이 보여야 하는데도 딴청피우니 두렵다. 대형주의 교회관에 속아넘어간 때이기에 신학교도 더러운 버릇에 가치관에 물들어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런데도 천연덕스럽게 제 갈 길을 가고 할 일을 해댄다. 얼굴도 참 두껍구나. 그리스도를 믿는이라면 어떠해야 하나?

 

우리는 할 수 있는한 하나 부터 열 까지 정말 정확해야 한다. 세상을 기준 삼거나 기대면 안 된다. 교회의 연장에 있는 신학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 학제에 물들어 세상의 타락에 발맞추니 얼마나 일그러지고 교회를 망가뜨리는 짓을 벌이는지 모른다. 운영자나 선생이나 학생들이 모두 그런 위험에 놓여있다. 큰 도둑은 작은 도둑이 해먹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한다니 우습구나. 오만 가지 더러움이 얼키설키 엮여있다. 이런 데서 어찌 선한 것이 나올까? 오죽했으면 계시사를 보아도 대량생산은 성경의 가르침에 충돌한다. 구약과 신약, 그리고 신약교회 시대를 보면 경륜의 차이는 있어도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말씀을 맡기실 때 하나님은 어떻게 주장하셨는 지 주목해야만 한다. 거짓 선생들은 언제나 드세고 우글거린다. 더우기 지금은 마지막 때이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발상이라든가, 반드시 이렇게만 해야 한다든가 하면서, 부분에 치우쳐 본질을 흐리고 바른 전진을 망각하면 안 된다. 자신의 이모저모를 절대기준인 듯 내세우면 아니다. 하나님은 하신다. 온갖 불의와 불법은 마침내 드러나고 거덜난다. 사람 앞에서 꼼지락거릴 까닭이 없다. 그저 묵직하게, 올곧게, 대범하게, 치밀하게 뚜벅뚜벅 거닐면서 하나하나 다듬어나가면 된다. 첫 걸음이 문제이기에 재삼재사 돌아보아야 한다. 오늘날 너무도 정로에서 멀어진 신학교 모습을 보면서, 어디 부터 손대고 무엇 부터 말해야 할 지 아득하기만 하다. 사귐의 기본이 회복되고, 선이 무엇인지 다시금 정리하여, 진리와 교리의 계승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정녕 자각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 어둡고도 칙칙하구나. 진리로 바른 사귐을 만들어낼 좋은 신학교가 그리워진다...

 

 

바른 신학교를 생각하면서[2]

 

 

신학교에서 고갱이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어느 신학교가 하나님 마음에 들까? 이른바 큰 교단 신학교도 있고 군소신학교도 보인다. 정부인가를 받은 곳도 있고 그것을 거부하는 곳도 보인다. 세상학식을 앞세워 학생을 뽑으려는 경향이 있고 신앙만 앞세워 선발하는 곳도 보인다. 신학교가 뭘까? 배우려고 다가서는 사람들에게 올바로 길잡이를 해야 한다. 그것을 교수자들이 하는데 소신있게 바른 신학으로 개혁교회를 이루면서 이끄는 교수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명예욕이나 재물이나 겉치레로 신학교수자를 자처한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거드름피우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영혼의 생명을 위해 배우는 공부이기에 신학교 선택은 두려운 일이다. 오늘날 대부분 신학교들은 운영하기에 바쁘고 돈벌이에 혈안이다. 교권주의가 주무르고, 온갖 술수가 날뛴다. 아무리 초심이 반듯해도 신학교를 거치면서 대부분 망가진다. 끝날 심판이 있으리라. 바른 교회에서 자라나서 그 교단의 바른 신학교로 진학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문제는 바른 교수자로 일치된 신학교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교단 배경이 없는 경우도 대부분 엉터리이다.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교회관이 빈곤하다는 것이다. 빗나간 교회관을 가르치고 배우려는 풍조가 휩쓴다. 예배관을 보라! 교리를 깔보는 시대이니 오죽하랴!

 

일찌기 80년대 중반쯤 김성수[구약], 최낙재[신약], 서철원[교의학], 리종연[원어] 이런 진용으로 개혁신학교를 합신 선배들과 구상한 적이 있다. 서 교수자가 최 목사를 여러 차례 만났지만 이루어지지 못 했다. 무척 아쉬운 야사이다. 최 교수자는 신학교보다 교회가 먼저 라고 주장했고, 서 박사는 신학교에서 바르게 가르쳐야 바른 교회가 세워진다고 하여 끝내 합의하지 못 했다. 이런 진용을 다시는 찾아보기 어려우리라. 갈 수록 갈라지고 들러붙고 하는 신학교들 행패를 보면서 물들어가는 신학도를 생각하면 도무지 사람으로서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 합신을 최고 라고 말하는 이도 보이지만 마찬가지이다.

 

총신 고신 합신 장신 이른바 이름난 큰 학교를 보라! 교수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무엇을 가르치며 학생들과 관계는 어떠하며 교회관은 어떤 지 살펴야 한다. 세상학교보다 못한 수준이다. 인격이다. 하물며 하나님을 가르친다는 면은 꺼내기 조차 부끄럽다. 어느덧 세대교체가 됐다고 하지만 갈 수록 망가진다. 가르치는 이들이 같은 신학을 가르치고 같은 교회를 이루면서 교회 위한 신학교를 이끄는 곳을 보지 못한다. 오합지졸 처럼 인가받아서 저마다 경영에 인본주의가 만연하니 교수자들은 들러리로 협잡꾼으로 전락한다. 정말이지 바른 신학교를 찾으려 해도 쉽지 않은 때이다.

 

이번에 서울개혁신학원을 시작하면서 생각하면 만만치 않다. 교회관과 인격과 실력을 생각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거룩한 선진을 본받아 신학사의 신기원을 이 땅에서 뿌리내리도록 하기를 바란다. 송 영찬[구약], 이광호[신약], 장수민[교의학], 리종연[원어] 이 넷이 먼저 물꼬를 튼다. 그리고 같은 성향의 동지들 몇몇과 더불어 이름 그대로 개혁신학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10명 안팎으로 교수자를 구성하여 정말 바른 자세를 지니고 교회 위한 신학교를 펼쳐나가려고 한다. 마음은 바쁘지만 신중하게 초석을 다진다. 바른 학생들을 만나서 바르게 거룩한 도리를 가르치는 일을 이루어내리라.

 

지난 학기에는 학생이 없어서 내실을 기하는 시간을 보낸다. 한 사람이 오더라도 바른 일꾼으로 서도록 시중하려고 한다. 당대 신학교 가운데 하나님 마음에 드는 학교로 세워가리라 다짐한다. 교수자 사이에 진리로 사귐과 끝없는 개혁을 언제나 추구해야 한다. 서울개혁신학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라면 대충 해서 졸업하기란 불가능하다. 철저하게 말씀을 다루도록 공부하고, 신령한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그리스도의 품격을 배우고 따르도록 힘쓰려고 한다. 외형주의를 경계하면서 일당 백으로 학교문을 나서도록 만들려고 한다. 배교하는 시대에 적은 무리가 들어서겠지만 놀라운 일이다.

 

이번 여름에 원어특강을 통해 좋은 형제들을 불러주시면 좋겠다. 바른 교회 하나가 서려면 어떤 재목으로 다듬어져야 할까? 생각하면 잠을 설칠 정도이다. 신학교 선택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먼저 교수자를 만나고 살펴보라. 그들의 교회관이 어떤 지 냉철하게 살펴야 한다. 진정한 실력이 있는지, 인격은 진실소박한 지 철처하게 알아야 한다. 거짓과 위선과 편법과 교묘함이 우글거리는데 더러움과 어두움을 물리쳐야 한다. 서울개혁신학원도 교수자라면 철저하게 스스로 돌아보아야만 하리라. 공부하지 않거나 타성에 젖거나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지거나 끝없이 배워서 고치려는 자세가 없으면 자격이 없다.

 

오롯한 신학교는 없다 해도 깔뱅의 개혁을 계승하는 면모를 언제나 잃지 않는 학교로 서가야 한다. 거짓 진리와 불의에 대하여 단호하고, 성경과 교리에 맞서는 것은 어떤 것도 물리치면서 이름 그대로 개혁신학을 중심으로 사귀는 신학교로 세우려고 한다. 쓸데없이 외형주의로 나가면 타락한다. 무작정 다수를 좇으면 변질한다. 성실과 진실과 경건을 멀리하면 더러워진다. 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교수자가 드믄 때, 권모술수가 판치는 때, 바른 교수자들로 이루어진 신학교로 끝까지 사수하면서 나가리라. 바른 성경원문과 개혁교리로 철저히 무장하여 오직 성경의 기치를 드높이며 그리스도 뒤를 따라야 한다.

 

 

바른 신학교를 생각하면서[3]

 

리종연 목사

 

 

붓이 끄는 대로 적어나간다. 신학교 교수자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교인 인지 아닌지 갈 수록 객관의 검증과 주관의 고백이 두드러져야 한다. 신학교는 교회에서 나오고, 교회를 위해 신학교는 있기에 교회의 지체로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 예배와 성도들의 사귐관은 어떤 지, 교회의 사명에 대한 소명의식은 어떤 지 ... 기본에 속한 많은 것을 언제나 붙들어야만 한다. 교회의 교사인지라 은사를 따라서 어느 부분은 능력을 나타낼 지 모르나 기본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교회란 신학교수 눈치보고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에 신학교가 쩔쩔맬 정도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강단과 신학교의 강단을 견주어 표현해 본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나라 신학교와 교회 관계는 정반대에 놓여있다. 교회 강단을 맡은 자들이 실력면에서만 보아도 빌빌거린다.

 

인품이야 말할 것도 없고 성경을 다루는 능력과 권위는 교회의 교사라면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 신학생들 수준이 어리고, 많은 나쁜 버릇이 신학계를 주름잡기에 망가지지 않고 졸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가르치는이들이 먼저 엉터리인데 어떤 일꾼이 나오겠는가? 타성에 젖어들어 돈과 권력과 명예라는 천박한 것에 물들어 거짓과 겉꾸밈이 넘친다. 신학박사, 신학교수 그러면 한국교회에서는 대단한 줄로 안다. 들여다 보면 소가 웃을 지경이다. 인격은 고사하고 학문의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은 이가 대다수이다. 게다가 요즘 보면 성경관이 거의 무너져 있는데도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감지하지 못하니 참으로 가련하다. 신학자 이름이나 그들의 책 이름을 줄줄이 꿰는 듯해도 사실 그런 이름들을 제대로 소화하여 교회에게, 신학생에게, 스스로에게, 올바로 말하는이 드믈다.

 

보기 들어 마땅히 갖출 것을 갖추지 못했으면 배워야 하고 낮추어야 하는데도 꼬마들 앞에서 주름잡으려고 하고 감푸라치 하기에 바쁘니 무엇이 되겠는가? 이를테면 성경원문에 대한 속임으로 세계 신학계는 거의 무너져 내렸다. 성경을 누구보다 높이고 깨달았다는 자들도 신학교에서 소장학자들이 어떤 사본은 어떻고, 원래는 무엇이고, 본문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맞다고 하면서 속여도 분별 능력이 없는지라 학점은 받아야 하기에 세뇌당한다. 무섭고 어처구니 없는 타락이다. 이렇게 물들면 역사의 개혁교리와 바른 성경관을 부정하게 된다. 교회 강단은 헛소리로 사람 듣기 좋은 소리로 갈아치우게 된다. 말만 보수주의, 개혁주의이지, 자유주의 냄새가 너무도 코를 찌른다. 교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신학교를 다닌다. 가르치는 이가 그 모양이기에 그렇다.

 

교리관은 생명인데 신앙고백에서 이런 정도라면 세례를 제대로 받았는지 교회에 세례를 통해 들어섰다는 뜻이 무언지 다시 살펴보아야 하리라. 신학교 교수자가 특별한 경우도 아닌데 이리저리 보따리 장사하듯 신학교들을 다니며 가르친다면 문제가 적지 않다. 신학생 수준도 문제인데 이렇게 가르치는 자세를 지니면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비정규직보다 비참하다. 엉터리 학위는 받았는데 실업자는 늘어만 간다. 교인들도 박사라면 대단한 줄 안다. 장사꾼들이 신학교를 주무르고 수준미달 교수자들을 농락한다. 상상 못할 타락상이, 중세교회 때보다 심각한 부패가 물들인다. 웃물이 이러니 아랫물은 더욱 날뛴다. 여기에 여성주의가 한 몫하니 사내 교수자들은 갈 수록 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 '여성 신학자' 라는 말도 이제 그냥 신학자 라고 고치자고 할 판이다.

 

신학교 교사 라면 신학 모든 과목에 대하여 올바로 가르칠 힘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전공했다는 지극히 작은 분야를 갖고 가르친다면 말도 안 된다. 주경학과 교리학을 기본으로 성경 전체를 얼마든지 다양한 대상을 놓고 공동 목표를 향하여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든 어디든 유학을 했다고 해도 극소수 말고는 놀러갔다 온 수준이다. 영어로 간단한 말을 주고 받는 정도인데 영어에 환장한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매력있게 보이는 모양이다. 성경원문을 뜯어고쳐 속이는 때인데 이것 하나 제압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크다. 오히려 그럴싸한 소리에 앞장서 선전하기에 바쁘다. 신학교를 선택하려는 사람들도 이미 버릇들어온 잣대로 제 눈에 맞는 학교를 고르기에 바쁘다. 신학교 스승이란 어떤 사람이라야 하는 지 알지도 못하고 말이다. 언제나 고쳐질까...

 

무엇보다 가르치는 교사끼리 같은 신앙고백으로 엮어져야만 한다. 만일 같은 내용을 다르게 가르친다면 어찌 되겠는가? 신학교는 세상학교와 다르다. 영혼을 놓고 실험하는 곳이 아니다. 여러 해 전에 총신 같은 곳에서도 신규 교원 심사 때 논문에 문제가 있고 신학이 다른 데도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코 받아들이게 한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거의 모든 신학교가 비슷하다. 신학 어느 분야라고 해도 같은 사상으로 가르쳐야 하고 서로 상호보완하는 가르침으로 이어져야 한다. 같은 내용을 정반대로 가르치는 곳이라면 이미 신학교가 아니다. 결국 같은 교회관을 지니고 같은 사명을 지니는 사람이라야 같은 신학교에서 가르친다. 이것은 절대이다! 이렇게 해도 만만치 않은 싸움이 기다릴텐데 너무 쉽게 무책임하게 신학교와 교수자리를 생각한다.

 

교수자 라면 교회 라는 싸움터에 몸담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게을리하면 책상 위에서 지식신앙으로 꼼지락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별별 이상한 소리들에 사이비 짓거리에 교수자들이 꿀먹은 벙어리와 구렁이 담넘는 듯한 발언에 익숙하다. 한 마디로 죽은 신학이다. 거짓이다. 거룩한 교회로서 진리의 싸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육신의 소욕에 젖어서 세상 사랑 가운데 있음을 증거한다. 시대상을 꿰뚫어 직시하고, 사탄의 궤계를 파악하여 맞서면서 거룩한 도리를 해명하는 교사라야 한다. 세상학교와 뿌리 부터 다르고 행정과 사귐에서도 전혀 달라야 한다. 세상 나라에 등록하면서 마침내 진리를 부인하고 타락한다는 것은 이미 앞서 다른 나라에서 증거한다. 그런데도 세상나라에 떡고물에 눈멀어 사람을 기쁘게 하다가 이미 먹힌 줄 모르니...

 

교수자들은 학교를 운영을 위하여 장사꾼 처럼 학생을 끌어모으려고 품팔거나 돈줄이나 붙잡으려고 빌빌거린다면 그런 자는 이미 타락이다. 미국 같은 경우 학생들이 줄어드니 경영 타개책으로 신앙고백을 버리거나 학위를 팔아먹거나 별별 짓을 하며 몸부림친다. 미국 신학교에 한인 교사들이 왜 그리 많아지는가? 웃기는 일이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초빙한다면 득달 같이 달려오려고 하리라. 성경에 관심을 지니지 않으면 거리의 여자 처럼 학교를 위해 몸팔이가 되기 쉽다. 진리가 무엇인지 앞선 바른 선진들을 본받아 정로에서 조금이라도 비꾸러지면 안 된다. 성경 한 권의 사람, 개혁교리 전체에 사로잡힌 사람, 거룩한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강단을 지키는 그리스도의 군사라야 한다. 바른 신학교도 드믈지만 바른 교수자도 드믈구나!

 

 

바른 신학교를 생각하면서[4]

 

 

신학생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가르치는 이가 수준미달이니 배우는 사람이야 오죽하랴! 단지 지식수준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의식구조와 사고방식, 사회통념 따위를 두고 생각해도 그러하다. 교회의 상태가 빗나갈 대로 빗나간 때라 무슨 말을 하랴? 사람이 무엇인지, 가정이 무엇인지, 사회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정립하고 빛과 소금으로서 구실을 해야 하는데 이런 기본도 갖추지 않고 무슨 신학공부를 하려는가? 부패한 세상의 패권주의, 힘의 철학과 세속주의에 때묻은 체로 어찌 하나님과 성경을 제대로 배운단 말인가? 세상에 닳고 닳은 체로 신학을 하겠다고 덤비다니 참으로 어안이 벙벙하다. 신학교 라는 엉터리 사업체를 꾸리려고 무작정 받아들여 목사를 찍어내니 역사상 상천하지에 이런 적이 있었는가?

 

첫 마디 부터 너무 어두운 면을 말하는지 모르나 사실이 그렇다! 바른 교회관을 지닌 신령한 기독자로서 거룩한 역사를 지어가는 가운데 객관의 소명의식을 통하여 차츰 배움의 길로 이끄신다. 정말 세상나라에서 조차 쓸모없는 자들이 신학교에 들어서는 바람에 얼마나 더러워지고 무법천지로 돌변했는지 모른다. 말로는 겉으로는 신학생이라고 할 지 모르나 근거와 증거가 불투명하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나 운영하는 원칙을 보아도 정종분리의 원칙을 악용하여 한마디로 개판이다. 거짓과 가짜가 설친다. 세상 버릇과 개인야망 그대로 신학교에 들어온다. 죽고 또 죽어서 공부하는 곳인데 엉터리로 공부하고 옛 사람은 더욱 기고만장하니 어찌된 일일까? 류류상종이라고 이런 자들을 기다리는 자칭 기독자들이 많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신학도라면 공부하다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신학 전반에 대한 원리와 원칙을 갖추고 적어도 10년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리고 그 뒤부터 본격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신학교에서는 공부하는 원리만 소개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신학교 조차 찾기 어려우니 무식쟁이를 만든다. 빈깡통들이 겉칠하기는 좋아하니 가짜로 돈주고 학위를 사고판다. 이런 저주받을 짓들을 숱한 신학생들이 저지르니 어찌 되겠는가? 이런 영적으로 사기치는 신학교에는 숱한 사람이 들어가니 놀랄 일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그러하니 배우는 사람은 배운 것 뿐이다. 무서운 일은 성경을 알려고 하지 않고 제대로 알지도 못한 체로 신학교를 나선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 희귀해진다. 성경을 말한다고는 하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치기를 싫어한다.

 

지름길과 겉꾸밈과 세상의 명예와 돈을 좋아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과 너무도 반대이다. 성경과 교리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하고 나아가 부정하기 까지 하니 신학교일까? 왜 신학교를 들어가는지? 어떻게 공부하는지? 왜 목사가 되려는지? 최후의 심판 자리에서 물으실 때 무엇을 대답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에 들어가지 못 하면 세상나라에 빠진다. 세상 신이 크게 교묘하게 속이기에 넘어가기 쉽다. 하나 에서 열 까지 너무도 빗나간 것이 지금 신학생들 모습이다. 극히 적은 수가 그나마 바르게 배우려고 몸부림친다. 어떤 곳에서는 여자 신학생으로 넘친다니 참으로 아찔하다. 창조와 구속의 원리를 어떻게 해석하는 지 뒤범벅이다. 제 자리와 제 구실을 떠난 범죄의 역사성을 주목하자.

 

소명의식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무엇이 되보려고 신학교를 간다면 처음 부터 멸망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하나님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신학교이다. 신앙고백이 분명해야 한다. 교권주의와 종교다원주의, 배금주의와 배교의 물결이 넘실거리기에 성령님이 이끄시지 않으면 바른 신학교에 들어서지 못 한다. 영적 진리를 배우는 것이라 처음 부터 올바로 가르침 받지 못 하면 나중에 고치기 어렵다! 여러 가지 거짓 선생들이 널려있기에 정말 조심해야 한다. 소명의식과 신앙고백이 뚜렷하다면 빗나가지 않으리라. 상식 조차 갖추지 못했다면 먼저 자격이 없다. 학연, 지연 따위가 설치기에 벗어나기 어렵다. 정치구조에 따라서 일그러지기에 신학교라도 자유롭지 못 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신학교에 들어와서 망가지는가?

 

신학이라는 학문에서 개혁교리와 성경원문에는 정통해야만 한다. 이 두 분야를 감싸고 도는 여러 기본 학문에 철저해야만 한다. 하지만 선무당 같은 자들이 설치니 조심하라. 원문과 교리를 하나로 꿰뚫어 성경을 연마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면 신학은 없다! 이런 알맹이를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그릇된 교회관을 지향하는 과목들로 뒤바뀐다. 말도 안 되는 실천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별별 짓을 벌인다. 이런 기본을 무시하고 신학교를 나오고 학위를 따보아야 헛일이다.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이 기다린다. 도무지 성경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석하는지 조차 모르기에 헛소리하는 범죄로 떨어진다.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된다. 큰 심판이 기다린다. 바른 교회라면 바른 신학생을 구별한다. 바른 교회라면 바른 신학교를 알아본다. 바른 교회라면 바른 선생을 찾는다.

 

세상의 풍조를 보아도 바른 신학교를 찾기 어렵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격으로 지난날 한 때 이름난 신학교는 이제 없다! 허풍떨고 밥벌이 하기에 바쁘다. 물주를 찾아서 우리나라를 기웃거린다. 무슨 얼어 죽을 유학인가? 신학의 기본학문에 대한 시금석 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무엇을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배우는지 알지도 못하고 떠내려간다. 거짓이 참을 가장하고, 불법이 합법을 밀어내는 때 무엇보다 영을 분별하는 것이 배울 때 중요하다. 친구 따라 강남 가면 안 된다.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가르치신다. 사람 앞에서 이름 내려고, 투자한 만큼 체면 내세우려고, 큼지막한 건물이나 외국을 떠돌면서 그럴싸한 거짓 보고서에 빠진다면 이미 끝장난 사람이다. 주님이 가까이 오신다.

 

신학생이 무엇인가? 누가 신학을 해야 마땅한가? 말씀선포와 계시의 성격을 으뜸 삼고 연마하는 신학이라야 하는데, 신학은 형식이요 니와서는 뿌리없는 모양을 따르며 사람 앞에 광대노릇하기에 바쁘니 무엇인가? 신학생은 교인이라야 한다. 별다른 특권세력이 도무지 아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 백성이다. 교회 위한 신학생이기에 교회의 가르침에 열복해야 한다. 신학교에 들어가면 목소리 부터 이상야릇해지기도 하는데 우습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중인격을 조심해야 한다. 요령꾼, 얌체, 기회주의자, 약삭빠른자, 무식쟁이, 은혜를 빙자하는 불법자 따위를 조심하라. 아무튼 신학생에 대하여 할 말이 참으로 많다. 좋은 학생, 하나님이 만드시고 이끄시는 학생을 만나고 싶다. 캄캄한 때, 바른 교회를 찾기 어려운 때, 거룩한 신학생을 만나기란 하늘에서 별따기 일까?



<성경 원어와 개혁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