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 Reviews/Korean

위필드의 '기독교 초자연주의'에 대한 개혁신학적 입장 및 시대적 과제 - 최더함 목사

Bavinck Byeon 2016. 1. 4. 23:32

위필드의 '기독교 초자연주의'에 대한 개혁신학적 입장 및 시대적 과제

 

최더함 목사

(개혁신학포럼 학술위원.

마스터스세미너리 책임교수.

아리엘개혁교회 담임목사)

 

 

1. 워필드와 프린스턴

 

벤자민 브레킨리지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1851~1921)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와 함께 3대 칼빈주의자로 불린다. 동 시대를 살았던 세 사람은 비록 국적은 달랐지만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고 학문적으로 칼빈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빛나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워필드의 천재성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칼빈 이후 모든 신학자들을 다 모아도 워필드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극찬한다. 워필드의 오랜 친이자 동료인 프란시스 패튼(Francis L. Patten, 1843~1932)은 워필드를 평하기를 탁월하되, 독보적으로 탁월한 학자이며 책에 둘러싸여 산 사람이라 했다. 프린스턴 신학교로 워필드가 청빙한 탁월한 성경신학자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1862~1949)도 워필드의 높고도 깊은 학식과 인품을 존경한 나머지 워필드가 쓰러지는 날까지 그와 산책하며 교제를 나누었다.

 

워필드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대표적 개혁주의 신학자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워필드가 살았던 시대는 18세기 유럽에서 태동한 계몽주의와 이성주의에서 출발한 자유주의신학의 파고가 미국 대륙을 완전히 뒤덮었던 때였다. 자유주의신학은 미국의 대학들을 먼저 선점해 갔다. 1805년에 이르자 하버드대학이 유니테리언 교수를 임용함으로서 탈선에 앞장섰고, 회중교회들은 엔도버 신학교를 세웠다. 이에 당시까지 신학교를 비하지 못했던 미국의 장로교가 자극을 받아 신학교 설립에 박차를 가했고 드디어 18128월에 지금의 프린스턴신학교를 세우게 된다. 프린스턴 신학교는 미국에 침투한 자유주의신학을 방어하는 강력한 방파제가 된다. 설립 이후 100년간 칼빈주의로 무장한 교수들이 즐비했고,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프린스턴 교수들의 가르침과 학문적 성과에 엄청난 영향을 받아 세계 곳곳에 칼빈주의를 실어 나르는 첨병의 역할을 했다. 19125월에 개최된 프린스턴 신학교 100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전 세계 기독교단체들의 대표들과 신학자 목회자들은 프린스턴의 경건과 학문, 그리고 수준 높은 강의와 저술에 찬사를 보냈다. 프린스턴의 교수와 신학자들과 저술가들의 신학적 예리함과 철저함은 개혁파 정통주의를 더 높은 수준의 단계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거의 모든 방면에서 합리주의가 득세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전적 부패 같은 개념들에 대한 반대가 팽배한 가운데서 프린스턴의 존재는 개혁주의신학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자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역사학자 마크 놀(Mark. A. Noll)은 프린스턴 신학을 고전적 개혁주의 신앙의 19세기적 미국적 표현이라 했다. 다시 말해 프린스턴은 기독교신앙의 영속화에 주력했지만 신학 방법론과 사상의 체계화 및 시대적 적용이라는 차원에서는 미국 문화와 관련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것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워필드 신학은 바로 이런 프린스턴 신학과 절대적으로 연관이 깊다. 사가들은 워필드야 말로 프린스턴 신학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의 제자인 메이첸(J. Gresham Machen, 1881~1937)은 워필드의 장례식장에서 워필드의 관과 함께 프린스턴의 신학도 사라졌다고 말할 만큼 워필드 신학은 프린스턴신학에서 거의 절대적이었다. 찰스 핫지의 손자이자 20년 동안 워필드의 조교였으며, 워필드 이후 그의 교수직을 물려받은 캐스퍼 위스터 핫지 주니어(Casper Wistar Hodge. J, 1870~1937)워필드는 학식 부분에서는 이전의 모든 조직신학자들을 능가했고, 적어도 영어권에서 워필드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과연 무엇 때문에 당대의 사람들과 지금 이 시대의 모든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이동성으로 워필드의 신학을 이렇게까지 칭송하고 높이 평가하는가? 과연 워필드의 신학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 혹은 교훈들이 무엇인가? 어떤 차원에서 우리가 워필드 신학을 오늘에 조명해야 하는가? 본 소고를 통해 이를 알아보고자 한다.

 

2. 자유주의의 발호와 핵심내용

 

18세기 후반부터 유럽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과학의 발달과 산업혁명의 여파로 생활과 문화 전반에 걸쳐 대변혁이 일어났다. 그러자 학문 자체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들이 증가했다. 특히 대학에서는 새로운 학문 방법들이 개발되고 진보된 문명의 시대를 주도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른바 계몽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계몽주의는 자연스럽게 합리주의와 이성중심의 철학적 사고를 낳았다. 이 철학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적 세계관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인간의 이성 밖에 존재하는 모든 사유들을 몰아내고자 했다.

 

이러한 학문적 경향은 즉각 쌍둥이라 할 수 있는 자연주의를 낳았다. 자연주의는 기독교 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다. 자연주의는 먼저 성경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성경에 대한 고등 비평을 시작으로 기독교와 관련한 거의 모든 것으로 공격의 전선을 확대시켰다. 19세기에 들어 자연주의는 과학적 사고의 발전과 함께 더욱 기승을 부렸다. 특히 다윈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1859)은 자연주의적 철학적 사고에 기름을 끼얹은 듯 했다. 자연주의자들은 이제 하나님이 세상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큰소리쳤다. 성경의 창세기는 다시 써야 한다고 조롱했다. 자연주의는 잠을 자고 있던 기독교 신학에 갑자기 달려들어 정면으로 부딪쳤다. 두 진영 사이에 거대한 충돌(huge clash)이 일어났다. 이의 여파로 사람들은 점점 기독교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계몽주의의 공격으로 교회가 흔들리자 교회가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사람들은 더 이상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과학이 발견한 새로운 사실들은 성경이 고수하는 진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자 전통적인 신앙에 대한 회의가 일었고 기독교에 대한 만족감이 현저히 감소되었으며 교회는 보수적 사고와 진보적 사고로 분열하기 시작했다. 기독교호의 항해에 가장 높고 위험한 파고가 들이닥친 것이다.

 

이런 위기 속에서 인간의 이성주의와 낙관주의, 그리고 과학주의적인 철학적 사고와 학문으로부터 기독교를 하고자 나선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현대자유주의 신학의 창시자로 불리어지는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1768~1834)이다. 그는 기독교를 공격하는 세상 풍조에 맞서 종교의 본질을 논함으로서 기독교를 방어하고자 했다. 기독교에 대한 철학적 회의주의를 강하게 반대했다. 대신에 그는 종교는 형이상학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며 또 그것들에 종속되지도 않은 종교라는 독특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를 직관과 감정의 영역으로 설명했다. 그는 신학의 근거를 경험과 느낌에 두었다. 특히 신 의식(God consciousness)에 대한 느낌과 이 의식의 당연한 귀결인 절대 의존감에 두었다. 그런데 슐라이어마허가 시도한 신학의 내면화는 기독교의 심각한 타락을 야기시켰다. 결국 외적 권위를 거부하고 신학을 경험과 내적 느낌에 정초시키어 기독교신학이 합리주의와 신비주의로 달려가는 길을 열어 주었고, 기독교가 계시의 종교가 아니라 불확실한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종교가 됨으로서 세계 여러 종교들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단서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그대로의 하나님을 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 경험에 대한 연가 되었다. 이것이 슐라이어마허로부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의 실체이다. 순수한 열정과 동기를 싣고 떠난 그의 배가 정박한 곳은 불행히도 기독교의 항가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바울 사도의 충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6:12)

 

자유주의 신학의 금자탑은 슐라이어마허의 충실한 제자인 알브레히트 리츨(Albrecht Ritschl, 1822~1889)이 쌓았다. 그로 인해 자유주의 신학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프로이센의 루터교 목사의 아들인 리츨은 1864년부터 1889년 죽을 때까지 괴팅겐에서 가르치며 독일의 대표적인 신학자로 명성을 날렸다. 리츨 신학의 전형적인 특성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모든 형이상학적 요소 즉, 초자연주의적 요소를 제거한 것이었다. 기독교의 도덕적 성격을 강조하고 인간 이성을 넘어서는 문제들에 대해 거부의 손짓을 했던 칸트의 철학과 인간의 내면적 경험에 정초한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에 크게 영향을 받은 리츨은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한 도덕적 모범과 가치관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그는 기독교를 지상에서 가장 모범적인 윤리와 도덕의 종교로 만들어내었다. 리츨에게 종교란 이 땅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 나라를 추하는 것인데 리츨의 하나님 나라는 이상적인 도덕과 윤리를 목표로 하는 세계였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도 아니고 속주도 아니며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이 땅에 오시어 인류를 심판하실 초자연적인 주님도 아니었다. 리츨은 정통 신학이 만들어낸 초자연적인 교리들을 전면 거부했다. 교리야말로 참 신앙과 본질적 기독교에 대한 방해물로 간주했다. 그는 교리는 기독교를 초자연주의적 세계로 끌고 가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철학의 산물로 보고 하나님 나라는 교리 없는 세계라고 설파했다.

 

리츨의 신학은 아돌프 하르낙(Adolfvon Harnack, 1851~1930)과 하르낙의 미국인 제자인 아서 맥기퍼트(Arthur C. McGiffert, 1861~1933)으로 이어졌다. 이 두 사람의 신학적 과제는 헬라철학이 어떻게 기독교 교리 형성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조사하고 증명해 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전통적으로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 교리는 헬라철학의 산물이므로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복음이 알맹이라면 교리는 껍질이라는 것이었다. 예수는 조금도 초자연적이지 않은 한낱 인간으로서, 교리를 선포한 것이 아니라 윤리교사로서 완전한 사랑의 모범을 제시했고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으며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주장했다. 특히 맥기퍼트는 자신이 판단하기에 신약 성경 전반이 기원은 사도적이지 않고 이야기는 신뢰할 수 없으며 가르침에는 권위가 없는 것으로 제쳐 놓을만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기독교의 외적 권위에 대한 부정과 거부를 들고 나선 인간 이성은 19세기에 들어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모조리 의심하고 해체하는 일을 주도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성에 반하는 교리들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고 했다. 특히 신적 예정 같은 칼빈주의 교리들은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교리의 하나였다.

 

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기독교 신학은 엄밀히 평가하면 기독교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을 논해야 하는 까닭은 여전히 기독교라는 이름표를 달고 하나의 실체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실체는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고 복음전파의 사명을 맡은 기독교회를 잘못된 길로 미혹하는 첨병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의 요체는 무엇인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주의신학은 신학의 출발점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두지 않고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에 두었다. 계시종교를 윤리와 도덕의 종교로 전락시켰다. 말씀중심의 기독교를 인간 중심의 합리적인 종교로 바꿔치기했다.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신학은 주관주의적 신학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e) 중심의 신학방법을 따르지 않고 주관주의적이며 신비주의적, 감정적, 경험적인 새로운 방식을 사용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정통적인 신학의 체계를 허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것은 교회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자유주의신학으로 인해 초대교회부터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지켜지고 계보를 이어왔던 기독교 신학의 공동체가 약화되고 말았다. 대표적인 신정통주의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유럽의 개신교는 자유주의로 인해 죽었다고 까지 진단했다. 이것은 하나의 잘못된 사상이 얼마나 악한 영향을 끼치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산 교훈이 된다. 한 개인의 신학의 방법과 내용은 성경과 기존의 건전한 신학적인 전통에 의해 검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신학이 새로운 독창성과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신학을 형성하였는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신학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말씀을 벗어나면 그것은 참다운 신학이 될 수 없고 그런 신학을 쫓는 자는 사망과 곤경에 처해질 뿐이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107:10-11)

 

둘째, 자유주의신학은 성경 본문을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방법으로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면서 정통교리를 무시하고 말살했다. 그들은 주관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단지 지식만 있는 신앙을 무차별 공격했다. 이 영향으로 신학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났고 교리무용론이 득세했다. 그들은 기존 교회가 교리에 붙들려 죽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통이 화석화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방식으로 취득하는 지식이 문제이며, 교리가 문제가 아니라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만든 비성경적인 교리가 문제임을 간과했다. 그들은 성경을 절대적인 최종 권위로 두지 않는다. 성경은 단지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좋은 교과서요 윤리적인 지침이요 참고서이며 그리스도는 속주가 아니라 훌륭한 윤리교사이며 최고의 신 의식을 지닌 인간일 뿐이라고 한다. 그들은 성경에 있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들은 실제로 믿지 않는다. 단지 신앙을 위한 좋은 참고자료라고 여긴다. 성육신과 동정녀탄생, 부활 승천 따위는 실제역사가 아니라 믿음의 역사적 사건이라 치부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성경에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경고했다. 성경은 무오(Inerrancy)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만일 누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22:19)

 

셋째, 자유주의신학은 하나님의 공의를 삭제하고 사랑의 하나님만 강조했다. 진노의 하나님을 삭제하고 미소 짓는 하나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그들은 우레 소리와 함께 심판을 단행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면 기겁한다. 하나님은 매우 인자하시고 나와 늘 즐겨 대화하시며, 나의 짓궂은 장난과 개쟁이 같은 행동에도 머리를 긁적이며 다 받아주시며 나와 농담도 자주 하시며 내가 언제든지 달려가면 만나주시고, 나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하면 들어주시는 친근하고 재미있는 분으로 각색했다. 여기에 하나님의 내재성 즉,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강조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므로 나는 언제든지 하나님과 대화한다는 것이다. 내재주의로 인해 묵상기도, 관상기도 등이 나타났고 영성훈련을 한다고 법석을 떨게 되었다. 자유주의신학으로 인해 악을 미워하시고 무섭게 진노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사라졌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자기 백성을 지옥에 보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여기서 지옥이 부정되고 영혼멸절설이 나타났다. 자유주의교회에서 더 이상 회개를 요청하는 설교는 사라졌다. 그들은 신자가 잘못을 해도 권징하지 않는다. 용서가 최고의 미덕이 되었다. 그러나 공의 없는 사랑, 사랑 없는 공의는 절름발이일 뿐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악을 미워하고 우상숭배를 엄하게 금하시고 다른 신에 대해 질투하시고 백성들의 죄악을 친히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징계의 채찍질을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징계하지 않는 자마다 사생아에 불과하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12:6, 8, 벧전 5:9, 3:19)

 

넷째, 자유주의신학은 낙관적인 인간론을 펼침으로 기복신앙을 낳았다. 그들은 예수만 잘 믿으면 부자 되고 성공한다는 말을 계속 강조하고 반복했다. 낙관론은 아담으로부터 형성된 원죄를 부정하면서 나타난 사상이다. 그들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선한 존재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얼마든지 자신의 행복을 추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원을 이룰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적극적인 존재이다. 인간의 행, 불행은 인간의 책임이지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예정(predestination)에 달려 있지 않다고 했다. 칼빈이 주창한 예정론 교리는 그런 의미가 아님에도 그들은 예정론을 한 번 정해진 운명론(fatalism), 또는 결정론(determinism)으로 몰고 갔다. 잘못된 예정론으로 인해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의지로 개척하고 극복하지 않고 주어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불행을 형해 달린다고 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을 불행으로 이끄는 분이 아니라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했다. 당연히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 복은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주의 백성에게 허락되어지는 은혜임을 그들은 증거하지 않는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1:3~6)

 

또 그들은 주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1:21)

 

3. 자유주의 신학과 위필드

 

자유주의는 정의상 기독교 신학이 외적 권위에 기초하지 않고도 진정으로 기독교적일 수 있다는 발상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후 인간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존중하시기에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사에 개입하거나 결정을 자기 주권적이며 일방적으로 처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한 번 위임하신 이상 중간에 자꾸 이래라 저래라 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야 말로 인간을 가장 사랑하시는 주님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유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또 다른 이름의 기독교이다. 성경은 다른 세계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겁 많은 인간들을 신앙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안주시키기 위해 인간들의 상상력과 전설과 신화들을 각색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 폄하했다. 오직 인간의 이성이 인정하는 자연적인 요소들만으로도 충분히 기독교가 유지된다고 했다. 이른바 기독교의 모든 초자연주의적 요소를 배격하는 자연주의 신학의 등장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기독교에 대해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그들은 기독교의 도덕적인 모범, 즉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 인류의 행복을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높이 찬양한다. 그들은 전통적인 기독교가 믿는 바들을 모두 수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좋아하고 믿고 싶어 하는 것들만 추려내어 새로운 기독교를 만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종교교과서라 불릴만하다. 기독교의 윤리화와 자연신학화에 대해 많은 이들이 비판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리츨 신학은 존재론에서 윤리로의 물러남이라고 평가 절하했고, 신정통주의의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자유주의 신학의 탈신화화에 대해 내가 탈신화화와 관련한 움직임에 썰렁한 태도를 보인 것은 내가 보기에 그 탈신화가 너무나 유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며 조롱했다.

 

이러한 때 기독교의 초자연주의를 거부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주도한 사람은 워필드이다. 1986년 프린스턴 신학교의 개학 강연을 통해 위필드는 단언코 말하건대 기독교는 초자연주의의 종교라고 선언했다. 워필드는 이 강연을 통해 다음의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언급함으로서 기독교를 자연주의의 길로 끌고 가려는 세력에 경고를 보냈다.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1:1)

 

먼저 워필드는 기독교의 초자연주의적 요소를 배격하고 자연주의적 기독교를 재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모범된 인간으로 위상을 정리하려는 당대의 반 초자연주의 경향을 강력히 비판하고 초자연주의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말했다. 근대의 합리주의가 주창하는 반 초자연주의의 경향은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별을 지워 버리는 범신론적 철학에 뿌리박고 있다고 고발했다. 워필드는 자연주의적 경향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을 들었다. 이는 창조의 신이 창조 시에 자연계의 생명체에게 진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여 지금의 다양한 생명체들이 생겨났다고 보는 창조론의 하나로 다윈으로부터 제시된 진화론을 비롯한 모든 현대 과학의 성과들을 인정하고 현생 인류도 유인원과 인간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본다. 특히 유신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반 기독교적이라고 부정하는 자들을 가리켜 근본주의 기독교인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그러나 결국 이들도 하나님의 창조라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인정하지 않는 자연주의자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워필드는 이런 유신진화론자들의 자연주의적 경향을 일언지하에 내쳤다. 그것은 성경의 창조론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교묘하게 부정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다음으로 워필드는 이런 자연주의적 사고가 교회에 미칠 파급력을 우려했다. 그는 기독교를 코라고 할 때, 초자연성은 그 호흡이라 했고 자연주의는 나쁜 공기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워필드 시대의 교회들이 대부분 자연주의에 물들었고 기독교의 사상은 자연주의적 편향성을 가졌다고 비판했다. 기독교의 초자연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연주의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없다고 했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기독교가 인정하고 요하는 초자연주의가 어떤 초자연주의이고 어느 정도의 초자연주의냐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을 얼마나 적게 인정하고서도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인 것 같다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워필드는 자연주의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을 설명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그분은 정의상 자연과 별이 안 되는, 그냥 자연에 얽혀 있거나 자연 안에 내재해 있는 그런 신이 아니며, 우주라고 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힘에 의해 한정되거나 제한 받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했다. 물론 하나님은 자연 안에도 계신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자연 위에 계신, ‘자기 손으로 행한 모든 것을 초월해 있는 분으로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이시며 우주의 창조자며 유지자이시라고 했다. 나아가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자 그대로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으로 자존적인 존재가 아니며 진화나 수정의 산물도 아닌, 초자연적으로 창조된 것이고 초월적인 하나님에 의해 존재하도록 불러내진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우주는 하나님께 의존해 있고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우주의 통치자이며 주인이시고, 또 하나님의 활동은 세상 안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초자연적인 창조와 속을 믿어야 하며 죄로 인한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회복해야 하는데 그 회복은 자연적 원인을 통해 작동하는 섭리적 수단 가운데서 교정책이나 회복의 방식을 찾지 말고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교정책이나 회복책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그리스도인은 초자연적 계시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행위에 의한 계시 뿐 아니라 말씀에 의한 계시를 믿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속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유익을 얻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2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가 어떤 분이고, 왜 이 땅에 살았으며, 자신의 죽음으로 무엇을 성취했고, 무덤이 그를 붙잡아 둘 수 없다는 의미는 무엇이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신적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초자연적인 원에도 진심으로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초자연적 속을 성취했고 이 속을 우리에게 알리셨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고 초자연적인 속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 적용이란, 성령이 우리 마음에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우리를 사망의 잠에서 일으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교제하게 하는 초자연적 속을 말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적인 힘들의 산물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진화된 존재도 아니며 성령에 의한 새로운 피조물이며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기적이자 살아있는 기적이고 하나님의 작업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절대적으로 초자연적인 것, 즉 초자연적인 하나님과 초자연적인 원자가 성취한 초자연적 계시에 의해 해석된,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로 말미암아 적용된 초자연적인 속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신앙을 전체로 온전히 붙드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오직 이 사람만이 가장 교활한 공격 가운데서도 기독교 진리의 충만함을 보호하고, 선한 신앙고백을 증언하리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워필드는 이 중요한 강연을 통해 자연주의를 주창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신적 주권으로 무장한 칼빈주의라는 거목을 프린스턴의 교정 한 복판에 심어놓고 깊은 뿌리를 내리도록 했다. 이 강연으로 펠라기우스주의와 소시누스주의, 그리고 이신론과 아르미니우스주의, 리츨 신학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신학은 강력한 역공을 맞고 휘청거렸다. 그러나 한 번 기울어진 배가 다시 회복하기 어렵듯이 프린스턴의 신학은 자유주의의 길을 떠나지 못했다. 이로 인해 프린스턴의 개혁주의자들은 프린스턴의 둥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29년 워필드를 계승하는 메이첸과 그 일행은 필라델피아에 온전하고 경건한 신학, 성경무오성과 초자연주의 신학을 수호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4. 현대 개혁신학적 입장 및 과제

 

워필드의 초자연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주창하는 개혁주의 신학의 숨통을 끊으려는 자연주의자들의 자기모순과 불완전성을 간파하고 그들의 약점을 공격하는 한편, 초자연적인 기독교를 변증함으로서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정립하고 발흥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워필드의 영감(Inspiration)교리는 기독교에 대한 불신앙 즉, 자연주의적인 신앙관을 혁파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솔직히 후대의 우리는 많은 점에서 워필드의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필드는 자연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들과 일전을 벌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용기 있고 탁월한 신학자였다. 그래서 워필드를 일러 논쟁신학자’(Polemic Theologian)로 부르기도 한다. 한편으로 워필드는 기독교에서 교리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 신학자이다. 그는 기독교 교리들은 인간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특별하게 알려주신 이 교리의 메시지가 기독교를 특징짓고 기독교의 진리성을 담보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기독교의 교리를 세우고 이 메시지의 참됨을 증언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책임이라고 역설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워필드의 목소리는 우리 가운데서 잘 들리지 않고 있다. 지금 현대의 개혁주의 신학자들마저 워필드가 이룩한 변증적 학문의 성과와 조직신학적 차원에서의 영감 등의 교리를 통한 자연주의자들과의 투쟁과,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그의 충실한 사랑과 헌신을 우리는 잊어버리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도 더 노골적이고 더 과격하며, 더 많은 수의 자연주의자들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다. 오늘날의 자연주의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이들은 일반 자연과학 뿐 아니라 생명과학과 우주과학에까지 손을 뻗어 이제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지우려고 시도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위험한 자연주의 세력은 기독교 안에 포진하고 있다. 워필드가 일생을 걸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함께,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와 인도하심에 따라 그들과 맞서 싸우고 그들의 존재를 기독교회 밖으로 몰아내기 위해 그렇게 헌신하고 투쟁했건만, 후대의 무기력한 우리에 의해 자연주의 세력들은 기독교라는 이름을 달고 교회 안에서 여전히 활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워필드의 땀과 눈물과 피 흘림의 가치는 소멸되고 말았다. 우리는 워필드의 헌신과 충성에 답하지 못했다.

 

특히 한국교회는 자연주의자들에 의해 대세를 장악당한 상태이다. 모든 주요한 일들은 저들의 손에서 시작되고 진행되고 마무리되어진다. 한국의 정부도 기독교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들을 저들과 손을 잡고 추진하고 실행한다. 소위 개혁주의 교단이라고 하는 몇몇이 소리를 내 보지만 변죽만 울리는 실정이다. 한국교회의 자연주의자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131월에 한기총 대표회장인 홍재철은 WCC(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준비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던 김삼환과 만나 4개항에 이르는 합의문을 발표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한다.

2. 우리는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애운동과 복음에 반하는 사상을 반대한다.

3. 우리는 개종전도금지주의에 반대하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한다.

4. 우리는 성경이 신앙행위의 절대적 표준임을 믿는다.

 

그런데 성경적으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이 합의문이 발표되자 소위 진보 자유주의 기독교인들의 단체로 알려진 NCCK 소속의 사람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신대 신학교수들과 에큐메니칼 학자들은 각각 성명서를 내고 이 합의문을 폐기할 것을 요하는 한편, 이 합의문 중 동성애와 개종전도금지와 종교다원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성경무오를 주장하는 것이 쓰레기라고 조롱했다. 그러자 삽시간에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당시 합의문 작성에 참여했던 NCCK 총무인 김영주는 곧바로 철회를 발표했으며, 합의문 자체를 없었던 일로 치부했다. 교묘한 말로 합의문의 내용을 무산시킨 것이다. 이후로 저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일사 분란한 모습이었다. 마치 하나의 지령이 떨어지자 모든 행동대원들이 지령에 따라 움직이고 말하는 것처럼 저들의 행동은 통일되었고, 이후로 WCC 부산총회는 저들만의 잔치로 축소되고 폐쇄된 행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 사건을 통해 비로소 자유주의자들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들은 이 합의문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기 전까지 동성애를 지지한다고 결코 공개적으로 말한 바가 없었고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한 적이 없었으며, 한 번도 자신들이 지지하는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한다고 인정한 바가 없었던 자들인데 합의문 사건으로 인해 저들의 속내가 들켜 버린 셈이 된 것이다. 최덕성 박사는 저들이 자충수를 두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저들의 성경무오성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하는 것이었다. 저들이 합의문을 쓰레기라고 표현한 동기가 바로 합의문 제 4항이 성경무오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저들의 정체가 자연주의자들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역사적 기독교의 계보를 이어 받아 초자연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개혁주의자들에게 많은 과제를 던져준 사건이 되었다. 개혁주의자들은 지나치게 한국교회 안의 자연주의자들의 존재에 대해 무지했으며, 저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 한국교회 안에서 저들의 존재가 어떤 위치와 어떤 규모와 어떤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지에 대한 워필드 같은 철저한 연와 논쟁과 투쟁이 부족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주의자들은 기독교회를 장악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사탄의 주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교리 없는 기독교를 주창하며 인간 중심의 기독교를 만들기 위해 안간 힘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개혁주의 진영은 너무 무기력하다. 먼저 이에 대한 통절한 자기반성과 자연주의자들에 대한 변증적 노력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이 점에서 우리는 워필드의 변증학을 다시 꺼내들 필요가 있다. 워필드에게 있어서 변증학은 기독교의 근본을 지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단지 기독교를 변호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기독교를 반대한 여러 사상에 맞서 기독교를 정당화하는 그런 차원의 학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토대를 확립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하나의 사실로 확립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확고한 교리의 체계를 갖추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워필드의 변증학은 기독교에 대한 반대가 있고 없고 하여 행사하는 방어 목적의 무기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 같은 것이며, 나아가 몸 안으로 침투한 병균을 잡아먹는 백혈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과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둘러싼 반 성경적이며 반 기독교적이며 반 초자연주의적인 현상이나 경향들, 나아가 행동들을 간파하고 적극적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충실히 변증하는 한편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시대를 분별하고 시류를 파악하고 시세를 조율하여 모든 일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서 행하고 정통 역사적 기독교의 진리와 함께 동거하고 살아가는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삶의 표현이 될 것이다. 아멘.



출처: 아리엘 개혁교회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