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eds & Confessions

도르트 총회(The Synod of Dort: 1618-19) - 스데반 황 목사 번역 및 편집 (PDF)

Bavinck Byeon 2023. 11. 22. 21:54

도르트 총회(The Synod of Dort: 1618-19)

번역 및 편집: 스데반 황 목사

 

[본 번역본은 역자이자 편집자이신 스데반황 목사님의 허락하에 게재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1. 도르트 신경의 역사적 배경

 

도르트 신경은 17세기 초 화란의 개혁교회 안에 일어났던 알미니안 교리 논쟁이 발단이 되어 작성된 신경이다. 알미니안 교리의 중심인물인 알미니우스는 제네바에서 칼빈의 제자인 베자에게서 신학을 배웠다. 그는 15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베자를 통해 배운 칼빈의 가르침이 실제 삶 속에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알미니우스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 부분에서 칼빈의 가르침에 반론을 제시했다. 그는 칼빈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사상과 예정론에 대해 반박했다. 이로 인하여 논쟁이 발생하였고 1618년에 도르트 총회가 열렸다. 그 총회에서 알미니우스의 주장(알미니안주의)은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교회역사 속에서 알미니안주의는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감리교 안에도 알미니안 요소가 있고, 많은 개신교 목사들의 설교에도 알미니안적인 요소가 여전히 발견된다.

 

2. 도르트 신경의 5가지 강조 내용 (TULIP)

 

1)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무조건적인 선택이다(Unconditional Election)


알미니안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미리 내다보시고 구원을 주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하나님께서는 믿을 자들을 미리 내다보시고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로 인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선택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결과다. 그러므로 그 구원은 완전하고 안전하다. 이러한 칼빈주의의 주장은 선택된 자들에게 큰 위로를 주고 동시에 겸손을 요구한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이 나를 선택을 안 해주셔서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 대답은 “누구든지 믿으려고 하면 하나님이 받아주신다. 그러므로 빨리 믿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사람들은 “왜 어떤 사람들은 선택하고 어떤 이는 선택을 받지 못했느냐?”라고 질문한다. 그 대답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의 주권적인 선택에 달려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적인 선택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의 전제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에서 출발한다. 완전히 부패한 인간은 원칙적으로 모두 멸망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패한 인간을 모두 구원하실 책임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완전히 부패한 인간은 다 멸망해야 마땅한데, 그 중 얼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선택을 받았으니 그들에게는 오직 감사와 찬양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내 자신이 왜 선택 받았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또한 내가 선택받은 사실에 대해서도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로 알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은 결국 생명의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그만 생명의 열매라도 맺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신 사실에 대해 담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2)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제한적인 속죄의 사역이다(Limited Atonement)


알미니안주의는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는 보편 속죄론(universal salvation)을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제한적 속죄론을 주장한다. 곧,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 사역이 유효하다고 말한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속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주의는 속죄의 효과는 선택 받은 자들에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피는 모든 믿는 자들을 구속하셨고, 그 구속의 효과는 모든 사람의 구원에 필요 충분한 조건이 된다.

 

3) 인간의 전적인 타락(Total Depravity)


전적인 부패란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이 전혀 없는 무가치한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원죄는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모태에서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다윗의 고백은 이를 증거한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성경은 모든 사람이 전적으로 부패해서 스스로 복음을 선택하고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은 구원에 있어서 완전히 무능하게 되었다 즉,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기 힘으로 선을 행할 수 없다. 부패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리에 결단코 나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주셔야만 우리 모두는 복음의 자리로 나갈 수가 있다.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알미니안도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를 말하지만, 이 은혜를 인간이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하나님이 선택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끝내 거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강퍅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녹이셔서 결국 하나님의 오래 참는 사랑으로 설복시키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결과로 그 어떠한 강퍅한 마음도 자원하는 심령으로 변하게 된다.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알미니안은 한번 은혜가 주어진 후에도 구원의 은혜가 상실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하나님은 연약한 신자를 끝내 붙드셔서 구원의 완성을 이루신다고 주장한다. 구원을 시작하신 이가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의 믿음을 신앙하지 않고, 주님의 신실하심을 신앙해야 한다. 이는 믿음을 주신 주님만이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가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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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섯 가지 주요 핵심 결정

 

도르트 신경은 화란에서 열린 도르트 총회에서 구원과 관련한 다섯 가지 주요 핵심에 대해 내린 결정 사항이다. 도르트 신조는 5개의 신앙 고백에 대한 상세 항목 및 거짓 교훈에 대한 배격으로 되어 있다.

 

1) 첫 번째 주요 핵심 교리: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

 

(1) 하나님의 예정 교리에 대한 결정

 

제1항 : 모든 사람을 정죄하시는 하나님의 권한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범죄하여 저주 아래 놓여 있으며 영원한 죽음을 받기에 합당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죄와 저주 아래 내버려두시고 그들의 죄로 인하여 정죄하시더라도 이는 그들에게 아무런 불의를 행하신 것이 아니다. 이 교훈은 사도가 말한 다음 내용과 같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제2항 : 하나님의 사랑의 나타나심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셨다(참조, 요일 4:9; 요 3:16). 

제3항 : 복음을 전함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믿음을 얻도록 그분의 자비 가운데 그분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그분이 원하시는 때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을 보내신다. 그들의 사역에 의해 사람들은 부름을 받아 회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

제4항 : 복음에 대한 두 가지 반응

 

하나님의 진노는 복음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남게 된다. 그러나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이 복음을 받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선물로 얻게 된다.

 

제5항 : 불신과 믿음의 원천들

 

다른 모든 죄와 마찬가지로 불신의 원인 또는 탓은 결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를 통한 구원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이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제6항 :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어떤 사람들은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선물을 받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기인한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영원부터 친히 계획하시고 아시는 바에 따라 발생한다.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행 15:18)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도다”(엡1:11)

 

하나님께서는 이 작정에 따라 아무리 인간의 마음이 완고하다 하더라도 그분의 택한 자들의 마음을 은혜 가운데 부드럽게 하셔서 믿는 성향을 갖게 하시며, 반면에 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사악함과 고집대로 내버려두셔서 주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하신다.

 

이 사실에서 특별이 우리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멸망에 처한 상태이지만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가 임하고 또 어떤 자들에게는 공의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드러나는 잘 알려진 ‘선택과 유기’의 작정이다. 악하고 더럽고 불안정한 불신자들은 이 작정을 왜곡하여 스스로 멸망에 떨어지지만, 이 작정은 거룩하고 경건한 영혼들에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위로를 공급한다.

 

제7항 : 선택


선택은 하나님의 불변의 목적으로서, 주께서는 선택에 의해 다음을 행하신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의 자유로운 선한 즐거움에 따라 인류 전체, 곧 스스로의 잘못에 의해 원래의 무죄 상태에서 타락하여 죄와 멸망에 처하여진 사람들 가운데 일정 수의 특별한 사람들을 구원으로 택하셨다. 택함을 받은 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며, 다른 이들과 똑같이 공통된 비참 가운데 있던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택하셨으며, 또한 영원부터 그리스도를 모든 택한 자들의 머리와 중보자로 세우셔서 그들의 구원의 반석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그리스도에게 주시기로 결정하셨고, 이에 주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그들을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인도하사 그리스도와 친교하게 하신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을 허락하기로 결정하셨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그들을 거룩하게 만드시고,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자기 아들과 끝까지 교제하도록 하신 후에 마침내 영화롭게 하시기로 작정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심은 자신의 자비를 나타내기 위함이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풍성함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제8항 : 선택에 대한 단 하나의 작정

 

이 선택은 다양하게 여러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시대에 있어서 구원 받아야 할 모든 사람들을 위한 단 하나의 동일한 작정이 있을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단 하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과 목적과 계획에 따라 주께서 영원 전부터 우리를 택하셔서 은혜와 영광으로 이르게 하시고, 또한 구원과 구원의 길에 이르게 하심으로 주께서 미리 마련하신 그 길에서 행하도록 하셨음을 보여준다(참조, 엡 1:4-5; 2:10).

 

제9항 : 예지적인 믿음에 근거하지 않은 선택

 

하나님의 사람 선택은 택함 받은 자의 어떤 필요 조건이나 원인에 근거하지 않는다. 즉, 예지적인 믿음이나 믿음의 순종, 거룩, 어떤 선한 성품 및 기질을 근거로 택하신 것이 아니다. 주의 선택은 도리어 믿음의 순종을 위해, 거룩과 어떤 선한 성품 등등을 위해 믿음을 갖도록 한다. 따라서 선택은 구원의 모든 혜택들, 곧 믿음, 거룩, 다른 여러 가지 복된 은사들 및 영원한 영생의 기원이다. 이러한 혜택들은 선택에서 흘러나와 맺혀지는 열매와 결과들이다. 이는 사도가 말한 것처럼 “곧 창세 전에 (우리의 어떤 자격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하신 것이다.

 

제10항 :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에 따른 선택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이 이 은혜로운 선택의 유일한 원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조건으로서 어떤 특별한 성품이나 행동들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죄인들 가운데서 어떤 특별한 사람들을 뽑으셔서 자기 자신의 소유로 삼으신 것을 의미한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11-13)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제11항 : 불변하는 선택


하나님은 가장 지혜로우시며 불변하시며 전지(全知)하시며 전능하신 분이시므로 그분이 행하신 선택은 중단되거나 변하거나 취소되거나 무효화될 수 없다. 또한 택함 받은 자는 버림받거나 그 수가 감소될 수 없다.

제12장 : 선택의 확신


영원하고 변함없는 구원의 선택에 대해 신자들이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정도가 다르고 또한 다양한 단계가 있기는 하지만 적당한 때에 주어진다. 그러한 확신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깊은 것들을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 안에 성령으로 인한 기쁨과 거룩한 즐거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구원 받은 자의 분명한 열매들을 주목하게 되면서 얻어진다. 그 열매들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 하나님을 향한 어린아이 같은 경외심,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경건한 애통, 의를 향한 배고픔과 목마름 등이 있다.

제13항 : 이러한 확신으로 인한 열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의식하고 확신하게 될 때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지며,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하여 주신 주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자비를 찬양하게 되고, 그들에게 먼저 그토록 어마어마한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다시 뜨거운 사랑으로 보답하게 된다.

선택의 교리를 이해하고 묵상할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데 있어서 나태해지거나 육체적으로 안일하게 되는 일이 없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선택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며 당연하게 여기는 자들과 택함 받은 자들의 길로 행하려 하지는 않고 그저 택함에 대해 게으르고 도도한 말장난을 하는 자들에게 종종 임한다.

제14항 : 선택 교리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침


하나님의 지혜로운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가르침은 선지자들과 그리스도 자신 그리고 사도들에 의해 선포되어 왔다. 또한 선택에 대한 교훈은 구약과 신약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드러나며, 이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교회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선택에 대한 가르침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방법에 대한 호기심을 지닌 탐구를 지양하고 교회 내에서 분별 있게 가르쳐야 하고 적당한 시간과 장소에서 경건하고 거룩한 방법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이 일은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한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주의 백성들을 힘차게 위로하기 위해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제15항 : 유기


더욱이 성경은 주께서 우리를 택하심은 영원하고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가장 많이 강조한다. 동시에 성경은 우리를 위해 이 은혜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모든 사람이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중 얼마가 택함을 받은 사실을 증거한다.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가 그냥 지나치게 된다.

이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분의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공의, 그리고 결코 책망을 받거나 변할 수 없는 그분의 선한 즐거움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리신다. 즉, 스스로의 잘못과 죄악에 의해 공통적인 비참에 떨어져 있는 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믿음과 회심의 은혜를 허락하지 않으시며 마침내 주의 공의를 드러내시기 위해 그들을 정죄하시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하신다. 이는 그들의 불신앙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은 모든 죄악으로 인함이다. (그들은 자기들 멋대로 행하도록 유기된 상태에 있다가 주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된다.)
   
이것이 유기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이다. 그러나 이 작정으로 인하여 결코 하나님이 죄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며 (이런 생각은 가장 신성모독적인 생각이다!) 다만 하나님은 두렵고 흠잡을 데 없는 공의로운 재판자요 보응자이심을 드러낼 뿐이다.

제16항 : 유기의 교훈에 대한 반응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믿음을 적극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마음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화평한 마음을 누리지 못하고, 어린아이 같은 충성스런 순종을 나타내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러한 역사를 나타내기로 약속하신 은혜의 방편들을 사용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면 그러한 자들은 유기에 대한 언급에 놀라거나 그들 자신을 버려진 자들로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은 그러한 은혜의 방편들을 계속적으로 부지런히 사용할 것이며 더욱 풍성한 은혜의 때를 간절하게 바랄 것이며 두려움과 겸손 가운데 주의 은혜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반면, 진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만을 기쁘시게 하고 멸망에서 구원 받기를 원하는 자들은 비록 아직 그들이 바라는 만큼의 믿음과 경건에 이르지는 못하였을지라도 유기의 가르침에 대해 두려워 떨 필요가 훨씬 덜 하다. 그 이유는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고 상한 갈대조차 꺾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망각하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아오지 않고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이 세상과 육체의 쾌락에 방임해 두는 사람들에게는 유기의 가르침을 알게 하여 두려워 떨게 하여야 한다.

제17항 : 신자들의 영아들에 대한 구원


우리는 주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대해 판단을 한다. 주의 말씀은 신자들의 자녀들은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부모와 함께 관련된 은혜로운 언약으로 인하여 그들이 거룩하다고 증거한다. 이에 경건한 부모들은 영아 때에 주께서 불러 가신 자녀들에 대해 그들의 선택과 구원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참조, 창 17:7; 행 2:39; 고전 7:14).

제18항 : 선택과 유기에 대한 올바른 자세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운 선택과 의롭고 엄중한 유기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대답할 수 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롬9:20)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20:15)

하지만 우리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오묘하심에 대하여 경외하는 찬양의 마음으로 사도와 같이 말하도록 하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3-36)

 

(2)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의 가르침에 대한) 반대 주장을 배격함

 

선택과 유기에 관하여 정통적인 교훈을 제시한 종교 회의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주장을 배격하는 바이다.

제1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믿고자 뜻하고 이 믿음 안에서 인내하며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야말로 그분의 선택의 전체적이며 완전한 작정이다. 이러한 작정에 관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시되어 있지 않다.

배격 : 이 오류는 속임수며, 성경의 가르침을 명백하게 부인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믿고자 하는 자를 구원하기를 원하신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어떤 특별한 사람들을 영원 전부터 택하셔서 때가 이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얻게 하시고 견인하게 하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 17:6)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제2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영생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편적이며 불명확한 선택이요, 다른 하나는 특별하고 분명한 선택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는 불완전하며 취소될 수 있으며 미결정적인 (또는 조건적인) 선택이 되든지, 아니면 취소될 수 없는 완전하고 결정적인 (또는 절대적인) 선택이 된다. 즉, 하나는 믿음에 이르게 하는 선택이요, 다른 하나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선택이다. 따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인 선택과는 달리, 다만 의롭게 하는 믿음에 이르게 하는 조건적인 선택이 있다.

배격 : 이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고안으로서 선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구원의 황금 사슬을 끊어버린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제3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하나님께서 선하신 목적과 기쁨에 따라 선택하셨다는 성경의 교훈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어떤 특정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택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행위들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조건들로부터, 또는 모든 합당한 것들로부터, 믿음의 불완전한 순종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는 믿음의 행위를 택하여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은 이러한 믿음의 행동을 완전한 순종으로 여겨주시고 영생을 보상 받기에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시려는 자비로운 주의 바람을 포함한다.

배격 : 바로 이러한 악독한 오류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기뻐하심과 그리스도의 공로가 그 효력을 잃게 되며 인간들은 무익한 탐구로 인하여 성경의 단순한 진리와 거저주시는 칭의의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이 오류는 다음과 같은 사도의 말씀에서 볼 때 거짓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제4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믿음에 이르도록 선택을 받는 전제 조건에 있어서는 사람이 본성의 빛을 올바르게 사용하여야 하며, 정직하고, 잘난 척하지 않고, 겸손하고, 그리고 영생을 얻는데 합당한 성향을 지녀야 한다. 선택은 이러한 요소들에 어느 정도 의존되어 있는 것 같다.

배격 : 펠라기우스(Pelagius)의 냄새를 피우는 이러한 주장은 사도의 말씀으로 볼 때 분명하게 문제가 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3-9).

제5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구원을 향하도록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불완전하고 미결정적으로 내리는 (하나님의) 선택은 예지된 믿음과 회심, 거룩함, 그리고 이미 시작했거나 얼마 동안은 지속되어온 경건함에 근거하여 내려진 선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선택은 끝까지 견인하는 믿음과 회심, 거룩함, 그리고 경건함을 예지하여 내려진 선택이다. 이 주장이 은혜롭고 복음적인 가치가 있는 이유는 선택함을 받는 자가 선택함을 받지 못한 자보다 더 자격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믿음과 믿음의 순종, 거룩함, 경건함, 그리고 성도의 견인은, 영광에 이르게 하는 불변하는 선택의 열매 또는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완전한 선택 대상으로 택함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전제 조건과 원인으로서 하나님은 그 조건들이 이루어질 사람들을 미리 아시고 절대적인 선택을 하신다.

배격 : 이러한 주장은 우리의 귀와 마음에 계속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는 모든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된다.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1)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롬 11:6)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요일 4:10)

제6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모든 선택이 불변하는 것은 아니다. 택함 받은 사람들 중의 얼마는 멸망 받을 수 있고, 또한 실제로 영원히 멸망할 것이며, 하나님의 그 어떠한 작정도 이를 막지 못한다.

배격 : 이 끔찍한 오류는 성경과 충돌하며, 하나님을 변덕스러운 분으로 묘사하고, 선택의 견고함으로부터 얻는 신자들의 위로를 무너뜨린다. 또한 이 주장은 택함을 받은 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된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요 6:39)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제7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이생에서는 어떤 사람을 영광에 이르도록 하는 불변하는 선택이 없으며, 그러한 선택으로 인한 열매나 자각이나 확신은 전혀 없다. 오직 가변적이며 불명확한 것에 기인하는 조건적인 선택이 있을 뿐이다.

배격 : 불확실한 확신을 말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주장들은 자신들이 선택 받았음을 의식하면서 사도와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선물을 찬양하는 성도들의 체험을 노골적으로 거스른다.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당부하신 대로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며(눅 10:20), 또한 마귀의 유혹의 모든 불화살을 대항하여 싸우면서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라고 대답하면서 자신들의 택함에 대한 자각을 끝까지 붙든다.

제8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아담의 타락한 상태 및 죄와 정죄의 공통적인 상태에 내버려 두기로 작정하시거나 또는 믿음과 회심을 위해 필요한 은혜를 부여하는데 있어서 누군가를 지나치기로 작정하신다는 것은 결코 그분의 공의로운 뜻으로부터 기인될 수 없다.

배격 :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8)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1)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제9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하나님께서 어떤 민족에게는 복음을 주시고 다른 민족에게는 주시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단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 때문이라기보다는 복음을 받지 않는 민족보다는 복음을 받는 민족이 더 낫고 더 자격이 되기 때문이다.

배격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내용은 위의 주장과 상충된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신 10:14-15)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도 상충된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 11:21)

 

2) 두 번째 주요 핵심 교리: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것을 통한 인간의 구속

 

(1) 그리스도의 속량 교리에 대한 결정

 

제1항 : 하나님의 공의에 따른 형벌


하나님은 지극히 자비로우실 뿐만 아니라 지극히 공의로우시다. 그분의 공의는 (그분의 말씀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듯이) 우리가 그분의 무한한 엄위를 대항하여 범한 죄악들이 이생 및 영원한 세상에서, 몸과 영혼이 모두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지 않는 한 이러한 형벌을 피할 수 없다.

제2항 :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만족을 이룰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무한한 자비 가운데 우리를 위한 보증으로 우리에게 독생하신 아들을 주셨다. 그 아들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죄와 저주가 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

제3항 : 그리스도의 죽음의 무한한 가치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은 죄에 대한 유일하고 완벽하고 완전한 희생 제물이며 또한 죄에 대한 보속(補贖)이다. 그의 죽음은 온 세상의 죄악을 속하기에 한없이 충분할 정도로 무한한 가치와 존엄이 있다.

제4항 : 그의 죽음이 무한한 가치를 가진 이유


이 죽음이 그러한 위대한 가치와 존엄이 있는 이유는 그 고통을 당하신 그는 (우리의 구주가 되기 위해 필요한 대로) 참되고 완전하게 거룩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동일하게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지니신 분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죽음은 우리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마땅히 받았어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대신 겪는 것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제5항 : 모든 자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


더욱이 복음의 약속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한 기쁨 가운데 복음을 보내는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을 향해 차별이나 구별 없이 회개하고 믿으라는 명령과 함께 전파되고 선포되어야 한다.

제6항 : 불신자의 책임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통해 부름을 받았어도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며 불신앙 가운데서 멸망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바쳐진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이 흠이 있거나 불충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들 자신의 잘못 때문이다.

제7항 :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


그러나 진심으로 믿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의해 그들의 죄악 및 멸망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구원 얻는 모든 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오는 은총을 받은 것이다. 그 은총은 아무에게도 빚을 진 것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거저 주신 것이다.

제8항 :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구원의 효력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아들의 보배로운 죽음의 생명 및 구원하는 효력이 그분의 모든 택하신 자들에게 역사하도록 하시어 그들에게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을 주심으로 그 믿음에 의해 그들이 반드시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다. 이것이 그분의 완전한 자유로운 계획이며 매우 은혜로운 뜻과 경륜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새 언약을 확증하셨다) 영원 전부터 구원에 이르도록 택함을 받은 자들, 즉 모든 민족과 족속과 나라와 방언으로부터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자들과, 또한 오직 그들만을 효과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또한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는 것(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에 의해 그들에게 성령의 여러 다른 구원의 은사들을 얻어내신 것처럼)과 또한 그리스도의 보혈로 원죄 및 자범죄, 그리고 그들이 믿음에 이르기 전이나 후에 지은 그들의 모든 죄악을 씻어주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또한 그들을 신실하게 마지막 끝까지 보전하시어 마침내 그들을 자신 앞에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백성으로 서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제9항 :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

 

택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서 비롯된 이 경륜은 세상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능력 있게 성취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성취될 것이기에 지옥의 권세가 그 계획을 무너뜨리려고 해도 헛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택자들은 모두 각자의 때에 하나로 모이게 되며, 이에 그리스도의 보혈에 기초한 신자들의 교회는 항상 있다. 그 교회는 그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신 신랑을 위한 신부로서 이 땅에서와 영원무궁토록 변함없이 그를 사랑하고 끝까지 신실하게 예배하며 찬양할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것을 통한 인간의 구속의 가르침에 대한) 반대 주장을 배격함

 

종교 회의는 정통적인 교훈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은 잘못된 주장들을 배격하는 바이다.

 

제1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정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은 어떤 정해진 자들의 이름을 불러 구원하려는 확고하고 분명한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얻은 구속의 필요성과 유용성과 가치가 어떤 개인에게 실제로 전혀 적용되지 않을지라도 그 모든 면에서 완전무결하며 본연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다.

 

배격 : 이 주장은 하나님 아버지의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대한 모독이며 또한 성경과 모순된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그들을 아노라”(요 10:15, 27).
또한 이사야 선지자도 구세주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마지막으로, 위의 주장은 우리가 교회와 관련해서 믿는 신앙 고백의 조항을 무너뜨린다.

 

제2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목적은 그의 보혈을 통하여 실제로 새로운 은혜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버지를 위해 은혜로든 또는 행위로든 한 번 더 인간들과 언약을 맺으실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내시기 위함이었다.

배격 :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교훈과 상충된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히 7:22, 9:15, 17).

 

제3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것은 어떤 사람에게 구원을 반드시 얻게 하거나 또는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속죄가 효과적으로 구원에 적용되게 하는 믿음을 반드시 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아버지께서 인간들과 새로운 방법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조건들을 부과할 수 있는 권위 또는 무조건적인 뜻을 얻어내신 것이다. 이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다. 결국, 모든 사람이 그 조건들을 성취할 가능성도 있고 아무도 성취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배격 :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지독하게 멸시하는 이 주장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열매와 혜택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서 지옥으로부터 펠라기우스의 오류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다. 

제4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중보를 통하여 인간과 맺은 은혜의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 받으며 구원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철회하시고, 믿음 그 자체와 믿음의 불완전한 순종을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으로 간주하시고, 은혜롭게도 그것을 영생을 보상으로 받아낼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신다.

배격 : 그들의 주장은 성경과 모순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도다”(롬 3:24-25).
그들은 불경건한 소시누스의 가르침처럼 전체 교회가 동의한 교리를 대항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칭의에 대한 새롭고 낯선 교훈을 소개하고 있다.

제5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의 화해 및 은혜 언약의 상태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 누구도 원죄로 인하여 정죄를 받는 상황에 처하거나 또는 정죄를 받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은 원죄의 죄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배격 : 이 주장도 성경이 가르치는 바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라는 주장과 어긋난다.

제6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얻어진 혜택을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나누어주기를 원하셨기에 그 혜택을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제시하셨다. 하지만 그 혜택을 받아들이는 것과 거절하는 것은 각 사람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죄 사함 및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은 그의 자유 의지에 달려있는 것이지(자유 의지는 차별 없이 제시된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되어 그들 안에서 효과적으로 역사하는 특별하고 유일한 자비의 은혜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배격 : 그들은 경솔하고 미숙한 자들에게 그릇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한 혜택과 그 혜택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차이를 이용한다. 그들은 이러한 차이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척하지만 사람들에게 펠라기우스의 치명적인 독을 주입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제7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사 영생을 주기로 택한 사람들을 위해서 죽을 수도 없었고 죽으실 필요도 없었으며, 그들을 위해 죽지도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격 :이것은 사도의 가르침과 상충된다.
“그리스도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도다”(갈 2:20)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으셨도다”(롬 8:33-34)
또한 구주께서도 말씀하셨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5)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도다”(요 15:12-13).

 

3) 세 번째와 네 번째 주요 핵심 교리: 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의 회심, 그리고 그 과정

 

(1) 인간의 부패와 회심

 

제1항 : 인간 본성에 임한 타락의 결과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그의 지각은 그의 창조주와 영적인 것들을 참되고 바르게 알도록 지식이 주어져 있었고, 그의 의지와 마음은 의로움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의 모든 감정은 순결하였다. 이에 전인(全人)이 참으로 거룩하였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 마귀의 꾐에 빠져 하나님께 반역함으로써 그는 이러한 뛰어난 은사들을 잃게 되었고, 그 대신 그의 지각에는 어둠과 끔찍한 허망함과 그릇된 판단력이 자리 잡았고, 그의 마음과 의지에는 완고함과 당돌함과 강퍅함이 자리 잡았으며, 그리고 마침내 그의 모든 감정은 불결하게 되었다.

제2항 : 부패의 확산


사람의 타락 후에 인간은 자신과 같은 똑같은 본성을 지닌 자녀들을 낳았다. 즉, 부패한 상태에서 부패한 자녀들을 낳은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해 부패는 아담으로부터 모든 후손들에게 확산되었다. 그 방법은 (이전에 펠라기우스가 주장한 것처럼) 모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악한 본성의 유전에 의한 것이다.
   
제3항 : 전적인 무능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잉태되어 진노의 자녀로 태어난다. 따라서 그 어떤 구원의 선행을 행할 수 없고 악으로 기울어지며, 죄 가운데 죽은, 죄의 노예가 되었다. 그들은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도 없고 또한 돌아오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들의 비뚤어진 성품을 개혁할 수도 없고 또한 개혁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러한 개혁에 자신들을 맡기려는 성향조차 가질 수도 없고 또한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제4항 : 본성의 빛의 불충분성


분명한 것은 타락 후에도 사람에게는 어떤 본성의 빛이 남아 있어서 이로써 하나님과 자연의 만물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도덕 및 부도덕적인 차이를 알고, 덕행 및 선한 외부적인 행위를 추구하는 면을 보인다. 하지만 본성의 빛으로는 인간이 결코 하나님을 아는 구원의 지식에 이르거나 주께로 회심하는 일이 없다. 사실 인간은 자연과 사회의 문제들에 있어서도 본성의 빛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은 본성의 빛이 정확하게 어떤 속성을 지녔든 간에 여러 방법으로 그 빛을 철저하게 왜곡하고 불의로 그 빛을 억제한다. 사람은 이렇게 행함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게 된다.

제5항 : 율법의 불충분성


본성의 빛에 해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특별하게 유대인들에게 주신 십계명에도 해당된다. 즉, 인간은 십계명을 통해 구원하는 은혜를 얻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십계명은 단지 죄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죄책을 더욱 크게 만들지만 그의 비참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그 어떤 치료책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십계명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그 계명을 무너뜨리는 범죄자를 저주 아래 가둔다.

제6항 : 복음의 구원의 능력


그러므로 본성의 빛이든 율법이든 그것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말씀(The Word) 및 화목의 사역을 통한 성령의 능력에 의해 이루신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때이든 신약의 때이든 신자들을 구원하는 것이 그분의 즐거움인데, 바로 메시아에 대한 복음을 통해 구원하신다.
 
제7항 : 복음의 계시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유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경륜의 비밀을 소수에게만 계시하셨지만 신약에서는 (민족의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 비밀을 드러내셨다. 이러한 차이의 원인은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가치가 있거나 자연의 빛을 더 잘 사용하는 것에 기인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선하시고 주권적인 기쁨과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가 마땅히 받아야할 형벌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들의 자격과는 무관하게, 그토록 많은 은혜를 받은 자들은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은혜를 인정해야 한다. 반면에 그들은 사도와 더불어 이러한 은혜를 받지 못한 다른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엄위와 공의를 찬양해야 하며, 결단코 호기심으로 심판의 엄위와 공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제8항 : 복음의 진지한 부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의해 부름을 받은 모든 자들은 진지하게 부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 안에서 무엇이 그를 기쁘게 하는지 진지하고 가장 진실하게 드러내신다. 즉, 부름을 받은 자들은 그에게 반드시 나아와야 한다. 주께서는 또한 주께로 나아와 믿는 모든 자들에게 그들의 영혼을 위한 안식과 영생을 약속하신다.

제9항 : 복음을 거절한 자의 책임
복음의 사역을 통해 부름을 받은 많은 자들이 나아오지 않고 또한 회심하지 않는 것은 복음과 복음을 통해 제시되는 그리스도, 또한 복음을 통하여 그들을 부르시고 심지어 그들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부름 받은 그 사람들의 잘못 때문이다. 자아 확신에 빠진 어떤 이들은 생명의 말씀조차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이들은 생명의 말씀을 듣지만 마음에 두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시적인 믿음의 즐거움이 사라지면 그들은 불신앙으로 되돌아간다. 또 다른 이들은 생활의 염려라는 가시와 세상의 쾌락으로 말씀의 씨를 질식시킴으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 교훈은 우리 구주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르치고 있다(마 13장).

제10항 : 하나님의 사역에 의한 회심


복음의 사역을 통해 부름받은 자들이 주께 나아와 회심에 이르는 것은 사람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펠라기우스의 교만한 이단이 주장하듯이) 믿음과 회심을 위해 균등하고 충분한 은혜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상태에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나아와 회심한 것이 아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소유로 택하셨으며 이에 때가 되자 주께서는 효력 있게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믿음과 회개를 허락하신다. 또한 그들을 흑암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여 그의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신다. 이에 그들은 성경에서 사도들이 종종 증언한 것처럼, 흑암으로부터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놀라운 행사들을 선포하며, 자신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자랑한다.

제11항 : 회심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


더욱이,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 안에서 이 선하고 즐거운 뜻을 이루실 때, 또는 그들 안에서 참된 회심을 일으키실 때, 주께서는 복음이 그들에게 외부에서 전파되도록 배려하시고, 또한 그들의 마음을 성령에 의해 강력하게 조명하신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바르게 깨닫고 분별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효력 있는 사역으로 사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가셔서 닫혀 있던 마음을 여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할례 받지 못한 마음을 할례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의지에 새로운 자질을 주입하시고 죽은 의지를 살리시고 악한 의지를 선하게 하시고 꺼려하는 의지를 자원하는 의지로, 완고한 의지를 순종하는 의지로 만드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의지를 감동시키시고 힘을 주시니 이제 그 의지는 선한 나무처럼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제12항 :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인 중생

 

성경에는 중생은 새로운 창조이며,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는 것이고, 살아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 없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포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생은 외적인 가르침이나 도덕적인 설득이나, 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하신 후에 사람이 중생 또는 회심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생은 (중생의 창시자에 의해 영감된) 성경이 가르치는 바처럼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사역으로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즐겁고, 기이하고 신비하고 형언할 수 없는 역사로서, 창조 및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보다 덜 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처럼 기이한 방법으로 마음에 역사하신 모든 사람들은 확실하고, 틀림없이, 효과적으로 중생하며 실제로 믿게 된다. 그 후 이제 새롭게 된 의지는 하나님에 의해 되살아나 활동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해 살아난 상태에서 스스로 활동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은 그가 받은 은혜에 의해 친히 믿고 회개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제13항 :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방법


이생에서 신자들은 중생의 역사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온전히 알 수 없다. 한편,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구주를 믿고 사랑하게 된 것을 알고 체험하는 것에 만족하며 안심한다.

제14항 :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는 방법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택하도록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실제로 영감과 주입에 의해 부여되는 선물이다. 이 선물은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는 어떤 잠재력을 모든 사람들에게 부여한 후에, 사람이 동의하고 믿는 행위를 보이기를 기다리는 식의 선물이 아니라, 오히려 이 믿음은, 의지나 행위 양면에서 역사하시고 또한 참으로 모든 사람 가운데 만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 안에 믿는 의지와 믿음 그 자체를 발생시키는 식의 선물이다.

제15항 :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아니다. 아무 것도 줄 수 없어서 되갚을 수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빚질 수 있겠는가? 참으로 죄와 거짓 외에 아무 것도 자신의 것이 없는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빚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은혜를 받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만 빚을 지며 이에 영원한 감사를 드려야 한다. 이 은혜를 받지 않은 자는 이러한 영적인 일들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그가 처해 있는 상태에 대해 만족하며 또는 자아 확신에 빠져서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어리석게 자랑한다. 더욱이 우리는 믿음을 외적으로 고백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자들에 대하여 사도들의 본을 따라 가장 호의적인 태도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은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부르심을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들을 위해 없는 것을 불러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우리 스스로 내 자신을 그들로부터 구별시킨 것처럼 그들보다 더 낫다고 여기며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제16항 : 중생의 효과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여전히 지능과 의지를 부여받은 사람인 것처럼, 인류 전체에 퍼져온 죄 역시 인간의 본성을 없앤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본성을 일그러뜨리고 또한 영적으로 죽였다. 따라서 중생의 신령한 은혜가 사람들 안에서 역사할 때 마치 그들을 벽돌이나 돌처럼 여기고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의지 및 그 속성을 없애거나 또는 꺼려하는 의지를 강제로 강요하는 식으로 역사하지 않고 그 대신 영적으로 소생시키고 치료하고 개혁하고, 단번에 선하고 강력한 방법으로 그 의지를 반대 방향을 향하도록 만드는 식으로 역사한다. 그 결과 이전에는 육신의 반역과 저항이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성령으로 인한 준비되고 진실한 순종이 우세하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는 신령한 의지의 회복과 자유가 가능하다. 따라서 만일 모든 선한 것을 지으신 놀라운 조성자께서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사람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으로는 그의 타락으로부터 일어설 아무런 소망을 얻지 못한다. 이는 그가 과거에 올바르게 서 있을 때 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스스로 파멸하였기 때문이다.

제17항 : 중생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방편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역사로 우리의 자연 생명을 생기게 하시고 유지하실 때 그의 무한하신 지혜와 선하심을 따라 방편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필요로 하시며 그의 능력을 사용하기를 원하셨는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께서 우리를 중생시키실 때 사용하시는 초자연적인 역사에서 결코 복음의 사용을 배제하거나 취소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큰 지혜 가운데 복음을 중생의 씨와 영혼의 양식으로 지정하셨다. 이런 이유로 사도들과 그들을 계승한 교사들은 하나님의 이 은혜에 대해 경건한 방법으로 그 백성에게 가르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교만한 자들을 겸손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복음의 거룩한 훈계를 수단으로, 그 백성을 말씀과 성례와 권징으로 다스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교사들 또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신 뜻 가운데 밀접하게 결합시킨 것을 분리함으로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는 은혜는 훈계를 통해 부여되고,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더욱 감당하려고 노력할수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호혜는 일반적으로 더욱 광채를 낼 것이며 그의 사역은 더욱 향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방편들 및 그것들의 구원의 열매와 효과로 인하여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원토록 돌아가야 한다. 아멘.

 

(2) 알미니안주의의 잘못된 주장들을 배격함

 

정통적인 교훈을 제시한 종교 회의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주장들을 배격하는 바이다.

제1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제대로 말하면, 원죄 그 자체만으로 온 인류를 정죄하고 또한 현세 및 영원한 형벌의 근거가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배격 :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도의 가르침과 모순된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롬 5:16)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제2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영적인 은사 또는 선한 성향, 선과 거룩과 같은 덕, 그리고 의는 인간이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 인간의 의지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타락할 때 그러한 것들이 의지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없다.

배격 : 이 주장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4장 24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묘사와 어긋난다. 바울은 그 구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의와 거룩의 용어로 묘사하는데 이는 분명히 의지 속에 거하는 것이다.

제3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영적인 사망으로 영적인 은사들이 인간의 의지로부터 떨어져 버린 것이 아니다. 이는 의지 그 자체로는 결코 부패할 수 없으며 단지 지각의 어둠과 감정의 무절제에 의해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장애물이 제거된다면 의지는 그 본래의 자유로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의지는 스스로 그 앞에 놓여있는 어떤 선에 대해 원하고 택하든지, 또는 원하지 않고 택하지 않든지 할 수 있다.

배격 : 이 주장은 고상한 생각이지만 오류이며 자유 의지의 선택 능력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과 상반되고 사도의 말씀과도 상반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제4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중생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절대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죄 가운데서 죽은 것이 아니요, 또한 영적인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전부 빼앗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할 수 있으며 통회하는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배격 : 이러한 관점은 성경의 자명한 증거와 반대된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엡 2:1)
“허물로 죽은 우리”(엡 2:5)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더 나아가 이 비참함에서 벗어나 생명을 바라는 굶주림과 갈증을 느끼며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오직 중생한 자들 및 복 있는 자로 부름을 받은 자들의 특징이다(시 51:17; 마 5:6).

제5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부패한 자연인이라 할지라도 일반 은총(그들에게 일반 은총이란 자연의 빛을 의미한다) 및 타락 후에 남아 있는 은사들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사용하여 구원뿐만 아니라 점진적으로 더 큰 은혜, 곧 복음이나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입장에서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들에게 계시하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이시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할 정도로 그리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계시와 믿음과 회개를 위해 필요한 방편들을 공급하시기 때문이다.

배격 : 모든 세대의 경험뿐만 아니라 성경 역시 이런 주장이 거짓이라고 증거한다.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시 147:19-20)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행 14:1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행 16:6-7)

제6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사람이 참된 회심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자질들이나 성향이나 또는 은사들을 그 사람의 의지에 주입하거나 부어넣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우리는 먼저 믿음(또는 믿으려는)에 의해 회심에 이르고 그로부터 우리는 ‘신자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데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입하신 자질이나 은사가 아니라 단지 인간의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믿음은 그 믿음에 도달하는 능력을 제외하고는 은사(선물)이라고 불릴 수 없다.

배격 : 이러한 주장은 성경과 모순되는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과 순종의 새로운 자질들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을 우리 마음속에 주입하거나 부어주셨다고 증거한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사 44:3)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또한 그들의 주장은 교회가 지속적으로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렘 31:18)라고 선지자를 따라 기도하는 관행과도 상충된다.

제7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우리가 하나님께로 회심할 수 있었던 그 은혜란 단지 일종의 부드러운 설득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 회심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활동 방법은 인간의 본성에 가장 고상하고 가장 잘 맞는 설득에 의해 회심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설득을 통한 이 은혜 자체로 자연 상태의 인간을 영적인 상태로 변화시키데 부족할 것이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는 도덕적인 설득의 방식 외에 인간의 의지의 동의를 이끌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역의 효력이 사탄의 역사를 능가하는 것은 사탄은 세상에 속한 혜택을 약속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혜택을 약속하신데 있다.

배격 : 위의 내용은 전적으로 펠라기우스파의 주장이요, 성경 전체와 모순된다. 성경은 인간의 회심에 있어서 이러한 설득뿐만 아니라 또한 훨씬 더 효력 있고 신성한 성령의 사역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제8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중생시키는데 있어서 틀림없이 중생되도록 그의 전능하신 능력을 강력하게 사용하여 인간의 의지가 믿음과 회심으로 향하도록 만드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회심에 필요한 모든 은혜의 사역들을 다 이루어 놓으셨더라도 인간은, 실제로 종종 그러한 것처럼, 그를 회심케 하려는 하나님과 성령의 의도와 뜻을 거절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의 중생을 철저하게 좌절시킬 수 있는데, 이는 중생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이 그의 자신의 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배격 : 이와 같은 주장은 인간의 회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효과적인 기능을 제거하는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활동을 인간의 의지에 종속시키는 것으로서 사도의 가르침과 반대된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엡 1:19)
“……우리 하나님이……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살후 1:11)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벧후 1:3)

제9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은혜와 자유 의지의 선택은 서로 함께 회심의 시작을 일으키는 부분적인 요소들이다. 특히 인과관계에 있어서 은혜가 의지보다 먼저 선행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의지가 스스로 움직여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의지를 효과적으로 도와서 회심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배격 : 초대 교회는 이미 오래 전에 사도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펠라기우스의 이러한 교리를 정죄하였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 4:7).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4) 다섯 번째 주요 핵심 교리: 성도의 견인

 

(1) 성도의 견인을 지원하는 조항

 

제1항 : 중생한 자들 역시 죄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도록 부름받고, 성령에 의해 거듭난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죄의 지배와 노예 상태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으나, 이생에서 죄성과 죄의 몸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제2항 : 연약함으로 인한 죄악들에 대한 신자의 반응


따라서 연약함으로 인한 죄악들이 날마다 발생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최선의 행위라도 결점이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 아래 피하며, 간구하시는 성령과 경건의 거룩한 연습에 의해 더욱 더 육신을 죽이고, 완전함을 목표로 하여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이 사망의 몸에서 자유함을 얻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제3항 : 회심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존하심


회심한 신자들 안에 거하는 죄의 잔재들과 이 세상 및 사탄의 유혹 때문에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힘을 의지할 경우 이 은혜 가운데 계속 서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고 자비하셔서 그들에게 단번에 부여하신 은혜 안에서 그들에게 힘을 주시고, 능력으로 끝까지 그 은혜 안에서 그들을 보존하신다.

제4항 : 심각한 죄악에 떨어지는 참 신자들의 위험


은혜 안에서 참 신자들에게 힘을 주고 보존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육신보다 훨씬 더 강할지라도, 회심한 자들이 항상 하나님에 의해 움직이고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행동들에 있어서 자기들 스스로의 잘못에 의해 은혜의 인도함에서 벗어나 육신의 정욕에 미혹되어 굴복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들이 깨어 기도하는 일에 실패할 때 그들은 육신과 세상과 사탄에 의해 죄에 빠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당한 허락에 의해 때때로 크게 미혹되어 심지어 심각하고 끔찍한 죄악들에 빠질 수도 있다. 성경에 묘사된 슬픈 경우들로는 다윗, 베드로 등, 그 외 죄악에 빠졌던 여러 성도들이 있다.
     
제5항 : 그러한 심각한 죄악의 결과들


하지만 그들이 그러한 끔찍한 죄악에 의해 하나님을 모독함으로써 사형 선고에 합당하고, 성령을 근심하게 만들고, 믿음의 행사를 중단하고, 심각할 정도로 양심에 상처를 입히고, 때때로 한 동안 은혜에 대한 의식을 잃을지라도, 그들은 다시 참된 회개에 의해 그 길로 돌아오며,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은 다시 그들을 향해 빛을 발한다.
 
제6항 :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섭


이는 자비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이 통탄스러울 정도로 타락할지라도 그의 변함없는 선택의 목적에 따라 자기 소유로부터 그의 성령을 완전하게 거두시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주께서는 그들이 양자됨의 은혜와 칭의의 상태를 버리는 지경까지 타락하거나 또는 죽음에 이르는 죄(성령을 대항하는 죄)를 저지르거나 또는 스스로 자신들을 내던져 하나님에 의해 완전하게 버림받아 영원한 파멸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제7항 : 새롭게 하심으로 회개에 이르게 함


이는 먼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타락할 때 그 성도들 안에 주의 썩지 아니하는 씨, 곧 그들을 중생하게 하였던 씨를 보존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씨는 썩거나 옮겨지지 않는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하신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이 저질렀던 죄악들에 대해 진심으로 경건한 슬픔을 가지며 믿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통해 중보자의 보혈 안에서 죄사함을 구하고 얻는다. 그리고 다시 화목하게 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를 사모하고, 그 이후로 더욱 두렵고 떨림으로 그들 자신의 구원을 부지런히 이루어간다.

제8항 : 이 보존의 확실함


따라서 이 보존은 그들 자신의 공로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자비로 인한 것이기에 그들은 믿음과 은혜를 전적으로 버릴 수 없고, 그들의 타락의 상태를 끝까지 지속하여 구원을 잃게 될 수 없다. 그들 자신과 관련해서는 이런 일이 쉽게 발생하며 또한 반드시 발생할 것이지만,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그의 계획이 변할 수 없고 그의 약속이 실패될 수 없고, 그의 뜻에 따른 부르심이 취소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중보 및 보존하시는 사역과 그리스도의 공로가 헛것이 될 수 없고, 성령의 인치심이 무효가 되거나 지워질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제9항 : 이 보존에 대한 확신


신자들은 구원으로 택함 받은 자들의 보존과 참신자의 믿음의 견인에 대해 그들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확신할 수 있고 확신하게 된다. 그들은 믿음에 의해 그들이 지금 그리고 항상 교회의 참되고 살아있는 지체로 유지될 것이며 또한 죄사함과 영생을 얻을 것을 확고하게 믿는다.

제10항 : 이러한 확신의 바탕


이러한 확신은 말씀을 벗어나거나 초월하는 어떤 개인적인 계시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들, 곧 우리의 위로를 위해 그의 말씀 안에 매우 풍성하게 계시된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오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상속자임을 우리의 영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증거로부터 오고(롬 8:16-17), 마지막으로는 선한 양심과 선행을 진지하고 거룩하게 추구함으로 온다. 만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승리가 그들의 것이 될 것이라는 견고한 위로와 또한 영원한 영광에 대한 신뢰할만한 보장을 갖지 못한다면, 그들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비참한 자들이 될 것이다.

제11항 : 이 확신에 대한 의심들


한편, 성경은 신자들이 이생에서 육신의 다양한 의심들과 싸워야 할 것과 그들이 극심한 유혹 가운데 믿음의 충만한 확신과 견인의 확실성을 항상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거한다. 그러나 모든 위로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시험 받을 때는 피할 길을 내시며(고전 10:13), 성령에 의해 그들 안에 그들의 견인의 확신을 회복시키신다.
 
제12항 : 경건을 장려하는 확신


하지만 견인에 대한 확신은 참 신자들을 교만과 육신의 자아 만족에 빠지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겸손과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심, 진실한 경건, 모든 갈등에서의 인내, 열정 있는 기도, 변함없이 십자가를 지며 진리를 고백함, 하나님 안에 제대로 기초한 기쁨의 참된 뿌리이다. 이러한 혜택에 대한 상고는 감사와 선행을 실천하도록 진지하고 지속적으로 장려하며 이 사실은 성경의 증거들과 성도들의 실제적인 실례들을 보면 현저하게 드러난다.
 
제13항 : 결코 부주의를 야기하지 않는 확신


견인에 대해 다시 새롭게 된 이러한 확신은, 타락 이후에 다시 서게 된 자들 안에 부도덕이나 경건에 대한 태만을 야기하지 않고, 도리어 주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주님의 도를 조심스럽게 준수하는데 더 큰 관심을 갖도록 야기한다. 그들은 그들의 견인에 대한 확신을 유지하기 위해,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을 남용함으로 은혜로운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다시 얼굴을 돌리시고 그 결과 영혼의 더 큰 괴로움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주님의 도를 준수한다. (이는 경건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생명보다 달콤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은 죽음보다 더 쓰기 때문이다.)

제14항 : 견인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편들


복음을 선포함으로서 우리 안에 은혜의 이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었던 것처럼, 주께서는 복음을 듣고 읽게 함으로, 복음을 묵상하게 함으로, 복음의 권면과 경고와 약속들을 알게 함으로 또한 성례를 사용함으로, 주의 사역을 보존하고 지속하고 완성하신다.
 
제15항 : 견인에 대한 가르침에 상반된 반응들


참 신자들과 성도의 견인과, 견인에 대한 그들의 확신에 대한 이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의 영광과 경건한 자들의 위로를 위하여 그의 말씀 안에 매우 풍성하게 계시하셨고 또한 신자들의 마음에 새겨주신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육신은 이해할 수 없고, 사탄은 증오하며, 세상은 조롱하고, 무지한 자와 위선자들은 오용하고, 오류의 영들은 공격하는 교리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신부는 언제나 이 가르침을 매우 다정하게 사랑하여 왔으며 무한한 가치의 보배로 여기고 확고하게 지켜왔다. 어떤 계획도, 어떤 세력도 이길 수 없는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이 일을 지속하도록 분명하게 하실 것이다. 오직 성부, 성자, 성령께만 존귀와 영광이 영원할지라. 아멘.

 

(2) (성도의 견인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반대 주장을 배격함

 

정통적인 교훈을 제시한 종교 회의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주장들을 배격하는 바이다.

제1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참 신자들의 견인은 택함 받음의 결실도 아니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얻어진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다만 새 언약의 조건일 뿐인데, 이는 소위 주의 결정적인 선택과 칭의가 있기 전에 인간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이 조건을 채워야 한다.

배격 : 성경은 성도의 견인은 선택으로부터 비롯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그리고 그분의 중보 덕분에 택자들에게 허락되는 것이다.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롬 11:7)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2-35)

제2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만일 신자가 그의 의무를 이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신자에게 인내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공급하시고 그 신자 안에 이 힘을 기꺼이 보존하고자 하신다. 그러나 비록 신자가 믿음 안에서 견인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예비되어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 믿음을 보존하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하기를 기뻐하실지라도 여전히 견인은 인내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인간의 의지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

배격 : 이런 관점은 명백한 펠라기우스 주의로서 비록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자 의도한 관점이지만 도리어 신성모독을 하는 자들로 만든다. 이 주장은 그 혜택에 대해 인간이 자랑할 만한 모든 요인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찬양을 돌리게 하는 정통적으로 일치된 복음적인 가르침과 어긋난다. 또한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전 1:8)는 사도의 증언과 상충된다.


제3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참 신자요 중생한 사람일지라도 은혜와 구원뿐만 아니라 의롭다 하는 믿음을 완전히 그리고 끝까지 잃을 수 있다. 또한 실제로 종종 그들이 그러한 것들을 잃고 영원히 버림 받기도 한다.

배격 : 이 의견은 그리스도에 의한 지속적인 보존뿐만 아니라 칭의와 중생의 은혜 그 자체마저 무효화시키는 것으로서 사도 바울의 명백한 말씀과 상반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롬 5:8-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제4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참 신자요 중생한 사람일지라도 사망에 이르는 죄(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지을 수 있다.

배격 : 사도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자들에 대해 언급한 다음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금한 후에(요일 5:16-17) 곧바로 이렇게 더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즉, 사망에 이르는 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18절)


제5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특별한 계시가 없이는 그 누구도 이생에서 장래의 견인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배격 : 이 주장은 이생에서 참 신자들이 누리는 안정된 위로를 빼앗아 가며, 또한 로마 카톨릭의 의심을 또다시 교회에 도입하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성경은 대단히 많은 부분에서 이 확신을 어떤 특별하고 예외적인 계시로부터 가져오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자녀에게 속한 특별한 표지들과 하나님의 철저한 신뢰할만한 약속들로부터 가져온다. 특히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사도 요한이 말한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제6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성도의 견인과 구원에 대한 확신에 대한 교훈은 그 본성과 특징에 있어서 육신의 아편이며 경건과 선한 도덕과 기도와 다른 거룩한 훈련에 해가 된다. 그러나 오히려 이 교훈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것은 칭찬받을만하다.

배격 : 이 주장은 하나님의 은혜의 효력있는 능력과 내재하는 성령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서 사도 요한의 명백한 말씀과 위배된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 3:23)
더욱이 이 주장은 자신들의 견인과 구원을 확신하면서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경건을 훈련하였던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의 생애와도 모순된다.

제7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오직 잠시 동안 믿는 자들의 믿음도 의롭다 함과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과 다르지 않고 오직 기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배격 :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마태복음 13장 20절 이하와 누가복음 8장 13절 이하에서 분명하게 일시적인 신자와 참 신자의 차이를 규정하였다. 일시적인 신자는 돌 위에 떨어진 씨앗과 같으나 참 신자는 좋은 땅 위에, 또는 좋은 마음에 떨어진 씨앗과 같으며, 전자(前者)는 뿌리가 없으나 후자(後者)는 견고한 뿌리가 있으며, 전자는 열매가 없으나 후자는 계속적인 인내 또는 견인을 가지고 다양한 분량의 결실을 맺게 된다고 하셨다.

제8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사람이 이전의 중생을 잃은 후에 또다시 중생하는 것과 또한 실제로 자주 중생하는 것은 불합리한 말이 아니다.

배격 : 그들의 주장은 사도 베드로의 증언과 모순된다. 즉, 그들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의 썩지 아니할 씨를 부인하는 것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벧전 1:23).

제9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그리스도께서는 그 어디에서도 신자들이 믿음 안에서 떨어지지 않고 견인할 것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으시다.

배격 : 이 주장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과 모순된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증언한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1, 15).

 

5) 결론 : 그릇된 주장에 대한 배격

 

이처럼 도르트 신경은 화란 교회들이 한 동안 혼란에 빠졌던 오류들을 배격할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에서 논쟁되었던 다섯 조항에 대해 정통 교리를 분명하고 간단하고 직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도르트 총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인용하여 선포한 설명과 배격은 개혁교회의 신앙 고백과 일치한다. 따라서 대중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믿도록 하려는 자들로부터는 진리와 공평과 자비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1) 알미니안들의 주장

* 예정 및 그것과 관련한 주제들에 대해 개혁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는 그 속성과 성향상 사람들의 마음을 모든 경건과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이 교리는 육신과 마귀의 아편이며 사탄의 요새로서 마귀는 그곳에서 모든 사람들을 잡으려고 잠복하여 그들 대다수에게 상해를 입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을 절망과 자아-확신의 화살로 치명타를 가한다.

* 예정 교리는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들고 불의한 폭군과 위선자로 만든다. 그 교리는 쇄신된 스토아 주의이며, 마니교, 도덕폐기론, 그리고 마호메트교와 다를 바가 없다.

* 예정 교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죄라도 조금도 고려하거나 신경쓰지 않고 순전히 그의 무조건적인 자신의 의지의 선택에 의해 이 세상의 가장 큰 부분을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도록 예정하시고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선택이 믿음과 선행의 뿌리이며 요인이고 유기는 불신과 죄악의 요인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신자들의 수많은 영아들을 그들의 어머니의 품에서 순진한 상태로 낚아채어 잔인하게 지옥에 떨어뜨린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들의 세례와 그들이 세례 받을 때의 교회의 기도가 그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2) 개혁 교회의 신앙 고백

개혁교회는 이러한 종류의 수많은 비난성의 비방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부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온 마음을 다해 부인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도르트 총회는 주의 이름으로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경건한 자들에게 탄원하는 바, 개혁주의의 믿음에 대해 판단할 때 이곳저곳에서 모은 거짓된 비방에 근거하지 말고, 또한 문맥에서 벗어나거나, 또는 거짓된 인용으로 종종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수많은 고대 또는 현대의 권위 있는 언급들에 근거하지 말고, 오직 교회 내의 공식적인 고백들과 총회 전체가 만장일치로 동의하고 서명하는 정통적인 교훈에 대한 현재의 설명에 근거하여 판단해야 한다.

더욱이 총회는 간절하게 거짓 비방자들에게 그렇게 많은 교회와 그들의 고백에 대해 거짓 증거를 하고, 약한 자들의 양심을 곤경에 빠뜨리고, 많은 신자들의 마음에 편견을 주입시킴으로서 참 신자들의 교제를 방해한 자들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어떠할지 고려하기를 경고한다.

마지막으로, 본 총회는 모든 동료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자들에게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학술 기관에서도 경건하고 경외하는 자세로 이 가르침을 다룰 것을 권고한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과 거룩한 삶과 고민하는 영혼들의 위로를 위해 말 또는 글로 그렇게 할 것이며, 믿음의 분수에 따라 성경과 일치하여 생각하며 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참된 의미에 의해 우리를 위해 설정된 경계를 넘어서서 말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함으로서 무례한 궤변론자들에게 개혁교회의 교훈에 대해 조롱하거나 심지어 거짓된 비방을 할 수 있는 타당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셔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진리 안에서 거룩케 하시며, 오류에 빠진 자들을 진리로 이끄시며, 건전한 가르침을 거짓으로 비방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시며, 그의 말씀의 충성스런 사역자들에게 지혜와 분별의 영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증거하게 하며,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세우시기를 간구하노라. 아멘.

 

도르트 신경 (교회용) - 스데반 황 목사.pdf
0.34MB

 

CanRC
https://canrc.org/canons-of-dort

CRCNA
https://www.crcna.org/welcome/beliefs/confessions/canons-d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