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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행위로 얻는 것이라면 - 찰스 스펄전(Charles H.Spurgeon)

Bavinck Byeon 2015. 12. 18. 15:33

구원을 행위로 얻는 것이라면

 

Charles H. Spurgeon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게 하여 주심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2:21).

 

자신이 행한 행위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은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은근한 매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논박을 해 놓아도 다시금 슬며시 고개를 쳐들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그릇된 교리는 일단 교두보를 마련하고 나면 급속토록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이 사악한 교리와 이것과 유사한 개념들이 발을 붙일 여지를 없애기 위해 칼을 빼어들었습니다. 바울은 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는 구원의 교리를 수호했고, 율법에 포함된 의식법이나 도덕법, 혹은 그와 유사한 법들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드는 사고 방식들에 대항하여 평생 격렬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행위를 통한 구원이라는 개념은 언뜻 보면 그럴싸하게 보입니다. 그들은 항상 자신의 생각이 너무도 명백한 진리라고 주장하고 실질적으로 아주 유익한 것임을 입증하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믿음으로 받는 구원이라는 교리에 관해서는 나쁜 결과만 불러올 뿐일 것이라는 비난을 퍼부어 댑니다. 그리고 단언하기를, 만일 행위에 의한 구원이 온 사회에 전파된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미덕들이 권장 받는 도덕적인 사회에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역사적 실례를 살려보자면, 대부분의 경우 그런 이상한 교리가 전파된 곳에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미덕들이 풍성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이전보다 희박해지곤 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행위의 미덕이 강조되면 될수록 사람들의 도덕성은 밑으로 밑으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반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전파된 곳에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던 사람들의 생에서도 고귀한 미덕들이 나타나곤 했었습니다.

 

자기 의를 추구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자기 의는 그릇된 종교의 핵심입니다. 그들은 어떤 일은 하건 간에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행위를 통한 구원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몸을 학대하거나 금식을 하고 또 긴 성지순례에 나서기도 합니다. , 구원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들이 만든 우상 앞에 온갖 수고와 노력을 다 바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조금 열심히 있다 싶은 신자들에게는 늘상 자기부인이라든가 고행, 혹은 수많은 기도들과 성사,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수행들을 통하여 구원받을 만한 존재로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그릇된 사고방식은 어느 정도는 무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하나님의 법에는 무지하기 마련이고 진정한 거룩함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있어서는 율법 전체를 잘 행하다가도 그 중의 단 한가지라도 그르치게 되면 그 잘못 하나로 인하여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이전에 한번이라도 죄를 지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율법을 통하여 의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즉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도 엄청나게 무지합니다. 자기 의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공공연히 비난받을 만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죄가 없다손 치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삶을 정직한 눈으로 되돌아본다면, 그들은 곧 자신이 행한 행위 중 최상의 것을 시작할 때 그것을 시작하게끔한 동기 속에 불순한 것들이 섞여 있었거나, 혹은 그 일을 다 행한 후에는 또 그 일로 인하여 스스로를 치하하면서 몹시 젠체하는 마음을 지니는 잘못을 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수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인간을 자기 의라는 그릇된 교리에 솔깃하게 만드는 것은 비단 무지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교만으로 인해 자기 기만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자비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싫어합니다. 그들은 위대한 왕 앞에 부복하고 그분께 죄의 용서를 빌며 자비를 간구해야 한다는 사실이 영 내키지 않습니다. 그는 그분의 자비와 축복을 간구해야 하는 초라한 존재로 취급받는 것이 몹시 싫은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거나, 혹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를 높이려는 마음에서 우리를 구출해 주시겠지만,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행위를 집어넣으려는 사악한 교리를 끝까지 붙들고 있겠다면, 주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행위를 붙들고 있겠다면 말입니다.

 

저는 오늘 이 강단에서 인간의 혼을 파멸로 이끄는 그 사악한 교리의 핵심을 지적하려고 합니다. 제가 보여드릴 두 가지 죄악에는 모두 자기 스스로를 의롭다고 인정하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이 죄들을 지적하는 동시에, 저는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죄악에 빠져 있는 가도 밝혀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진정으로 믿는 자들은 이러한 죄악들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 이 두 가지 큰 죄악에는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이 어리석은 죄악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첫째로, 이 죄악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데 큰 방해가 됩니다. , 그분의 은혜를 회피하며, 거부하고, 거절하며,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게끔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값없는 자비, 혹은 그분의 은혜를 거부합니다. 쓸데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그분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입니다. 만일 의가 율법으로 인하여 오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는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입니다. 만일 혹자가 율법을 지키고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하고 여러 종교적인 고행을 견디어냄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존재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 그는 분명 자기 자신에 관한 한 하나님의 은혜를 그저 가외로 덧붙일 수 있는 덤 정도로 생각하고 한쪽으로 제쳐놓아 버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 얼마나 큰 죄악입니까? 감히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고 있으니 말입니다.

 

행위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차적인 것으로 여기기 마련인데, 이것 또한 죄악된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노력하는 그만큼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그 나머지 부분을 벌충하는 것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자아나 자신의 느낌, 혹은 자신의 공로나 기도, 또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외한 자신 속의 그 어떤 것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거부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신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공로와 병행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1:6을 보십시오.

 

은혜로 된 것이면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행위로 된 것이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행위는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11:6).

 

누군가가 인간의 행위나 고행,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구원의 근거로 제시하는 교리를 전파한다면, 죄인들은 그리스도를 전혀 신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어떤 희망을 두고 있는 한은, 결코 구속주를 쳐다보지 않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미 놓여 있는 반석 위에 또 다른 반석을 놓을 순 없습니다. 만일 또 다른 반석을 놓으려는 시도를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반석을 경멸하는 죄를 짓고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옛적 건축자들이 한쪽에 버려놓은 돌을 가져와 모퉁이 돌이 되게 하셨는데, 그들은 그 옛날의 건축자들과 똑 같은 자들입니다.

 

자신의 의로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그분의 은혜를 강탈하려는 자와 같습니다. 그들은, "우린 은혜 같은 거 원치 않습니다. 값없는 자비도 필요 없습니다. 혼자서도 잘한다구요."라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새 언약에서 우리는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 언약에 들러붙어 있는 자들에게 있어 새언약이란, 그저 옛 언약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아니꼬운 존재에 불과합니다.

 

자기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두 번째 큰 죄악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된 것으로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구원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옳다면, 그리스도께서 무엇 하러 죽으셔야 했다는 말입니까?

 

혹자는 감히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여, 당신의 죽음이란 필요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필요도 없는 고통을 겪으셨더군요." 그들은 감히, 그분의 자비를 그저 쓸데없는 죽음을 몰려고 한 지혜롭지 못한 열정 정도로 치부하려 듭니다. 감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된 것으로 생각한단 말입니다!

 

실로 너무도 많은 이들이 이 죄악에 탐닉해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그분 외의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혹은 자신들의 의지나 행위로 충분히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전파하고 있다면, 그는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에게 큰 죄를 짓고 있는 자입니다. 만일 인간이 오직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범죄자들에게는 무슨 희망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는 인간들에게 열려 있는 자비의 문을 쾅 닫아버리는 자와 같습니다. 그는 죄인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박탈하고 죄악 가운데 죽게 만들려는 자입니다. 그는 돌아온 탕자들을 다시 되돌려보내고, 죽어가면서 낙원을 갈구하는 강도의 요청을 묵살하려 드는 자들입니다. 만일에 정말로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행위에 의한 것이라면, 수많은 이들은 하늘나라의 문도 구경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죄의 본질에 관한 설명은 이 즈음에서 그만두겠습니다. 이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 너무도 많은 이들이 이 두 가지 큰 죄에 빠져 있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죄에 빠져 있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들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 저주스러운 생각이 마음속에 숨어 있지는 않나 살펴보십시오. 만일 그런 죄악들이 발견되거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그것들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복음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도 이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에는, 이제껏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 어떤 사실보다 더 놀라운 계시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계시를 경히 여겨서 '그 정도는 아니야.'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빈말로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야.'하는 말을 한 적이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그저 기도할 때나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나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유익을 얻고, 또 온 가족이 축복을 얻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까? 이 보배로운 진리들을 하찮게 여긴다면, 그는 하찮게 여기는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된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와 동일한 짓을 하는 죄인들은 바로 죄에 대해 아무 자각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상냥하고 정직하며 관용적인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 타고난 미덕들만 있으면 모든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주변인들에게 호감을 주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생각에 빠져 있는 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자들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과는 달리 또 오로지 절망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이런 목소리를 냅니다. "저는 정말이지 너무 큰 죄인이예요. 전 구원을 받기에는 지은 죄가 너무 많아요. 예수님께서도 저의 이 더러운 죄를 다 씻어낼 순 없으실 거예요."

 

, 친구여, 자네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그분의 능력과 권능을 제한하는군. 낙담에서 빠져나오게. 자네가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자네는 결코 그분의 은혜를 입을 수 없다네.

 

, 이제 이 즈음에서 마지막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진정으로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깊은 죄의 자각과 함께 큰 기쁨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이러한 죄들을 짓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은 앞서 지적한 죄악들을 혐오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방해하거나 헛되이 만드려드는 생각 자체를 참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오직 그분의 은혜만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혹시 어느 정도는 당신 자신에게 신뢰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말하자면, 자선행위나, 기도회 참석 횟수, 혹은 수많은 눈물의 방울방울, 혹은 교회에서의 직분, 또는 주일 학교에서 열심히 봉사한 경력, 아니면 이와 유사한 행위들을 그리스도의 보혈 옆으로 슬쩍 가져다 놓고 자신의 희망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제발, 그런 건 꿈도 꾸지 마시길! 여러분 중에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길 바랍니다. 오히려 제가 방금 묘사한 그릇된 생각 때문에 마음이 몹시 괴로워지는 분들만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두들 그러합니까?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오직 은혜밖에 없습니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앞서 언급한 두 번째 죄악과도 무관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죠,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신뢰합니다. 그가 의지하는 것은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사셨으며, 또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위대한 대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더 풍성히 알아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대속자를 보내셔서 죄는 치시고, 죄인은 살리신 그 놀라운 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아들조차 아끼지 않으신 그 사랑을 감히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제거하실 만큼 가치 있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의 그 위대한 사랑을, 결코 끝이 없을 그 영원한 사랑을 찬양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들이여?

 

더욱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점점 그분과 닮아 가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그분과 하나이며, 그분을 닮아가고 있고, 그분이 헛되이 죽으신 것이 아니란 사실을 날 마나 새롭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진정한 삶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풀어주셨고, 영원한 진노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또한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다주었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자녀들에게 베풀어주시는 모든 복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지옥의 문을 닫았고, 그 대신 하늘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 죽으심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완성시켰습니다. 이것은 허황된 망상이나 삼류 로맨스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분은 실로 이 땅에 오셔서 그 모든 일을 이루셨고, 오늘날 우리는 그분의 자비 안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분의 죽으심을 헛된 것으로 생각할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였고, 그 은혜가 결코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믿기에, 저는 제 혼에 큰 평안을 느낍니다. 주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도다라고 하셨으니, 그분의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단 한가지는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들의 피를 제 손에서 요구하시지 않을까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오늘부터 더욱더 열심히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옥을 경고해 주고 복음을 증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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