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modern Theology

내가 바르트에게서 배우지 않았던 것 – 리처드 멀러(Richard A. Muller)

Bavinck Byeon 2015. 2. 19. 17:37

내가 바르트에게서 배우지 않았던

(What I Haven't Learned from Barth)

 

리처드 멀러(Richard A. Muller)


 

지난 수년간 바르트의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고 20세기 신학에 대한 그의 공헌을 알리기 위해서 무수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각종 추천서들과 논문들이 작성되었다. 나도 동일한 일을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소 낮은 목소리로 말하겠다. 나는 바르트를 금세기에 가장 걸출한 신학자 사람으로 인식하지만, 반면에 (후기칸트주의 신학이 어떻게 휩쓸었는지 검증된 경우라면) 바르트를 불트만이나 슐라이어마허보다 중요하다고 선언하기에는 망설임이 생긴다. 바르트의 떠들석한 추종자들은 위대한 바젤의 신학교수(바르트) 아타나시우스 이래로 가장 생산적인 사상가라고 주장하는데, 나는 확실히 그런 압력을 가하는 자들의 판단을 제압하려고 한다. 주장은 Τ & Τ Clark (바르트의 저작의 주요 출판사) 성지 에딘버러에서는 아마도 수용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신학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어떤 관점에서도 아타나시우스와 바르트 사이에는 완전히 닿을 없는 대조점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루터, 칼빈과도 그러하며, 바르트가 함께 있다는 오리겐,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와도 마찬가지다. 나는 목록에 가장 명석한 정상급 신학자로서 슐라이어마허도 추가하고 싶다. 그러나 그는 본질적으로 -규범적인 신학(non-normative theology) 산출했던 참되고 위대한 몇몇 사상가들과는 대조적이다.

 

바르트는 세대의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과 교회의 위대한 전통으로, 구체적으로는 종교개혁의 전통과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신학으로 되돌아가라고 지시했다( 생각엔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바트르 사상의 가장 실용적이고 통찰력있는 요소들은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주의에서 파생되었다. 내가 신학 훈련을 받으며 성장하던 수년 동안, 신학교수들은 나에게 꾸준하게 양식으로 먹였던 신학자들 중에는 불트만, 노트(Noth), 슐라이어마허, 맥쿼리, 화이트헤드, 당연히 바르트가 있다. 신학의 기초를 찾으려고 다른 곳에서 바로 바르트에게 배웠던 것이다. 이제 내가 바르트에게 배우지 않았던 것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보겠다.

 

첫째로, 나는 바르트에게 어떻게 신학을 하는지(do theology)” 배우지 못했다.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내가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정독할 , 끝마치기를 거부하는 아이디어들 과도한 장황함에 관한 일관된 경험을 가졌다. 개념들을 활용한 명석한 두뇌 플레이를 지켜보는 일과 생각할 있는 모든 관점에서 비롯된 강력한 탐구에 개념들을 종속시키는 작업은 흥미진진하고 이따금 교육적기도 하다. 그러나 바르트의 변증법적 방법(dialectical method)은 인간의 언어로 신적 진리를 진술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그 자체로 불가능한 형식화들(formulations)을 계속해서 거부하고 재진술한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방법은 신학 진술의 양 극단 사이에 있는 형식화의 문제를 단순하게 진술하는 것은 쉽게 더 교육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바르트는 다른 주제를 전달하고, 최종적으로는 독자에게 내용의 손상 없이 단지 3~4권에 지나지 않는 완성된 교의학을 제공한다. 바르트는 개신교 스콜라주의(Protestant scholastics) 작품을 존경심을 가지고 읽었다. 개신교 스콜라주의는 형식(formula) 안에서 간결성과 명확성을 비범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들은 인간의 신학은 틀림없이 모형적이고(ectypal), 불완전하고(imperfect), 하나님에 대하여 한정적인 진술에 불과하며,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계시의 은혜로만 신적인 원형(divine archetype) 성공적으로 반영한다고 말했다. 바르트는 신학적인 형식(theological formulation) 관한 규칙을 어디서 찾는지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규칙을 바르트에게서 배웠다고 말할 없다.

 

둘째로, 나는 칼바르트에게서 어떻게 주해를 하는 것인지 배우지 않았다. 바르트의 작품인 <로마서주석> 공부했던 나의 신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시작해보자. 이유는 내가 바르트를 읽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에 <교회교의학> 도서관 도서입수예산의 한계를 초과한 바위덩어리처럼 바라봤다. <로마서 주석>에서는 다음을 배웠다. 이를테면 냉혹하고, 역사-비평적이고, 특별히 당대의 주해에 대한 비신학적 함유물에 대해서 신출내기로서 내가 가진 반대주장들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진 반대주장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르트의 서문이 나로 하여금 종교개혁자들의 주해와 해석학적 접근법으로 향하도록 지시했을 , 교회의 오늘날의 (the present life of the church) 위한 텍스트의 신학적 의미에 접근하는 길을 발견했다. 그러나 <로마서 주석> 읽어나가면서 바르트의 사상에서 바울의 영향력보다는 키에르케고르의 영향력, 근원적으로 실존적인 접근법에 관해서 나에게 교훈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로마서 텍스트와의 진정한 접촉은 바르트의 저술 가운데 미세하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언젠가 <교회교의학> 착수해서 바르트의 신학 안에서 다양한 성경 구절들에서 가져온 기독론적 원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살피기 시작했을 , 텍스트 자체와 바르트에 의해 선택된 텍스트가 과연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자신은 갈팡질팡했다. 가룟 유다의 일화에 대한 바르트의 독해(Reading) 좋은 사례다. 대다수 주석가들은 27:1-10, 1:16-20에서 용서되지 않는 저주를 관찰한다. 사도행전 본문은 모호한 시편 구절을 인용하며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바르트는 그리스도가 오직 택해지고 오직 버려진 사람이라는 교의학적 전제의 관점에서, 가룟 유다의 운명 가운데 어느 정도 소망을 발견하고 있다. 이런 주해의 어리석음은 예외가 아니다. 바르트는 자신의 과도한 그리스도적 원리를 잠겨진 텍스트를 열기 위해서 발견학습적 열쇠(a heuristic key)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원리 속에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위격 사이 명확하지 않은 관련성이 존재한다. 결과는 믿을 없을만큼 임의적이고 교의학적인 주해로 남는다. 그것은 기독론적인 신학적인 양자로 존재하는 막연한 논지에 의해서 정당화될 뿐이다. 나는 바르트에게서 주해를 어떻게 하는지 배우지 않았다.

 

마지막 셋째로, 나는 바르트에게서 기독교 전통의 통찰력을 오늘날 사용을 위해서 어떻게 활용하는지 배우지 않았다. <교회교의학> 의심할 여지 없이 기독교 교리 역사에서 비롯한 자료의 금광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수집된 자료들을 토대로 세워진 실제 건축물보다 오히려 자신의 신학적 형식화를 위한 은박지로 사용한다. 더불어 바르트는 자료들의 의미나 방향 하나를 가져오는 실패한다. 나는 문제점의 사례로 바르트의 가장 통찰력 넘치는 역사적 여담(historical excursuses)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바로 예정론이다(참고. 교회교의학 II/2). 내가 올바르게 믿기로는, 바르트는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결코 모든 교리가 어떻게든지 신적 작정으로부터 도출된다는 예정론 체계(predestinarian system) 제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런데 바르트는 작정 교리의 다소 경직된 표현으로 Deus nudus absconditus(철저히 감추어진 하나님) 문제를 제기한다. 바르트는 해결책을 위한 단서를 아만두스 폴라누스(Amandus Polanus) 논증 속에서 발견한다. 선택이 모든 위격들 안에서 삼위일체의 공통적인 사역이므로, 성부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택하시지 않고 하나님으로서 택하신다. 결과 성자 하나님이 우리의 선택에 있어서 택하시는 동시에 결과를 가져오신다는 논증이다. 바르트는 단서로부터 선택하시며 선택되신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electing and elected)”이라는 자신의 교리 안에서 Deus nudus absconditus(철저히 감추어진 하나님) 문제를 극복하는 단락으로 넘어간다. 바르트는 2가지, 작정(decree) 개념이 본질적이라는 것과 신격의 삼위일체론적 행위를 언급하지 않는다. 16-17세기의 전형적인 개혁파 신학은 선택(election) 정의할 , 위의 2가지를 종합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일어나는 것으로서 간주한다. 우리는 과거의 신학으로 거슬러가도, 바르트가 규정한 같은 Deus nudus absconditus(철저히 감추어진 하나님) 문제를 마주칠 없다. 더구나 바르트의 입장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의 붕괴는, 선택하시며 선택되신 중보자가 오직 인간을 선택하시고 유기하시는 분으로 남으며, 그가 논평했고 제기했던 교리적 문제의 해결책으로 끌어온 단서인 신학적 자료와 아무 실제적인 관련성이 없다.

 

단지 나에게 제공된 것은 과거의 개혁파가 가졌던 선택의 개념에 관한 바르트의 숙고에서 실제적으로 발생한 역사적 전제이다. 전적으로 감추어진 하나님의 문제는 과거의 신학적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바르트 사상의 칸트적인 배경에서 그에게 발생한 문제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현상적 질서에 정위되지 않는다면, 초월적이고 접근불가능한 자체(noumenon)로서 현상적 질서 이면에 계시는 하나님은 접근될 없으며 알려질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바르트가 자리에 제시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지식의 유일한 초점인 것이다. 바르트가 선택에 대해서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슐라이어마허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존이라는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의식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닮아있다. 바르트는 신적 선택 교리에 대한 칸트주의적 장애물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개혁파 전통의 숙고(meditation)에서는 발생되지 않는 것이다. 바르트는 역사 자료들이 자체로 말하도록 하기 보다는 자신의 설명에 맞춰서 역사 자료들을 사용했다. 이런 논증 패턴은 <교회교의학> 수많은 곳에서 증거가 제시될 있다. 예를 들면 <교회교희학> 전반부 권에 있는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 서론에 대한 바르트의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바르트는 자신의 방법론과 주해와 역사 활용 안에서 독자들이 자신이 개별적인 신학적 씨름을 뛰어넘도록 지시하는 시종일관 실패한다. 바르트의 논증은 대부분 명석하다. 논증은 바르트가 출생한 자유주의 신학의 소중한 개념들의 밑둥 대부분을 잘라내는 성공했다. 또한 논증은 우리에게 시대에 기독교의 유일성을 강력하게 상기시켰다. 때는 종교사(Religionsgeschichtliche)” 학파라는 상대적인 접근법이 신학적 개념들에 관한 토론을 학문적으로 압도하여 종종 위협하던 시절이다. 바르트 신학의 위대한 가치는 우리 자신의 신학적인 뿌리로 향하도록 우리를 안내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성경과 전통으로 돌아가도록 지시했던 바르트 신학의 위대한 아이러니는 그것으로 현재를 해석하는 적은 도움밖에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가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루터, 칼빈을 공부할 , 지속적으로 깨닫는 사실은 그들이 성경과 전통을 묵상할 의무뿐만 아니라, 그들 당시의 시대와 교회의 다음 세대를 향한 성경과 전통을 묵상할 의무에 대해서도 자각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자신의 사역을 넘어서 위대한 교회적 과업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들은 모방될 있는 방법들을 채택했고, 오늘날에도 성경이 열려있다는 주해적인 논증을 제안했고, 과도한 발견학습적 원리들(heuristic principles)과의 일치를 위해서 본문을 왜곡시키지 않고 오히려 본문을 존중했고, 자신의 의견을 위한 은박지가 아니라 신학적 쟁점의 의미를 판별하는 통로이자 안내자로서 과거의 신학적 고민을 다루었다. 나는 바르트에게서 이런 접근법을 배우지 않았다. 그렇지만 접근법을 배울 있었던 곳을 알려 주었기 때문에 바르트를 언제나 고맙게 여긴다.



[The Reformed Journal 37(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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