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ical Theology

성경의 무오성의 근거 : 정의 - 존 프레임(John Frame)

Bavinck Byeon 2018. 7. 30. 15:41

성경의 무오성의 근거 : 정의


- 존 프레임(John Frame)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무오성을 옹호하는 일은 항상 쉽지 않았다. 과학자, 철학자, 언론인은 물론, 특정한 신학자들을 비롯한 문화적 여론 형성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성경의 무오성을 미신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중에는 성경 없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책이 아닌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는데, 무오한 성경이 왜 필요한가? 수많은 사람이 성경이 아닌 설교나 증언을 통해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은 물론 자연이나 설교와 같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무오한 성경이 아니라 그런 수단들을 통해 우리와 소통하실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성경의 무오성은 없어도 괜찮고, 그렇게 중요한 교리가 아니기 때문에 무시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신학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 체계는 매우 중요하다. 무오성의 교리는 신학적 관계들로 구성된 상호 체계에 근거한다. 그것이 무오성의 교리를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지닌 교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무오성의 의미를 교리의 상호 체계 안에서 발견되는 다른 몇 가지 중요한 용어들과 결부시켜 정의한다면 다음과 같다.


영감: 영감은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말과 자신의 말을 일치시킨 하나님의 행위를 가리킨다. 일부 저술가들은 이 용어를 넓은 의미로 사용하지만, 이 용어를 사용해 번역한 디모데후서 316절을 보면 헬라어 '데오프뉴스토스'가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헬라어 영어 표준역 성경이 번역한 대로 '하나님이 내뿜으신', '그분이 말씀하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성경이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은 성경이 인간 저자들의 손을 통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권위: 권의는 다스리는 권한을 뜻한다. 하나님은 최상의 권위를 지니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할 일을 명령하고, 복종을 받으실 권한이 있으시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성경이 그와 동일한 권위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1)


무류성: 무류(無謬)성은 오류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무류하시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또 실수를 저지르실 수도 없다는 의미를 지닌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개념은 성경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어떤 저자들은 이 말을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해 종교적인 것은 일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신빙성을 지닌다는 의미로 이해하지만, 무류성이라는 말은 그런 식의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말은 무오성이라는 말보다 더 강한 의미를 지닌다.


무오성: 무오성은 무지에 의한 것이든 속임수에 의한 것이든 그 어떤 오류로부터 온전히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속이거나 무지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이나 생각에는 오류가 전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오류가 없다.


지금까지 나열한 용어들의 정의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논리적으로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에 주목하라.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면 하나님의 권위를 공유한다. 하나님의 권위는 우리의 믿음을 비롯해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어야 할 것을 명령할 권한이 있다. 이것은 성경을 비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은 비판할 수 없기 때문에 무오하고 무류한 말씀으로 존중해야 마땅하다. 이처럼 위의 정의는 무오성의 교리를 위한 중요한 성경적 체계를 구축한다.


일반적으로 그런 체계는 하나님에 관한 교리에 근거한다. 성경이 무오한 이유는 하나님이 무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오하시고,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기록된 말씀도 무오하다.


우리는 이번 장의 나머지 내용을 통해 이 원리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게 될 것이다. 먼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살펴보고 나서 성경이 그분의 말씀을 실제로 나타낸 중요한 사례이기 때문에 무오하다고 결론짓는 순서를 밟을 생각이다.2)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의사소통을 원하는 본성을 지니고 계신다. 그분은 피조물에게 말씀하실 뿐 아니라 삼위일체의 관계 안에서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의사를 소통하신다.3) 하나님이 의사를 소통하시는 이유는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인격을 지닌 성삼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물리적인 실체도 아니고 추상적인 원리도 아니시다. 그분은 알고, 계획하고, 사랑하고, 창조하신다. 그분은 사람들이 하는 일들을 하신다. 이것이 그분은 말씀하시는 이유다. 말은 사람들이 서로 의사를 소통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전지하고, 전능하고, 사랑이 풍성하고, 의롭고, 선하실 뿐 아니라 또한 말씀하신다. 말은 그분의 영원한 속성 가운데 하나다. 말씀하지 못하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말은 하나님의 우연적 속성이 아니다. 말은 위에서 언급한 다른 모든 속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필연적 속성, 곧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실 수 없는 속성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과 비교해 보면, 이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우연적 속성이 아니다. 그분은 사랑이시다(요일 4:8,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을 동일시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하나님의 말씀'은 지극히 경이로울 뿐 아니라 가장 큰 권위를 지닌다.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사소통은 성삼위 하나님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말씀하실 때는 주님으로서 말씀하신다. 성경은 이 칭호를 하나님께 7000번 이상 적용했고, 예수님께도 종종 적용했다. 하나님의 주권은 그분의 권능과 임재를 나타낸다. 나는 이를 이따금 하나님의 '주권적 속성'으로 일컫는다.4)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도 동일한 속성을 지닌다. 그분은 항상 주님으로서 말씀하신다. 이 주권적 속성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능력을 지닌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에 특정한 내용을 전달하는 언어적인 기능을 할 뿐 아니라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큰 권능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1:3)라고 말씀하자 빛이 생겨났다. 빛은 실제로 존재하기 이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했다. 그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4:17) 능력이다. 성경은 종종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능력을 크게 찬양한다. 예를 들어, 시편 33편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6, 9)라는 말씀으로 창세기 1장을 간단하게 요약했다(148:5; 1:3; 1:2; 11:3; 벧후 3:5-7 참조).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능력의 말씀으로 세상을 계속 다스리신다. 시편 29편과 시편 14715-18절과 1487,8절을 읽어보면, '여호와의 소리''하나님의 명령''말씀'이 어떤 역사를 이루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1:9, 11, 22; 37:12; 18:15, 33:11, 119:89-91; 8:27; 1:3; 벧후 3장 참조).


하나님이 이성적인 피조물에게 하시는 말씀도 강력한 능력을 발휘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들에게 심판을 선언하고, 그 심판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다(46:6; 30:30, 31, 66:6; 6:5; 2:11; 1:2 참조).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 35-7절에서 노아의 홍수 심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천지창조와 비교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악한 세력을 모두 멸하실 만큼 강력하다. 그분의 말씀은 불과 같고(41:19-21), 칼과 같고(49:2), 방망이와 같다(23:29).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를 베풀어 구원하는 일에도 똑같이 강력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다 늙은 나이에 기적적으로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시면서 그런 기적의 능력이 자신의 말씀에서 비롯한다고 말씀하셨다(18:14). 그분은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어떤 말(레마)도 하나님께는 불가능하지 않다"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종을 치유에 달라고 간구했던 백부장은 예수님이 직접 자신의 집에 오실 필요 없이 "말씀만 하사"라고 말했다(7:7).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백부장이 예수님의 말씀은 전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했던 사도들은 복음이 말의 내용만이 아닌 강력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크게 기뻐했다(롬 1;16; 살전 1:5, 2:13). 말씀 자체가 마음을 변화시키고, 신자들을 굳세게 한다(롬 16:25,26). 복음은 "생명의 말씀"(빌 2:16)이다(요일 1:1 참조).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낸다(딤후 1:10).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강력할까?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하신 하나님만큼이나 강력하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하나님은 입으로 하신 말씀을 손으로 이루신다(대하 6:15; 겔 1:3, 3:22)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신성한 권위를 지닌다.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권위는 다스리는 권한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원하는 일을 이루시고, 권위로 의무를 부과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 말씀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을 말하면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믿어야 하고, 그분이 명령하시면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면 인간은 복종이나 불복종으로 반응하고, 하나님은 거기에 따라 축복과 저주를 내리 신다. 인류의 첫 조상이 최초로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창 1:28).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들이 세상에서 행해야 할 근본적인 사명을 알려주셨다. 그것은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은 창세기 216,17절에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부정 적인 명령을 덧붙이셨다.


그러고 나서 창세기 3장에 이르면 또 다른 말, 곧 뱀으로 가장한 사탄의 말이 등장한다. 사탄은 자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권위를 지닌 것처럼 가장했다. 사탄은 정화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공격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하나님이 진정 그런 말씀을 하셨느냐고 묻고 나서(1) 그분의 말씀과 정반대되는 말을 건넸다(4, 5). 아담과 하와는 논쟁을 중재해 줄 제3의 권위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떤 말이 옳은지를 시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의 자율적인 추론, 곧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


바로 이것, 곧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 자신의 판단을 의지하는 것이 죄의 본질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근거에 비춰 검증하려고 애쓰기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어야 했다. 심지어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그 말씀을 부인하더라도 기꺼이 복종했어야 옳았다. 인류의 첫 조상이 저지른 불순종에는 심각한 결과가 뒤따랐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셨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분은 그와 동시에 은혜를 선언하셨다. 하나님은 언젠가는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구원자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 가운데서 구원자가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5). 이 좋은 소식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했다. 아담과 하와는 이번에는 더 높은 권위나 스스로의 자율적인 추론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려고 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성경에는 이런 식의 유형이 거듭 되풀이 되어 나타난다. 노아는 천문학에 정통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홍수가 일어날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그 말씀에 복종했다(창 6:22, 7:5.9), 히브리서 117절은 노아의 믿음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본보기로 내세운다. 그는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복종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했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다(벧후 25, 아브라함도 하나님으로부터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 곧 다 늙은 아내 사라와 자신이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는 노아처럼 그 말씀에 복종함으로써 신자들의 귀감이 되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0-25).


모세와 다윗과 선지자들에 관한 구약 성경의 기록에도 동일한 유형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에게서 절정에 달했다(요 1:1, 14), 예수님의 말씀도 최상의 권위를 지닌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주님으로 부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가르치셨다(마 7:21.23), 예수님은 영광중에 다시 오실 때 자기와 자신의 말을 부끄러워했던 사람들을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8:38 눅 9:26),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어머니요 형제들이다(눅 8:21), 예수님은 이런 원리를 요한복음서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셨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 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산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요 12:47-50).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임재를 나타낸다. 이것이 성경의 속성인 이유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셨다(신 4:7, 8, 30:11-14).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강력한 사역을 행하신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임하시어 심판과 구원을 베푸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시 119:7), 신실함(119:86, 기이함(119:129), 영원함(119:89, 160), 전능함(창 18:14; 55:11; 눅 1:37), 전지함(히 4:12, 13), 완전함(19:7-9)과 같은 신적 속성을 지닌다. 피조물은 그런 속성을 지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런 속성을 지닌다는 것은 말씀이 신성하다는 것, 곧 말씀 자체가 곧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경배의 대상이다(시 156:4, 10, 119:48, 161). 그런 경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한다. 다른 것을 경배하는 것은 우상 숭배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상이거나 하나님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 성경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요한복음 11-14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진술한다. 하나님과 말씀과 예수님이 동일시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항상 말씀으로 임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이 없는 하나님이나 하나님이 없는 말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고, 무류하고, 무오하다. 오류는 두 가지, 곧 실수와 거짓에서 비롯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으신다(히 4:13). 또한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단 1:2).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


이번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을 경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어떻게 우리의 귀와 생각과 마음속에 도달할까?


성경은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말씀한다(시 19:1; 롬 1:19-21). 그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연 계시는 그분의 말씀을 나타내기는 해도 말이나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나는 이번 장에서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하나님의 계시, 곧 성경으로 기록된 계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음성, 선지자들과 사도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라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은 이 계시의 형태를 통해 인간 중재자 없이 직접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이런 계시의 형태는 출애굽기 20장에서 발견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기 위해 모두 한 장소에 모였다(그들은 시내산 주위에 진을 쳤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십계명을 말씀하셨다(출 20:3-17). 백성은 두려워했고, 모세에게 자신들을 대신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다. 모세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 후부터 직접적인 계시의 형태는 매우 드물었다. 모세는 '여호와의 형상을 보면서'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했다(민 12:8).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다른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의 세례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하늘로부터 직접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아울러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그분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자신의 말이 자신을 거부한 자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2:48).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계시의 수단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대개 중재자들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둘째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실 때 사용하셨던 중재자들이다. 신명기 1818, 19절은 선지자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선지자는 하나님이 그 입에 말씀을 두신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가 전하는 말을 내 말이라고 말씀하셨다. 복종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선지자의 말과 하나님의 음성은 권위와 능력과 신적 임재의 관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우리는 대개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직접 전달된 말씀만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인간의 입으로 말씀이 옮겨지는 순간 그 절대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생각을 엄히 꾸짖는다. 하나님은 모세의 말을 '내 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말도 그와 동일하게 취급하신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1:9-12).5)


이 본문은 선지자의 말이 지니는 능력을 강조한다. 선지자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는 일을 모두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에도 선지자들이 등장하지만(2:17, 18, 11:27, 28, 21:9-14), 그보다는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로 더 자주 언급되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임명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10:19, 20). 예수님은 성령께서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4:26).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모든 진리'를 나타내시고, '장래 일'을 그들에게 알리실 것이었다(16:13).


이처럼 사도들에게 주어진 계시는 과거(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현재(모든 진리), 미래(장래 일)를 모두 아우른다.


우리는 사도들의 말이 하나님의 음성과 동일한 권위와 능력과 신적 임재를 지니는지를 의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임하시며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6:13). 성령께서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들은 것'만을 말씀하신다. 다른 누구란 다름 아닌 성부 하나님이시다.


사도들도 성령의 놀라운 말씀이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증언했다. 바울은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1:11, 12).


바울의 복음은 그의 복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다. 따라서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다. 누구든지 듣는 자는 믿어야 할 의무가 있다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과 더불어 역사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1:16)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이 말씀을 전하게 하려고 세우신 인간의 입을 통해 전달될 때도 그분의 주권적인 속성을 그대로 지닌다.


셋째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때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기록된 말씀도 입으로 전달된 말씀과 똑같은 능력과 권위와 신적 임재를 지니고 있을까? 물론이다.


르네상스 예술에 정통한 전문가에게서 흥미로운 강의를 듣고 나서 그가 저술한 책을 구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전문가가 말보다는 글에 덜 능숙한 탓에 강의보다 책이 덜 권위가 있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럴 이유는 없다. 우리는 대개 어떤 사람이 쓴 책이 그가 말로 전달한 것과 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이나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입으로 전한 말씀과 동일한 능력과 권위와 임재를 지닌다. 사실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의사를 소통하실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기록의 중요성은 전달하고자 하는 말씀에 영구적인 속성을 부여한다는데 있다.


일부 현대 신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하나님의 계시는 잠시 있었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견고한 속성을 지닌다. 구약 시대의 성도들이 돌기둥을 세운 목적은 후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서였다(12:7, 13:18, 28:18, 35:14). 신약 성경은 성령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전통'(파라도시스)으로 일컬었다(11:27; 고전 15:3; 살후 2:15, 3:6; 딤전 6:20; 1:3).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고(19, 20), 또 그들의 요청에 의해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는 문서 형태로 주어졌다. 이 문서는 두 개의 '증거판', "하나님이 친히 쓰신"(31:18) 십계명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문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자 그분이 친히 쓰신" 것이다. 이 문서는 '언약의 문서', 곧 위대한 왕이신 여호와와 그분의 봉신인 이스라엘 사이에서 이루어진 '종주권 계약'이었다.6) 기록된 헌법이 미국의 통치법에 해당하는 것처럼, 이 조약은 이스라엘의 통치 문서에 해당했다.


이 문서는 하나님의 성소에 보관되었고, 정기적으로 백성들에게 읽혀졌다. 하나님은 모세 오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율례와 증거와 계명과 율법과 규례에 복종하라고 명령하셨다(4:1-8, 6:1-9, 24, 25, 7:11, 8:11). 모세가 세상을 떠나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려고 나설 무렵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1:7, 8).


언약의 문서에는 여호수아와 다른 선지자들이 기록한 다양한 문서가 더해졌다(24:25-28; 30:8-11; 25:13). 하나님은 성경 도처에서 자기 백성에게 기록된 언약에 복종하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거룩한 책으로 받아들였다. 예수님은 성경을 단 한 번도 비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성경에 복종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비판하셨다(5:45-47), 그분은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10:35)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생애 말년에 디모데에게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하나님의 진리는 여전히 건재할 것이 라고 말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 17).


'하나님의 감동으로'라는 말은 성경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사도들이 기록한 말씀은 그들의 선지자적인 권위를 전달한다.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점에 관해 말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고전 14:37, 38).


바울이 기록한 말씀은 어떤 사람이 선지자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이처럼 선지자들이 입으로 전하는 말씀보다 기록한 말씀이 교회 안에서 가장 큰 권위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었다.


기록된 구약 성경의 언약 문서와 신약 성경에 포함된 사도들의 말씀을 합쳐 '성경'이라 일컫는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성경의 무오성을 뒷받침하는 토대는 하나님의 본성이다.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원리가 아닌 삼위일체 안에서와 피조물을 향해 말씀하시는 인격체이시다. 그분은 항상 주님으로서 능력과 권위와 입재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에게서 비롯한 말씀은 무엇이나 그분의 권위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직접 적인 음성을 신뢰하듯 그 말씀을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은 직접 적인 음성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전했고, 자신의 손으로 돌이나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기록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기록된 말씀을 신뢰할 수 있다.


물론 이 밖에도 살펴봐야 할 문제는 많다. 그 문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그 문서가 옳은 것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으며, 어떤 책이 성경에 속하는지를 알 수 있느냐와 같은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런 질문들은 이 책에 포함된 다른 논문들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근본 진리는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충분하다. 우리에게는 그런 문제에 대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우리에게는 그런 질문이 참으로 어렵게 느껴지지만 하나님에게는 조금도 어렵지 않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분은 조금도 어렵지 않게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말씀이신 독생자를 보내 진리를 전하고, 또 죄를 위해 죽게 하신 이유다(18:37).


나는 이번 장의 서두에서 "그리스도를 소유했는데 무오한 성경이 왜 필요한가?"라고 물었다. 그 대답은 내가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에서 발견된다. 구원은 기계적인 과정이 아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다. 관계는 인격적이기 때문에 대화를 요구한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 틀리지 않으신다. 따라서 그분의 말씀은 무오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배의 행위에 해당한다. 우리가 말씀을 비판적으로가 아니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보배롭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그분께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돌린다(5:12). 우리는 단 한순간도 그리스도의 인격이나 사역에 결함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의 말씀, 곧 그분의 복음에도 거짓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듯 그분의 말씀을 찬양한다(56:4, 10). 따라서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머리를 조아리는 순간, 성경이 무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출처: '성경 무오성에 대한 도전에 답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