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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위격, 그리고 삼위일체 등의 용어의 의미와 다른점 - 우르시누스(Z. Ursinus)

Bavinck Byeon 2016. 1. 29. 02:41

본질, 위격, 그리고 삼위일체 등의 용어의 의미와 다른점


자카리우스 우르시누스(Z. Ursinus)



본질은(essence)은 헬라어로는 우시아인데, 이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다른 어떤 것의 도움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닌, 그러나 다른 것들이 공유(共有)할 수 있는 하나의 사물을 의미한다. 여럿에게 공통적이거나 여럿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본질에 대해서는, 공유적(共有的)이라거나 공유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것이 함께 참여할 수 없는 본질에 대해서는 비공유적(非共有的)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본질은 공유적이며, 여러 사람들에게 공통적이다. 하나님의 본질을 가리켜 공유적이라 할 수 있으나, 이는 다만 신성 혹은 하나님의 본성이 신격의 삼위(三位) 모두에게서 동일하고 완전하기 때문이다.

 

위격(位格: person)이란 실재하는 것으로(subsisting), 개별적이며, 살아 있고, 지성적이며, 비공유적이다. 또한 이것은 다른 것 속에서 지탱되거나 다른 것의 일부가 아니다. 실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생각이나 결정이나 사라지는 소리나 혹은 어떤 창조된 특질이나 움직임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개별적이라는 것은 총칭적이 아니라, 개체적이라는 뜻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돌처럼 생명이 없는 것과 다른 것을 뜻한다. 지성적이라는 것은, 생명과 감각은 있으나 인격성이 결핍되어 있는 동물처럼 비이성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비공유적이라는 것은, 삼위 안에서 공유가 가능한 하나님의 본질와는 달리, 위격은 공유가 불가능하다. 다른 것 속에서 지탱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그 자체에 의해서 지탱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실재하며 개별적이고 비공유적이며 지성적이지만, 그것은 위격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말씀에 의해서 지탱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도 그 자체로 실재하며, 지성적이며, 다른 것에 의해서 지탱되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위격(位格: person)이 아니다. 왜냐하면 실재하는 또 다른 개체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의 일부가 아니다라는 정의가 덧붙여지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본질과 또한 그 본질 속에서 존속하는 위격들 사이의 차이를 쉽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본질이라는 용어는, 영원하신 성부, 성자, 성령께서 절대적으로 그들 자신 속에 계신 것으로 간주되고 또한 그렇게 선포되는 그것으로서 세 분에게 공통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위격들이란 신격의 삼위를 각기 개별적이며 관계적으로 생각하고 선포하는 것이요, 혹은 각 위에게 고유한 존재의 양식을 따라 서로를 비교하는 그것을 의미한다. 혹은, 본질을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 바로 그 영원하고 유일한 신격 로 정의하고, 한편 위격은 하나님의 존재 혹은 신적 본질이 이 세 분 속에 존속하는 바 양상 혹은 방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그 스스로 존재하시고 다른 것으로부터 말미암지 않은 존재이시다. 성자는 그 동일한 존재 혹은 본질로서,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성부께 속하여 계신 분이시다. 성령도 마찬가지로 그 동일한 존재이신데,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성부와 성자께 속하여 계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신격의 삼위들의 존재 혹은 신적 본질은 하나요 동일하다. 그러나 스스로 존재하신다거나 혹은 다른 분에게서 한 분에게서나 혹은 두 분에게서 비롯되신다거나 하는 표현은 이 하나의 신적 본질을 스스로 지니고 계시다거나 혹은 그것을 다른 분에게서 한 분에게서나 혹은 두 분에게서 전해 받으신다거나 한다는 뜻인데, 이는 바로 삼중적이면서도 구별된 존재의 양상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 세 분이 각기 스스로 계시거나, 혹은 나시거나 출생하시거나, 또는 나오신다고 하는데, 이러한 삼위의 존재 양상을 삼위일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본질과 위격이라는 용어들을 하나님께 적용시킬 때에, 그 중요한 차이는 다음과 같다. , 본질은 절대적이며 공유적이나, 위격은 상대적이며 비공유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의 예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과 아버지라는 것은 서로 별개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이고 또한 아버지이다. 그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 절대적으로 사람이며, 그는 다른 사람, 즉 그의 아들과의 관계에서 보면 아버지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것은 서로 별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이시요 또한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하나님이시요, 서로서로와의 관계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것이다.

 

첨언, 사람이 아들을 낳을 때에 그 사람의 본질은 그 출생하는 아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인격(person)은 전달되지 않는다. 아들을 낳는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는 별개의 또 다른 사람을 출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며, 아버지도 아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 둘 다 진짜 사람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원하신 성부께서는 영원한 출생을 통하여 성자에게 자신의 본질은 전달하셨으나, 그의 위격(person)은 전달하지 않으셨다. , 성부께서는 성부가 아니라 성자를 낳으신 것이요, 성부께서 성자이신 것도 아니고, 성자께서 성부이신 것도 아니다. 그러나 두 분 모두 참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사람의 경우와 하나님의 경우가 서로 비슷하기도 하나, 동시에 거기에 크나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한한 신적인 본질과, 또한 창조함을 받은 유한한 인간의 본질은 그 전달되는 방식에서 서로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첫째로, 사람의 경우,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본질도 인격도 모두 다르다. 아버지와 아들은 두 인격일 뿐 아니라 본질이 서로 구별되는 두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우는 위격은 구별되나, 본질은 하나이며, 따라서 세 분의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분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둘째로, 창조함 받은 사람들의 경우는, 아들을 낳는 자는 자신의 본질 전부를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 본질의 일부만을 그 낳는 아들에게 전달하며, 그리하여 자기와는 별개인 또 다른 개체의 본질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우는, 성자를 낳으시고 성령을 나오게 하시는 성부께서는 자신의 본질 전부를 성자에게나 성령에게 전달하시며, 그렇게 하시면서도 성부 자신은 동일한 전체로 남아 계시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사람의 본질은 유한하며 가시적인 반면에, 하나님의 본질은 무한하며 불가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성부, 성자, 성령께서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이루시며, 그러면서도 성부는 성자나 성령이 아니시며, 성령은 성자가 아니시다. , 세 분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한 분의 신격 내에 삼위께서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되신 하나님의 유일성을 손상하지 않고, 위격들의 구별을 망가뜨리지 않고, 또한 위격이라는 용어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하는 진리 이외에 다른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본질와 위격이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을 유념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유의 사항들을 부지런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1. 위격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결코 그저 하나의 관계나 직분 같은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 라틴 교부들이 흔히 Principis personam tueri, "왕의 인격을 보존함"이라는 말을 썼고, 과거에 사벨리우스(Sabellius)도 위격을 하나의 관계나 직분 같은 것으로 잘못 가르쳤으나, 그것은 옳지 않다. 또한 위격이라는 용어가, 마치 무대의 배우가 다른 사람의 역할을 연기하듯이 다른 존재의 현태나 제스처 등을 나타내는 모양이나 가시적인 형체를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후에 세르베투스(Servetus)가 위격이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 하찮게 만들었다. 위격이라는 단어는, 자신이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것들과 비공유적 속성을 통해서 진정으로 별개로 존속하는 어떤 것을 뜻한다. , 낳거나 낳아지거나 나오는 자의 직분이나 위엄이나 계급이 아니라, 낳거나 낳아지거나 나오는 그 존재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다.

 

2. 위격들이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질로부터 뭔가 분리된 것도 아니고, 본질이 세 위격들과 분리된 모종의 네 번째 것인 것도 아니다. 세 위격들 각자가 신격의 동일한 본질인 것이다. 그러나 위격들은 각기 다른 위격들과 별개이나, 본질은 세 위격들 모두에게 공통적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3. 본질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유념할 점은, 하나님은 혹은 신격, 혹은 신성이 위격들에 대해서 마치 물질이 형체에 대해 갖는 것과 동일한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물질과 형체가 복합된 존재가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위가 한 본질이라거나 한 본질로 되어 있다는 말은 정확한 것이 못된다. 또한 위격은 부분들이요 본질은 전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격이 본질의 일부라거나 본질이 삼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도 정확한 것이 못된다. 각 위께서 전체의 신적 본질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본질은 일반적인 것을 지칭하며, 위격은 구체적인 것을 지칭한다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본질은 세 위격들의 속(: genus)이 아니고, 위격이 본질에 속하는 종(: species)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좀 더 공통성을 띠는 이름이다. 신격의 본질은 세 위격들에게 공통적이며, 따라서 세 위격들 모두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이름들은 똑같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진정 서로 별개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혹은 신적 본질이 성부이시고, 성자이시고, 성령이시며, 세 위격들이 한 하나님이시라거나 혹은 한 하나님 안에 계시며, 또한 마찬가지로 그들이 하나의 동일한 본질, 본성, 신성으로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한 하나님에 속하여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왜냐하면 이 세 위격들 중에 스스로 완전한 하나님 전체가 아니신 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적 본질과 위격의 관계는 특별한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과 공통적인 것들 사이의 관계와 같다 할 것이다. 창조함 받은 것들 중에서는 이와 비슷하거나 정확한 전달의 실례를 찾을 수가 없다.

 

삼위일체(Trinity)는 헬라어 트리아스에서 온 것으로, 이 세 위격들이 세 가지 존재 양상에서 구별되고 그러면서도 신격의 한 본질 속에 존재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Trinity"(삼위일체)"triplicity"(삼중성), "trinal"(삼위일체의), "triple"(삼중성)이라 부르며, 본질은 하나인데 세 가지 존재 양상을 지닌 것을 가리켜 "trinal"(삼위일체적)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삼위일체적이시나 삼중적이신 것이 아니다. 그는 본질에 있어서는 오직 하나요, 그러면서도 세 위격이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해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