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ormation Theology/ㅡInstitutes

진정한 믿음과 거짓된 믿음 - 존 칼빈(John Calvin)

Bavinck Byeon 2018. 6. 13. 14:29

진정한 믿음과 거짓된 믿음


존 칼빈(John Calvin)



또 믿음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인애를 아는 지식과 그 인애의 신실성에 대한 확실한 신념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인식이 세속적인 일들 때문에 소멸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인식은 믿음에 가깝지만,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이 변하지 않으며, 그 분의 신실하심에는 언제나 자기 모순(自己矛盾)이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이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허락하는 비밀의 계시에 관해서는 버림받은 사람들이 그 계시를 통찰하고 마침내 그것에 도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뜻을 그대로 이해한다거나 그 뜻의 진실성을 꾸준히 믿는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는 오직 일시적인 인식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산 [살아 있는] 뿌리를 내릴 정도로 깊이 심지 못한 나무에 비할 수 있는데, 그런 나무는 몇해 동안 꽃과 잎뿐 아니라 열매까지도 열릴 수 있으나 얼마간 지나면 시들어버린다.


요약하면, 첫 사람의  반역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그의 마음과 영혼에서 말살된 것같이 하나님께서 사악한 사람들을 은총의 빛으로 비추시다가 후에 빛이 소멸되는 것을 허락하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복음을 아는 지식으로 어떤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감동시키시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식이 마음에 깊이 스며들게 하시는 것을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이 점을 잘 알아야 한다. 곧 선택된 사람들의 믿음이 아무리 부족하고 약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이 그들이 양자가 되었다고 하는 확고한 보증과 날인을 해주심으로써(엡 1:14; 고후1:22, 참조) 그가 새겨두신 표징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결코 말소되지 않지만 사악한 사람들 위에 비치는 빛은 후에 사라지는 성질의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씨에 대해서는 선택된 사람들의 경우와 달라서 성령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으며 그 씨를 영원히 썩지 않게 만들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렇다고 성령을 거짓되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그뿐 아니라 사악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는 때가 있지만 그들의 마음에 서로 사랑하겠다는 생각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일상 경험으로 분명히 알 수 있다. 사울은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경건한 충동이 왕성한 때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 같은 분으로 알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뻐하여 그에게 마음을 쏟았다(삼상 9-11). 그러나 버림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사랑에 대한 신념이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박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로서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완전히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인 같이 행동한다. 사랑의 영은 그리스도께만 주어졌고, 그 조건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에게 그 사랑의 영을 불어넣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울이 한 말은 확실히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해당한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릴 수 있는 확신(갈 4:6, 참조), 곧 위에서 말한 그 확신을 일으키는 사랑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여전히 사랑하시면서도 그들에 대해서 이상하게도 분노하신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미워하시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느낌으로써 놀라 육적인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며, 나태를 버리고 분발하여 회개하도록 만드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나 그들의 죄에 대해서 노하시며 동시에 자비를 베푸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고 기도하며, 동시에 고요한 확신을 가지고 피난처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에게로 피한다.


이런 증거를 보면,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믿음이 없기도 하거니와 믿음이 있는 체도 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갑자기 충동적인 열성에 휩쓸려 그릇된 의견을 품게 되며 자신을 속인다. 확실히 이런 사람들은 심히 태만하여 올바르게 자기의 마음을 검토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다"(요 2: 24-25)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한 말일 것이다(일시적인 신앙과 살아 있는 영구적인 신앙 사이에 유사점이 많으므로 나는 그것을 "공통" 신앙이라고 부른다). 만일 그런 공통 신앙(common faith)에서 낙오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행해서 믿음 안에서 전진하라고 권면하시며, 나태함으로 인해서 이미 받은 빛을 꺼지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믿음이 있다고 하였으며(딛 1:1), 사라진 사람들이 많은 것은 그들이 산 [살아 있는] 뿌리를 박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도 마태복음에서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마 15:13)라고 같은 뜻으로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사람을 조롱하고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거짓말은 더욱 야비한 것이다. 기만적인 구실로 믿음을 모독하는 이런 종류의 불경한 사람들을 야고보는 맹렬히 공격[책망]한다(약 2:14-26). 자기에게 없는 것을 담대하게 자랑하며, 공허한 겉치레로 남과 자기까지 속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면,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거짓이 없는 믿음"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딤전 1:5). 그러므로 그는 선한 양심을 믿음을 보관하는 상자에 비교한다. 이는 선한 양심을 버렸으므로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딤전 1:19, 3:9, 참조)(크다사역 - 그러므로 그는 선한 양심을 믿음이 보존되어 있는 궤에 비유한다. 선한 양심에서 떠나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한 상태(딤전 1:19, 참조. 딤전 3:9)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 기독교강요, 생명의말씀사, 3.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