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stematic Theology/Doctrine of Revelation

성경의 무오성과 종교개혁: 지금도 역사하는 말씀의 능력 - 칼 트루먼(Carl R. Trueman)

Bavinck Byeon 2018. 7. 11. 23:48



성경의 무오성과 종교개혁

지금도 역사하는 말씀의 능력

(The Power of the Word in the Present

Inerrancy and the Reformation)


칼 트루먼(Carl R. Trueman)


나는 비교적 조심스럽게 성경의 무오성과 종교개혁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싶다무오성의 교리가 계몽주의의 인식론을 기독교 신앙에 접목시킨 결과라는 비판이 종종 제기된다.


비판은 '스콜틀랜드 상식학파'(Scottish Common Sense Realism)가 특히 찰스 핫지아치볼드 핫지벤저민 웨필드와 같은 '()프린스턴’ 신학자들이 성경 본문을 다루었던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에 근거한다또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은 이 교리가 미국에서 새롭게 형성된 개념곧 19세기 말과 20세기에 불거진 미국의 근본주의자들과 현대주의자들의 논쟁에서 비롯한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런 비판과 주장에 대해 무오성의 교리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 가운데 많은 것이 초창기부터 교회 안에 존재했으며그 교리가 핵심적인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신학적인 발전 과정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라는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경우가 많다그러나 나는 나중에 형성된 무오성의 교리가 이전 세대의 견해와 동일한 맥락에서 성경의 영감설과 원문의 순수성이라는 개념에 근거한다고 확신하다.


개신교 종교개혁은 성경을 교회의 삶과 실천의 중심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사실당시는 루터 성경제네바 성경킹 제임스 성경과 같은 위대한 성경 번역이 이루어진 시대였다성경은 신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예배당의 구조를 바꿔 강단을 중앙에 위치시킨 것은 교회의 예배가 성례 중심의 예배에서 말씀 중심의 예배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다거기에는 신앙생활 전체가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종교개혁 당시에 성경이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성경에 관한 몇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예를 들면정경의 범위를 비롯해 특히 성찬에 관한 이해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확한 성경 해석의 원리와 같은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이 두 가지 문제는 '오직 성경'의 원리를 받아들인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조차도 상당한 의견의 차이를 보였다그러나 '오직 성경'의 원리에 대해서는 종교개혁자들 모두가 동의했다.


오늘날 우리는 개신교 신자로서 우리의 유산을 옳게 이해하고그 고백에 충실해야 한다는 확고한 자기 신념을 지녀야 마땅하다그러나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시대의 사상에 근거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때는 항상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라는 점을 아울러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물론 이전 시대의 개념을 이후 시대에 전혀 적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사실기독교 신앙은 "목회자들은 매우 고대의 본문을 토대로 교인들에게 현재의 상황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는 설교를 전해야 한다."라는 원리에 근거한다그러나 전문적인 신학적 특성을 띤 문제들은 종종 이전에 형성된 교리적인 원리를 배경으로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발생한다이것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복잡해지는 이유다.


성경 무오성의 교리도 예외가 아니다성경이 개신교 종교개혁의 핵심 사안이었다는 데에 동의하는 학자들은 종교개혁 당시에 논란이 되었던 무오성의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그 이유는 나중에 형성된 무오성의 교리를 통해 대답을 구했던 문제들이 16, 17세기에는 그렇게 큰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당시의 무오성의 문제를 다루려면찰스 핫지와 워필드에게서 발견되는 무오성의 개념이 구체적이고 논쟁적인 상황을 거치면서 발전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그 상황이란 다름 아닌 19세기의 고등비평과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에게서 유래한 칸트 이후 신학의 발전 과정이다. 16, 17세기에는 그런 상황이 존재하지 않았다따라서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에 발견하는 특별한 주장이나 특정한 관심사 가운데 대부분은 그 이전의 역사와 직접적으로 결부시킬 수 없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런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와 씨름했다문맹률이 매우 높았던 사회에서 그들은 말씀을 읽고 선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설교는 성경의 권위라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안이었다성경의 권위를 생각할 때그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과거에 있었던 말씀의 기원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역사하는 말씀의 능력이었다더욱이 핫지와 워필드가 다루었던 문제들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세상이 좀 더 정교하게 발전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들이었다그들은 그런 세상을 여는 데 기여했지만그런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예를 들어프린스턴 신학자들의 사상적 발전을 위한 배경을 형성했던 성경 고등비평은 언어학과 원문 분석의 관점에서 성경을 진지하게 다루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종교개혁자들의 신념은 단지 그런 식의 성경 연구를 자극하는데 그쳤을 뿐이다그런 발전은 사실상 17세기 중엽에 시작되었다마르틴 루터나 존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그런 신학적 발전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교리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먼저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의 원리가 나타나게 된 상황을 간단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교회는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성경 해설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그렇다면 성경이 16세기에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그 이유는 중세 시대에 우리가 특별한 계시로 일컫는 것에 대한 관심이 차츰 증폭되었고또 전통적인 권위의 구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13세기 말과 14세기에 유럽에서 인간의 이성을 믿는 신념이 점차 약화되었다지성적인 차원에서 그런 경향을 나타냈던 사람들은 '의지주의자들'이었다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행위에 있어 그분의 주권적인 뜻을 강조했고그 결과 신학적 주장은 무엇이든 그분의 특별한 계시에 근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이 계시는 대부분 성경이 아닌 교회의 전통과 동일시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리적인 논거는 종교개혁의 취지를 진작시키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둘째물리적인 상황(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중세 말에 흑사병이 발생한 것이었다)도 인간의 자신감과 확실성을 약화시키는데 일조했다세상이 불안하다 보니 사람들은 항상 의지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붙잡으려고 했다인간의 이성과 능력이 예측 불가능한 하나님의 극적인 행위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계시의 개념을 생각하기 시작했고이른바 특별한 계시로 일컬어지는 것을 하나님을 아는 가장 중요하고 규범적인 수단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셋째교회의 권위 구조가 서서히 무너져 내려 급기야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에는 세 사람의 교황이 등장하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졌고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찾기 위해 콘스탄츠 공의회를 소집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그로부터 1년 뒤에 요한 에크는 '라이프치히 논쟁'에서 권위의 문제에 관해 루터를 압박했다루터가 자신의 신학적 발전과 콘스탄츠 공의회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그는 '교황 제도도 실패했고 공의회도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면 과연 남은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다남은 것은 오직 성경 뿐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 관한 교리를 발전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종교개혁자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비교적 침묵을 지켰던 사실을 그들이 그런 교리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있겠지만그보다는 그들이 좁은 의미의 신적 영감설이나 권위와 같은 문제들과 관련해서 자신들이 물려받은 전통으로부터 크게 벗어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논의의 폭을 좀 더 넓혀 종교개혁 이전 시대의 성경에 관한 견해들을 잠시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유익할 듯하다.


영감의 방식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사도 시대 이후 초기 교회의 역사에서부터 분명하게 나타난다클레멘트 1세는 성령의 참된 말씀인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라고 말했다.1) 성령의 말씀이 어떤 방식으로 성경 본문에 기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단지 성경이 성령의 말씀이라는 확신만이 드러나 있을 뿐이다클레멘트 1세는 몇 단락 아래에서 "사랑하는 자들이여그대들은 성경을 매우 잘 알고 있다그대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예언을 깊이 상고해 왔다."라고 말했다.2) 여기에서도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이 동일시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은 클레멘트에게서만 발견되지 않는다키프로스의 데오도레토스(5세기)도 그와 비슷하게 "어떤 사람들은 시편이 모두 다 다윗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일부는 다른 사람들이 기록했다고 말한다나는 별다른 의견이 없다시편이 모두 성령의 영감에서 비롯한 산물일진대 다윗이 그것을 모두 기록했든 다른 사람들이 그 가운데 일부를 기록했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3)


6세기의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은 영감과 관련해 저자 불명의 성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처리했다. "욥기를 누가 기록했는지를 묻는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다왜냐하면 성령께서 욥기의 저자이시라고 모두들 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욥기에 기록된 말씀을 구술하신 분이 곧 그것을 기록한 저자다."4)


고대 교회의 저술가들은 이따금 성경이 기록된 방식을 구술로 생각하는 표현을 사용했다헬라 변증학자 아데나고라스는 영감의 방식을 통해 성경의 권위를 입증하기 위해 악기의 비유를 적용했다.


선지자들은 우리가 이해하고 믿는 것을 전한 증인들이다모세이사야예레미야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일에 관한 것들을 전했다하나님의 성령을 믿지 않고 한갓 인간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마치 악기처럼 사용해 그들의 입을 움직여 말씀하셨다.5)


'무라토리 단편'에도 이와 비슷한 개념을 드러내는 말이 발견된다. "복음서는 제각기 서로 다른 가르침을 전하고 있지만모두 동일한 성령의 통제 아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신자들이 믿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6)


물론 이런 증거들을 인용한다고 해서 '무라토리 단편'의 저자나 아데나고라스나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 성경의 영감과 기록 방식을 온전히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주장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나는 단지 성경의 본문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계시로 받아들인 것이 사도 시대 이후의 초기 문서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할 뿐이다성경이 기록된 방식을 구술로 생각하면 자연스레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다른 신학의 주제들과 마찬가지로 종교개혁의 배경을 이루는 성경과 성경의 영감에 관한 중요한 개념적인 발전도 중세시대에 접어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구술 방식이 지니는 한 가지 분명한 문제점은 성경을 너무 단조롭게 이해하는 탓에 성경의 다양한 문체와 장르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이 경우에도 개념상의 차이를 적절하게 구별함으로써 성경의 영감에 관해 좀 더 세밀하고 적절한 이해를 가능하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아퀴나스는 기본적으로 계시와 영감을 구별했다전자는 기적을 통해 전달된 새로운 정보를 가리키는 의미를 지녔고후자는 인간의 기능과 역할에 무게를 두는 의미를 지녔다그런 식으로 아퀴나스는 교회가 너무 단조롭고 획일적으로 구술의 방식만을 강조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도왔다물론 그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자기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지시하셨을 때와 같은 어떤 경우에는 성경 자체가 구술의 형태를 취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또한 계시가 환상을 통해 주어진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의식했다더욱 중요하게는 때로는 성령께서 성경 저자들의 생각을 인도해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하기 원하신 내용을 기록하게 하신 경우도 있었다그런 경우들을 제각각 달리 구분한 덕분에 성경 저자들의 다양한 문체는 물론 누가와 같은 저자의 방법론적인 주장까지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누가는 정보를 수집해 사건의 전개 과정을 구성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종교개혁을 살펴볼 때는 앞에서 논의한 요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즉 17세기 중엽에 시작해 19세기에 절정에 달한 고등비평은 종교개혁과는 큰 관련이 없다종교개혁 시대의 문제는 정경과 성경의 명료성이었다따라서 성경의 자기 증거와 해석의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었을 뿐성경의 기원은 일차적인 관심사에 해당하지 않았다.


개혁자들의 글을 살펴보면성령과 영감과 구술에 관한 그들의 견해가 초기 교회에서 발견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모든 종교개혁자들을 일일이 다 다룰 수는 없지만종교개혁자들 가운데서 루터가 종종 구술의 형식을 취했던 영감의 예언적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가장 강했다는 것은 지적할 만한 가치가 있다그는 자신의시편 주석(Dictata super Psalterium<1513-15>)의 서문에서 사무엘하 23장 1-4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그러나 이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라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라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사용했다그는 이런 표현 방식을 사용해 극도로 친밀하고 친숙한 영감의 형식을 암시했다.7)


루터는 누가복음 2장에 등장하는 시므온에 관해 말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그런 방식을 좀 더 일반화시켜 말했다. "누가는 시므온이 성령으로 충만한 모든 선지자의 화신인 것처럼 그에 대해 말했다선지자들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말씀을 전하고또 기록했다."8)


루터는 성경이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과 저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원했다고 믿었다이것이 그가 '성령께서 말씀하신 대로', 또는 성령께서 가리키신 대로'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던 이유다루터가 현재 시제를 사용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이것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실천적인 중요성을 지닌다는 것곧 성경의 현재적인 능력과 적용을 강조한다루터의 목회적 권고는 기본적으로 성경을 인용해 스스로의 양심이나 고뇌하는 친구의 양심을 달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마귀가 유혹의 마수를 펼칠 때는 성경 말씀으로 맞서야 한다그런 성경 말씀은 성령께서 지금 이 순간에 하시는 말씀이나 다름없다왜냐하면 과거에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9) 종교개혁 시대의 목회적 실천과 설교 사역의 중심에는 그런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칼빈도 성경이 성령의 영감에서 기원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그는 심지어 때로는 성경이 구술되었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했다그는 베드로전서 1장 11절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교리는 성령의 증언이기 때문에 높이 존중해야 마땅하다설교자와 사역자들은 인간이었지만그분(그리스도)은 교사이셨다그분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을 다스리셨다고 선언하지 않으셨다그분은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으로 하여금 복음서의 교사들을 주관하게 하셨다그 이유는 복음서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고또 고대의 예언이 그리스도에 의해 구술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10)


그러나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구술이라는 용어가 그 자체로 특정한 전달 방식이 아닌 내용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한 비유적인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베드로전서 1장 11절에 대한 칼빈의 주석은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대한 그의 주석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베드로는(이방인들이 그들의 예언자들에 관해 생각하는 대로생각을 빼앗긴 상태가 아니라 감동하심을 받은 상태에서 말씀을 전했다고 말했다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전한 것이 아니라 인도자이신 성령께 복종했다성령께서는 자신의 성전 안에 거하시는 것처럼 그들 안에 거하시면서 그들의 입술을 통제하셨다성경 안에 기록된 것은 '성경의 예언'으로 이해해야 한다.11)


칼빈은 선지자들의 영감을 신중한 태도로 다루었다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았지만 생각을 빼앗긴 상태가 아니었다그의 견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즉 칼빈은 성경의 내용에 있어서는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그분이 의도하신 것을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믿었다그와 동시에 그는 영감의 수단에 대해서는 모호하지는 않지만 다소 온건한 태도를 취했다.


그의 태도는 하인리히 불링거의 태도와 매우 비슷하다.


선지자들의 교리와 기록은 세계 각처의 지혜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큰 권위를 인정받았다선지자들 자체가 원저자가 되어 그런 교리와 기록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많은 논증에 의해 적절하게 밝혀졌다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선지자들의 마음속에 거하시면서 그들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그리스도와 그분이 선택하신 사도들을 통해 참으로 많은 증언이 이루어진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하나님은 그들의 사역을 통해 깜짝 놀랄 만한 기적과 기사를 행하셨다그런 기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적어도 우리는 그런 놀라운 표적들을 통해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가르쳤으며 또한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이런 사실에 대해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12)


불링거도 영감의 방식에 관해서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취했지만그 결과물(진실하고강력하고 신뢰성 있는 성경 본문)에 관해서는 분명한 확신을 드러냈다물론 이런 견해는 원리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는 개념적인 틀을 제공하지만서로 상이한 사본들을 다루는데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성경에 오류가 있는가?


이런 논의는 성경의 오류 가능성에 관한 종교개혁자들의 신념과 그들을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도록 이끈다어떤 사람들은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의 오류 가능성을 큰 문제로 간주하지도 않았고또 그것을 기꺼이 인정했다고 주장한다그런 주장은 오류나 모순에 관한 생각이 현대 이전에 작성된 문헌을 현대적인 관점이나 계몽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문제를 제기한데서 비롯한 결과라는 개념에 근거할 때가 많다다시 말해 이는 현대 이전이나 현대 초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런 문제에 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여기에서 멀리 5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 당시에 제기된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책들 가운데 오직 성경의 저자들만이 오류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웠다고 믿는다만일 내가 혹시라도 그 안에서 진리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것은 사본이 결함이 있거나 번역자가 말씀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거나아니면 내 자신의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13)


보다시피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에 오류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세 가지(사본의 결함번역자의 오역자기 자신의 이해 부족)로 제시했다그는 원본의 실질 적인 오류 가능성을 문제의 이유로 제시하지 않았다이것은 성경의 오류에 관한 관심이 계몽주의적인 인식론과 관심사에 근거를 둔 현대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긴 말 한마디를 고대 교회 안에서 널리 합의된 견해로 내세우기는 좀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14) 그러나 위의 인용문은 핫지와 워필드의 전통을 따르는 후대의 성경 무오론 주장자들에 의한 관심과 논증이 그 이전의 시대에도 전례가 없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일찍이 5세기에 살았던 신학자들도 명백하거나, 또는 잠재적인 오류 가능성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다.


성경 고등비평이 제기한 문제들이 16세기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종교개혁 당시에는 성경의 연대 오류 가능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부각되었다이 점에 대해서는 루터의 저서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듯하다그 이유는 대다수 학자들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의 무오성을 확신했다는 생각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일축해 버리기 때문이다.


때로 그런 입장은 야고보서에 대한 루터의 태도를 근거로 내세운다그런 입장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이렇다야고보서에 대한 루터의 태도는 그것이 신학적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성경의 일부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단지 정경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이다그것은 영감과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영감과 정경성의 문제에 해당한다.


오류 가능성과 관련해 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성경의 연대에 관한 루터의 접근 방식이다그는 성경의 연대가 매우 혼란스럽고무질서하다고 말했다그러나 두어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뭔가 깨달음의 단초를 발견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첫째루터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던 연대의 문제는 아브라함의 소명을 언급한 모세와 스데반의 말이었다모세는 그 소명이 하란에서 주어졌다고 말했고(창 11:31), 스데반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주어졌다고 말했다(행 7:2).


이 문제를 다루는 루터의 방식은 흥미로우면서도 교훈적이다먼저그는 익명의 주석가들의 접근 방식을 언급했다.


이 문제에 대한 관례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다아브라함은 두 차례 부름을 받았다한 번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마도 족장 셈에 의해 부름을 받았을 것이고나중에는 하란에서 부름을 받았다그러나 모세는 하란에서 부름을 받은 것만을 기록으로 남겼다따라서 이 두 증인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모세는 후자를 언급했고스데반은 전자를 언급했다.15)


루터는 그런 관례적인 접근 방식을 거부했다왜냐하면 스데반은 모세의 글을 통해 그 사건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런 사실을 부인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저자의 의도와 장르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스데반이 아닌 모세가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스데반은 그 사건에 대한 지식을 모세의 글을 동해서만 얻었을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어떤 사건을 언급할 때는 대개 그 사건을 후손들을 위해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종사한 사람들만큼 세세한 내용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모세는 역사가였지만스데반은 세부적인 내용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왜냐하면 모세의 글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그는 단지 듣는 자들에게 그들의 조상이 율법도 성전도 없었을 때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그분을 기쁘시게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데 목표를 두었을 뿐이다문제의 핵심은 이렇다즉 스데반은 하나님이 성전이나 할례나 율법 때문에 자기를 나타내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손에 죽임을 당한 약속된 후손(예수님때문에 죄를 용서하고죄인을 의롭다 하며영생을 허락하신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16)


내가 이런 사례를 제시하는 이유는 루터의 접근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두 가지 요점을 제시하기 위해서다첫째루터는 서로 다른 성경 본문이 모순을 일으킨다는 것과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기된 전통적인 견해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둘째그는 그런 모순이 성경에는 오류가 있다그래도 괘념치 말라."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줄 근거를 제시하려고 노력했다그는 오류를 오류로 묵인하기를 원하지 않고성경에는 오류가 있다는 결론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문학적 장르와 저자의 의도라고 일컫는 요소에 호소했다그의 접근 방식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지 모르지만그가 성경의 진실성을 옹호하는데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그의 사고에는 하나님은 진실하시기 때문에 성경도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루터의 접근 방식과 칼빈의 접근 방식을 간단히 비교하면 이렇다칼빈의 창세기 주석에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스데반의 말로 인해 창세기 11장 31절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식의 언급은 없다그는 단지 하란을 메소포타미아의 일부로 묘사한 고대의 지리적 관습을 언급했을 뿐이다.


모든 저자들은 한 목소리로 히브리인들이 하란으로 일컬은 마을을 메소포타미아의 하란과 동일시한다루칸의 경우는 사실이 아닌 시적인 차원에서 그곳을 앗수르 지역에 위치시켰다그곳은 크라수스 장군이 몰락하고 로마 군대가 패배한 것으로 유명했다.17)


사도행전 7장 2절에 관한 칼빈의 주석도 이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18)


루터는 다른 곳에서도 열왕기에 등장하는 왕들의 연대와 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사건들의 전후관계를 조화시키는 문제를 언급했다그러나 그가 그런 어려움을 인정했다고 해서 복음서 저자들이 시간적인 전후관계를 부주의하게 다루었다고 성급히 결론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루터는 광야의 시험성전 정화베드로의 부인과 같은 복음서의 사건들을 서로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만일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개인이 그리스도와 현재적 시점에서 실존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런 사건들을 조화시키려고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이 말은 그와 비슷한 노력을 기울였던 칼빈과 다른 개혁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신학적인 상황에서 바라보는 성경의 무오성


지금까지 논의한 대로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영감에 대해 대체로 침묵을 지켰다이런 사실은 그들이 자신들이 물려받은 전통을 만족스럽게 여겼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그들은 성경을 높이 존중하는 전통곧 성경의 저자들과 성경 본문에 성령의 영감이 주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전통을 물려받았다이 전통은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발전되었다당시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영감과 관련해 구술의 방식을 넘어서는 방식을 생각했고성경에 나타난 모순들에 의해 제기된 어려움을 십분 의식했다루터의 경우는 그런 사실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무오성에 관한 논쟁은 성경 원문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진다나는 그런 논쟁 가운데서 두 가지 요점을 밝히는 것으로 모든 논의를 마무리하고 싶다또한 나는 종교개혁자들을 무오성의 문제를 신학적인 상황과 결부시키는 발판으로 활용하고 싶다.


첫째현대 복음주의자들의 생각이 성경 본문의 진실성을 공격하는 주장에 온통 사로잡혀 있는 동안 교회의 쇠퇴라는 역사적 과정이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었다개혁주의 신학은 단지 성경 본문이 공격을 당하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와해되지 않았다개혁주의 신학이 와해된 이유는 하나님에 관한 교리가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나는 17세기의 역사를 연구해 본 결과단일신론을 주장했던 소시니우스주의자들에게서 비롯한 일파가 많은 점에서 성경의 절대 권위를 인정한 성경적인 운동을 펼쳤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하나님의 진실성(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교리의 성패가 달려 있는 사안)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하나님에 관한 교리와 성경에 관한 교리의 연관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복음주의 진영은 논리보다는 감정에 이끌려 분노를 표출하는데 익숙하다그러나 그런 태도는 치명적일 수 있다성경에 관한 교리와 하나님에 관한 교리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전자가 무너지면 후자도 함께 무너진다.


성경에 관한 교리가 종교개혁 이후의 정통주의 시대에 따로 분리된 신학적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성경의 속성 가운데 대부분이 하나님의 속성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성경은 권위 있고완전하고효과적이고강력하고거룩하고필수불가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하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간단히 말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분의 존재 자체를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둘째무오성이나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보다 더 큰 교리적 사안을 간과하거나 다른 교리들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무오성은 충족성과 명확성과 같은 성경의 다른 측면과도 함께 연관되어야 하고무엇보다도 하나님에 관한 교리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복음주의 진영 안에서 고전적인 신론(즉 성경에 관한 개신교의 교리를 구축했던 사람들이 생각했던 신론)의 많은 부분이 거부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사실은 우리의 깊은 관심과 생각을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종교개혁자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이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를 기억해야 한다성경의 진실성은 말씀 선포의 진실성에 관한 그들의 이해를 떠받치는 근본 토대였다정확하게 선포된 말씀은 회중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이 점이 '2차 스위스 신앙고백'(1566), 곧 당시의 취리히를 위해 불링거가 작성한 위대한 신앙고백 제1장에 분명하게 명시되었다.


선포된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따라서 합법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설교자들이 교회 안에서 지금 이 말씀을 선포할 때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고또 충실한 자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인다고 믿는다그 외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은 만들어낼 수도 없고또 하늘로부터 기대할 수도 없다말씀을 전하는 사역자가 아닌 선포되는 말씀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왜냐하면 설교자가 설혹 악한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참되고 선하기 때문이다.



출처: '성경 무오성에 대한 도전에 답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