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eds & Confessions

신조학 2 - 필립 샤프(Philip Schaff)

Bavinck Byeon 2015. 4. 18. 16:22

2장 에큐메니칼 신조

 

필립 샤프(Philip Schaff)

박일민 편역

 

1. 에큐메니칼 신조의 일반적 성격

 

우리는 에큐메니칼 혹은 공교회 신조(symbola oecumenica, s. catto-lica)를 통해서 초대교회의 교리적 진술들을 이해할 수가 있다. 오늘날의 희랍교회와 라틴교회와 복음적인 프로테스탄트교회들이 공식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이 신조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신조들은 모든 교회들을 하나로 결속케 해 주고 있다.

 

에큐메니칼 신조에는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아다나시우스 신조 세 가지가 있다. 사도신경은 가장 간략하다. 다른 두 신조는 사도신경을 발전시키거나 해설한 것이다. 사도신경은 서방교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신조인 반면, 동방교회에서는 니케아 신조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칼케돈 공의회(Ecumenical Council of Chalcedon, 451)에서는 이들 신조에 기독론에 관한 언급이 추가되었다. 칼케돈 신조는 아다나시우스 신조(제한된 의미에서만 에큐메니칼 신조라는 용어로 불리워진다.)보다 훨씬 더 권위를 인정받았으나 드물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셋 또는 네 개의 신조들은 구원에 있어서는 꼭 필요하고 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기독교 신앙적 기본적인 내용을 간략하고 대중적인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니케아 회의와 니케아회의 이후 시대에 있었던 큰 교리적 논쟁들의 결론을 내포하고 있다. 이 신조들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성결케 하시며, 유일하게 참되시고, 살아계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신앙고백서들이다. 이 신조들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계시의 순서를 따라 하나님과 천지의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육체의 부활과 영생으로 끝을 맺는다. 이 신조들은 교의라기보다 사실 그대로를 형태화한 신앙의 헌장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사도신경은 교육과 교회 의식에서 사용하기 매우 적합하도록 되어 있다.

 

루터파와 영국 성공회는 자기들의 교리적 또는 의식적 표준문서에다 새 에큐메니칼 신조들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여 기술해 놓았다. 그러나 개혁교회의 신조들은 이 신조들의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을 채택했으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사도신경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사도신경은 주기도문이나 십계명과 더불어 루터의 요리문답, 제네바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등 여러 표준적이 요리문답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은 전에 믿어 오던 것처럼 그 형태 자체를 사도들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사도들과 교훈에 대한 매우 적합한 대중적 요약이요 신약성경의 정신과는 그 문자에 있어서까지도 잘 조화되는 신조이다.

 

(1) 성격과 가치

 

주기도문이 기도 중의 기도요 십계명이 율법들 중에 최상의 율법이듯이 사도신경은 신조들 중의 신조이다. 사도신경은 구실에 필요한 모든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조목들을 사실적인 형태와 단순한 성경적 용어를 사용하여 기술하고 있으며, 가장 자연스러운 순서계시의 순서인 하나님과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부활과 영생에 이르고 있다. 사도신경은 삼위일체를 말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신앙을 표현한 세 가지 주요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특 천지의 창조주이신 성부, 그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in Deum Patrem, in Jesum Christum in Spiritum Sanctum) 등이다. 주된 강조점은 두 번째 항목인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탄생, 죽음, 부활에 있다. 그 다음에는 표면을 바꾸어서(단순한 목적격을 가지는 Credo 대신 Credo in)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기독교 신앙을 대중적으로 요약한 것들 중에서 지금까지 이보다 더 간결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사도신경은 교육이나 예배의식에 사용할 목적으로, 특히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나 입교를 원하는 사람에게 신앙을 고백케 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후대의 모든 신조들보다도 능가한다. 사도신경은 요약된 교리를 논리적으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실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진리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다. 사도신경은 예배의식에 사용할 수 있는 시의 형태로 되어 있다. 사도신경은 주기도문처럼 빈번하게 사용한다 하여도 그 효과와 감화력을 잃지 않는다. 공연하게 아무 생각도 없이 되풀이만 하는가 아니면 참된 신앙의 고백으로 하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순교자를 만들기도 하고 허공을 치는 소리에 불과하게 되기도 한다. 사도신경이 어린아이들에게는 교훈적이고 지적인 반면, 성년이 되어 우주의 근본과 그 제일 되는 원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가장 탁월한 그리스도인 학자에게는 신선미와 풍요함을 더해 준다. 사도신경은 초대교회의 향기였다. 또 널리 인정을 받아서 헤아릴 수 없는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모든 시대와 모든 분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띠와 같다.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널리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한편 사도신경은 매우 단순하고 간결하여 어떤 수준에 있는 사람이건 어떤 예배를 위해서건 다 만족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신학적 지식이 매우 수준급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적인 교리를 규정해 줌에 있어서도 매우 적절하다. 사도신경은 기본적인 조항만을 말하고 있고, 또 그것들을 평이한 성경적인 용어들로 나타내고 있어서, 교회의 학적 수준에 따라 무한히 전개시켜 나갈 수가 있다. 그 실례로 니케아 신조는 아리안(Arian) 이단에 맞서서 사도신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교리를 보다 분명하고, 강력하게 확대시켰고,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니케아회의 이후에 일어났던 여러 이단들과 맞서 사도신경의 삼위일체 교리와 그리스도의 품위에 관한 교리 전체를 더욱 확장시켰다. 종교개혁이 낳은 신조들은 성경의 권위와 영감에 대한 교리 또는 사도신경에서 그냥 지나쳤거나 단지 함축적으로만 말하였던 죄와 은혜에 대한 교리를 더욱 자세하게 밝혔다.

 

(2) 사도신경의 기원은 그 핵심 부분(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조항)을 볼 때 마태복음 16:16에 나오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임이 분명하고, 이것이 다시 세례의식에 사용되기 위하여 삼위일체의 순서를 따라 배열되었음이 분명하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제4시기 이전에 서방교회(마치 니케아 신조가 동방교회 산물이듯)에서 만들어졌다. 사도신경은 사도의 친저작이 아니라 교회가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에 대한 응답으로써 하나님께 드린 사람의 말이다. 본래는 세례를 위한 신앙고백으로 사용되다가 차츰 초대 기독교의 내적 생활과 실천적 요구를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사도신경은 세례를 받기 원하는 자들에게 마지막 준비단계에서 이것을 해설하여 줌으로써 세례를 받을 때에 그들로 하여금 이를 고백케 하였고, 개인적인 헌신의 시간에도 주기도문과 함께 자주 되풀이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나중에는 공예배 때에도 사용토록 하였다. 니케아 회의 이전 교부들은 사도신경을 신앙의 규범’, ‘진리의 규범’, ‘사도적 전통’, ‘사도적 가르침이라고 불렀으나 나중에는 신앙의 상징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세례 예식에서 사용되던 이 신조가 처음부터 정확하게 동일한 현태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교회들마다 여러 형태와 형식들을 각기 다르게 사용하였던 것 같다. 어떤 것은 더 길고 어떤 것은 더 짧았으며, 어떤 것은 직설적인 반면 어떤 것은 문답 형태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큰 교회들은 제각기 자기들의 특별한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사도적 신앙의 핵심을 받아들였으나,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과 세례 예식문의 일반적인 순서배열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강조점을 두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실례가 미국에 있는 독립교회나 회중교회나 침례교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교회들은 각기 지교회의 신조를 제정하는 자유(이들은 어떤 사람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때 자기의 신앙을 고백케 하는 형식을 언약이라고 부른다)에 있어서 초대교회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 초대교회 신조들 중 현존하는 것은 단지 단편적인 것들뿐이다. 니케아회의 이전의 교부들은 정확하고 완전한 형태가 아닌 단지 해설, 방어, 주해 또는 적용이 첨부된 일부 조항들만을 남겨 놓았다. 신조들은 기억을 통해서 내려왔다. 그러나 전혀 기록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니케아회의 이전의 교회가 가지고 있던 은밀한 권징서’(Secret Discipline)를 보면 알 수 있다. 고대교회는 불신자들의 비방이나 오해를 두려워하여서(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 고대 이방 밀의종교(密議宗敎)를 모방했던 것은 아니다) 성찬을 행할 때나 세례를 베풀 때 행하던 신조에 대한 찬송을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기 전까지는 예식에 참여하는 자들만 은밀히 행하도록 했었다.

 

서방교회에서 최초로 라틴어 사도신경의 본문을 작성하고 거기에다 주석을 덧붙인 사람은 제4세기 말 인물인 루피누스(Rufinus)였다. 그때 서방교회에서는 세례 때 사용하기에 가장 적절하고 대중적인 형태의 신조를 제정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로마(Rome), 아퀼레이아(Aquileja), 밀란(Milan), 라베나(Ravenna), 카르타고(Carthago), 히포(Hippo) 교회가 대표적 교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교회들이 각기 사용하던 신조에는 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로마교회가 사용하던 형식이 그 자체의 탁월성과 로마교회의 지도적 입장으로 말미암아서 점차적으로 서방교회의 일반적 승인을 받게 되었다. 루피누스(390)가 만든 라틴어 본문과 안키라의 마르셀루스(Marcellus of Ancyra, 336-341)가 만든 헬라어 본문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헬라어 본문은 라틴어 본문보다 더 앞선 것임에도 불구하고 라틴어 본문에서 번역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헬라어 본문은 헬라어가 로마인들에게 대중화된 제2세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로마교회의 신조는 점차 몇몇 구절들이 추가되어 오늘날의 형태로 늘어나게 되었으니, ‘음부에 내려가사’(아퀼레이아 신조에서 취한 것) 하는 조항이 삽입되었고, 교회에 관한 조항에서는 공회또는 카톨릭’(동방교회 신조들에서 온 것)이란 설명구가 들어갔고, ‘성도의 교제’(갈리칼 신조에서 온 것)가 나온 다음 영생’(아마도 라베나 신조나 안디옥 신조에서 온 것 같다)으로 끝을 맺는다. 이 추가된 구절들은 그 내용이 성경 속에 나온다는 점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수납되던 신앙임에 틀림이 없으나 처음에는 한 지역의 신조에만 있던 것으로서 후대에 가서야 공식적 형태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사도신경 본문은 5세기 말까지에는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라틴교회에서 전체 형태가 확고하게 굳어진 것은 8세기 이후 또는 로마교회의 감독들이 서방교회의 예배의식들을 로마교회화 하려는 강력한 시도를 벌였을 때일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사도신경의 몇몇 조목들을 따로 떼어서 살펴볼 때에는 니케아회의 때 또는 그 이전에도 모두 있던 사상이며, 그 핵심은 사도시대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도신경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사실들과 교리는 신약성경과 전적으로 부합된다. 이 사실은 최근에 매우 놀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잉태(1:18; 1:35 비교), 지옥 강하(23:43; 2:31; 벧전3:19; 4:6 비교), 육체의 부활(고전 15:20 ) 같은 조항들에도 해당된다.

 

그러므로 사도신경 그 자체나 교회에서의 사용을 반대하는 합리주의적 입장은 간접적으로 성경을 공격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공격은 분명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지만 성경은 온갖 불신앙에 대해서 승리를 거두고 말 것이다.

 

(3) 루피누스가 라틴어로 작성하여(390) 로마교회가 사용하던 로마신조와 마르셀루스가 헬라어로 작성했던 신조(335-341)7-8세기에 널리 사용되다가 공인을 받기에 이른 사도신경과 서로 비교해 보고자 한다. 추가된 부분은 괄호로 표시하였다.

 

고대 로마 형

 

1.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3. 이는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4.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지낸 바 되시고

5. 삼 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며

6.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앉으시고

7.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8. 성령과

9. 거룩한 교회와

10.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11. (육체)의 부활을 믿사옵나이다.

 

공인된 형

 

1. 나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3.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4.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장사지낸 바 되시고 (음부<지옥>에 내려가셨으며)

5. 삼 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며

6.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시고

7.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8. (나는 믿기를) 성령과

9. 거룩한 (<> 교회와 (성도가 교통하는 것과)

10.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11. (육체)이 부활하는 것과 (영생)을 믿사옵나이다.

 

3. 니케아 신조(The Nicene Creed)

 

니케아 신조 또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탄 신조(The Nicena Creed or Symobolum Niceano-Constantinopolitanum)는 동방교회의 형식으로 된 초기의 신조이지만 니케아회의 시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성령에 관한 언급에 있어서는 사도신경보다도 더 명확하고 자세하게 밝혀 놓고 있다. ‘동질’(coessential), ‘동등’(conequal), ‘창조 이전의 발생’,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 ‘발생되고 피조되지 않으심등과 같은 용어들은 동방교회가 반세기 이상 끌어오던 아리안 이단파의 피나는 싸움 끝에 얻어낸 트로피이다. 니케아 신조는 범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은 최초의 신조이다. 고대에는 각기 다른 형태가 동방교회에서 사용되었고 약간의 수정이 가해진 것도 있었다.

 

동방교회의 신조들도 역시 세례 예식 때 사용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며, 세례 받는 자들로 하여금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하게 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동방교회의 신조와 서방교회의 신조가 서로 독립적이며 평행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동방교회는 콘스탄티노플회의의 결정에 따라 니케아 신조를 낳았고, 서방교회는 로마형인 사도신경을 낳았다. 동방교회는 이단들과 맞서 싸움을 싸우면서 믿음을 지켜 나아가야 할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신조들이 형이상학적이고, 논쟁적이며 완만한 표현을 가지고 있지만, 서방교회 신조들은 단순하고 실제적이며 정적이다. 동방교회 신조들은 교회회의의 간섭 아래 두 차례의 세계교회회의를 거쳐서 최종 형태를 인준 받았으나, 서방교회 신조들은 로마교회가 다른 교회들의 우위에 오르기 전까지 몇몇 교회들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추가나 개정이 자유롭게 허용되다가 공식적인 교회회의의 결정 없이 은연중에 서방교회에 채택되었다.

 

우리는 니케아 신조를 그 형태를 따라 본래의 니케아 신조, 확대된 콘스탄티노플 신조, 오늘날에 전해지고 있는 후기 라틴신조로 구분해야 한다.

 

(1) 본래의 니케아 신조는 아리안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325년에(스페인의 호시우스를 제외한) 318명의 동방교회의 감독들이 니케아에서 회집했던 제1차 니케아회의에서 나왔다. 이 신조는 그리고 성령이란 말로 갑작스럽게 끝나고 있지만 아리안주의자들에 대한 저주가 덧붙여져 있다. 이 신조는 칼케돈회의에 이르기까지 그 권위를 인정받았다.

 

(2)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탄 신조는 본래의 니케아 신조 본문에서 첫 두 항목을 약간 수정했고, ‘성령다음의 조항들을 추가했는데 저주문은 삭제했다. 현재도 동방교회는 이 신조를 채택하고 있다. 이 신조는 흔히 데오도시우스(Theodosius)가 마게도니아 사람들 또는 성령 기계론자들(Pneumatomachians, 소위 성령의 신성 부인설)을 막기 위해서 381년에 150명의 동방교회 감독들을 소집하여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했던 교회회의 때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신조가 칼케돈회의 때까지는 공교회의 승인(ecumenical recognition)을 받았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없다. 그러나 아에티우스(Aetius, 콘스탄티노플의 집사)451년 칼케돈회의에서 ‘150명의 교부들의 신조’(Creed of the 150 fathers)를 낭독함으로써 본래의 니케아 신조, ‘318명의 교부들의 신조와 더불어 정통적인 신조로 인정을 받았다. 한편, 추가된 조항들은 콘스탄티노플회의가 열리기 7년 전인 374년에 팔레스틴 출신 에피파니우스(Epiphanius)가 만든 두 개의 신조와 350년 초의 것으로 여겨지는 예루살렘의 씨릴의 신조에도 들어있다.

 

니케아 신조는 성령으로 갑자기 끝을 맺는 점에서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의 신조와 가장 유사하지만,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부활영생으로 끝을 맺음으로써 씨릴과 에피파니우스의 신조와 흡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동방교회의 신조가 니케아 신조와 니케아 신조에 나오는 동질이란 말만 해 놓고는 모두 팔레스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3) 라틴, 즉 서방교회의 신조는 필리오꿰’(Filioque, 그리고 아들)라는 용어 면에서 희랍교회의 신조와 약간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이 용어는 교황의 권위 문제 다음으로 동서 기독교를 갈라지게 하는데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희랍교회는 본래의 본문을 고집하면서 성부의 유일한 신성과 신성의 본체를 의미하는 모나키아’(monarchia)를 강조함으로써 성령이 오직 성부에게서만 발출되었다고 하는 단순발출( )을 가르쳐 삼위의 내재적 영원발출(성자의 영원 발생처럼)을 위한 길을 열어주었으며, 성부와 성자에 의한 성령의 지상 사역(temporal mission)을 명확하게 했다. 라틴교회는 성자가 성부와 동등함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발출(processio)을 넓은 의미로 해석하였고 어거스틴 이후로부터는 성령이 성부와 그리고 성자에게 발출했다는 이중발출 교리를 동방교회와 협의 없이 신조 속에 포함시켰다.

 

니케아 신조에서 필리오꿰’(Filioque)가 등장하기 시작한 최초의 명확한 증거는 아리안 사상에 대한 정통 사상의 승리를 확인하기 위해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589년에 모였던 제3차 톨레도회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사상은 제8세기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널리 유행했는데 반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황 레오 3세는 악스 라 샤플(Aix la Chapelle)에서 통치하고 있던 샤르만(Charlemagne) 대제가 809년에 교회회의를 거쳐 파송한 사신의 질문을 받고 이중발출론에 대하여 호의를 보이면서 필리오꿰를 승인했으나 신조에 수정을 가하는 것은 반대했다. 이 사상은 교황 니콜라스 1세 때(858) 이탈리아에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점차 모든 라틴 교회가 채택했다. 이리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이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라틴교회의 신조에는 ‘Deus de Deo’(하나님의 하나님)라는 또 다른 추가 구절이 제2장에 들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별 논란이 없었다. 그 이유는 이 구절이 본래의 니케아 신조 속에 들어 있었고, 콘스탄티노플 신조가 이것을 생략한 것은 이 말이 ‘Deus verus de Deo utero’(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라는 말 바로 다음에 나옴으로써 별로 사용되지 않아서 생략한 것 분임을 양해했기 때문이었다.

 

니케아 신조(서방교회에서 추가한 조항이 없는)는 희랍교회에서 큰 권위를 인정받아 사도신경이 라틴교회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차지하는 것과 버금가는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도 희랍과 러시아 정교회는 모두 이 신조를 받아들이고 있다. 로마교회도 이 신조(Filioque가 첨가된)를 예배의식에서 사용하고 있으며(6세기 이후로), 영국 성공회와 루터파 교회도 수납하고 있다. 트렌트회의는 이 신조를 기초 신조로 채택하였다. 비오 4세가 작성한 트리텐틴 신앙고백(Profession of the Tridentine Faith)에도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이나 아다나시우스 신조가 동방교회에서 널리 사용되지를 못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니케아 신조가 훨씬 더 에큐메니칼한 신조라고 볼 수도 있다.

 

다음은 니케아 신조와 사도신경의 관계를 비교해 본 것이다.

 

사도신경: 공인을 받은 본문(괄호 안에 있는 부분은 후에 추가된 것이다).

 

1.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 (천지를 지으신)

2. 또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3.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4.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장사지낸 바 되고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5. 삼 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6.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시고

7.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8. (나는 믿기를) 성령과

9. 거룩한 () 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10.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11. 육체의 부활과

12. (또 영생)을 믿는다.

 

381년에 확대된 니케아신조(괄호 안은 서방교회에서 변형시킨 용어들이다).

 

1. 우리()는 한 분이시며 전능하사 천지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

2.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오 만유보다 먼저 아버지께로서 나신 자요 (신 중의 신이시며) 빛 중의 빛이시요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시오 지음받지 않고 나셨으며 아버지와 한 본체를 가지셨고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은 바 되었으며

3. 우리 인생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4.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당하시사 고난을 받아 장사지낸 바 되었으며

5. 삼 일 만에 성경대로 부활하사

6. 하늘에 올라 아버지 우편에 앉으시고

7. 영광 중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사 그의 나라를 그치지 않게 하실 것을 믿는다.

8. (나는 믿기를) 성령, 곧 주 되시고 생명을 주시는 자를 믿으니 이는 아버지 (그리고 아들)에게서 나셨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며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분이시다.

9. (나는) 하나인 거룩한 공회와 사도적 교회를 (믿는다)

10. 우리()는 죄를 사하는 세례가 하나 있는 것으로 알며

11. 또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12. 세상에 생명이 임할 것을 기다린다.

 

4. 칼케돈 신조(The Creed of Chalcedon)

 

칼케돈 신조는 콘스탄티노플회의를 대항하기 위해서 주후 451년 칼케돈에서 회집되었던 제4차 세계종교회의의 제4, 5차 회의에서(10. 2225) 채택되었다.

 

칼케돈 신조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따르고 있으며 교황 레오가 플레비언에게 보낸 에삐스똘라 도그마띠카(Epistola Dogmatica)에 나타난 기독론을 밝히고 있다. 플레비언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로 소위 강도 회의라 불리우는(에배소회의)에서 449년의 이성론(二性論)의 정통 교리를 지키는 순교자가 되었다.

 

1차 니케아회의는 그리스도의 영원, 선재교리를 체계화시킨 반면 제4차 칼케돈회의는 지상에 임재하셨다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성육신하신 로고스에 관한 교리를 체계화시켰다. 칼케돈 신조는 아리우스의 사상을 반대하고 니케아 신조를 받아들였으며,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던 네스토리우스(Nestorius)와 유티커스(Eutychus)의 잘못된 사상을 배격하고 있다. 칼케돈 신조는 단성론(Monophysites)과 단의론(Monotelitecs) 논쟁이 아직 격화되기 이전, 즉 비교적 아직 근본적인 문제가 등장하기 이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초대교회의 정통적인 기독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마치 니케아 신조의 삼위일체론이 삼신론(Tritheism)과 단일신론(Sabllianism)의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듯이, 칼케돈 신조는 네스토리우스주의와 유티커스주의의 중간 입장을 택하고 있다.

 

다음은 칼케돈 신조가 갖고 있는 기독론의 중요한 내용들이다.

 

(1) 로고스, 즉 하나님의 제2위의 진정한 성육신

성육신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전환되거나 변형된 것이 아니요 사람이 하나님으로 전환된 것도 아니며, 둘이 하나 속에 흡수되거나 혼돈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이 다른 쪽 속에 단순히 내주하거나 둘이 외견상으로만 일시적으로 연결된 것도 아니다. 성육신은 둘이 한 인격체 안에 실제적으로도 영속적으로 연합한 것이다.

 

(2) 성과 위의 엄격한 구분

또는 실체는 그 존재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분량의 총체를 가리키고, ()는 자아, 자의식, 자주장, 행동 주체를 가리킨다. 로고스는 인간적인 위격(우리는 신적, 인적인 두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성을 가지신 것으로 여겨지며 그는 이것으로 특수한 인간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성을 나누어 가진 사람들을 구속하셨다.

 

(3) 성육신의 결과로서의 신인(God-Man)

그리스도는(네스토리우스의 주장처럼) 두 위격을 가진 2중적인 존재나 (아폴리나스나 단성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도 인간도 아닌 중간적 존재 또는 제3(terbium quid)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신성과 인성을 한 위격 안에 함께 가진 분이시다.

 

(4) 성의 이중성

정통교리는 유티커스주의와 대항하여 성육신 이후에도 성의 구분을 인정하되 양성은 변화나 혼돈없이 그리고 분리나 분할 없이 구분됨으로써 신적 의지는 여전히 신적 의지대로 남아 있고 인간적 의지는 여전히 인간적 의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이 두 성품은 계속해서 하나의 동일한 생활을 하면서 삼위의 각 위들처럼 상호 교통을 하고 있다.

 

(5) 위의 통일성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성육신의 결과로 비롯된 영원한 상태요 참되고, 초자연적이며, 인격적이고, 분리할 수 없는 연합이다. 그러나 본체의 혼돈이나 합병과는 다르며, 단순한 도덕적 연합이나 신자와 그리스도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신비적 연합과도 구별된다. 두 성품은 단지 한 인격체만을 구성하나 여전히 구분이 가능하다. 레오는 참 하나님이신 바로 그 분이 또한 참 인간이심에도 이 연합에는 속임수가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인간의 저급함과 하나님의 위엄이 서로 완벽하게 침투되어 있기 때문이다두 성품이 단 하나의 인격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동정녀를 통하여 육신을 입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인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오셨다’(3:13)고 하는 말씀을 읽게 되며 다른 편에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영원성과 동일본질을 가진 하나님이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인성의 연약함이 고난을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라고 한 말씀들을 읽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인격은 인성과 신성이 연합을 이룬 것이지만, 자의식의 기초이면서 인성에 침투되어 활력을 넣어주는 요소는 신성이다.

 

(6)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은 그의 인격에로 돌려지고 어느 한 성품에만 배타적으로 돌려지지 않는다. 인격은 활동의 주체요 성품은 활동의 기구 또는 매개체이다. 신성으로 말미암아 행하셨던 이적들과 인성의 감각으로 당하신 고난은 모두 그리스도의 한 신인(神人)되신 인격의 사역이다. 구주의 초인간적인 노력과 무한한 공로는 마땅히 그의 신성을 인하여 그의 인격에로 돌려져야 하지만, 그가 수고한 시험과 고난과 죽음을 당할 수 있고 또 당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음으로 해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되신 것은 오직 그의 인성에게 돌려져야 한다.

 

(7) 그리스도의 인성의 비인격성(Anhypostasia)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엔히포타시아’<Enhypostasia>). ‘앤히포타시아’(Anhypostasia)는 순전히 부정적인 용어로서 가설적인 추상적 의미를 전제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인성은 성육신 행위가 있기 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으로 인격체일 수도 비인격체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교리가 갖고 있는 의미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인격을 가질 수 없다는 것과 신성이 그의 인격의 기초와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현대 심리학으로 본다면 고대의 정통 기독론에는 심각한 난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죄 없는 인성을 상상해 볼 수는 있으나(왜냐하면 죄란 인간의 부패상이요 본질적인 특성이 아니기 때문), 인격성이나 자의식 또는 자유로운 자아가 없는 인성을 상상할 수는 없다. 인격은 사람을 동물과 구별지어 주는 차이점이요 사람이 지닌 탁월성과 면류관이다. 뿐만 아니라 복음서를 아무 편견이 없이 읽어 보노라면, 그리스도는 단지 한 인간(다만 죄가 없을 뿐)처럼 인성으로 충만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고난당하는 분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이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구별되게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스스로를 자신의 뜻에 굴복시키고, 임종 시에는 친히 자기 영혼에게 명령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복음서를 보면,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가장 친밀하고 밀접하고 신비로운 생명으로 연합된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지음을 받기 이전, 즉 선재시의 인격에 대한 의식, 이 땅 위에 거하는 동안에도 하늘에서 살고 있다는 의식 그리고 자신의 뜻과 본체는 아버지와 하나이다는 의식으로 충만해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는 신-인격체(theanthropic)임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선재한 로고스의 인격과 더불어 함께할 때에라야 완성되며 충만한 자아의식을 가질 수 있다. 신성은 인성의 모든 발전단계 속에 침투되어 인성을 지배한다.

 

칼케돈 신조의 기독론은 후대에(슐라이에르마허, 바우어, 도르너, 로데 등에 의해서) 극심한 비평과 불완전한 심리학이라는 도전을 받았으며, 오늘날에는 이성의 구분이나 인격적 통일성의 구분을 간과케 하는 이원론 또는 가현설이라는 명목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들은 피차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반대하던 삼신론과 단일신론이 세 인격교리와, 종속설의 약점을 들추어내듯이, 서로가 상대방의 비난을 중화시키고 있다. 실로 칼케돈 신조의 독특한 탁월성은 그리스도 안에 상반되는 두 요소를 매우 기교 있고 지혜롭게 연합함과 동시에, 성품의 구분을 올바로 시도하면서 인격의 통일을 추구한 점에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모순들이 화목을 이룬다.

 

칼케돈 신조는 하나님이 육신 안에 나타났다고 하는 신성의 위대한 신비를 설명하는 데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진정, 완전, 무죄한 인성과 사도 바울의 케노시스(Kenosis)- 우리 주님께서 성육신하셨을 때와 인간의 생활을 하시는 동안에 신적 로고스의 자기 포기와 제한 - 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문제가 그리스도와 성부의 관게, 그리스도와 세상의 관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케돈 신조는 기독론의 본질적인 요소를 밝혀 기독론적 이단과의 경계선을 그어 주고 있다. 칼케돈 신조는 기독교의 중심된 신앙의 내용을 건전하게 발전시켜서 네스토리우스주의자인 스킬라(Scylla)의 이원론과 유티커스주의자인 카리브디스(Charybdis)의 단성론을 모두 피하게 해 주었고, 우리의 주, 곧 구세주의 한 신인격에 대한 충분한 사상을 제공해 주었다. 신학적인 사색은 이 범위 안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활동하며 보다 명확한 견해를 우리에게 제공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만 알고”,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볼 뿐인 이 세상에서는 우리 주님의 신인으로서의 생활에 대한 위대한 신비를 결코 완변하게 헤아려 알 수가 없다.

 

5. 아다나시우스 신조(The Athanasian Creed)

 

아타나시우스 신조는 그 시작이 뀌쿤꿰 불트 살부스 에세’(Quicunque vult salvus esse)라는 말로 시작되기 때문에 뀌쿤꿰 신조(Symbolum Quicunque)라고도 한다.

 

(1)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사도신경이나 엑셀시스’(Excelsis)에 나오는 글로리아’(Gloria) 또는 테 데움’(Te Deum)처럼 저자가 명확하지 않다.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저자를 모르거나 애매한 작품이 비상한 영향력을 발휘한 대표적 실례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9세기 이후로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으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정통적인 삼위일체 교리를 가장 두드러지게 옹호했던 아다나시우스(373년 사망)가 이 신조의 저자인 것으로 알려져 온다. 3차와 제4차 세계교회회의는 니케아 신조 이외에 다른 신조를 작성하거나 출판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범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아 정통 교리의 아버지란 찬란한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17세기 중엽 이후로는 저자를 아다나시우스로 보는 견해가 프로테스탄트 학자들뿐만 아니라 카톨릭 학자들에게서도 배척을 받았다. 그 결정적인 배척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다나시우스 시대에 살던 인물들과 작가들의 기록 어느 곳에도 이 신조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 콘스탄티노플(381), 에베소(431), 칼케돈(451) 회의가 이 신조에 대해 아무런 암시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는 점, 이 신조는 그리스도의 품위론 제정에 관한 제5세기의 교리 논쟁을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최소한 칼케돈의 기록들을 대체로 따르고 있다는 점, 끝으로 이 신조가 고울, 북 아프리카, 스페인에 있는 라틴교회에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반면 희랍교회는 제11세기 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그것을 안 뒤로는 성부와 그리고 아들로부터 성령의 발출을 말하는 서방교회식의 구문 때문에 반대 내지는 수정을 가했다는 점 등이다. 헬라어로 된 본문은 미숙한 번역자들이 어색한 단어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원본과 크게 차이를 보이자 배척을 당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가짜 아다나시우스 신조(The Pseudo Athanasian Creed)는 아마도 고울이나 북 아프리카에 있는 라틴교회의 어거스틴 학파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신조의 많은 구절들은 어거스틴이 아닌 라틴 교부들에게서 빌려온 것이었는데, 그 완전한 형태는 8세기 말 또는 9세기 초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신조의 구조나 중간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저주문은 본래 두 사람에 의해 작성되었던 두 개의 신조가 제삼자에 의해 통합되었다고 볼 수도 있게 해 준다.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을 함축하고 있는 첫 부분은 보다 자세하고 형이상학적이다. 칼케돈 신조의 기독론을 함축하고 있는 둘째 부분은 제8세기 중엽 트레브스(Treves) 지역에서 발견된 사본에 들어 있는 성육신에 관한 설교의 단편으로 짜맞추어져 있다. 아다나시우스의 트레브스에서 얼마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는 사실은 정통 삼위일체 교리의 거목이었던 아다나시우스가 이 신조 전체를 다 작성했다는 전통적인 입장을 제거할 수도 있게 했다.

 

(2) 특징과 내용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제4차 에큐메니칼회의 때까지(325-451)의 교리적 결정들과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한 어거스틴의 사상을 매우 분명하고도 자세하게 요약하고 있다. 간결한 문장들은 기술적으로 배열되었고 리드미컬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음악적인 신조 또는 교리적인 찬송시라 할 수도 있다. 딘 스텐리(Dean Stanley)는 이 신조를 가리켜 정통신앙을 향한 승리의 찬가라고 불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고대의 테 데움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보다는 훨씬 더 형이상학적이고 심오하다. 그러나 세 번씩이나 반복되는 저주문으로 말미암아 조화미를 잃고 있다.

 

두 구성 부분

 

첫째 부분(3-28)은 성삼위에 관한 정통 교리를 말하고 있는데,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못지않게 명확하면서도 가장 엄격한 어거스틴 형을 쫓아서 종속설을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니케아 신조나 사도신경을 능가한다. 왜냐하면 니케아 신조나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교리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단지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가르치는 간접적인 방법만을 사용함으로써, 성자의 성부에 대한 종속과 성령의 성부와 성자에 대한 종속 개념을 허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다나시우스 신조 이후에 나온 신조들은 신적 존재 또는 본체의 절대적인 통일성,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성을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삼위를 가진 한 분이시오 각 위는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을 지닌 완전한 신이시다. 위라는 용어는 단순히 분장이나 나타나는 형태(얼굴, 가면)만을 가리키던 종래의 의미 또는 독립된 존재, 구별된 존재, 개별적 존재를 가리키는 오늘날의 의미만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중간 입장을 취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사벨리안주의를 배격하고 다른 편으로는 삼신론을 배격한다. 신적 위들은 서로가 하나이며, 신적 본체 안에서 영원한 상호 교통과 침투가 이루어진다. 각 위마다 신적 본체 안에 있는 신적 속성들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 위에 독특한 개별적 특성이나 성질도 가지고 있어서 서로 교환될 수가 없다. 성부는 비발생이지만 성자는 발생되었고, 성령은 발출되었다. 이 삼위 안에서는 시간적으로 우선하거나 종속하는 일이 없고, 지위에 있어서도 우월하거나 열등한 일이 없으며, 삼위가 동등하고 똑같이 영원하다.

 

삼위일체의 신비가 논리적으로 규명될 수 있었다면 이 부분에서 해설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신비는 대단히 난해하다. 하나님에 관한 무한한 진리는 단지 유한한 진리와 범주만을 대상으로 하는 논리를 훨씬 초월해 있다. 어거스틴의 다음 말을 기억하는 것은 항상 유익을 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 더 크시고 더 참되시며 그 실재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시고 더 참되시다.”

 

둘째 부분(29-44)은 그리스도의 품위에 관한 정통교리를 431년 에베소회의나 451년 칼케돈회의처럼 간결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의 매우 값진 증보판이라 할 수 있다.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그리스도께서 이성적인 영혼을 가지셨다고 함으로써, 인성의 범위를 단지 동물적 영을 가진 육체에 국한시킨 채 그 안에서 신적 로고스가 거주하셨다고 하는 아폴리나리우스 이단을 반대하고 있다.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올바른 관계를 가르침으로써 네스토리우스와 유티커스 또는 단성론의 이단들을 배격하고 본질적으로 칼케돈 신조와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3) 저주문(咀呪文)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비논쟁적이고 평화로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삼위일체와 성육신 등을 믿는 공교회의 신앙은 구원의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며, 이 신앙을 반대하는 자는 영원히 멸망을 받으리라고 하는 엄숙한 선언으로 시작하고 또 끝을 맺는다. 이와 동일한 저주문은 첫 번째 부분의 마지막과 두 번째 부분의 서두 사이에도 나온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이 세 차례의 저주문은 단지 이단의 큰 위험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나 구원의 필요조건이 되는 교리들은 논리적으로 진술한 것에 대하여 충분한 인식과 동의를 요청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만일 이것을 위한 것이라면 엄청난 숫자의 그리스도인들을 정죄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 안에서 가르치고 있는 신적 진리를 반대하는 자는 모두 천국에서 죄외될 것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구원을 받기 원하는 자라면 누구나 유일하게 참되시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본체에서 하나, 품위에 있어서 셋, 참 하나님이시오 참 사람이시면서 한 인격을 가지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저주문, 그것도 이 저주문이 공예배 석상에서 노래되고 암송될 때에는 프로테스탄스의 귀에 매우 어색하게 들려질 것이요 과연 이 저주문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온유와 겸손에 위배되지 않겠는가 또는 교회가 합법적으로 부여받은 권위를 남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될 것이다. 저주문은 마가복음 16:16에 호소함으로써 그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마가복음 16:16은 어찌 복음을 반대하는 자, 즉 어떤 특정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위대하신 구원 사실을 반대하는 자만을 정죄하고 있다. 구원과 저주는 오로지 생명력 있는 믿음을 낳는 하나님의 은혜 또는 배은망덕한 불신앙으로만 말미암는다.

 

사실상 니케아 신조에도 본래는 아리안주의를 향한 저주문이 첨가되어 있었으나 훗날 이것이 생략된 것이 잘된 일이었다. 신조가 신앙의 고백이나 하나님의 능하신 사역에 대한 감사가 되지 못하고 논쟁적이 되거나 분란을 일으킬 만한 자극제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면 마치 맥빠진 찬송가의 경우처럼 그 본래의 위력과 목표를 상실하게 된다.

 

(4) 도입과 사용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라틴교회에서 큰 권위를 인정받았고 중세기에는 아침 예배 때에 거의 매일 사용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신조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신조는 루터파와 몇몇 개혁교회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으며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Augusburg Confession), 일치신조(The Form of Concord), 39개조 신조(The Thirty-Nine Articles), 2스위스 신앙고백(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벨직 신앙고백(The Belgic Confession), 보헤미아 신앙고백(The Bohemian Confession)에는 이를 인정하는 언급이 들어 있다.

 

루터는 이 신앙고백을 사도시대 이후로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영광스러운 신조라고 여겼다.

 

특히 영국 성공회를 비롯한 일부 개혁파 신학자들은 이 신조를 매우 높이 추천했으며, 청교도이던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까지도 삼위일체에 대한 최상의 해석(보다 나은 진술)”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저주문은 생략되든지 아니면 적절하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했다.

 

영국교회에서는 크고 작은 교회들에서 몇몇 절기를 당할 때에 이 신조를 노래하거나 암송하는 일이 있었지만, 공예배 때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점차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왕의 명령에 의하여 영국교회의 의식개정을 꾀하던 1867년에는 거의 만장일치로 공예배 시의 필수적인 사용강요가 정죄를 받았다.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감독교회(Protestant Episcopal Church)는 미국 혁명이 끝난 1785년에 필라델피아에서 큰 집회를 열고 독립된 조직을 구성할 때, 의식서(Proposed Book 안에 있는)를 재조정하면서 니케아 신조와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모두 삭제해 버렸고 사도신경에서는 음부에 내력가사라는 구절을 빼 버렸다. 켄터베리와 요오크의 대주교들은 미국으로 보낼 감독들에게 안수를 해 주기 전에 교인들로 하여금 사도신경의 생략 부활을 다시 추가할 것과 사도신경과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임의 재량에 따라 사용하되 공 기도서에다 기록해 넣을 것을 요구했다. 17861010일 윌밍톤(Wilmington)에서 모인 총회는 영국측의 두 가지 요구를 받아들였으나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재등장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아다나시우스 신조에 대한 반대 이유는 특별히 저주문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영국 모교회는 마지못해 저주문의 생략을 묵인하고 감독직을 인정해 주었다.

 

희랍교회에서는 아다나시우스 신조가 전혀 일반적인 용납이나 공식적인 교회의 인준을 얻지 못하고, 성령의 이중발출에 관한 구절이 생략된 채 개인적으로만 사용되었다.

 

 

[필립 샤프, 신조학, pp.16-38]